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꾸는 법 / 수진 스님
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참으로 어려운 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는 이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에는 대략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 명호를 열심히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라고도 하고 염불이라고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거나 석가모니불,
지장보살을 열심히 부르는 것입니다.
또 다른 수행방법은 간경이 있습니다.
경전을 읽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참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참선을 통해 깨달음의 길로 곧장
나아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수행을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일념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분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써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모든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참선을 하는 목적, 부처님을 부르고
화엄성중을 찾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진리의 당체로 들어가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분별을 끊어버리고 삼독심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경계.
내가 마멸되고 사라지는 현상.
이 모든 것은 일심으로 정진했을 때 가능합니다.
따라서 수행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나를 바로 알 수 있게 해 달라.
이렇게기도해야 합니다.
경전에 회광반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빛을 돌이켜 자신을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경전을 읽으면서 자기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보는 경전 독송이어야 합니다.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꿰뚫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바라보는 가슴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수행의 주체고
운명의 주인이고 행복의 디딤돌입니다.
운명이 기구하다면 운명을 바꾸세요.
박복하고 어리석다면
박복하고 어리석음을 바꾸세요.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운명에서 운(運)은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명(命)은 생명 또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내 생명과 생활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 삶은 변화시킬 수 있고,
현재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둔하다면 처절한 몸부림으로
지혜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내 안의 불성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