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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에 모대학원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글쓴이 표기를 생략합니다. 내용중 [1]표시된 것은 각주번호입니다. 글말미에 각주가 있으니 필요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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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속 자기검열과 트라우마 양상
차례
1. 들어가며
2. 분단 트라우마의 원인과 오이풀의 북한 인식
2.1 분단 : 분단 트라우마의 원인
2.2 오이풀의 대북 인식 변화
3. 분단체제속 자기검열과 트라우마 양상
3.1 국가보안법과 트라우마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한다
3.2 최근 국가보안법 발생 특징 : 사이버사범의 양산
4. 나가며
1. 들어가며
2016년 11월 한반도 남쪽사회는 분단체제에서 의도적으로 발생시킨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와해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광장에서는 부산에서 올라온 중년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1] “공무원에게 속고, 대통령에게 속고, 박근혜에게 속고, 국회의원에게 속고, 구청장에게 속”았다고 말하였다.
일명‘속고 아지매’는 “그동안 새누리당만 무조건 뽑은 것을 후회한다”면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억울함을 한탄하였다. 11월 5일 대구에서 있었던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몸통”이라고 말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2]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제주도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전국에서 올라온 국민들이 대동단결하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12월 3일 촛불집회에는 232만명이 참가했다[3].
지역감정은 1971년 대선 때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에 의해 주도되었다[4]고
할 수 있다. 1971년 4월 18일 장충단 공원에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신민당 대선후보 김대중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였다[5]. 이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는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결국 승리하였다. 나라를
동서로 갈라놓은 박정희가 조장한 지역감정이 그의 딸인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저지하고 퇴진시키기 위해 해체되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분단 체제 속에서 생성된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해체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아직까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게 남아있는 분단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도올 김용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혼탁해진 정국의 근본원인은 부패의 대물림과 국민의 무관심이다. 국민이 감시 체계를 갖출 수 있었지만, 대다수가 툭하면 반공이념에 사로잡혀 사기를 당했다. 특히 새누리당이 많이 악용했다. 캄캄한 정국을 타개하는데 남북문제 해결은 검찰의 공정한 수사만큼 중요하다[6]”고 한다.
이병수는“분단 트라우마는 분단체제의 적대성 속에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환기되는 특징을 지닌다. 이런 점에서 분단 트라우마는 과거 역사에 제한된 홀로코스트와 그 성격이 다르다. 분단 트라우마는 한국전쟁과 같은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포함하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분단체제 아래에서 양상을 달리하여 지속된다”고 하였다. 분단 트라우마는 결과적으로 남북한 주민들의 내면에 상처로 자리 잡아 상호적대성을 키우고 종국에는 적대와 경쟁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내재화되고 있는 것이다[7].
분단 트라우마는 분단국가의‘국민 만들기’란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분단의 사회적 신체’즉 분단 그 자체를 자신의 몸과 마음에 아로새긴 대중적 토양위에서 유지되고 있다[8]. 여전히 분단 트라우마는 분단의 신체화를 가능하[9]도록 작동하고 있다.
분단 트라우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때는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지만, 과거의 사건에 대한 상처를 불러내는 현재의 특정한 조건이 주어질 때, 마치 자신이 그런 과거의 사건을 겪은 것처럼 피해의식이나 비합리적 충동에 휩싸이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그래서 한 집단의 인격형성을 왜곡시키고 다른 집단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비합리적인 충동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집단 내의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직접 체험한 당사자보다 강도는 약하다 하더라도 마치 자신이 그런 사건을 겪은 것처럼 피해의식을 공유한다[10].
이 연구는 분단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분단 트라우마의 원인 해소를 위해 분단의 원인에 대해 고찰하고, 또한 분단 체제 속에서 겪는 일반적인 남한 대중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기검열’이라는 문제에 대해 연구할 것이다.‘자기검열’의 문제는 수십년을 반북대결(反北對決) 정서에서 생활하다가‘자기검열’기제를 극복한 ‘오이풀[11]’의 경험을 2016년 10월 1일 서울 동덕여대 교정에서 생애담 형식으로 구술조사하였다.
2. 분단 트라우마의 원인과 오이풀의 북한 인식
2.1 분단 : 분단 트라우마의 원인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 당시 한반도 분할선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던 미군 작전국장 존 헐(John E Hull) 중장의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자료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한반도의 38선 분할이 일제의 항복 나흘 전에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 소련군의 한반도 진주를 예상하고, 신중하게 결정했을 가능성을 시사[12]한다.
이완범[13]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자료, 미 작전국장인 존 헐(John E. Hull)이 포츠담회담 당시를 회고하는 1949년 6월 17일에 가진 미군 관계자 해리스(Harris) 대령과의 전화 인터뷰 녹취록을 소개한다.
헐은 이 인터뷰에서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번스(Byrnes)는 (미국이) 소련과 함께 한국을 분할할 것을 원했다"고 했다. 이어 "번스는 미국이 한국에 상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한 뒤 "우리 전략가들은 3개의 주요 항구를 주목했고 이 중 2개의 항구(인천·부산)를 우리 쪽에 포함해야 하며, 서울 바로 북쪽에 선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헐은 이어 "(이 때문에) 38선을 따라서(along the 38th parallel) 선을 긋는 것이 가장 좋은 위치라고 판단했다"고 증언했다.
이완범은 헐의 증언록 등으로 볼 때 적어도 7월 25일 무렵 포츠담에서 헐에 의해 38선이 확정된 것이며, 일본의 항복을 접수하기 위해 확정된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에서 소련의 세력권 확장을 제어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 아래 미국의 치밀한 사전 준비로 결정된 정치적 분할선[14]이라고 결론 내린다. 즉 38선은 미국이 기획 주도한 미국의 작품이라는 것[15]이다.
2016년 11월 한반도 분단의 최대원인인 미국의 변화가 모색 감지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추구하던 ‘세계주의’에서 벗어나 ‘미국 우선주의’기치를 내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던 ‘팍스 아메리카’에서 미국은 미국내의 현실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선택하였다.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는 그가 대선 후보 시절에 한 ‘김정은과 대화할 것, 대화에 문제없다’는 말[16]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
70여년전 미국의 기획 주도한 작품이 한반도 분단인데, 지금은 그 분단의 기획자가 여러 원인으로 인해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자기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점이다. 오바마의 대북적대시정책의 일환인‘전략적인내-제재와 압박’이라는 대북전략은 폐기될 것이며, 미국은 북과 전쟁당사자로서 1953년 7월 27일의 휴전협정을 종전(終戰)협정으로 바꾸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은 전세계 면면에서 한반도 분단의 책임자로서 종전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반도 분단의 최대원인인 미국이 한반도에서 사라지고나면 남과 북 우리민족의 문제만이 남게된다.
북은 7차 노동당 대회에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민족통일’에 관한한 최고지도자에서부터 소학생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통일을 원하고 있다. 그러므로 통일에 관한한 정작 문제는 남쪽에 있다. 그동안 남쪽은 정부가 앞장서서 반통일적인 분단서사를 조장해왔기에 대부분의 남쪽 사람들은 통일문제에 관심도 덜하고 통일에 대한 절박함도 없다. 또 북에 관하여 정부와 언론의 편견으로 가득한 ‘북한소식’덕분에 통일의 상대방인 북에 대한 반북적인 정서와 증오와 혐오가 깔려있다.
2.2 오이풀[17]의 대북 인식 변화
(2016년 10월 1일 음성녹음 조사와 그 후 몇 차례 대화를 기반으로 재구성하였다.)
구술조사 참가자 오이풀은 1971년도 생, 현재 40대 중반으로 서울에서 출생하고 여전히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남성이다. 그의 아버지는 대구출생으로 20살에 서울로 올라왔다. 어릴 때 살던 집에서 한번도 이사를 경험해보지 않고 아직까지 살고 있는, 보통의 서울거주 사람들이 겪는 주거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
그런 그가 정치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경선이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입문이나 과정 및 대선후보가 되기까지의 극적인 이야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한때 미국유학 시절(1995년 무렵) 인터넷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국내 언론과 포탈 뿐 아니라 외국 언론과 포탈도 즐겨 이용하는 편이었다. 2007년 무렵 외국언론 혹은 다른 국내 포탈과 비교했을 때, ‘네이버’의 검색조건·댓글 등의 여론조작의 의도성을 느끼고 네이버에서 회원탈퇴를 하고 네이버 포탈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오이풀은 자신을‘밀리터리 덕후[18]’라 소개하였다. 군사 무기 등에 관심이 많았을 뿐 아니라 당시‘차기전투기’‘미사일’등의 사회적 이슈들이 있었다. 그래서 취미활동도 하고 당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도 충족할 겸‘군사·무기’등의 검색조건을 주면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이후는 사방사로 약칭한다)’라는 인터넷 카페와 연결이 되었다.
그는 카페에 게시된 공개 글들을 읽었을 때 바로 와 닿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유는 그 카페의 글들이 북의 군사 무기의 첨단성을 말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알려진 일반적인 상식[19]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오이풀은 과거의 자신에 대해 평가하기를‘꼴통’이라고 표현하였다. 무엇 혹은 어떤 것이‘꼴통’이냐는 조사자의 질문에 대해 정부와 정권이 만들어놓은 반북정서[20], 반통일의 프레임에 갇혀 이 정권에서 요구하는 그것에 충실하면 꼴통이라고 하였다. 더하여 그러한 레드 콤플렉스를 주입하는 조선일보를 열심히 보는 것을 꼴통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평양의 모습을 tv나 방송에서 보았는데, 거리의 청결도나 오가는 사람들의 옷맵씨나 건물들이나 공원모습에서 서울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 생활상을 보면 “저들은 특권층이쟎아, 평양에서 사는 특권층이쟎아”라는 대답이 바로 나오면 꼴통의 한 예라고 말하였다.
그는 사방사 카페의 공개 글들을 ‘급진적이다, 알던 상식과 다르다’ 라고 하면서도 군사 무기에 관련한 글들 위주였으므로 즐겨찾기를 해놓고 취미생활로 조금씩 조금씩 읽었다. 오이풀은 자신의 성격의 특성을 ‘그 누구보다 의심이 많고 쉽게 남의 말을 믿지도 않는’것이라고 하였다. 사방사 카페에 게시된 북의 군사 무기에 대한 글들이 기존 자신이 알던 상식과 너무다 달랐기 때문에 나름 논점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 글들의 주장이나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파 보아야겠다’고 생각하여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 ‘북한과 무기 군사’부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게시글들이 그럴싸하게 느껴지자 로그인을 해야만 읽을 수 있는 특정게시판 글들이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네이버 포탈의 여론조작 낌새 때문에 탈퇴했던 네이버 회원을 ‘사방사’카페의 글을 읽으려고 다시 가입하였다.
오이풀은 2007년 무렵의‘사방사’카페의 게시글들은 ‘북한에 핵이 있다, 미사일이 있다, 더 나아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에 대한 내용이었다’라고 기억한다. 북의 군사 무기에 관한 글들이 자신이 밀리터리 매니아로서 읽어도 흥미가 있었으나, “처음에는 겁이 났다. 내가 이런 걸 읽으면 그것만으로도 어떻게 될까 겁이 났었다”고 이야기 하였다.
태어나서부터 오랜시간 반복된 반공교육과 이념교육을 받은 결과물로‘자기검열’기제가 발동한다고 하였다. 그 글들이 북에 대해 찬양고무하는 글이 아니었고, 단순히 ‘북이 이러 이러한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다’라는 전 미국 대통령 부시가 말한‘악의 축’이 아닌 북에 대한 긍정성을 내비쳤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하였어도 레드 컴플렉스에 짓눌린‘자기검열’기제가 발동하였다고 말한다.
그는 이 ‘자기검열’기제에 대해서 전기철조망을 쳐 놓은 곳에 사는 고라니에 대한 비유로 말하였다. 전기철조망을 쳐놓은 곳에 들어간 고라니가, 철조망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철조망에 흐르는 전기에 생명이 위급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에 놀라 나중에는 철조망에 전기가 흐르지 않아도 철조망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된다. 그것이 당대 고라니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고라니의 세대가 넘어서도 철조망은 마치 고라니에게 교육이 되어 넘어가서는 안되는 곳이다, 철조망 근처로 가면 큰 일나는 것이다 라고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가상의 전기 철조망속에 가두고 제한하고 있는데, 그걸 깨닫지도 못하고 있고, 철조망속에서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하였다.
오이풀이 고라니의 비유를 들어 인식한 대로 분단 트라우마는 세대간 전승이 가능한 역사적 트라우마의 한 종류이다. 김종곤[21]은“역사적 트라우마는 집단 트라우마이며 치유되지 않은 사회구조적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면, 매체만이 역사적 트라우마의 세대간 전승에 영향을 주는 원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세대간 전승에는 밥상머리 교육, 학교 등의 교육기관에서의 교육, 매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등이 있으나 분단으로부터 70여년이 지난 현재는 전쟁을 직접 겪지도 않은 세대이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매체[22]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매체의 영향을 직접 체험하고 있기에 종일 반복되는 반북정서를 내뿜는 매체에 의해 무의식적으로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이풀은 긍정적으로 북을 평가하는 게시글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자기검열 시스템이 작동하였다고 말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일반인들, 레드 콤플렉스가 탑재된 모든 한국인들에게 해당하는 공통적인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자기 스스로를 제한하는 사고의 한계에 갇혀 처음에는 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읽는 것조차 겁이 났었으나, 오랜 시간 읽고 스스로 북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공부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동안
자신이 가상의 전기철조망에 갇힌 고라니의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똑바로 세상을 보는 일에 겁먹을 이유가 없다라고 느끼게 되었다고 하였다.
2010년 10월경에 사방사 카페가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강제 폐쇄되고, 회원들이 한명씩 한명씩 압수수색당하고 재판정에 서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자신도 사방사 카페의 회원이었기에 “설마…나한테도 오려나?”라는 스트레스를 받긴 했으나 겁을 먹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마음속에 경찰이 집에 들이닥친다 하여도 “쫄지말자”고 다짐했을 뿐 아니라, 아내에게도 “혹시 이러이러해서 경찰이 들이닥치면 쫄지마라, 약한 모습보이지마라”고 언급해둔다. 심지어는 아내에게 자신이 없을 때 경찰이 집에 들이닥칠 경우 “물 한잔도 주지마라”고 일러둔다. 이러한 오이풀의 대공경찰을 맞는 소심한 방침에 따라 2013년 11월 자신의 집에 압수수색을 하러 온 열댓명의 경찰들이 화장실을 사용하자 “왜 남의 집 화장실을 쓰느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3. 분단 체제 속 자기검열과 트라우마 양상
3.1 자기검열과 국가보안법: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다[23]
오이풀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활동이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이므로 국가보안법이 남쪽 사회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피노라면, 김수영 시인의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민중들이 들고 일어난 4.19로 대통령 이승만의 하야 이후 남쪽의 언론과 정치 환경의 자유가 생겼다고 기뻐하던 때에 시인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24]’라는 시를 발표한다.
김일성 만세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라는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라는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시인 김수영은 1921년생으로 일제 식민지와 해방, 해방공간에서의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 미군정, 이승만, 남북연석회의, 전쟁, 빨치산,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운동 탄압, 반공중시정책, 4.19, 이승만 하야, 장면 정부 수립 등의 시대를 온 몸으로 헤치며 살아온 이다.
그러한 그가 한국의 언론자유와 정치자유는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이들을 용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이풀은 2006~7년 무렵 사방사 카페에서 북에 대해 사실을 말한 기사와 게시글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이런 것을 보면 불리함을 당하지 않을까’걱정했다고 말한다. 자기 집의 컴퓨터에서 누구의 감시도 없는 상황에서 북을 찬양하거나 고무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사실 나열의 글을 읽으면서 피해를 당할까 자기검열의 기제가 발동하였다고 하였다.
김수영이 말한 대로(大路)에서 내놓고 말하는 ‘김일성 만세’가 아닌 골방에서 북을 폄하하지 않고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을 읽으면서도 자기검열을 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것이야 말로 남쪽사회의 분단 트라우마가 아닌가 싶다.
유재춘은 “사회의 질병이라는 것은 범죄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해악을 끼치는 것, 눈에 보이는 현저한 그런 사회적 문제들만이 아니다. 지금 당장 문제점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미래에 우리 모두에게 중대한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내재된 사회의 정서적·정신적 병이 존재하며, 또 현재 이미 더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고 있는데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사안들도 있다. 그 가운데 역사인식과 관련된 부분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안이면서도 가장 불감(不感)의 사안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에 역사와 관련하여‘역사적 트라우마’를 ‘만성적인 사회적 지병’으로 지목하였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사회적 지병이 되어 사회적 불신이나 정체성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증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잠복기를 거치는 심각한 질병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25]”며 우리 사회의 역사적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지적하였다.
3.2 최근 국가보안법 발생 특징 : 사이버 사범의 양산
최근 국가보안법 입건자 수 증가엔 크게 두 가지 수사가 두드러진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왕재산 사건’과 같은 공안 당국이 말하는 조직사건 수사, 다른 하나는 ‘종북 카페 사건’과 같은 사이버안보사범에 대한 수사다. 후자를 살핀다. 2009년부터 2010년 10월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람은 335명이다. 절반인 165명은 사이버 안보 사범이다. 경찰이 말하는 사이버 안보 사범이란, 온라인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올리고, 퍼오고, 트위터에 리트윗한 이들이다[26].
한국에서 안보를 내세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사례가 2008년 이후 증가해 우려할만한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시민들의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약화되고 있다[27]. 대검찰청 통계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건수는 2008년 46건에서 2011년 90건으로 약 95.6퍼센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 건수는 32건에서 63건으로 약 96.8퍼센트 증가했다[28]. 당국은 국가보안법 적용을 통해 북한에 대한 온라인상의 토론을 통제하고 있다.
경찰청 자료[29]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입건자 중 사이버 사범은 2008년 5건에서 2011년 10월 현재 51건으로 증가했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친북적인 내용이 문제가 되어 카페 등이 폐쇄된 건수는 2009년 18건에서 2011년 10월 현재 178건으로 증가했다.
오이풀이 기소된 이유는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미 2013년 11월 오이풀이 압수수색 당하기 이전부터, 국제 엠네스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으로 지칭)’들에서 수차례 국가보안법 7조에 관한 지적이 여러 차례 있어왔다. 가장 폭넓게 적용되고 있으면서 모호한 조항의 적용증가의 원인인 국가보안법 7조를 보도록 한다.
제7조(찬양·고무등) ①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개정 1991.5.31>
②삭제<1991.5.31>
③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개정 1991.5.31>
④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개정1991.5.31>
⑤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 ·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개정 1991.5.31>
⑥제1항 또는 제3항 내지 제5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개정 1991·5·31>
⑦제3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개정1991.5.31>
오이풀은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카페가 2010년 10월경 강제 폐쇄되자 그 이후 남은 회원들이 만든 비공개 카페 ‘임시SBS’에 올린 (두곳 포함) 7건의 게시글과 58회의 댓글을 제작하여 게시하였다는 것이 공소사실이다.
그는 진술서에서 직접 작성한 댓글사실은 인정하지만 검찰측이 제기한 찬양고무라는 혐의는 인정하지 않는다고[30] 하였다. 그는 사방사 카페가 폐쇄된 이후 카페 회원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자 그를 면회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걸고 넘어진 공안당국의 인권유린에 대해 규탄하였다.
또한 남과 북으로 분단된 현실과 미국에 예속된 한국에 대한 의견 개진을 이유로 피고인 신분으로 만들어 개인의 평온한 삶을 부당하게 어지럽히고 두려움에 입을 다물게 해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안당국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 그것이야 말로 위법행위라고 개탄하였다. 오이풀은 검찰이 혐의로 주장한 7건의 게시글 중, 당시 공개 카페였던 곳에 1건 (2010년 10월 강제폐쇄 전)과 비공개 카페였던 곳에 6건, 댓글 58건의 게시를 이유로 국가보안법 제7조 고무 찬양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보호관찰 2년의 형을 받았다.
1999년 국제앰네스티가 표명했던 우려는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당시 국제앰네스티는 “국가보안법은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이들까지 구속하는데 폭넓게 오용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끊임없이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확립된 정치적 견해를 위협하는 사람을 제거하고, 북한 관련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사회 불안의 시기에 통제의 한 형태로 이용해 왔다[31]”고 지적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 제7조의 1항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처벌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찬양”, “선동”은 법률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북한에 대해 정부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단체 회원들에게 자의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그래서 유엔의 인권 메커니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국내 인권기구,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국내외 인권단체들이 공히 한국 정부에 모호한 법조항, 특히 제7조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국가보안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하거나 혹은 폐지하도록 요구했다[32].
법원은 경찰 혹은 검찰이 요청한 구속 영장을 여러 차례 기각하기도 하고, 국가보안법 일부 혐
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33]하기도 했다. 무죄로 출소한 황모씨는 몇 개월을 구속된 채 재판을 받았다. 황모씨 자신의 사건만을 가지고 비교를 해도 2016년 5월과 11월의 정치시류의 다름이 그를 구속하게도 했고, 무죄판결이 되기도 한다.
오이풀- 7건의 게시글과 황모씨- 207건의 게시글을 객관적으로 비교해보아도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이 드러난다. 경찰과 검찰의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적용, 특히 오랫동안 남용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모호한 조항의 적용은 여전히 우려할만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가보안법 연구모임’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국가보안법의 모호한 적용과 남용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그 문제를 요약한다[34]. 하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헌법 위의 법률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알 권리를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드는 법이며 다른 하나는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북한에 대하여는 증오와 대결만을 강조하면서 북한과 평화공존하는 것을 범죄시한다. 즉 민족통일의 문제를 다치게 하는 법률이다는 것이다.
4. 나가며
오이풀의 경험을 통해 북한문제에 관한 골방에서도 하는 ‘자기검열’이 분단 트라우마의 일종이라 여겨진다. 또한 오이풀이 북의 깨끗하고 깔끔한 평양 영상을 보면서 “저거는 특권층만 사는 곳, 일상적인 북의 모습이 아닌 것”이라고 했던 자신의 경험을 반추했던, 북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대감과 증오, 혐오 역시 분단 트라우마의 일종이라 생각된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자기검열과 북에 대한 일방적인 적대감과 증오 등의 분단 트라우마는 대부분의 남쪽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오이풀은 북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알게 되자 반북· 대결정서를 가진 자신이 북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와 증오의 감정이 사라지고 북과 통일되어야만 하는 민족의 일원임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오이풀의 경험에 비추어, 언론이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의도하지 않은 채 북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하게 되면 남쪽의 북한 인식이 크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10월~12월의 한국 사회에서의 광장집회에 참여한 촛불 국민들을 보면 언론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정치 시류에 따라 모호하게 적용되는 사상과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가 철폐되면 한국 국민들은 얼마든지 자기검열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없이 인터넷에서 북에 대한 사실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북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 습득은 분단 트라우마 혹은 매트릭스에 갇힌 남쪽 개인들을 각성시켜 깨게 할 것이며 자연스레 통일을 요구하게 할 것이다.
2016년 후반기는 어느 면에서 희망을 주는 때이다. 외적으로는 분단 트라우마의 제1 원인인 한반도 분단의 기획자인 미국이 자국 내치 우선하는 정세를 보이고 있고, 내적으로는 촛불을 든 국민들이 부정하고 부패하며 무능한 정권과 남쪽 사회의 병리들을 광장에서 끝장내려고 하는 역동적인 시대이다.
지금이 분단 트라우마의 근본 원인이 해소되는 기회이기를 염원하며 목전에 다가온 통일시대를 위한 적극적인 분단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작업들이 수행되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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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흑색선전」,『중앙일보』, 2010-06-02 00:38.
1면 사진자료,『한국일보』, 1971년 4월 18일.
「도올 “朴, 버티겠지만 이 싸움의 승자는 국민」,『아시아경제』, 2016.11.23.11:27.
「38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조선닷컴』, 2013.8.14.
「38선은 미국이 소련 견제하려 만든 정치적 분할선」,『경향khan』,2013.8.16.
「김정은과 대화할것…대화에 문제없어」,『연합뉴스』, 2016.5.18.
「떳떳해진 덕후들 “우린 루저 아닌 능력자」, 『경향신문』, 2016-01-22 21:35.
「북한 찬양 글 60대 블로거..국보법 위반 혐의 무죄」,『뉴스1』, 2016.11.13 06:00.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광장 오후 2시 김제동 사회의 프로그램.
2016년 11월 5일 대구 집회에서 대구송현 여자고등학교 2학년 조성해 학생 동영상.
[1]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광장 오후 2시 김제동 사회의 프로그램에서
[2] 2016년 11월 5일 대구 집회에서 대구송현 여자고등학교 2학년 조성해 학생 동영상
[3] 「전국 232만 ‘역대최대’…푸른 담벼락 밝힌 촛불」,『CBS노컷뉴스』, 2016.12.3.23:48.
[4] 대한민국의 지역 감정은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지역적인 감정 대립을 의미한다. 보통 그 형태가 영남지방 사람들과 호남지방 사람들의 갈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며, 선거를 목적으로 정치가들이 이를 상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이 지역주의에 이끌려서 투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지역주의를 '망국적인 고질병'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박상훈, 『만들어진 현실: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 후마니타스, 2009년, 9-10쪽.
1971년 4월 대선 당시 이효상 국회의장은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언급을 하였다. 「박정희-김대중 후보 격돌 7대 대선 때 첫 양극화」,『동아일보』,2000-03-04.
「(DJ 삶의 5가지 꼬리표) 시련·멍에는 역사의 거목을 키웠다」, 『스포츠서울』, 2009/08/22 19:46.
한편,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영남 지역에서 '호남에서 영남인의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전단지가 나돌았다. 「(분수대) 흑색선전」,『중앙일보』, 2010-06-02 00:38.
[5] 1면 사진자료,『한국일보』, 1971년 4월 18일.
[6] 「도올 “朴, 버티겠지만 이 싸움의 승자는 국민」,『아시아경제』, 2016.11.23.11:27.
[7] 이병수,「분단 트라우마의 성격과 윤리성 고찰」,『시대와 철학』제22권 1호, 한국철학연구회,2011,161쪽.
[8] 김성민 박영균,「통일학의 정초를 위한 인문적 비판과 성찰」,『통일인문학논총』제56집, 건국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87쪽.
[9] 김지혜,「코리언의 삶과 분단 트라우마」,『통일인문학연구총서』014, 도서출판 선인, 118쪽.
[10] 이병수,「남북관계에서 소통과 치유의 문제」,『한민족문화연구』제43집, 한민족문화학회, 2013, 348쪽.
[11] 오이풀은 구술자 조**씨의 인터넷 포탈 네이버 아이디이다. 그가 인터넷에서 북에 관한 정보를 얻었고 그로 인해 북에 대한 기존 언론과 정부의 인식틀을 깨게 되었으므로 인터넷에서 활동한 아이디를 기재한다.
[12] 「38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14/2013081400015.html
[13] 이완범, 『한반도 분할의 역사』, 학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3, 248~249쪽.
[14] 이완범, 앞책, 246쪽.
[15] 「38선은 미국이 소련 견제하려 만든 정치적 분할선」,
[16] 트럼프 「김정은과 대화할것…대화에 문제없어」,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김정은)와 대화할 것이며,대화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5/18/0200000000AKR20160518011752071.HTML2016/05/18.
[17] 조** 구술, 2016. 10. 1, 서울 동덕여대 교정, 조지숙 조사.
[18] 「떳떳해진 덕후들 “우린 루저 아닌 능력자」, 『경향신문』, 2016-01-22 21:35. 오타쿠라는 표현은 1990년대 말 pc통신을 통해 들어와 2005년 디시인사이드 애니메이션 갤러리에서 변형된 표현인 ‘오덕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였고 언론에서 ‘오덕후’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9년 말이다. 덕후들은 권위에 기대지 않고 제도적 인정없이도 자신만의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19] 북은 기름이 없어서 탱크가 움직이지 못한다, 비행기가 뜨지 못한다 류의 이야기들
[20] 필자주, 반북정서는 무조건적인 북에 대한 반대 및 대결정서를 말함
[21] 김종곤,「역사적 트라우마 개념의 재구성」,『시대와 철학』제24권 4호, 2013, 44쪽, 59쪽.
[22] 매체의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을 꼽으라면 2016년 10월 24일 jtbc 방송의‘태블릿 pc’기사가 나간 후 불과 2주일여만에 광화문에는 100만이 넘는 인파가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23] “국가보안법: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다”란 제목은 2012년 국제 엠네스티 보고문의 제목이다.
[24] 김영종, 정승훈,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그리고 김일성만세』, 호호호, 2013년, 92쪽.
[25] 유재춘,「인문치료학에서 역사학의 역할- 역사의 효능과 인식 갈등의 치유 문제를 중심으로」,『인문학연구』26,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491-522쪽.
[26] 송경화,「국가보안법과 표현의 자유-사이버 사범 중심으로」, 2011.12.7. 국회 의원회관 128호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이다.
[27] 「국가보안법: 안보의 이름으로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다」,『2012 국제 엠네스티 보고문』,
ASA 25/006/2012. 5쪽.
[28] 『2012 국제 엠네스티 보고문』5쪽에서 재인용, 통계청 http://www.index.go.kr/egams/stts/jsp/potal/stts/PO_STTS_IdxMain.jsp?idx_cd=1745
[29] 『2012 국제 엠네스티 보고문』5쪽에서 재인용, 한겨레기사 경찰청 통계 재인용, 2011년 11월 29일.
[30] 조**, 「2014고단3017 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 등) 진술서」, 서울북부지방법원, 2014년 10월 22일.
[31] 2012 국제앰네스티 보고문에서 재인용, 8쪽, “Time to Reform the NSL”, February 1999, AI Index: ASA25/003/1999
[32] 2012 국제 엠네스티 보고문에서 재인용, 6쪽, 한국에 대한 유엔 자유권위원회 최종견해, UN Doc. CCPR/C/79/Add.6, 1992 7월 29일, para. 9.; 한국에 대한 유엔 자유권위원회 최종견해, UN Doc. CCPR/C/KOR/CO/3, 2006년 11월 2일 , para. 18; 한국에 대한 국가별인권상황정례검토 워킹그룹 보고서, Addendum, UPR 권고에 대한 한국 정부의 답변, A/HRC/8/40/Add.1, 2008년 5월, 권고 4, 24, 33.
[33] 「북한 찬양 글 60대 블로거..국보법 위반 혐의 무죄」,『뉴스1』, 2016.11.13 06:00.
法 "이적행위 목적 없고 자유로운 토론할 수 있어야" “인터넷 블로그에 북한 관련 게시물을 올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남현 판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북한을 찬양하는 게시물을 올린 혐의로 구속기소된 황모씨(61)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황씨는 2009년 6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웹사이트 '이글루스' 블로그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카페를 개설해 북한 관련 게시물 207건을 만들거나 복사해 배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3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가보안법 연구모임, 『2011 국가보안법보고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2012, 10쪽.
첫댓글 이 소논문에서 정론직필 님의 국보법구속재판사건도 짧게나마 거론되어 있네요.
별 의미없는 내용이라고 봅니다.
정론직필의 재판 관련 내용을 진정으로 알고자 한다면....
선고일이 아니라, 그 직전 피고인 최후진술 재판에 와봤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그 문제들에 대해 정론직필이 도대체
어떤 진술을 했고, 정론직필의 진가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나 그에 대해 아는 인간은 없다는거....
그런 자들이 정론직필에 대해 떠드는거....
솔직히 상당히 불쾌합니다.
목차와 소목을 중심으로 개략적인 파악만 했습니다.
대한민국 궁민이면 반드시 정독이 필요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특히 <분단 트라우마와 자기 검열>은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다 겪거나 아직도 겪고있는 일이지요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언론이 제대로 바른 보도를 하는 날부터
<나라다운 나라>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리라는 생각입니다.
사방사 폐쇄가 벌써 8년이......ㅏㅏㅏ
스크랩 합니다.
피해자 등 일부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저주를 받고 있는 국가보안법
하지만 아직도 기득세력들의 기초판역활, 지킴이역활을 하고잇는 국가보안법
그것이 악법으로 페지될수 있을까요
박그네탄핵보다 더 큰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변혁이 일어나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자정능력으로는 수십년 세월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단 트라우마는 북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가능하다는데 공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