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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12일 목요일 말씀묵상 ♣
성경:창세기27:30-40(구39P)
제목:복을 받지 못한 자 에서
30.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31.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37.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39.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할렐루야!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복을 받지 못한 자 에서”
창세기27:24-29절에서 야곱이 받은 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은 에돔 족속이 되어 미개한 종족으로 남고 말았지만, 야곱의 후손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특별한 민족이고, 그 후손의 몸을 사용해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이 받은 놀라운 복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1. 물질의 복입니다(28절).
2. 형제 중에서 으뜸과 주가 되는 복(29절).
3. 복의 근원이 됩니다(29절).
그런데 우리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어디에서 나오며 누가 주시는가? 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이것이 복중에 복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물질을 주시며, 남들의 머리가 되게 하시며, 복의 근원을 삼아서 남들도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복을 비천한 우리들에게도 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합시다.
야곱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복을 귀중히 여기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그분에게 찬송을 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그래서 복 받은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의 이웃들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을 받지 못한 자 에서”(창27:30-40)
동생인 야곱은 아버지가 형 에서에게 주려고 했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별미를 형보다 먼저 들고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고 축복을 받고는 아버지 앞을 떠나자 곧 이어 에서가 도착했습니다.
에서는 급히 부친께 드릴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앞에 들고 갔는데, 아버지가 하는 말이, “내가 이미 내 큰 아들에게 복을 빌어주었는데, 너는 누구냐?” 하는 겁니다. 에서의 기대는 분노와 통곡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결국 아버지에게서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이 모든 것이 동생인 야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야곱을 죽여서 한을 풀겠다고 각오합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제 기쁨과 기대와 평화는 없어지고 피해의식과 미움과 증오, 살기로 가득한 생애를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은 여유를 가지고 평안하고 느긋하게 세상을 살 수 있지만,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조급하고 불안하며 증오로 세상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 가도 중심에 서지 못하고 사이드 인생이 되어 겉으로 빙빙 돌게 되며, 세상의 모든 것을 삐뚤어지게 보고 비판이나 하고, 헐뜯기나 하면서 부정적인 생을 사는 사람이 됩니다.
언제나 남의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되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자기 신상을 들볶는 사람이 되고, 세상을 삐딱하게 보면서 편치 못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면 결국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세상을 아주 순탄하게 살아갑니다. 남보다 더 이를 악문 것도 아닌데 그의 앞길은 왠지 형통합니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일이 잘 풀립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눈이 꼬부라져 있지 않습니다.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고 이웃을 봅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고 이웃을 향한 칭찬과 격려가 나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봉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들을 도우면서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힘든 문제를 만날지라도 절망적으로 보기보다는 희망적으로 보며, 해소된 뒤에 얻을 효과를 생각하면서 고난도 잘 참아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우선 생각이 삐뚤어집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며, 그의 눈에는 불평 할 일과 비판 할 일과 부정적인 것만 항상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는 항상 비판과 불평이 나오게 되어있고, 그는 세상을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평안이 없고, 편안한 친구가 없습니다.
문제를 만나면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고,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오면 “역시 나는 안돼” 하면서 쉽게 포기하고 쉽게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살면서 평탄한 삶을 감사와 만족으로 세상을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비판과 원망으로 힘겨운 세상을 살고 싶습니까? 누구나 평탄한 삶을 살면서 감사와 만족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갈림길이 바로 하나님의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학벌이나 재산이나 환경이 아니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야곱처럼 사모하시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에서의 비참한 상태.
에서는 형이었고 그가 먼저 아버지의 복을 받을 사람이었지만, 그 복을 동생 야곱에게 빼앗겼고 결국 비참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의 부친이 에서에게 한 말이 37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라고 했습니다.
이제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해준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너는 이제부터 동생에게 지배당하게 되었다는 통보입니다.
그날 이후로, 에서의 자손은 자손대대로 야곱의 자손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야곱의 종이 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물질의 풍요와 넉넉함을 내가 야곱에게 다 빌어주었으니, 네 몫은 가난과 궁핍밖에 없다 는 말입니다. 듣다 못한 에서는 소리를 높여 울면서 안타까운 절규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34절에 보니까 에서가 아버지에게 다시 절규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라고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이삭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장남 에서에게 남은 복을 빌고 있는 내용이 39-4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건데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더욱 비참한 그의 장래를 예언하는 내용뿐입니다. 뭐라고 하였는지 아십니까?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비참한 말입니다.
그 예언대로 에돔 족속은 나중에 세일 산에 거했는데 그곳은 아주 메마른 박토였습니다.
“너는 칼을 믿고 생활 하겠고”
너의 후손은 약탈자, 습격자, 산적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에서의 후손은 세일 산의 산적이 되었습니다.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이 예언은 에서의 후손이 이스라엘에게 정복당할 것을 말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을 쳐야만 그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사울 왕 때에 유대에 패하여 그들을 섬기기 시작했고(삼상14:47), 다윗 왕 때에 다시 그 치하에 속했으며(삼하8:13-14), 솔로몬 왕 때 반역했다가(왕상11:14) 다시 지배를 당하였으며, 요람 왕 때 반역했다가 아마샤 때에 다시 정복당하였고, 아하스 때 유다의 통치를 벗어났다가 다시 그 아래 굴복하였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야곱의 후손들에게서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몸부림치는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획도 틀림이 없고,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과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야곱 한사람이 복을 받음으로서, 그의 후손 전체가 평안하고 넉넉한 삶을 사는 지배자가 되었고, 에서 한사람이 복을 받지 못함으로서 그 자신과 후손만대에 엄청난 저주와 짓밟힘을 당하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이것은 소설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현실의 역사입니다. 부모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부모 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아서 복을 받고 그 복을 물려주는 것이 얼마나 보배 같은 일인지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내가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해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면, 나만 긍정적이고 복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후손만대에 그런 삶을 물려줍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인 일을 우습게 여기고 육신의 판단 중심으로 세상을 살면, 나만 고달픈 삶을 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도 척박하고 고달픈 삶의 환경을 물려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신앙으로 살아가는 그 삶의 가치는 그 무엇으로 따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진실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2. 에서가 비참해진 근본적인 원인(히 12:16-17).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그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버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육신의 유익, 눈앞에 있는 당장의 유익을 위해서 영적문제를 내팽개쳤던 한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과, 그 결말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눈앞의 육신의 문제로 영적인 가치를 소홀히 여겨서 자기의 소중한 특권을 잃어버리고 기회를 상실한 사람이 에서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다행히도 믿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세상 직장 때문에 신앙을 내던진 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주일학교 때, 중고등부 때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대학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신앙생활에 몰두한 자신의 어린시절을 어리석게 여기고 세상으로 나가버린 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들이 에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교회에서 장로와 권사 집사의 직분을 맡고도 자기 육신과 물질의 유익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느라고 직분을 감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사람입니다.
그들이 에서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아직 모르고 있지만 나중에는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그들의 후손이 에서의 자손 같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에서의 잘못이 무엇이었습니까?
1).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사냥을 하러갔다가 돌아온 에서는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그때 야곱은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형 에서는 야곱에게 그 붉은 것을 좀 달라고 했고, 야곱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형이나 나나 같은 기간 동안 같은 어머니 뱃속에 있었고, 같은 날 태어났는데 형은 평생 형이고 나는 평생 동생이 되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지 않으냐, 나도 형이 되고 싶어 죽겠다. 만약 나에게 형의 명분을 준다면 이 팥죽을 주겠다” 고 제의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제의였고 야곱의 말을 무시하고 가만히 조금만 기다리면 어머니가 와서 팥죽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장자의 명분이 뭐 그리 대수냐, 장남이 되어야 잘살고 장남이 더 행복한거냐? 그것이 그렇게 탐나거든 가져가라 는 심정으로 “알았다. 어서 그 팥죽이나 다오” 하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빌어주는 축복이 하나님께서 조부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바에 따라서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 그리고 그 자손에게 이어질 놀라운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 축복의 계승라인에 서기 위해서 그렇게 몸부림 친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의 축복을 바로 깨닫고 탐내는 야곱 앞에서, 에서는 장자의 명분, 아버지를 모셔서 공경하고 아버지의 축복을 계승하는 그 장자의 자리를 도리어 짐스럽게 생각하거나 하찮게 여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면서 팔아버렸는데(25:32),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영적인 일을 등한시 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됩니다.
남자가 몸 건강하고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어놓고,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거지, 이 개명한 세상에 남자가 주일마다 교회에 가야 하느냐, 어떤 규율에 얽매여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만 한단 말이냐,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에서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의 눈에서 아주 대범하고 트인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세상천지를 주관하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남자냐 여자냐, 유식하냐 무식하냐, 건강하냐 병약하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중시하시는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외모가 출중하거나 그가 외교술이 능하거나 악착스럽게 살아서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눈앞에 모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것을 무시하는 사람, 하나님의 축복을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축복을 받으려고 기를 쓰고 매달리며, 오늘 현재보다는 미래를 생각합니다. 자신의 앞날뿐 아니라 자손들의 앞날을 위해서 오늘을 기꺼이 투자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의 만사는 힘 있는 사람이나 시대적 상황이나 인간의 노력 여부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축복을 사모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 별미를 바칠 찬스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사냥도 했습니다. 별미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들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늦은 것이 복을 받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에서가 오기 전에, 한발 앞서 야곱이 먼저 별미를 가지고 갔던 것입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늦었습니다. 야곱이 복을 받고 나오자 마자, 에서가 도착했던 것입니다.
기회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통 사람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회를 아주 중시합니다. 보라 오늘은 구원을 얻을 때요 보라 오늘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은 오늘 이라는 시간을 중시하십니까? 이 말씀을 묵상하는 이 순간! 직분을 갖고 봉사할 자리에 있는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에서는, 시간이 늦어서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3). 어머니의 협조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적극적인 협력을 받은 반면에, 에서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자녀가 아버지께 용돈을 탈 때에도 어머니가 도와주면 쉽습니다.
어떤 허락을 받을 때에도 어머니의 협력은 절대 필요합니다.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데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했듯이, 성도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와 같이 동행하시며, 위로하시며, 격려하시며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믿는 사람을 도우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령님께서 나의 날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도와주시기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내 마음에 어떤 선한 감동을 주실 때 거절하지 말고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복된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세속적인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무시합니다. 신비한 일로만 여기고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성령을 보내어 성령이 우리 마음을 감동하고 생각을 주장하고 인도하도록 하시어 우리를 이끄십니다.
성령을 무시하는 성도, 성령의 역사에 둔감한 성도, 기도하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신앙생활 하려는 사람,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지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힘들고 복을 누리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결론}***
본문에서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겼던 에서는 남은 복마저 동생에게 뻬앗기자 분노하며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1. 에서의 비참한 상태.
2. 에서가 비참해진 근본적인 원인(히 12:16-17).
그러면 에서의 잘못이 무엇이었습니까?
1).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2). 별미를 바칠 찬스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3). 어머니의 협조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에서의 저주받은 삶과 부정적인 삶은 모두가 자기 탓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다음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을 중심으로 살면서 신령한일을 등한시 하는 사람이 되어 고달픈 인생이 되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기회를 다 놓쳐 버리고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하되 돌이킬 기회를 얻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거나,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론적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해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메마른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없게 되어 고달픈 삶, 남의 지배를 받고 그 지배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멍에아래 사는 존재가 될 것이며, 그렇게 살면 언제나 세상을 삐딱하게만 보게 되고, 피해의식과 저주 속에서 생을 살다가 갈 것이요, 우리 후손들에게는 끊기 어려운 비극의 끈을 남겨주고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하나님께 복을 받기위해 몸부림을 치는 일은 이 세상에서의 먹고 살기위해서 하는 생존경쟁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여가생활이 아닙니다. 마지못해서 신앙생활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합시다. 신령한 일을 가치있게 여기고,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선용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곱처럼 여러분의 후손과 이웃에게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창세기27:30-40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시고 에서의 길을 가다가 후회하지 마시고 야곱의 길을 가시기를 소원합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창2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