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원들에 사살된 알카에다 최고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게 참 힘든 일일 것이다. 오마르 빈 라덴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풍경화를 그리며 조용히 지내오고 있었는데 프랑스 당국이 8일(현지시간) 9·11 테러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그를 영구 추방하기로 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다음날 보도했다.
물론 오마르는 아버지가 주도한 21세기 최초의 테러를 배격하며 무려 20세 이상 연상인 영국 할머니와 결혼해 프랑스 북부에서 정적인 삶을 보냈다고 항변했다. 그런데 지난해 5월 프랑스 정부는 축출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강경 내무 장관 브루노 레타일루는 오마르에게 영구 추방을 명령하는 문서에 서명을 마쳤다며 “영국 국적자의 배우자로 여러 해 오르네 지방에서 살아온 빈 라덴 씨는 지난해 테러를 미화하는 내용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행정적인 금지 때문에 빈 라덴은 어떤 이유로든 프랑스에 돌아올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된 포스트의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일간 Le Publicateur Libre에 따르면 엑스(X, 옛 트위터)의 @omarbinladin1 계정에는 지난해 5월 2일 부친의 열두 번째 기일을 맞아 9·11 테러를 주모해 많은 인명을 해치고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센터를 파괴한 그를 추모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난 오마르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살았다. 그는 열아홉 살에 아버지와 헤어져 2016년 노르망디에 정착한 뒤 그림을 그리며 지내왔다.
그는 영국 할머니 제인 펠릭스브라운과 결혼했는데 다섯 차례나 이혼한 전력이 있었다. 2007년 그가 결혼한 사실이 확인되자 당연히 상당한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졌다. 결혼 뒤 그녀는 무슬림으로 개종, 자이나 무함메드란 이름으로 개명했다. 오마르는 영국에서 살고 싶어 했지만 영국 정부는 그의 뜻을 일축했다.
그는 온라인 매체 바이스(Vice) 인터뷰를 통해 “난 즐거운 시절을 그리워하는데 너무 어리고 순진해서 날 에워싼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 때였다. 난 사막의 사구들과 거친 바다가 끝없이 이어진 광활함이 그리웠다. 난 어린 시절의 평화가 그립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그림 중에는 오마르가 좋아하는 애리조나주의 사막 그림도 있고 아버지가 9·11 공격 이후 몸을 숨겼던 파키스탄 토라 보라('손을 못 대는' 이란 뜻을 갖고 있다) 산을 담은 그림도 있다. 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S)와 양극성 장애로 힘겨워 했다. 아버지의 커다란 실수를 보상하기 위해 "평화의 대사" 노릇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빛'(The Light)이란 제목의 작품에 대해 그는 “이 어두운 길의 끝에서 약간의 빛을 찾고 싶다고 생각한다. 난 그림이 내 삶에 다시 빛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사코 아버지의 이름을 입에 올리려 하지 않았는데 부친의 잔인한 종교적 극단주의를 자신의 예술로 가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오마르는 아울러 지난 20년 넘게 9·11 테러 공격을 비판하며, 수천 명의 피해자들에게 슬픔을 전하고, 알카에다의 미개한 방식을 개탄해 왔다고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2008년 AP 통신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들이 아랍인들을 특히 빈 라덴 사람들을, 특히 오사마의 아들들을 모두 테러리스트로 여긴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0월 추방 명령을 받고 프랑스를 떠났다가 아내의 영국 국적을 활용해 체류 ㅎ허가를 신청했다. 프랑스 당국은 이를 일축했고 2년 동안 프랑스 입국을 금지해 버렸다. 지난 4일 프랑스 법원은 오마르가 낸 출국 명령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다.
그런데 르타이유 내무 장관은 한 술 더 떠 이날 오마르가 "어떤 이유로도 프랑스에 돌아올 수 없도록" 추가 금지를 발령한 것이다. 그는 지하디스트(성전 테러리스트)의 아들이 테러리즘을 옹호하는 듯한 댓글들을 올렸다는 이유를 들이댔다.
행정적인 금지 명령을 받은 개인들은 일 년 뒤에 이를 뒤집으라는 조치를 요구할 수 있으며 내무부는 5년마다 한 번씩 재평가하도록 돼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