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직선과 원」
옆집에 개가 생김.
말뚝에 매여 있음.
개와 말뚝 사이 언제나 팽팽함.
한껏 당겨진 활처럼 휘어진 등뼈와
굵고 뭉툭한 뿌리 하나로만 버티는 말뚝,
그 사이의 거리 완강하고 고요함.
개 울음에 등뼈와 말뚝이 밤새도록 울림.
밤마다 그 울음에 내 잠과 악몽이 관통당함.
날이 밝아도 개와 말뚝 사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음.
직선 :
등뼈와 말뚝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
온몸으로 말뚝을 잡아당기는 발버둥과
대지처럼 미동도 않는 말뚝 사이에서
조금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고요한 거리.
원 :
말뚝과 등거리에 있는 무수한 등뼈들의 궤적.
말뚝을 정점으로 좌우 위아래로 요동치는 등뼈.
아무리 격렬하게 흔들려도 오차 없는 등거리.
격렬할수록 완벽한 원주(圓周)의 곡선.
개와 말뚝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이제는 철사처럼 굳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음.
오늘 주인이 처음 개와 말뚝 사이를 끊어놓음.
말뚝 없는 등뼈 어쩔 줄 모름.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함.
굽어진 등뼈 펴지지 않음.
개와 말뚝 사이 아무것도 없는데
등뼈, 굽어진 채 뛰고 꺾인 채 달림.
말뚝에서 제법 먼 곳까지 뛰쳐나갔으나 곧 되돌아옴.
말뚝 주위를 맴돌기만 함.
개와 말뚝 사이 여전히 팽팽함.
◈ 시_ 김기택 - 김기택(1957~ )은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무원』 『갈라진다 갈라진다』 등이 있다.
◈ 낭송_ 김동훈 - 배우. 극단 '두목' 소속.
◈ 출전_ ☜『소』(문학과지성사)
◈ 음악_ Backtraxx - Terror Tune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김기택, 「직선과 원」을 배달하며
개와 말뚝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그 사이에 ‘직선과 원’이라는 도형이 생기지요. 우선 개와 말뚝 사이의 직선은 등뼈와 말뚝 사이의 최단거리를 보여주는데,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거리는 줄거나 늘지 않아요. 그 직선은 발벌이와 관련해 생긴 긴장과 팽팽함을 보여주지요. 원은 말뚝의 예속과 수모에서 벗어나 저 멀리 도망가려는 등뼈들의 궤적을 보여줍니다. 말뚝은 꿈쩍도 않고, 그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삶이란 노예의 삶이겠지요. 예속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줄을 끊는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지요. “전쟁을 일으키는 삶을 살라!”고 한 것은 철학자 니체입니다.
문학집배원 장석주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시&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