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5525]뇌뢰낙락(磊磊落落)
-落 떨어질 락. 磊 돌무더기 뢰
<돌이 반듯하게 포개져 쌓여 있는 모양>
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성품이 너그럽고
신선하여 사소한 일에 거리끼지 않는
공명정대한 모양을 이르는 말입니다.
돌처럼 무거운 물체가 켜켜이 쌓여 있듯이
무겁고 신중하게 처신하며 매사에
공명정대하게 임하라는 교훈입니다.
뇌뢰낙락(磊磊落落)은 마음이 매우 활달해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음을 이르는 사자성어다.
뇌뢰는 큰 돌이 겹겹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모양이며,
낙락은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태연자약한 모습을 말한다.
정산종사는 소태산 대종사의 비문에
“기상은 태산교악 같으시나
춘풍화기의 자비가 겸전하시고
처사는 뇌뢰낙락하시나
세세곡절의 진정을 통해주셨다”라고 썼다.
태산교악(太山喬岳)은 큰 산과 웅장한 봉우리를 뜻한다.
◈落落磊磊(낙락뇌뢰)
: 마음이 매우 너그럽고 시원하여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아니함.
巍巍堂堂 磊磊落落 鬧處刺頭 穩處下脚
외외당당 뢰뢰락락 요처자두 온처하각
- 우뚝하고 당당하며
모든 일에 구애되지 않고 의연하다.
시끄러운 곳에도머리를 들이밀고
평온한 곳에서는 다리를 내려놓는다.
- 宏智( 1091~ 1157) 廣錄 第2券
『굉지광록 』 제2권
굉지 정각(宏智正覺) 선사
굉지 정각(宏智正覺) 선사
중국 송(宋)대의 선승으로 천동 정각(天童正覺)이라고도 한다.
속성(俗姓)은 이씨(李氏)요, 이름은 정각(正覺), 산서성(山西省) 습주(隰州) 출신이다.
굉지(宏智)는 일찍이 유학을 익혀 오경(五經)을 통했으나,
11세에 정명사(淨明寺) 본종(本宗) 스님께 출가했다.
14세 때 산서성(山西省) 진주(晋州) 자운사(慈雲寺) 지경(智瓊)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그 때부터 여러 곳을 참방하며 공부했다.
1124년 33세 무렵, 단하 자순(丹霞子淳) 선사를 만나 법인가를 받은 후에는
독각(獨覺)의 위험성을 없애기 위해 많은 스님을 찾아 선지식을 전수받기도 했다.
1127)에 서주(舒州) 태평사(泰平寺)에 머물다가 다시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1129년 38세 때부터는 천동산(天童山, 지금의 절강성 영파/寧波 부근)에 들어가
개법(開法)하니, 따르는 제자가 항상 수백 명이 됐으며,
이곳에 약 30년 거주하면서 가람을 일신하고 학덕을 베푸니 학인의 누적 숫자가
무려 만(萬) 여명을 헤아리게 됐다.
그리고 산(山) 이름을 따서 ‘천동(天童)’이란 법호가 붙여지게 돼서,
‘천동(天童) 중흥(中興)의 조(祖)’라는 존칭을 받았다.
따라서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와 더불어
송 시대 선종을 대표하는 대선사로서, 당시 두 분을 선종의
이대 감로문(二大甘露門)이라 칭했다.
조동종(曹洞宗)의 법을 이은 굉지 선사는 조동종 제10대 조사로서 67세 때에
대혜 종고(大慧 宗杲)에게 후사(後嗣)를 당부하고 시적(示寂) 했다.
제자들은 사리를 수습해 탑을 세우고는 탑호를 ‘묘광(妙光)’이라 하고,
시호는 굉지선사(宏智禪師)였다.
굉지 정각 선사는 당대 말기에 형성된 조동종의 가풍에다 묵조선(默照禪)이라는
새로운 수행법을 가미해 조동종의 묵조선을 대성시켰다.
이것은 임제종 양기파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선사에 의해 형성된
간화선(看話禪)과 거의 때를 같이 한 것으로 이후 선종 역사에 큰 기여를 했다.
[출처] 굉지 정각(宏智正覺) 선사|작성자 초암 정만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