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재벌 라탄 타타가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타타 그룹이 9일(현지시간) 밝혔다. 고인은 20년 이상 그룹을 이끌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인도 기업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고 영국 BBC는 돌아봤다. 타타 그룹은 인도에서 가장 큰 기업 집단의 하나이다. 100개 이상 기업을 거느리며 66만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다. 연 수입이 1000억 달러(약 134조 8000억원)를 넘길 정도로 막대한 부를 쌓아왔다.
사망 원인이나 장소, 정황 등에 대해 BBC는 전하지 않았다.
타타 그룹의 지주 회사인 타타 선스 그룹의 회장인 나타라잔 찬드라세카란은 고인에 대해 "진정 평범하지 않은 지도자"라며 "전체 타타 가족을 대신해 그가 사랑했던 이들에게 가장 심심한 위로를 전해드린다. 그가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원칙들을 지키며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계속 안길 것"이라고 밝혔다.
고인은 타타 그룹 회장으로 일하며 여러 차례 굵직한 기업 합병으로 덩치를 키웠다.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 제철기업 코러스를 비롯해 영국의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와 랜드 로버, 세계 두 번째 차 회사인 테틀리 등을 인수했다. 2011년 이코노미스트 잡지는 타타를 거인으로 부르며 가족 그룹을 "글로벌 파워하우스'로 변모시킨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는 가족의 이름에서 따온 그룹의 1%도 안 되는 지분을 소유했다. 하지만 그는 거인이며 인도에서 가장 힘이 넘치며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이라고 했다.
2012년 그는 그룹 회장 직에서 물러나 타타 선스의 명예회장으로 일해 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린 추모의 글을 통해 고인을 "비전을 갖춘 기업 지도자이며, 열정 넘치는 혼과 탁월한 인간"이라고 돌아본 뒤 고인과 "셀 수 없는 관계"를 맺었다며 그의 죽음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밝혔다.
고인은 1937년 전통적인 파르시스 집안에서 태어났다. 파르시스란 이란을 탈출해 인도에 정착한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믿는 이들을 가리킨다. 부모는 1940년대 헤어졌다. 그는 7년 동안 미국 코넬 대학에 유학해 건축과 구조공학을 전공했다. 1962년 그룹의 프로모터 기업인 타타 인더스트리스에 입사, 잠세드푸르에 있는 공장에서 6개월 동안 사환 일을 했다. 그 뒤 타타 아이언 앤드 스틸 컴퍼니(현재 타타 스틸), 타타 컨설턴시 서비스(TCS)와 내셔널 라디오 앤드 일렉트로닉스(Nelco) 등을 거쳤다.
1991년 반 세기 이상 그룹을 이끈 JRD 타타가 라탄 타타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JRD는 먼친척이었다. 고인은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그(JRD 타타)는 나의 위대한 멘토였다. 그는 내게 아버지 같았으며 형제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2008년 인도 정부는 이 나라에서 민간인에게 주어지는 상 가운데 두 번째인 파드마 빕후샨 상을 수여했다.
책 'The Story of Tata'의 저자인 피터 캐시는 자신에 대해 "내세우는 일이 없으며 원칙을 잘 지키며 겸손하고 조심스러우며 심지어 부끄러움을 타는 남자"라고 표현했다. 2016년 흔치 않은 입길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타타 선스 회장 직을 사이러스 미스트리에게 물려줬는데 경영권을 놓고 다툼이 벌어져 쫓겨나고 말았다. 미스트리는 2022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더 가볍고 밝은 면도 있었다. 그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타타 그룹 홈페이지에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지녔다고 표현돼 있다. 그는 또 스쿠바 다이빙을 열렬히 좋아했다. 나이가 들수록 빠져들어 "귀로는 어떤 압력도 더 이상 느끼지 못할 정도"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반려견 사랑으로도 유명해 수십년을 함께 지낸 많은 반려견들을 일일이 기억해 냈다. 그는 2021년 인터뷰를 통해 "내 반려견 사랑은 너무 강력해 살아 있는 한 계속될 것"이라면서 "반려견들이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다시는 이런 이별을 겪지 말아야지 결심한다. 그렇게 2~3년을 지내면 우리 집은 텅 비고 너무 조용해 반려견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해서 또다른 개에 끌리게 되고 마지막 개인 것처럼 관심을 쏟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늘 소박하게 생활하는 것으로도 칭송을 받았다. 2022년 세상에서 가장 싼 차 중 하나인 나노 자동차로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현재 많은 이들은 이 자동차를 타타의 꿈이 좌절된 대표 사례로 기억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또 2008년 11월 26일 끔찍한 뭄바이 테러로 그룹 운영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일로도 기억된다. 타타 소유인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이 공격 받아 60시간 인질극이 벌어져 33명이 숨졌다. 뭄바이 테러는 병원과 유대인 문화센터, 뭄바이의 여러 타깃을 동시 공격해 166명이 목숨을 잃은 끔찍한 참사였다. 호텔 직원만 11명이 애꿎게 희생됐다. 타타는 죽거나 다친 직원들의 가족을 돕겠다고 맹세했고, 살해된 직원이 살아 있었으면 남은 여생에 받았을 월급까지 계산해 친척에게 지급했다. 그는 또 파손된 호텔을 21개월 만에 복구하는 데 10억 달러 이상을 쓴 일로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놀라울 정도로 정직하고 교육에 힘쓰며 사회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쓰도록 가르치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때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