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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지금까지 존재한 이유
사탄은 인간보다 훨씬 더 먼저 -그리고 더 큰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고 추방되었다. 그런데 왜 사탄과 귀신들은 아직까지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 이 세상을 왕래하며 인간들을 괴롭히며 활동하고 있는가 ? 하나님께서는 왜 천상에서 범죄한 사탄과 마귀들을 곧바로 유황불에 넣지 아니하시고 지금까지 집행유예로 놔 두셨는가 ? 이유는 무엇인가 ! 하나님께서는 결코 손해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한 수 들어 두수-세수를 치시는 분이시다. 마귀의 형벌의 형벌에 관해서 집행유예로 놔두신데는 하나님의 큰 계획과 뜻이 있는데 - 성경에 입각해서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A. 성도들에게 영적인 전쟁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 있는 대항 세력인 주변국가들을 마귀의 군대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잔인한 분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구속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기독교 대항 세력을 마귀의 지배를 받는 어두움의 세력으로 보고 계신다. 사사기 1장과 2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죽을 때 남겨둔 열국을 사탄의 세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적들을 여호수아를 통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시고 남겨 두셨는가 !
삿 2:2=3:1∼6 = 여호수아가 죽을 때 남겨둔 열국으로, 가나안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려고(3:1)--- 남겨둔 열국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 가나안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려고 ] 남겨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가나안 전쟁이란 무슨 말인가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이 있다. 그 경계는 애굽 강에서부터 바벨론(현 이라크)의 큰 강 유프라데스 강까지이다(창15:18-21)
신20:1-20까지의 내용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싸워야할 전쟁이 있는데, 신20:1-15절까지는 약속의 땅 밖에 있는 주변국을 칠 때와, 16절-18절까지는 약속의 땅 안에 있는 적들과 싸워야될 전쟁에 대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가나안 지경 밖 외부의 적을 칠 때에는 먼저 [ 평화 ]를 선언하여 [ 끝까지 전쟁을 할 것이냐? 아니면 항복하고 화친할 것이냐? ] 의향을 물어본 후 화친하겠다고 종속선언을 하면 종주권조약을 맺고 조종을 바쳐 섬기게 할 것이나, 그들이 전쟁을 선택하면 이길 때까지 전쟁을 해야한다(고전 5:10 참조).
그러나 가나안 땅 안에 살고 있는 내부의 적과 전쟁을 할 때에는 인정 사정없이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무조건 쳐서 진멸시켜야 했다. 이것이 가나안 전쟁의 원칙이다. 외부에 있는 적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화친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하지만, 가나안 땅 안에 살고 있는 내부의 적에게는 화친할 기회를 제공해 주어서는 안되며 - 절대로 자비를 베풀어 화친를 도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싸워야할 영적 전쟁(聖戰)의 원칙인 것이다(고전 5:11-13 참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죽을 때 남겨둔 열국을 통해 가나안 전쟁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다. 전쟁이란 생사가 걸린 문제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적이 죽던가 ! 내가 죽던가 ! 둘 중 하나이다. 죽지 않으려면 강한 훈련을 통해 무예와 무술과 지혜와 병법이 적보다 뛰어나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싸울 적이 없다면 군대가 필요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정예군은 강한 훈련과 적과의 전쟁으로부터 나온다.
전쟁과 신앙은 곧바로 통한다. 전쟁이 없다면 나태와 무기력에 빠져 망하고 말 것이다.
유교의 철학이라고 하는 4서 5경 중 맹자란에도 보면 - 안으로는 법도를 지키는 신하가 없고 왕을 보필할 선비가 없고 -밖으로는 적국이 없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끊임없이 죄와 마귀와 싸워야 하는 전투적 교회이다. 그러므로 지상에 있는 성도들은 두 가지의 전쟁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싸우라하는 전쟁이다.
첫째, 외부에 있는 적과 싸워야 한다.
외부에 있는 적은 사탄이다. 사탄은 쉴새없이 죄를 통해 성도들을 유혹한다. 성경대로 살지 말고 귄력을 잡아보라고, 재물을 모아 보라고, 명예를 얻어 보라고, 매력있는 남녀들을 취해보라고, 세상 향락과 쾌락에 빠져보라고, 각종 우상숭배와 미신행위로 신앙의 대상을 바꿔보라고, 그래서 일가 친척들에게 -부모형제들에게 비난과 왕따를 당하지 말라고, 소외를 당하지 않게- 고독하지 않게 -세상 사람들과 어울러 보라고 --- 최면술을 배워 성령의 역사라고 속여 보라고- 그래서 교회 큰 건물 짓고 많은 인파가 모이게 되면 많은 재물을 축적하게 될 것이라고- 불법을 행해 보라고, 유혹하고 있다-이러한 사탄의 유혹을 어떻게, 무슨 힘으로 물리칠 것인가 !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무기는 오직 말씀무장과 기도무장과 -겸손-화목-순종의삶과-회개 밖에는 없다.
둘째, 내부에 있는 적과 싸워야 한다.
가나안 전쟁이란 내 안에 있는 적과의 전쟁이다. 밖에 있는 적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적이 더 무섭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잠복하고 있는 적을 보라 ! 교만. 음란. 탐욕. 음모와 권모 술수. 시기 질투. 미움과 증오심, 살인. 도적질. 원망과 불평. 불신과 갈등. 의심. 불만. 욕심과 사심. 무기력과 나태. 신앙을 포기해 버리고 싶은 충동. 허무주의와 삶의 회의. 절망과 좌절. 고독. 등의 7 족속도 더 되는 가나안 적군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밖에 있는 마귀와 인간이 내 적이 아니라, 진정한 내 적은 내 속에 잠복해 있는 무서운 죄성들이다. 그들의 수가 더 많고 무서운 것이다. 문제는 [ 물리칠 의지가 있는가 ! ]이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은 끊임없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 만약 이 전쟁에서 진다면 신앙패배로 그쳐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지옥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며 처참한 유황불에 인생 갈무리를 짓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죄에 대한 책임도 자기가 져야한다. 그러므로 외부의 적이라고 생각한 인간과의 관계는 회개를 통하여 화목할 수 있는 기회를 늘 가져야 하지만- 내부에 있는 자신 안에 들어있는 적들에게는 냉정해야함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전쟁을 할 때에는 외부의 적들에게는 평화를 선포하여 화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되 - 약속의 땅 안에 있는 7족속인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인정사정 두지 말고 비참할 정도로 - 처참할 정도로 칼날로 다 쳐 죽이라고 명하신 것이다. 즉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벨풀지라도 - 자신 안에 들어있는 죄에 대해서는 인정사정 두지말고 과감하게 물리치라는 말씀이다.
삼상22: 3-5를 보면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가 - 부모와 형제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모압왕에게로 데리고가 부모를 부탁하고- 자기는 400명의 사병과 함께 유다땅 경계 밖에 있는 다윗의 요새에 기거했다. 다윗은 외부의 적보다 이스라엘 땅안에 있는 사울과의 전쟁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때 선지자 갓이 다윗을 찾아와 이방인의 땅인 요새에 있지말고 -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어 다윗은 순종하고 유다 땅 헤렛 수풀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가 ! 다윗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과의 전쟁을 더 무서워했고 - 이방(외부)의 왕과 군대보다 내부에 있는 사울왕과의 전쟁을 더 무서워했다. 그래서 그는 그 전쟁을 포기하고 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과 싸워 승리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다윗으로 하여금 그 전쟁을 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내부의 적는 무시하고 타인들의 잘못과 실수와 단점과 죄만을 지적하면서 혹독할 정도로 - 무자비할 정도로 비판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은 합리화 시키고 정당화 시킨다. 같은 죄라도 남이 하면 간통죄 - 자기가 하면 지독한 사랑이다. 남이 퍼다주면 매국노 - 자기가 퍼주면 햇볕정책-포용정책이다. 자기가 죄를 짓게되는 동기는 - 원인은 - 다 환경때문이요- 죄를 지을수 밖에 없는 상황때문이요 - 저 사람때문이요- 이 사람때문이요 -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했기 때문이다 - 등으로 모든 범죄의 원인은 남이요 자기 탓은 없다.
우리는 천주교에 가서 배울 것이 하나 있다. <가슴을 치면서 - 내 탓이요 ! 내 탓이요 ! >- 모든 죄의 원인은 내 안에 들어 있는 - 내 안에 깊이 숨어 도사리고 있는 내 혈기- 내 욕심- 내 교만- 내 명예심- 내 공명심 - 내 감정- 잘못된 선입관- 시기와 질투- 성적인 충동- 증오와 미움- 살인할 마음-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 남이 잘 되면 배아파하는 못된 심리- 등 자기 안에 있는 원주민 - 7족속보다 더 많은 대적들- 나를 죽이고 내 영혼을 죽이고 있는 적군들- 반드시 물리쳐야 될 적들- 이 적들을 놓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 ! 이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 - 라고 울부짖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죄를 짓게 된 원인과 동기는 내게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이 없어서- 내 이웃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없어서 - 상대방과 화목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울며 가슴을 치며 통회자복하며 이 마음 없애달라고 울부짖고 기도해야 한다. 이 싸움에서 지면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지옥불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영적인 전쟁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
B.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열국을 남겨 놓으신 또 하나의 이유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신앙은 <금이 용광로 속에서 그 가치를 드러내듯이> -환난을 통하여 신앙의 질이 빛나게 된다. 그러나 가라지와 쭉정이는 환난이나 곤고를 당하면 신앙을 포기해 버린다. 구약 성경에서 유명한 장수들의 이름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무예와 무술을 기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적들을 물리쳤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여 전사(戰士)로서의 의무를 포기해 버리지만 전쟁에 능한 용사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과감하게 적진에 돌진하며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냄으로서 신정국가의 초석들이 되었음을 소개하므로서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를 통하여 세우가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신20:5-9. 삿7:3. 6 등 삼하 23:8-39. 대상 대상12:1-40 등)
하나님의 나라는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킨 신앙정예군들을 통하여 세워졌다. 전쟁을 포기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신정국가는 세울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셨다. 삿3:4절에는 [ 남겨둔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청종여부를 알아보겠다 ]고 하셨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는 하셨지만, 마귀와 죄의 세력들을 그대로 놔두신 이유는 구원 얻은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시다.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마귀는 성도들에게 사법권을 행사한다.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사기이다. 사사기의 내용을 집약시켜 보면, 이스라엘의 죄와 주변국의 침략. 회개와 구원이다. 십자가 사건 후, 복음이 전 세계에 들어가는 곳마다 마귀는 기독교를 진멸하려고, 로마 황제들을 통하여, 각 나라 왕과 백성들을 통하여, 일제(日帝) 신사참배를 통하여 등으로 박해를 가했다. 이러한 환난 속에서 진정한 성도들은 신앙의 절개를 지키고 순교했으나, 쭉정이들은 신앙을 포기하거나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적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곡과 가라지를 철저하게 가려낼 것이다. 그 적그리스도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사탄은 적그리스도를 이용하고 -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시험하여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신다. 그리고 주께서 재림하시면 그 마귀는 천년왕국 동안 무저갱에 임시 가두어 두었다가 천년왕국 끝에 풀어놓아 또다시 마귀의 활동을 잠시 허락하실 것이다.
왜 무저갱에 있는 사탄을 풀어 놓게 되는가 ! 천년왕국 끝에 다시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데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을때 백보좌 심판 직전에 불못에 던져 넣어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하실 것이다(계20:1-15). 천국에서 천사들을 창조한 이레로 - 루시퍼와 많는천사들이 천국에서 큰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바로 유황불에 집어 넣지 않고 지금까지 지구를 왕래하며 인간들을 괴롭히게 놔두신 이유는 바로 이와같은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탄과 귀신들을 곧바로 지옥에 던져 넣지 않았던 이유와 - 사사기에서 여호수아가 다 멸하지 않고 남겨 둔 열국과- 예수님께서 다 멸하지 않고 남겨 둔 죄와 사망과 귀신들은 다 같은 맥락인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죄와 사망과 마귀와 귀신들을 남기지 않고 다 멸하셨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첫째, 성도들은 싸워야될 적과의 전쟁이 없으니 말씀무장과 기도무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며, 둘째, 세상 향락과 쾌락에 도취되어,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관을 상실해 버렸을 것이며 셋째, 천국과 구원에 대한 가치와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넷째, 나태와 무기력에 빠져 하나님의 대한 믿음의 행위도 상실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와 죄와 사망이 존재하므로서 구원의 가치를 알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의지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얼마나 가치있고 고귀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2011년 11월 20일 주일 <광야의 소리>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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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도사님 불철주야 고생이 많으시고 수고가 너무 많으십니다


덕분에 다음카페 가입이 쉬워서 바로 가입했습니다.
카페를 통하여 지속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귀한 사역에 귀하게 쓰임받으시는 전도사님 더욱 강건하세요
아~이구 ! 우리 전도사님 !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글까지 남겨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평안한 하루가 되세요.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2.06.16 09:2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2.06.16 13:01
이제 기도해야할 내용이 생겼습니다.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사탄이 지금까지 존재한 이유>
1. 성도들에게 영적 전쟁을 가르치기 위함
외부에 있는 적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화친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하지만, 가나안 땅 안에 살고 있는 내부의 적에게는 절대로 자비를 베풀어 화친를 도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싸워야할 영적 전쟁(聖戰)의 원칙인 것이다. 모든 죄의 원인은 내 안에 들어 있는 - 내 안에 깊이 숨어 도사리고 있는 내 혈기- 내 욕심- 내 교만- 내 명예심- 내 공명심 - 내 감정- 잘못된 선입관- 시기와 질투- 성적인 충동- 증오와 미움- 살인할 마음-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 남이 잘 되면 배아파하는 못된 심리- 등 자기 안에 있는 원주민 7족속보다 더 많은 대적들- 나를 죽이고 내 영혼을 죽이고 있는 적군들- 반드시 물리쳐야 될 적들- 이 적들을 놓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 ! 이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 - 라고 울부짖고 기도해야 한다.
내가 죄를 짓게 된 원인과 동기는 내게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이 없어서- 내 이웃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없어서 - 상대방과 화목할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울며 가슴을 치며 통회자복하며 이 마음 없애달라고 울부짖고 기도해야 한다. 이 싸움에서 지면 패배의 쓴 잔을 마시고 지옥불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영적인 전쟁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1:14)
2.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기 위함
진정한 신앙은 <금이 용광로 속에서 그 가치를 드러내듯이> -환난을 통하여 신앙의 질이 빛나게 된다. 그러나 가라지와 쭉정이는 환난이나 곤고를 당하면 신앙을 포기해 버린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킨 신앙정예군들을 통하여 세워졌다. 전쟁을 포기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신정국가는 세울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셨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는 하셨지만, 마귀와 죄의 세력들을 그대로 놔두신 이유는 구원 얻은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시다.
마귀와 죄와 사망이 존재하므로서 구원의 가치를 알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의지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얼마나 가치있고 고귀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