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지레 프라피에 , 알랭 프라피에 지음 |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05월 06일 출간
“기억과 각성을 다룬 작품이자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의 권리선언”
- 아니 에르노(『단순한 열정』 저자)
“『선택』은 안타깝게도 다시금 현안이 되어버린 투쟁의 기나긴 역사를 재조명한다.”
- 『르 몽드』
‘선택’을 옹호하고, ‘선택’ 너머의 변화를 만들어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
-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2021년 1월 1일을 기하여 대한민국에서 ‘낙태죄’는 효력을 잃었다. 그러나 임신중지 약물 도입, 건강보험 적용, 관련 보건의료체계 마련 등 논의할 법적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와 정당, 국회 청원을 통한 법 개정안 등 8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은 채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일이 지났기 때문이다. ‘낙태죄 없는 첫해’를 맞은 지금 우리의 ‘선택’은 앞으로 사회가 여성의 몸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거나 통제할지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 출간된 그래픽노블 『선택』은 우리보다 앞서 낙태죄를 폐지하고 몸의 권리를 쟁취해낸 프랑스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할 선택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선택』은 저자들 개인의 이야기에 활동가들의 인터뷰와 당시의 자료를 더해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연대를 충실히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낙태죄 폐지 전후 프랑스의 상황과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의 결정적 장면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국어판에서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나영 대표의 해제를 추가하여 이 특별한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고 2021년 한국에 유의미한 가치를 발견하도록 안내한다.
1970년대 프랑스에서 ‘낙태죄 없는’ 2021년 대한민국으로 보내온 연대의 목소리!
이 작품은 피임과 임신중지가 불법이었던 시절 여성들의 비극을 다루면서 ‘불쌍한 우리에게 권리를 달라’고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정당한 권리를 구걸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권리를 위해 싸운다”는 MLAC(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의 구호처럼 여성들은 법이 금지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알리면서 서로에게 연대했다. 미국에서는 여성의 몸에 부담을 덜 주는 임신중지 시술을 고안했고 프랑스의 활동가들은 시술법을 배워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의료적, 심리적으로 지원했다. “나도 낙태를 했다”고 선언한 343인의 여성이 있었고, 잘못된 법에 맞서 이들을 변호하고자 나선 변호사가 있었으며, 의사면허를 빼앗길 위험이 있는데도 활동가들에게 장비를 빌려주고 여성에게 임신중지 시술을 해준 의사들이 있었다.
작품 속에서 여성이 홀로 견뎌야 했던 임신중지의 경험은 세계가 기록해야 할 역사로, 국가를 뛰어넘는 인류애와 연대의 기억으로, 법과 권력, 사회 구조의 문제로 화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1970년대 프랑스에서 ‘낙태죄 없는’ 2021년 대한민국에 보내온 응원과 환대의 목소리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 해제에서 나영 대표가 말하듯 “임신중지는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선택의 배경에 있는 불평등과 억압에 대한 국가의 책임 문제”이다. 그리고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이를 계속해서 이야기해온 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1972년 한 어머니가 딸의 임신중지를 도왔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던 보비니 재판에서 피고인 미셸은 “나는 죄가 없습니다. 당신네들 법이 유죄입니다!”라고 외쳤다. 그의 말에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한국 여성들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줄거리∥
“나는 오랫동안 내 몸에 문제가 있어서, 나에게서 나쁜 냄새가 나서, 내 얼굴이 못생겨서, 내가 입만 열면 바보 같은 말을 해서, 형편없는 행동을 해서 부모님의 관심을 못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상자 안 편지들은 베유 법안이 통과된 날 저녁에 어머니가 차마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대신 해주었다.
아기를 낳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 본문 56쪽
‘나’에게 다인(多人)가족 승차 카드는 그저 혼자만의 이동을 의미했다. 언제나 짐칸 위의 트렁크와 덩그러니 홀로 남아 차창 밖으로 멀어져가는 부모님을 바라봤다. 가족이 있었지만 함께 살 수는 없었다.
공동 홈, 기숙학교, 위탁가정에 잠깐씩 머무르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임신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위탁가정의 주인, 불법 임신중지 시술을 받다가 피투성이로 발견된 선배, 피임마저 불법이던 시기에 원치 않는 임신과 임신중지를 반복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친구의 어머니……. 그들 중에는 MLAC(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에서 활동하는 마틸드도 있었다. 마틸드는 여성에게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알려준다. MLAC의 활동가들은 감옥에 갈 위험을 무릅쓰고 임신을 멈추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돕고 있었다. 마틸드와 MLAC를 만나면서 ‘나’는 343인 선언, 미국에서 개발된 카먼 시술법, 보비니 재판에 대해 알게 된다.
마침내 1974년 ‘베유 법’이 통과되면서 임신중지가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왔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나도 세 번이나 낙태를 했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입속에서 채 나오지 못한 나머지 말들은 낡은 다락방의 편지 더미에서 발견되었다. 위탁가정을 떠돌던 시간, 부모님의 다툼, 가족에게서 밀려나는 듯한 경험들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나’는 비로소 어머니와 나 자신과 화해한다. 해방된 사람처럼 홀가분해진 ‘나’는 스스로에게 데지레(D?sir?e, 원했던 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행복을 찾아 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