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중 사이에서 우왕좌왕…트럼프와 반도체 논의를" [수출 엔진이 식다] (1) / 12/23(월) / 중앙일보 일본어판
미국과 중국의 첨단기술 전쟁 한복판에는 반도체가 있다. 이들 무역전쟁에 따라 한국의 반도체 수출 실적뿐 아니라 생태계 전반이 좌우된다. 미국이 HBM 등 AI 반도체와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면서도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덤핑(저가 판매)은 직접 제재하지 않아 한국은 중국의 메모리와 직접 경쟁해야 할 처지다. 이에 미국 싱크탱크에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 정부와 사전에 중국의 저가 메모리 공세를 논의하고 있어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와드와니 AI센터의 그레고리 앨런 디렉터는 20일 중앙일보와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한국에 터무니없이 중요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사업을 파괴하려는 중국 기업이 한국의 장비 기업 등으로부터 첨단 무기(장비)를 공급받도록 한국은 방치할 것인가. 한국은 (미국의) 수출 통제 체제에 가입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앨런 씨는 이어 "내가 한국 정부라면 (제재에 미리 참여해) 중국의 저가 메모리를 협상 안건으로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미국의 기술이 포함된 한국의 광대역 메모리(HBM)와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했는데 한국 정부가 중국산 메모리의 덤핑 문제를 이와 연계해 협상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CSIS는 미국의 대표적 외교안보 싱크탱크로 앨런은 첨단기술 분야를 담당한다.
◇ 정부, 수출제재 사전작업 사실상 실패
미국 내에서도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같은 장비 기업들이 "대중 제재 때문에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빨라진다"며 제재 강화에 반대했다. 그러나 지난달 앨런은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속도를 늦췄다는 사실을 수치로 입증한 보고서를 냈다. 이후 지난 2일 미 상무부는 첨단 반도체용 장비와 HBM의 대중 수출을 금지하는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이번 미국의 추가 제재로 한국은 경쟁국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미국산 장비와 기술을 사용한 다른 나라 제품에도 적용하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에 따라 한국산 HBM과 첨단장비의 대중 수출길이 막혔지만 일본과 네덜란드는 제재에서 제외됐다. 미국과 협약을 맺고 독자적인 대중 수출 제재를 미리 도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최대의 D램 제조업체인 창신메모리(CXMT)를 비롯해 한국과 경쟁하는 중국 기업들이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 중국산 HBM을 개발 중인 우한 신심집성전로제조(XMC)도 옛 공정장비 반입은 가능하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일본 정부가 자국 장비 수출을 계속하기 위해 미국에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도쿄일렉트론과 디스코 등 일본 주요 장비기업의 중국 매출 비중은 40~45%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