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행의 중요성 / 월서스님
부처님께서는 불법이 망하는 것은 오직 사자의 몸에서 벌레가 나와 몸을 뜯어 먹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하셨습니다.
사자는 짐승의 왕이라 설혹 사자가 늙어서 죽더라도 다른 짐승들이 사자의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오직 사자의 몸에서 생겨난 벌레들만이 뜯어먹을 수 있을 뿐입니다.
불법도 이와 같아서 이교도나 외부의 침입에 의해서 불법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오직 파계불자에 의해 망해질 것이라고 <범망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를 잘 단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불자는 물론이며 국민들 모두가 종교인들에게 가혹할 만큼 요구하는 것은 도덕성, 청정성입니다.
조계종에는 1만2천여 명의 승려가 있는데 이 중에는 뼈를 깎는 수행을 하며 계율을 엄하게 지키는 스님들이 많이 있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적당하게 막행막식하는 스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스님들은 일부이지만 그런 일부의 행동으로 인해 마치 전체가 다 그런 양 내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에 서산 스님께서 말씀하시어 전해지고 있는 선가귀감을 보면,
"음란한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하면서 견성하겠다는 것은 모래를 찌어서 밥을 짓겠다는 것과 같고,
살생하며 참선, 견성하겠다는 것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내고 훔치면서 참선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고,
거짓말하며 참선하는 것은 냄새나는 분뇨를 가지고 탑을 만든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율을 파괴하고 산란한 마음으로는 아무리 정진해도 수행의 목적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조계종의 1만2000여 스님 가운데 2500여 명의 스님이 매년 안거기간이 되면 선원에서 뼈를 깎는 수행을 합니다.
매일 10시간 이상을 참선을 하고 화두를 들며 수행을 합니다.
그런 반면 그렇지 못한 스님들, 즉 말법비구에 대해서는 박쥐승, 염소승 또는 법문하나 못하는 벙어리승,
머리 깍은 거사, 지옥찌꺼기, 가사 입은 도적이라고도 했습니다.
부처님이 이런 말법비구에 대해 한탄하시길,
"어찌하여 내 옷을 가져다 입고 도둑질을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뼈를 깎는 수행을 하는 스님이 있는가 하면 막행막식하며 탐진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스님들도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 주는 옛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옛 중국 당나라 때 태전 선사라는 덕 높은 스님이 있었습니다.
당시 태전 선사는 축륭산에서 수행을 하였는데 그 스님에 대한 소문이 인근에 자자했다.
마침 그 지역에 태수가 새로 부임했는데 태수는 불교를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태수는 태전 선사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그 고을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나기로 소문난 홍련이라는 기생을 불러서는,
"3일 안에 태전 선사를 파계시키라"고 명령하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관리의 협박에 홍련은 하는 수 없이 곱게 몸단장을 하고는 늦은 밤 축륭산으로 태전 선사를 찾아갔습니다.
홍련은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었다"며 하룻밤만 묵어가도록 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하는 수없이 홍련을 방에 들인 태전 선사는 홍련에게 아랫목을 내어주고는 자신은 윗목에 앉아 묵묵히 벽만 바라보면 참선에 들었습니다.
홍련이 아무리 교태를 부리고 스님을 유혹해도 태전 선사는 그저 벽만 바라볼 뿐 눈길 한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3일이 지나자 마침내 홍련이 눈물을 흘리며 태전 선사께 자초지종을 알렸습니다.
홍련은 "이제 저는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속 내용을 알게 된 태전 선사가 홍련에게 치마폭을 펼치라하여 그 위에 게송을 하나 적어주었습니다.
십년불하축륭봉(十年不下祝融峰)
관색관공인색공(觀色觀空印色空)
여하조계일적수(如何曺溪一適水)
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
십년 동안 축륭산 아래 내려간 일 없어
색을 공으로 관해서 색이 아주 공해졌네
어찌 조계(曺溪)의 한방울 물로
홍련 한 잎을 적실 것인가.
허공도장우아신(虛空刀杖雨我身)
촌촌절절할아체(寸寸節節割我體)
아야불도생사해(我若不渡生死海)
종불이차보리좌(終不離此菩提坐)
허공 가득 창과 칼 비 내리듯 퍼부어
이 몸이 조각조각 부서져 먼지 돼도
나고 죽는 생사 바다 건너지 못한다면
끝내 보리좌를 떠나지 않으리.
홍련이 산을 내려가 태수에게 치맛자락을 보이자 태수는 태전 선사가 고매한 인품의 수행자임을 알게 되었고,
태전 선사를 찾아가 법문을 듣고 불교에 귀의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생명입니다.
계율이라는 것은 한 순간 놓아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행자가 집착과 번뇌에 얽매이면 파계를 하게 됩니다.
계율이란 질서입니다.
질서는 그것을 지키면 편안합니다.
그런데 한 생각 잘못 일으켜서 계율을 파괴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계율을 지키기 위해서는 생각을 놓아버리고 집착하지 않으면 되는데,
업이 두텁게 쌓여 있으면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재가불자에게 있어 계율은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할 기본 도리입니다.
부부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자신의 처지에서 지켜야할 도리를 지키는 것이 계율입니다.
가장은 가장으로서 해야 할 기본 도리를 지키고, 주부는 주부로서, 자녀는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 한다면 그 가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도리를 다하지 않고 일탈을 하게 되면, 그것이 몰고 오는 파장으로 인해 가정에는 커다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
•
만약 거리에서 자동차 한대가 교통법규를 안 지킨다면 도로는 순식간에 엉망이 됩니다.
그걸 우리는 교통지옥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결코 지옥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출가자에게는 삼악도로 가는 것이 고통이 아닙니다.
계행을 청정히 지키다 부처님 슬하에서 입적 못하는 것,
견성을 못한 채 가사 입은 몸을 잃어버리는 것,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 견성하지 못하는 것이 오직 고통이라 했습니다.
견성을 못하면 시주 들어온 한 방울의 물도 먹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스님에게는 스님들이 지켜야할 계율이 있고,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이 지켜야할 계율이 있습니다.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 행복하고 지켜야만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각자의 도리를 계율처럼 여겨 행복한 삶을 이루기 바랍니다.
#월서스님(법주사조실)

첫댓글 -()()()-
감사합니다 ()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