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신 없어 못 맞고, 확보 물량 따라 막 놓고, 한국만의 현상조선일보
남자천사
2021.08.12. 06:47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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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백신 없어 못 맞고, 확보 물량 따라 막 놓고, 한국만의 현상
조선일보
입력 2021.08.12 03:26
국내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11일 0시 기준 2223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2000명대를 넘어섰다. 고강도 거리 두기 조치에도 계속 최고치를 갈아치우자 정부는 이번 광복절 연휴에 “집에 머물러 달라”고 당부했다. 더 이상 마땅한 대책이 없음을, 사실상 속수무책임을 시인한 셈이다.
11일 오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보건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신규 확진자가 코로나19 사태 후 최다인 2,223명을 기록해 방역 당국은 비상이 걸렸다./ 김동환 기자
코로나 방역에는 정부의 역할이 있고 국민이 할 일이 있다. 국민은 그동안 정부의 방역 지침에 잘 따랐다. 민생의 어려움과 국민의 피로도 등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방역 강도를 높이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반면 정부는 그렇지 못했다. 다른 나라는 백신을 쌓아놓고도 안 맞아서 골치인데 우리는 백신이 없어서 못 맞는 상황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말 화상 통화로 확보했다고 발표한 모더나 백신이 잇따라 공급 펑크를 내면서 접종 차질과 혼란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정부는 50대 이하 2511만명의 화이자·모더나 접종 간격을 일괄적으로 4주에서 6주로 2주 넓히면서도 이렇다 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두 백신의 원래 접종 간격은 각각 3주, 4주였다. 백신을 개발할 때 허가받은 접종 간격이나 가장 효율이 좋은 간격으로 접종하는 것이 아니라 백신 공급에 따라 접종 간격을 조절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침대의 길이에 맞게 사람 다리를 잘랐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따로 없다. 한 백신 전문가는 “정부가 예외적인 경우에 허용한 접종 간격 조정을 아예 일상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접종 간격을 자꾸 넓히다보니 우리나라처럼 1차 접종률(42.1%)과 접종 완료율(15.7%) 차이가 벌어진 나라가 드물다. 어떤 백신을 맞는지도 수시로 오락가락해 본인이 1·2차에 어떤 백신을 맞을지 아는 국민이 드물 정도다.
요즘 유행하는 델타 변이는 1차 접종으로는 예방 효과가 30%대에 불과하고 2차 접종까지 마쳐야 60~80%대로 오른다. 이번에 2차 접종 시기가 밀리면서 국민이 델타 변이에 노출될 위험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실패가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물론 위험한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최근의 확진자 수 증가는 델타 변이 확산에 따른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했지만 백신이 없어서 못 맞는데다 접종 간격까지 수시로 변경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