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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40여 여년 전, 소승이 사건의 직접 당사자였던, 슬프고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소승은 어릴 적부터 그만한 그릇도 못돠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꿈만 높을 뿐인,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전혀 아는 게 없는 무모한 중생이었습니다. 소승은 대학을
30세에 졸업했으면서도, 곧바로 취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허망한 꿈을 좇아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요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에 유행하던 말로는, 고시의 3대 요건은 첫째가
기본적인 지적 능력, 둘째 재산 능력, 셋째 건강이라고들 했습니다. 아마 이 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대체로 타당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당시 소승이 판단하기로 첫째 조건인 지적 능력은 그런대로
있는 것 같았고, 셋째 조건인 건강도 갖춘 것 같았지만, 둘째 조건인 재산 능력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턱 없이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소승은 현실 감각은 전혀
없으면서도, 하늘의 무지개만 바라보는 어리석은 이상주의자였던 터라, 학창시절에 겪었던 고난의
세월을 보상받기 위하여는, 반드시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혼자만의 목표를 설정해 놓고는
서울 근교 삼각산 자락에 있는 어느 작은 암자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지금 지난 날을 돌이켜 보건대
30세를 넘은 자가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외적 조건이, 제게는 애당초부터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만을 먹고 사는 어리석은 소승은, 그런대로 열심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바라던
시험에 합격하겠지 하는 꿈 속의 꿈을 간직한 채, 고시 준비의 대열에 무작정 뛰어들었습니다. 소승이
이 번 우리 까페에 올리는 글, “검은 구렁이의 원통한 죽음”의 이야기도, 소승이 처음 고시공부를
시작했던 무렵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또한 불행하게도 검은 구렁이를 원통하게 죽게 한 장본인이 바로 소승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못내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소승이 이 글을 까페에 올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소승이 죽인 “40년 전의 그 검은 구렁이”에게 깊고 깊은 참회의 뜻을 전하기 위함
입니다.
어제의 일입니다. 사시예불에 이어 산신각 예불을 끝내고, 요사로 들어 오는 중에 빨래가 잔뜩 걸려
있는 빨래대를, 햇빛이 좋은 곳으로 옮기고 있는데, 뒤따라 오시던 자비화 보살님께서, “어머! 어머!”
하며, 무엇엔가 깜짝 놀래는 듯한 비명조의 탄성을 울렸습니다. 소승이 빨래대를 든 채로 뒤를 돌아다
보니, 약 60-70센티의 비단 뱀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바쁘게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뱀은 언제나
우리에게 유쾌한 기분만을 전하지는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를 약간 섬뜩하고 두려운 경지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뱀은 자신이 직접 공격 당하는 경우 외에는, 결코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접근을 알아채자마자 언제나 도망가기에 급급합니다. 뱀과 인간이 어떤 관계로 이어져 있는 지 항상 궁금하지만, 아직까지 소승은 그에 대하여는 아는 바 없고, 다만 부처님의 말씀따라
함부로 살생하면 안되기 때문에, 뱀도 불살생의 대상임은 물론이요, 인간과 다름 없이 자신의 생명을
끔직히 아끼는 중생이려니 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소승은 가야산 대덕사에 와서 어제의 그 뱀까지 모두 뱀을 네 번 보았습니다. 아전인수격의 해석인지
모르지만, 소승이 판단하건대, 뱀은 소승에게 자신들이 있는 장소를 알려줌으로써, 소승으로 하여금
미리 주의를 하도록 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뱀들을 본 곳이
거의가 다 소승이 예불을 드리기 위해서는 매일 지나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뱀들은
미리 자신들이 거처하는 곳을 소승에게 알림으로써, 뱀의 안전과 절에 있는 사람의 안전을 위하여
적당한 시간에 그들의 모습을 소승에게 나타내 보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자비화 보살님이 어제 본 그 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어제 나타난 그 비단 뱀은 소승
으로 하여금 40여 년 전에 소승에게 원통하게 죽어 간 검은 구렁이에 대한 참회의 이야기를 까페글에 올리게 된 계기를 만들었으므로, 이 또한 의미 있는 출현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오늘 이야기의 본론으로 들어 갑시다. 소승이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들어 갔던 암자는 지금도
아직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 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법당 옆에 붙어 있는 방
4칸이 고시공부하는 방이었고, 그 중의 한 칸을 제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요사채는 공부방과는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공부 방의 난방은 19공탄 레루식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대부분이 레루식 연탄 아궁이에
대해서 잘 모르실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방 바닥 밑으로 연탄불이 피어 있는 연탄화덕을 깊이
밀어 넣어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구조입니다. 연탄이 피어 있는 연탄 화덕을 방 바닥 밑으로
밀어 넣었다 뺐다 한다고 해서 레루식(Rail식)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런 난방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탄을 갈 때는 연탄 화덕을 끌어 내어 연탄을 간 뒤 다시 방바닥 밑으로 밀어 넣습니다.
지금의 연탄보일러가 생기기 이전의 난방 방식일 것입니다.
가을이 깊어가던, 메밀꽃이 피었다 지는 어느 날, 이른 오후,
날씨가 차가워지니까 공부 방에 연탄불을 넣기 위해, 주인 집 딸이, 방바닥 밑에 있던 연탄 화덕을
살피려고 올라왔습니다. 그 때 고시 공부하는 학생 네 명이 모두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갑짜기 “어마야! 학생들 빨리 나와 도와 주세요!”라고 외치는 절 집 딸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뜻 밖의 비명 소리에 놀란 고시생들이 우루루 나와 살펴 본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는 때라, 뱀도 막 동면을 위해 자기의 겨울 은신처로 들어 갈 때입니다. 겨울 동면 준비
를 단단히 한, 큰 검은 구렁이 한 마리가, 정남향인 공부 방 마루 밑의 연탄 난로 넣는 곳을 자신의 겨울 동면 장소로 정했던 모양입니다. 그곳은 남향이어서 온 종일 따뜻한 햇빛이 비취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곳은 여름 내내 인간의 흔적이 없었기에 뱀도 그곳이 사람과 관계 없는 곳으로 착각했었겠지요.
주인 집 딸이 연탄 아궁이를 살피려고, 아궁이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한창 겨울 잠을 준비하던 검은
구렁이는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사람도 기겁을 하고 놀랐겠지만, 아마 사람보다는 뱀이 더 놀랐
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주인 집 딸의 다급한 비명소리를 듣고, 고시생 네 명이 밖으로 우루루 모두
뛰어나왔지만, 누구도 주인 집 딸이 겁에 질려 가르키는, 연탄 아궁이 가까히 가려고를 하지 않고
서로 얼굴만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주인집 딸은 뱀을 빨리 잡으라고 아우성입니다. 할수없이 그때도
소승이 먼저 나섰습니다.
소승이 장화를 신고 길다랗고 굵은 작대기를 들고 , 주인집 딸이 가리키는 연탄 아궁이 옆으로 접근하여
내려다 보니, 상당히 큰 시커먼 구렁이 한 마리가 필사의 각오를 한 공격적인 자세로 머리를 치켜든 채
쉴 새없이, 위협적으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소승이 긴 작대기로 구렁이를 밀자, 그 놈은 얼른 옆 방의 아궁이 속으로 도망갔습니다.
구렁이는 이쪽 방 아궁이와 옆 방 아궁이 사이를 이렇게 계속하여 도망칠 뿐, 밖으로 나올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밖으로 자신이 나온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했는지, 밖으로 기어 나오지 않고, 결사적으로 이 쪽 아궁이와 옆 방 아궁이를
오가며, 소승과 힘겨운 숨박꼭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모종의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소승은 손에 들고 있던 굵고 긴 작대기를 수직으로 세워, 뱀의 몸뚱이를 힘껏 밑으로 내리 찔렀습니다.
뱀의 동작을 둔화시켜, 뱀을 작대기에 걸쳐서 밖으로 들어 내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소승이 뱀을 향해 힘껏 밑으로 내리 찌른 막대기는, 마치 공기가 가득찬 축구공을 찌른 것처럼, 강하게 위로 튕겨져 올라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런 현상이 일어날 만큼, 그 구렁이의 몸뚱이는 굵었을 뿐아니라, 뱀 스스로 자신의 온 몸을 극도로 긴장시킨 결과일 것입니다. 소승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멀찌감치 피하게 한 다음, 긴 작대기의 끝을 뱀의 중간 쯤에 걸치는 것과 동시에, 큰 반 원을 그리며, 작대기에 걸친 뱀을 공부방 곁의 마당으로 내던졌습니다. 마당 끝에 떨어진 구렁이는, 처음엔 어리둥절한 채 가만히 있더니, 조금 있다가 재빠르게 수풀 속으로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뱀이 도망가네! 빨리 잡아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때 만약 소승이 뱀을 잡으라는 외침을 못들은 체하고, 도망가는 대로 놔두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그 당시의 소승은 그럴만큼 마음이 열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소승은 도망가는 뱀을 쫓아 가서
긴 작대기로 사정없이 일격을 가했습니다. 뒤 이어 세명의 고시생들이 돌맹이로 뱀을 때려 결국 그 뱀은
처참하게 죽고야 말았습니다.
뱀은 그 종류가 귀한, 반질 반질하게 윤이 나는, 새까만 먹구렁이인데, 몸의 굵기가 직경 12-15센티미터, 길이는 최소한 1미터 30센티에서 1미터 50센티는 될 것 같은 상당히 큰 구렁이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정도의 크기로 자라려면, 몇 십년은 묵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소승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큰 구렁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소승이 공부하던 그 암자가 있는 산은, 본래 뱀이 많은 곳이지만, 이렇게 큰 뱀은 처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커다란 먹구렁이를 잡은 고시생 네 명은, 그렇게 살려고 애쓰던 구렁이를 죽인 것
에 대하여는 일말의 후회도 없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한껏 고무되어 있었고, 주인 집 딸은
큰 일(?)을 해낸 고시생들을 위해, 그날 저녁 무슨 특식을 내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검은 구렁이를 잡는데 주인공 역할을 했던 소승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나날을 잘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였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좌우간 언제부터인가 소승은, 죽은 구렁이
생각을 할 때마다 몹시 마음이 편치 않은 후회의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우울한 감정들은 그 사건
이후 10년 이상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 소승은 절대로 뱀을 죽이지 않기로 결심했고
어쩌다가 시골 길 위에 자동차에 치어 죽은 뱀을 보면, 꼭 수풀 속으로 뱀의 시신을 옮겨 놓곤 했습니다.
그 후 소승은 뱀 뿐만 아니라 땅 속에 사는 일체의 생명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구렁이의 죽음은 소승에게 많은 깨우침을 갖게하는 계기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건이, 소승에게 그 당시 불교와 인연을 맺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불살생의 계율은 비단 불교 고유의 계율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 사건이, 그 이후 전개된 소승의 삶을 더욱 불교적인 삶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법당에 들어가면, 중앙에는 그 사찰에서 모시는 주불(主佛)이 모셔져 있고, 보통 왼 쪽에 신중단(神
衆壇)이 있습니다. 신중단은 불법을 옹호하는 일체의 모든 성현과 신들을 모신 단입니다. 신의 무리
곧 신중(神衆)에는 8부 신중이 있는데, 8부신중은 곧,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를 말합니다.
이 중, 8부 신중 제일 끝에 있는 “마후라가”는 뱀을 신격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뱀은 우리가 통상
기피 내지 혐오 중생으로 생각하는데, 앞으로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불법을 땅속 미물들에게 전하고, 불법을 옹호하는 선량한 존재로 생각하시길 바람니다. 우리 눈에 보기 좋고, 마음에 드는
것만을 골라서 사랑할 게 아니라, 이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의 존재를 차별 없는 평등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우리 모두 수행합시다. 우리가 수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소승은
생각합니다. 소승은 천성이 영민하지 못하여, 삶과 이 세상의 근본 이치에 대한 안목이 아직도 여전히
열리지 않은 채, 어둠 속의 미로를 헤메고 있는 범부중생입니다.
소승이 삶의 목표로 정하고 있는 것은, 풍진 세상의 부귀 영화가 아니라, 어쩌면 고독하기 그지 없는
출가승려의 삶 속에서도, 고독에 젖어 애달픈 삶을 살지 않고, 언제나 더불어 사는 모든 존재를 진정
사랑함으로써,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평화와 안식입니다.
연기의 원리를 내면 깊숙히 자기화하여, 우리의 삶 자체의 흐름이 연기법의 원리와 한 치의 불일치
도 일으키지 않는 삶! 정녕 그것이 가능한 세계라면, 소승 사는 날까지 그 세계를 향해 걷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불자님들께서도 소승과 함께 그 길을 가는 도반이 되어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소승의 마음을, 40여년 전 소승 때문에 원통하게 죽은 검은 구렁이가
안다면, 아마 그 놈도 이제는 소승을 탓하지만은 않을 것이고, 그리 된다면, 소승이 저지른 불살생계를 범한 업장도 지금 쯤은 다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가야산 대덕사 기산지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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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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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님 ()()()
인을 짓었으니 과를 어찌 모면하겠습니까?
누군들 그 순간에 과를 알고 인을 짓겠습니까?
언제 어디서 그 과를 만난다 하더라도,
더이상 인을 만들지 않도록 애를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구렁이와의 원결을 스님께서 지혜롭게 풀어 가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스님께서 불살생계를 범한 업장도 지금 쯤은 다 소멸 되었을 것이라 말씀 하심은,
스님께서 원결을 풀어 주기위해,
노력하심이 크셨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구렁이도 스님 마음과 하나 되기를 두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옴 삼다락 가닥 사바하
옴 삼다락 가닥 사바하
옴 삼다락 가닥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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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스님
이제는
홀가분 하시죠 ?
큰구렁이가 젊은 청년에게
그렇게 죽임 당한것도
그 뱀의 업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왜 하필 인가로 보금자리로
택했을까~욕심이 과한 뱀이
아니었는지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밖에 할수없었을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의 영혼도
스님의 마음을 헤아릴것 같아요
악연 이었지만
좋은 선연으로 이어진
느낌이 듭니다
모두가
스님의 기도공덕 이십니다
잘 읽고 갑니다 스님
법체건안하세요()()()
스님께서 불살생을
더 더욱 강조 하시는것이
물론 오계의 계율이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가
있었기에 생명체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 역시 불살생의 계율이
생명체를 바라보는
제 시각의 구조변화를
일으켰다고 봅니다
관세음보살♥♥♥
좋은인연*^^*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