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50여년전,
그러니까 1960년대를 풍미한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최고의 미녀 배우들 사진을 모아봤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4번이나 변했을 테니, 미의 기준도 그만큼 수없이 바뀌었겠지요.
지금 우리가 미녀배우라고 칭하는 김태희나 한가인, 송혜교 등의 배우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하지만 60년대에는 그만큼, 아니 그보다 어쩌면 더한 사랑을 받았던 배우들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동안 미의 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지미(1940~ )
본명 김명자. 1957년 김기영 감독의〈황혼열차>에 발탁되어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 뒤 1989년 〈아낌없이 주련다〉까지 모두 5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동양적인 미모와 강인한 성격을 바탕으로 한국영화의 전성기인 1960~70년대를 풍미했다.
1974년 〈토지〉로 제13회 대종상과 파나마 영화제의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1987년에는 지미필름을 설립하여 제작자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제작영화로는 〈티켓〉(1986)·〈아메리카·아메리카〉(1988)·〈명자 아끼꼬 쏘냐〉(1992) 등이 있다.
20대 초반에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들
현재의 김지미 씨.
문희/ 남정임/ 윤정희 트로이카
청순가련 "문희"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남정임"
지적이고 세련된 파리지엔느 "윤정희"
좌측부터 문희, 남정임, 윤정희
첫번째 사진은 영화 "결혼교실" (1969) 의 출연진들.
왼쪽부터 영화배우 윤정희, 신성일, 문희, 남정임.
당시로서는 최대의 호화출연으로 큰 이목을 끌었다고.
문희 (1947~ )
본명 이순임.
동구 여자 상업고등학교를 거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와 이화여대 정보과학대학원 여성최고지도자과정 수료.
서라벌예대 재학시절 친구를 따라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카메라 테스트를 참관한
이만희 감독의 조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65년 이만희 감독의 <흑맥>으로 데뷔했다.
그에게 화려한 명성을 안겨준 68년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은 당시 사회적인 화제를
일으키면서 고무신 관객의 눈시울을 적셨는데, 유부남(신영균)을 사랑하다 아들을 낳지만 끝내
그 아들을 남자의 집으로 보내고 뒤돌아서야 하는 비련의 여인 혜영 역은 그였기에 더 애잔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청순가련한 여인의 이미지는 연이어 제작된 <속 미워도 다시 한번>(69, 정소영)
<미워도 다시 한번 3>(70, 정소영) <미워도 다시 한번 대완결편>(71, 정소영) 등에서 계속된다.
또한 <미워도 다시 한번 > 연작 뿐만 아니라 <한> <벽 속의 여자>(69, 박종호) <꼬마신랑>(70, 이규웅) 등
그가 출연한 작품은 속편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그의 높은 인기도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양 제일의 미모를 가진 스타’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는 돌연 71년 한국일보 부사장이었던
장강재와 결혼한 후 은퇴를 선언했으며 73년 개봉된 김기덕 감독의 <씻김불>을 마지막으로 연기생활을 접었다.
이후 결혼생활 22년 만인 93년 남편과 사별한 그는 98년 한국종합미디어의 회장직을 역임했다.
헉!! 이순재 씨와 출연한 영화도 있군요. ㅋㅋ
현재의 문희 씨. 여전히 아름다운 눈망울을 간직하고 계시는군요.
전에 <SBS 스페셜>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으시네요.
아직까지도 배우로서의 기품을 잃지 않으신 모습이 참 멋지네요.^^
남정임(1945~1992)
1966년 춘원 이광수 원작인 영화 '유정'의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데뷔하였으며
수전지대, 고원, 순정, 극동의 무적자, 꽃네, 까치 소리, 남자 미용사, 나는 고백한다,
행복한 이별, 결혼교실, 성녀와 마녀 등에 출연하였다.
1970년 제7회 청룡영화상 인기여우상을 수상했다.
1971년 1월 11일 세종호텔의 해금강 홀에서 모교인 한양대학교의 총장 김연준 박사의 주례로
재일동포 임방광과 결혼하면서 은퇴했다.
결혼식장에는 약 천여 명의 어마어마한 하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신랑 신부 뒤편에는 미리 마련한 라이트가 동원되어 남정임의 결혼과 함께 은퇴기념 작품인 감독
장영국의 <첫정> 예고편을 위한 촬영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3년간의 짧은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이혼하였다. 이혼뒤 다시 영화계에 복귀,
<나는 고백한다>와 <웃음소리> <외길가게 하소서>등에 출연했다.
1989년 6월 유방암으로 진단받고 외로운 투병생활 끝에 1992년 9월 2일 서울대학교 대학병원에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총 2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남정임과 신성일. 신성일 씨 멋지네요.
차인표 씨인 줄 알았어요.^^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아주 우아하고 아름답게 나이드셨을 텐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리신 게 안타깝네요. ㅜ ㅜ
윤정희(1944~ )
본명 손미자. 19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으로 데뷔하자마자 대종상 신인 여우상을 수상하였다.
1973년 영화 <효녀 심청>으로 제10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으며,
1994년 영화 만무방으로 대종상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한국 최초의 석사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파리 제3대학교 대학원, 중앙대학교대학원) 배우자 피아니스트 백건우와는 76년 결혼하여
현재까지 금술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파리에 거주 중이다.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 당시 모습
현재 백건우와 윤정희의 다정한 모습
10년 전의 윤정희 씨.
젊을 때와 전혀 다른 분위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