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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
서울공항에 안착한 황장엽(왼쪽)-김덕홍씨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기전 `대한민국 만세` `조국통일 만세` 등을 외치며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전 북한노동당국제담당비서 황장엽씨(74)가1997년4월20일 서울에 도착했다.지난2월12일 베이징주재 우리 대사관에 귀순한 지 67일 만이며, 경유국인 필리핀으로 옮긴 지 33일 만이었다. 황씨는 도착 직후 공항에서 발표한 `서울도착 인사말씀`을 통해 "나의 청원을 허락해 주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 준 대한민국정부와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황씨는 "북조선은 사회주의와 현대판 봉건주의, 군국주의가 뒤섞인 기형적 체제로 변질됐으며 경제는 마비상태에 들어갔다"면서 "수십년간 북조선 당국의 고위 간부로서 고민은 비길 데 없이 심각했으나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다 합쳐도 7천만 우리 민족의 생사운명과 바꿀 수 없다는 양심의 명령, 그리고 남쪽 형제들과 손잡고 전쟁을 막아보는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돼 대한민국에 오게 됐다"고 귀순 동기를 밝혔다.
황씨의 이날 서울행에는 필리핀 보안당국의 호송책임자인 리바르네스 준장이 동행, 공항에서 황장엽과 김덕홍 두 사람의 신병을 우리 측에 인계했다.
▶2015년 4월 20일
6·25 참전영웅 스피크먼, 영국 최고 무공훈장도 한국 기증
1951년 11월 4일 새벽, 임진강 지역의 ‘317 고지’. 중공군의 강력한 기습 공격으로 고지를 방어하던 근위 스코틀랜드 수비대 소속의 수많은 병사가 부상을 당했다. 육탄전이 벌어졌고, 전세는 적이 우세했다. 이때 이등병 윌리엄 스피크먼(88·사진)을 비롯한 6명의 병사는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과감한 수류탄 공격을 감행했다. 스피크먼은 다리에 심한 부상까지 입었지만, 부대가 후방으로 안전하게 철수할 때까지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6·25 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영국연방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십자훈장(Victoria Cross)’을 받은 스피크먼씨를 비롯한 영연방 4개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출신 참전 용사와 가족 85명이 오는 20~25일 방한한다고 밝혔다. 스피크먼씨는 이번 방한에서 빅토리아십자훈장을 비롯해 자신이 받은 훈장과 메달 10점을 한국에 기증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킨 한국에 대한 사랑의 표시”라고 했다. 2010년에도 한국에 온 적 있는 스피크먼씨는 “죽어서도 317 고지에 묻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317 고지 전투에서 부상당한 뒤 1952년 1월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귀국 3개월 만에 자진해서 돌아와 그해 8월까지 전장에서 싸우는 투혼을 보였다. 영국 정부가 그에게 준 빅토리아십자훈장을 받은 6·25 참전용사는 4명뿐이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스피크먼씨뿐이다.
이번 한국 방문단 85명 중에는 6·25 참전부대인 영국 왕립포병부대와 후크부대의 현역 군인 31명도 포함됐다. 방문단은 22일 부산 유엔묘지를 찾아가고, 23일에는 비무장지대(DMZ)로 가서 분단의 현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보훈처는 참전용사들에게 희생과 명예의 상징인 ‘평화 사도의 메달(Ambassador for Peace Medal)’을 증정하기로 했다.
▶2014년 울산광역시 현대중공업 조션소에서 화재 발생(4명 사상
▶ 2014년 경기도 과천시 삼성808 과천센터에 서 화재 발생
▶2013년 중국 쓰환성 낙산현 북서쪽 111km지역에서 규모 6.9의 지진 발생(100여명 사망- 실종, 600여 명 부상)
▶2012년 대한민국, 국제 통화 기금의 재원 확 충으로 150억 달러 지원을 결정.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문대성, 논 문 표절논란으로 새누리 당탈당.
▶2011 년 게임 섯다운제(16세 미만 청소년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온라인 pc게임을 못하 게 하는 제도), 국회 법제
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 위에서 통과,
▶2010년 서울중앙지검,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을 살해할 목적으로 위장 탈북했다며 국가 보안법 위반 험의로 2명 구속.
▶2010년 한국방송공사 제3라디오 FM 방송 개시(FM 104.9MHZ).
▶2010년MBC PD수첩, 검사 스폰서 의혹 보도
▶2010년 4월 20일
미국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 발생
2010년 4월 20일 미국 멕시코만 해저 석유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호(號) 폭발로 유정과 시추선을 연결하는 2개의 관이 터지면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였다.
원유유출 지점이 해저 1500m에 위치하여 1㎠당 635㎏에 달하는 수압과 낮은 수온에 기름과 함께 분출되는 메탄가스가 슬러시(slush 질척한 얼음)을 만
드는 등 극단적 환경에서 로봇 잠수정을 통한 원격 작업으로 차단 작업을 진행했다.
일일 2만~10만 배럴이 유출되는 등 사태가 장기화 되자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은 2010년 6월 15일 위기 극복을 위한 ‘오벌 오피스(Oval Office)’ 연설을 하였다. 이전 오벌 오피스 연설은 9년 전인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했던 9.11 직후였다.
원유 유출 발생 후 85일 16시간 25분 만인 2010년 7월 15일 해저 시추공에 무게 75t짜리 차단캡을 설치하여 원유 유출을 차단하는데 성공하였다. 영국 석유회사 BP는 사고 5개월만인 9월 17일 멕시코만 해정 유정이 매장 기름과 유정 사이를 연결하는 시추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밀도 높은 시추용 기름과 시멘트를 주입해 올라오는 기름을 차단하는 ‘바텀 킬(bottom kill)’ 방식으로 완전 밀봉됐다고 발표했다.
▶2009년이재창 교수, 국제통계기구 회장에 선출
▶2004년이수종 서울대 교수, 독일 베셀 상 수상
▶2004년주민등록등본 등 민원서류 5종 인터넷으로 발급 시행
▶2003년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238
▶2003년호주, 헤로인 밀반입하려던 북한 선박 나포조사
▶ 1999년 4월 20일,
#콜럼바인_고등학교 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다.
오전 11시 19분, #딜런_클리볼드와
#에릭_해리스(17)는 고등학교로 걸어 들어가 불을 지르기 시작했으며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같은 반 친구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3명에게 크고작은 부상을 입혔다.
두 사람은 광란의 질주를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스스로 자신의 총으로 자살했다.
https://youtu.be/T8RoACDbPzk
콜로라도 주 덴버 교외 리틀턴에서 일어난 이 학살은 전국을 뒤흔들었고 전 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되었다.
이 사건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될 총기 규제 문제에 대한 논쟁을 심화시켰다.
한편 딜런 클리볼드와 에릭 해리스의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여겨지며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1999년한반도에서만 번식하는 `저어새` 이동 경로 첫 확인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한반도에서만 번식하는 희귀종 저어새의 이동 경로가 번식지와 월동지 6개국의 합동 노력에 의해 최초로 확인됐다. 저어새는 전 세계 600여마리만 보고된 세계적 희귀종으로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했으며, 지금까지 번식지인 남-북한과 월동지인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등에서만 발견됐다.
한국 자연환경과학연구센터가 지난 1월과 3월 홍콩과 대만에서 위성발신기를 달아준 저어새 각 4마리와 8마리중 각각 2마리씩, 모두 4마리가 중국 동해연안 습지대 2000㎞를 거쳐 비무장지대(DMZ)로 날아든 것을 확인했다고 1999년 4월 20일 발표했다.
저어새는 10월쯤 번식지인 한국에서 남하를 시작, 11월에 월동지인 중국,일본, 대만, 베트남 등에 도착해 3월까지 머물다 다시 북상해 4월쯤 우리나라에 돌아와 번식한다. 북한 평남 온천 군덕도, 남한 전남 칠산도 등 7∼8개 무인도가 번식지로 확인됐으며 비무장지대도 번식지로 확인됐다.
▶1999년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에서 식칼과 쇠말뚝 발견
충무공 이순신 장군 부모 묘소에 이어 충무공 묘소와 현충사 경내에 있는 충무공 셋째 아들 면 등의 묘소에서 식칼과 쇠말뚝 53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충남 아산경찰서와 충무공 후손들은 1999년 4월 20일 오전 8시부터 경찰 20여명과 금속탐지기를 동원,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충무공과 그 부인이 합장된 묘소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여, 오후 1시 40분쯤 봉분 표면에서 20cm쯤 되는 깊이에 식칼 2개와 쇠말뚝 2개가 박혀 있는 것을 찾아냈다. 또 충무공 후손들 묘소에서 8개, 이 곳에서 9km 떨어진 현충사의 묘소 19기에서도 41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로써 덕수 이씨 선영에서 발견된 식칼과 쇠말뚝은 식칼 55개, 쇠말뚝 47개로 모두 102개로 드러났다.
그러나 충무공 묘지 훼손사건은 어처구니없게도 한 무속인이 자신의 지병을 고치기 위해 저지른 범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 양씨는 K철공소에서 식칼 200개를 구입한데 이어 D공업사에서 3차례에 걸쳐 쇠막대 60개를 주문했다. 경찰에 따르면 양씨는 1차고 3월 4일 충무공 묘소에 식칼과 쇠막대를 꽂았다. 이어 3월 중순과 3월말, 4월초, 4월 8일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충무공 부모 묘소와 현충사 등에서 범행했다.
범인 양모씨는 3~4년 전 경기도 구리시 건원릉(조선 태조 능),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태종 및 태종비 능), 강남구 삼성동 정릉(중종 능),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 이황선생 묘에도 식칼, 쇠말뚝, 동판 등을 꽂은 것을 자백했다.
▶ 1998년 독일 적군파 해체 선언
독일 극좌 테러단체로 한때 악명을 떨쳤던 독일 적군파(RAF)가 1998년 4월 20일 로이터통신에 보낸 서한에서 "오늘로서 우리의 과업을 종료한다. 도시게릴라 형태로서의 적군파는 이제 역사가 됐다"고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독일 적군파는 1960년대 말 학생운동 쇠퇴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을 거부한 소수의 급진좌파들이 결성했다. 창설 주역인 안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의 이름을 따 `바더마인호프 그룹`이라고 불리기도 한 독일 적군파는 마오쩌둥주의에 따른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목표였다. 마인호프는 함부르크 좌익계 잡지에서 활약했던 여성 저널리스트였고, 바더는 중산층 가정 출신의 직업운동가였다.
이들은 바더가 1968년 프랑크푸르트백화점 방화로 교도소에 수감되자 마인호프가 면회를 가장해 바더를 탈출시켜서 더 유명해졌다. 그래서 바더가 탈출한 1970년 5월 14일을 독일 적군파의 탄생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나치 잔재 척결` `베트남전 반대` `반제국주의 전쟁` 등을 기치로 내걸고 1998년 4월 테러활동 중단을 선언할때까지 독일주둔 미군시설 및 병력, 경제인, 법조인 등을 주목표로 수많은 테러를 자행, 3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1977년에 악명을 떨쳤는데 1977년 4월 7일에는 검찰총장을 암살하고 7월 30일에는 드레스너 폰트 은행장을 사살했으며 9월 5일에는 슐라이어 독일경영자연맹 회장을 납치했다. 슐라이어는 나중에 프랑스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1977년 11월에는 팔레스타인 테러범들과 연계해 승객 91명을 태우고 소말리아로 가던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공중납치해 적군파 요원 11명의 석방을 요구하다 기장을 살해하기도 했다.
이후 잠시 숨을 고른 적군파는 1989년 독일 지멘스사 경영자의 승용차를 폭파해 사망케 하고, 1991년 4월에는 동독 산업민영화 책임자 로베더를 암살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했지만 이후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군파에 의한 희생자는 없었다.
바더와 마인호프는 1976년에 검거돼 마인호프는 그해 5월 감옥에서 목을 매 자살했으며, 바더는 루프트한자 여객기 피랍이 실패로 돌아간 1977년 10월 18일 감옥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이외에도 적군파 주요 멤버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사망해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상태였다.
https://m.blog.naver.com/jgs0207/221642705343
▶1996년제1차 북미 미사일 회담
▶1994년을사조약 부당성 폭로한 `헐버트 수고` 공개
1905년 일본과 체결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밀사로 활약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의 수고 및 회고록이 국내 학자에 의해 발견돼 1994년 4월 20일 공개됐다. 호머 베자릴 헐버트는 구한말 영어교사로 조선에 파견돼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고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이 땅에 잠든 미국인이다.
이날 공개된 헐버트의 수고와 회고록은 구한말 대한제국 정부 편에서 중요한 외교적 활동을 했던 한 미국인의 생생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표지와 제1장이 떨어져 없어진 채 3백41쪽 24장이 남아있는 `수고`에는 일본이 을사조약 체결을 위해 압박을 가할 당시 고종이 1882년 `조미수호조약`에 따라 미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영문 `주권수호협조요청서`가 실려있다. `한국사` `한국견문기`등 한국에 관한 헐버트의 일련의 저술이 이어지며 1930년대에 집필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5년지하철4호선(상계-삼선교) 개통
서울 4호선 상계~삼선교 1단계 구간 개통과 함께
GEC쵸퍼 차량의 첫 정식운행이 시작되었다.
평균배차간격 10분, 하루 224회 운행하며
버스로 기존 50분 소요되던 상계동에서 혜화동까지 22분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서울지하철 총 노선길이는 76.8km로 늘어났다
▶1985년마라톤선수 카를로스 로페스, 네덜란드 로테르담마라톤경기에서 2시간 7분11초로 세계신기록 수립
▶1981년제1회 장애인의 날
유엔이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선언하고 각 나라에 기념사업을 권장하자 우리나라는 통계적으로 비가 가장 내리지 않는 날인 오늘을 장애인의 날로 정함. 1991년부터 법정기념일
▶1981년국정자문회의 발족
▶1980년사상서 황산열차 전복
▶ 1978년 오늘,
소련 #무르만스크 상공에서 #대한항공_902편_격추사건이 일어났다. 탑승객 109명(승객 97, 승무원 12) 중 2명이 사망하였으며,
무르만스크 인근에 불시착했다.
이 당시 기장분인 김창규(金昌圭)씨는 동일년도 올해의 기장상을 국제 기장협회에서 수상 했습니다. 당시 조중훈 대한항공 회장은 707 특별기를 편성해 헬싱키로 날아간바 있습니다. 대한항공 20년사에 의하면 이 결정은 그분의 '직감'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진위여부는 알 수 가 없군요. 실제 승객 수송은 팬암항공 전세편을 이용해 헬싱키에서 러시아로 들어간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20년사에 근거한 사고 개요====
-파리에서 앵커리지 향해 출발
-국제 비상 주파수로 호출 시도, 날개를 좌우로 흔들어 협조를 알림
-무차별 사격
-몇시간 동안 떠돌다, 무르만스크 호수에 불시착[1978.4.20]
-계기 고장이 원인
-사고기 승객 및 승무원 일행 49명과 유해 2구 사장 조중훈 인도로 김포공항 도착[1978.4.24]
(죽은 승객은 일본인 이었던듯 합니다; 기장분은 나중에 석방된 것으로 압니다.)
-북극경유 구주노선 관성항법장치(Inertial Navigation System)가 장착된 DC-10으로 교체[1978.4.25]
(707은 그 유명한 별자리를 이용한 항법을...)
출처: https://puercaeli.tistory.com/124 [PUERCAELI :: cotidie hodie res ::]
▶1977년광주 무당촌에서 무허가 건물 철거하던 구청직원 4명, 동네청년에 의해 피살
▶1973년성년의 날 제정
▶1969년대전 중앙시장 화재
▶1967년한국개발금융(KDFC) 발족
▶1965년한국-베네수엘라, 국교 수립
▶1962년5.16기념 산업박람회 개막
▶1962년한국-부르키나파소 국교 수립
▶1952년동양통신 창간
▶1949년제1회 세계평화옹호자대회 파리서 개최
▶1949년초대 주한 미대사에 무초 취임
▶1938년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 개봉
나치스 독일이 위신을 걸고 개최한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1부 민족의 제전, 2부 미의 제전)가 히틀러 49번째 생일인 1938년 4월 20일 베를린극장에서 처음 개봉됐다.
히틀러에 의해 지명된 여류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1936년 8월 1일부터 14일간에 걸쳐 개최됐던 베를린올림픽을 40만미터에 달하는 필름에 담아낸 후 능숙한 솜씨로 편집해 400km의 필름으로 만들어냈다. 미국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엔스의 멋진 육체의 움직임과 우리나라 손기정 선수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 등을 다각적으로 잡아냈다.
그녀는 주제에 따라 때로는 시간적 흐름을 무시하고 약동하고 정지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추구했다. 올림피아는 슬로모션과 줌 인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상으로 그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20세기 최고의 기록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권력기반을 굳건히 하고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선전할 생각이었던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작돼 `나치스의 선전영화`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다큐멘테터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젊은 시절 무용수와 배우로 활동했던 리펜슈탈은 1932년 '푸른 빛'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히틀러에게 감화돼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의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를 제작했다. 리펜슈탈은 '의지의 승리'를 통해 다큐멘터리의 신세기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으며 최고의 영화감독 반열에 올랐으나 1945년 독일의 패망과 함께 평생 '나치'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1935년조선산업박람회 경복궁에서 개막
▶1928년서울에 시내버스(경성부영 버스 10대)운행 개시
부영버스 Seoul, Korea, 1920's photographer Unidentified 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Archive
1927년까지 서울, 부산, 평양 같은 대도시에 대형 시내버스가 없었다. 7,8명 정도 탈 수 있는 승합 자동차와 택시가 버스 역할을 했으나 이것도 전화나 인편으로 불러서 타는 지금의 콜택시 아니면 전세 택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1928년 초 경성부청(서울시청)에서 서울장안의 시민교통을 돕기 위해 20인승 대형버스 10대를 일본에서 들여와 서울시내 중요간선도로에 투입하여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했다
부영버스는 손님을 끌기 위해 차표를 끊어 주는 예쁘장한 아가씨 차장들을 버스에 태워 장안의 큰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당시로서는 매우 진취적이고 신식교육을 받았다는 여차장들은 양장 유니폼을 입고 앞에는 차표가방을 맨 채 표를 끊어주며 살짝 웃는 미소 때문에 총각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여차장들의 인기는 금세 하늘로 치솟았다.
할일없는 건달이나 부잣집 도련님들은 점찍은 여차장들을 유혹하느라고 그 아가씨가 탄 버스를 하루종일 타고 다니며 추근덕거리던 풍속도를 연출했었다.
1920년대 말 서울장안에서 여배우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차장 H양은 결국 영화계에 스카우트되어 일류 여배우가 되었다.
전차만 있던 서울 거리에 시내버스가 합류한 것은 1928년. 이를 본 사람들은 집채만 한 크기에 놀랐고 차안에는 어여쁜 여차장이 손님을 반겼다. 대형 시내버스는 해방 전까지 전차와 함께 서울시민의 발이 됐다.
‘여기는 종로거리올시다∼.’
‘내리실 분은 앞으로 나오세요∼.’
‘여기는 종로거리올시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버스차장이다.
1928년 4월 22일 드디어 서울 거리에도 시내버스가 등장했다. 앞으로 서울시민의 발이 될 부영버스 1차분 10대가 일본에서 도착한 것. 그때까지 덩치가 작은 승용차만 보아왔던 서울시민은 대형버스를 보자 집채만 한 크기에 놀랐다. 게다가 버스안에는 아름다운 처녀 안내양까지 있어 갖가지 화제를 뿌렸다. 당시 조선일보는 ‘도색의 부영버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22일부터 개업하여 1구간 7전으로 매 10분에 1대씩 운행하고 묘령의 여차장도 이채롭다. 서울 장안에는 전차가 사통오달하여 있고 인력거나 택시 등의 교통기관이 어느 정도 갖춰졌으나 아직 전차가 아니 놓인 골목이 많고, 또 인력거나 택시를 타면 돈이 많이 들어 시민의 불편이 크던 중 얼마 전에 경성부청에서 부영으로 싼 요금을 받으면서 시내 버스영업을 하기로 준비하여 오던 것을 실현하게 되었다.
일본에 주문하였던 버스 10대가 도착하였고 차장으로 쓸 여자인 ‘버스걸’과 운전사의 채용도 전부 완료하였으므로 봄날의 꽃 빛이 아주 무르녹는 오는 22일 아침부터 영업을 개시하기로 되어 우선 20일에는 시내 유지 2백 명을 초대하여 시승 겸 개업의 자축연을 장춘단에서 거행할 터이다.
이리하여 금춘부터 묘령의 버스걸과 남색 버스가 장안에서 이채를 띄우려 하는데 부영버스의 운행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동차 운전 대수는 제1기분으로 10대요. 1대의 승차 정원은 좌석 14명 외에 가죽 손잡이에 매달리어 타는 인원이 8명으로 계 22명이요. 1구간 요금은 7전이며 발차 시각은 10분에 1대씩이다.
운행노선과 구간의 정류장 이름은 제1노선이 경성역~총독부(구 중앙청)~본정4정목(충무로4가)~경성역이요. 제2노선은 경성역~명치정(명동)~황금정4정목(을지로4가)~창경원 앞이요. 제3노선은 경성역~황금정3정목(을지로3가)~경성운동장~장춘단이라 한다.’
▶1906년소설가 강경애 출생 -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한 여성해방을 추구
▶1893년 스페인 화가 후안 미로 출생
할리 퀸(어릿광대)의 익살 1924~1925년
▶1889년 히틀러 출생 - 나치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1808년 프랑스 제2공화국 대통령(1850~52)이자 제2제정의 황제(1852~71) 나폴레옹3세 출생
▶1759년 독일 작곡가 헨델 사망
▶ 1745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치료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프랑스의 의사 피넬 출생
▶121년 로마제국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출생
https://youtu.be/iu6gbvZAWn0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반가운의hi스토리, 솦트리종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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