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언절로 옮김에서 '크고 넓고 바른 깨침 꽃으로써 꾸민 세계'는 원문에는 없는 말씀이지만 이해를 돕고자 살짝 얹었습니다 이리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는 분명 화엄의 가르침입니다 화엄이 어찌하여 완벽할까요 곧 차별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키가 크면 큰대로 다 인정하고 키가 작으면 작은대로 인정합니다
백합은 순수한 빛깔이 너무 아름답고 정열적 장미가 마음을 빼앗습니다 붉은 장미는 붉어서 매혹적이고 흑장미는 까매 고혹적입니다 라일락은 모습으로 평할까요? 그럴 수 있지만 향기 때문입니다 연꽃은 빛깔에 향기를 더한 셈입니다 연꽃을 빛과 향기로 논한다고요 반드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물에 젖지 않는 잎의 세계와 함께 몸담은 물을 정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 되면 어떻습니까 꽃도 잎도 내세울 만한 게 없습니다 모든 형용사는 완벽하지 않으며 모든 동사도 완전하지 않지요 비완벽과 불완전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화엄의 세계는 돋보입니다 화엄의 멋이 어디에 있던가요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이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들 셋이 차별이 없다는 데 그 답이 있습니다
마음은 마음먹기에 따라 표현되고 부처는 부처기 때문에 인정하나 중생은 그냥 중생일 뿐인데 이들 셋이 차별이 없다니 이 말씀을 인정해야 할까요? 마음과 중생과 부처가 하나라면 모진 마음, 숨이 멎은 중생에게서 과연 부처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라고 다 부처가 아니듯 중생이라고 다 부처는 아닙니다
화엄 세계는 높이를 잴 수 없습니다 이는 높낮이를 초월했으니까요 하늘이 높은 곳에 있습니까? 하늘이란 우리 지구를 포함하여 우주 전체를 통째 일컫는 말입니다 우주 전체 어디를 중심으로 하여 높낮이를 논할 수 있습니까 화엄은 한없이 높고 한없이 깊고 한없이 넓으며 한없이 크고 반듯한 게 사실입니다
여러 생에 행을 닦은 보살이라면 세 아승지겁을 닦은 이입니다 쉰세 단계를 올라야 하는데 열 가지 믿음信 열 가지 이해解 열 가지 실행行 열 가지 회향廻向을 거쳐 열 가지 경지十地에 오르면 마침내 '십지 보살'이라 합니다 쉰한 번째 금강간혜지를 거친 뒤 등각 묘각에 올랐을 때 부처가 됩니다
이와같이 '십지 보살'이라 하더라도 화엄의 궁극에 이르고자 한다면 간혜지, 등각, 묘각 다음의 성불은 접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만큼 화엄은 불가사의 세계입니다 마치 용문 앞에 파충류 변온동물이 더 이상 천상에 오르지 못한 채 햇살에 비늘을 쬐는 격입니다 한마디로 높다고들 얘기하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달라지지요
경기 양평읍 동쪽에 용문면이 있는데 불경에서 가져온 지역 이름이지요 용문龍門은 용이 드나들거나 임금이 드나드는 문일까요 부처가 드나든 문일까요 용수 보살은 실존 인물인데 마명 보살이 제12대 법손이고 용수 보살은 제14대 법손이지요 용궁의 화엄경을 가져오고자 용수 보살이 드나든 문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