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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오른쪽 발목이 아팠다.
어떻게 된 일인지 높은 신발을 신으면 아프지 않고 낮은 신발을 신으면 더 아파서
비대한 몸을 가지고서도 늘 높은 신발을 신고 다녀야 했다.
굽 높은 신발을 항상 신어야 하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9월 초순 정밀 검사를 받기 위해 동래 백병원에 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10여 장이 넘는 엑스레이를 찍었다.
발목 쪽 엑스레이 사진에 톱니처럼 뾰족한 것들이 자잘하게 줄을 지어서 하얗게 솟아 나 있다.
"오른쪽 발목에서 발등 쪽으로 뼈가 길어난 것이 보이죠. 발등에 있는 뼈와 발목뼈가 걸을 때마다 부딪치는 겁니다.
특히 낮은 신발을 신으면 각도가 잘 맞아 떨어져서 더 아프죠. 길어난 뼈를 깎아내야 합니다."
정형외과 일반 병원에가서 그렇게 아프다고 부르짖어도 원인을 알 수 없던 것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몇 년째 인지, 그래서 그렇게 아팠었구나.
소견서를 들고 발목을 잘 보는 의사가 있다는 개금 백병원으로 갔다.
"간단합니다. 뼈를 깎아 내든가, 아님 약물치료로......" 수술을 시켜 달라고 했다.
수술 날짜를 9월 30일로 잡고 집으로 왔다.
주부가 당분간이라도 집을 비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한 달가량의 여유가 있어서 세 아이 때문에 늘 힘든 딸을 도와주러 거제도에 한 번 갔었고
원룸생활을 하는 아들의 빨래도 미리해서 챙겨다 주었다.
혼자서는 밥은 커녕 어디에도 다니시지 못하는 특히 거동이 불편한 친정 엄마를
덕계에 살고 계시는 외숙모님 댁에 열흘 정도만 모셔 달라고 부탁을 했다.
벌써 세 번째이다. 자궁적출 수술, 맹장수술 때에도 늘 남편이 곁에 있어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부부가 무엇인지, 있는 듯 없는 듯 친구처럼 그림자처럼 지내다가 이렇게 큰 일이 있을 때에
서로를 지켜 준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좋은 빽인지 참 괜찮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시키더니 오전 일찍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실 입구에 길게 뻗어 있는 의자에는 초조한 얼굴을 한 수십 명의 보호자들이 앉아있다.
준비 중, 수술 중, 회복 중이라는 글씨가 빨갛게 불을 켜고 있고 수술받는 사람들의 이름도 아래에 적혀 있다.
잘하고 오라고 수술실 문 앞에서 남편이 배웅을 했다.
침대가 미끄럼을 타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허연 천장과 커다란 전등만 보이는 대형 수술실, 줄지어 서 있는 침대들 틈에 나도 누워서 숨죽이고 있다.
이름이 무엇이냐, 혈액형은 무엇이냐, 어느 쪽 발이냐, 수술 할 부위는 어디냐, 들어오기 전부터 벌써 열 번은 더 대답했지 싶다.
오른쪽 허벅지 넓적다리에, 김삼선 A형, 환자번호, 수술 명을 사인펜으로 쓰더니 수술 할 발목 쪽으로 길게 화살표를 그린다.
새우처럼 몸을 구부려 보세요. 척추에 두 대의 마취 주사를 아프게 찔렀다.
뜨끈하더니 순간 아랫도리 감각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내 몸이 반동가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 무서웠다.
팔을 활짝 펴게 하고는 오른쪽 손가락에 심장 박동기를 달고 왼쪽 팔에는 혈압 기를 달았다.
혈압이 수시로 재어지고 있고 심장 그래프가 그림을 그리며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수십 명의 환자가 동시에 수술을 받고 있다. 조곤조곤 사람 소리와 기계 소리가 섞여서 들린다.
"혹시 불편하시면 말을 해 주세요"
수술 팀에 있는 사람이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차라리 전신 마취를 하면 좋을 텐데 이순간이 너무 떨려서 잠을 청하려 하니 정신만 더 말똥말똥해졌다.
성당에서 늘 하던 기도문인 주모경을 속으로 외워 보았다.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던 내 머리가 지금은 온 정신과 마음을 다하여 내 몸에만 집중이 되어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뼈를 깎아내는 것 같은 소리가 윙윙 들려 왔다. 딱딱 망치 소리도 난다.
의사들이 주고 받는 말소리가 두런두런 한다.
"교수님 음성을 들으시니 마음이 놓이죠,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
내 목숨을 맡기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입은 옷으로 떨리는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십자가에 묶인 채로 누워서 예수님 체험을 하고 있어도 시간은 흘러갔다.
다시 침대들이 나가려고 줄을 서 있다.
문이 열렸다.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오랫만에 남편이 몹시 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이나 되었어, 자네 정말 수고 많았어. 남편이 말했다.
다시 865호 병실로 옮겨졌다.
반깁스를 한 오른발에는 무릎까지 붕대가 감겨 있고 꽂아 놓은 링거에 무통주사가 추가되어 매달려 있다.
오른쪽 다리를 최대한 높이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4시간을 보냈다.
수술 경과는 좋은데, 안쪽 복사뼈 쪽을 한 번 더 수술해야 할 것 같다고 병실을 방문한 의사가 말했다.
아예 연골이 다 닳아서 없는데 어떻게 걸어 다녔느냐고도 했다.
8층에 있는 정형외과 병동은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패잔병들의 집합소 같다.
전쟁터에서만 사람들이 상처를 입을까, 교통사고, 각종 재해, 살다가 생긴 갖가지 질병들,
사람들의 치열한 삶도 어쩌면 피 터지는 전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실 복도에는 두 다리가 잘려나간 사람, 팔이 잘리거나 어깨가 부서진 사람,
나처럼 다리를 길게 뻗고 휠체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 허리 수술을 해서 보조용구를 차고 있는 사람,
무릎 관절을 다시 해 넣은 사람들로 온종일 북적이고 있다.
성하게 잘 걸어 다니는 사람은 분홍색이나 노란색 윗옷을 입은 간병인들 뿐이다.
치료실에서는 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비명이 아프게 퍼져 나가고 있다.
몸에 난 상처들은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아물어 갈것이다.
어느정도 몸을 추스르기만 하면 퇴원을 서두르는 환자들의 모습은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했다.
영영 불구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므로 병실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왼쪽 침대에 있었던 24세된 여대생은 고속도로 갓길에 사고로 서 있다가 뒤따라오던 차에 받히면서
뜨거운 타이어에 데어서 종아리 살이 거의 타버린 상태로 들어와서 한 달이 넘게 이곳 병실의 터줏대감이 되어 있었고
앞에 있는 할머니 두 분은, 평생을 고생스러웠다던 허리 수술을 했고,
무릎에 인공 뼈를 넣은 아주머니와 대퇴부 수술을 하고 인사불성이 되어서 종일 헛소리만 하는 내 옆에 있는 할머니,
허리에 골수염이 와서 수술도 하지 못하고 있는분, 그분들과 같이 10여 일을 같은 병실에서 지내면서 정이 들었다.
때가 되면 정확하게 나오는 밥, 시간마다 내 몸을 체크하는 간호사, 그리고 의사 선생님, 걱정스러운 얼굴로 방문해 주는
가족과 지인들의 사랑까지, 우리는 함께 커다란 배를 타고 고급 치료 여행을 하고 있는것 같다고 병실 사람들에게 얘기 했다.
24일만에 드디어 퇴원을 했다.
잠시 빌려온 휠체어가 거실에 있고 현관에는 내 목발이 세워져 있다.
열흘쯤 걸리겠지 했던 생각은 내 수준의 발언이었고, 의사가 간단하다고 한 것은 두 달쯤이라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퇴원하고 외가에서 엄마를 모시고 왔다.
처음에는 휠체어만 타다가 이제 집에서는 절뚝거리며 조금씩 걷기도 한다.
길에 나서면 3센티미터 턱만 되어도 돌아서 가야하는 휠체어, 목발을 짚고도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 계단 두세 개,
나는 지금 장애인 체험을 혹독하게 하고 있다.
퇴원한지 벌써 10여 일, 아직도 내 오른발에는 통 깁스가 무겁게 발을 감싸 안고 있다.
문 밖 출입을 일절 못하는 나와 친정 엄마가, 자나깨나 모든 일에 남편의 손길 만 기다리고 있다.
시장보기, 빨래, 청소, 하다못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는 일 등
설거지를 자연스럽게 하는 사위가 부담이 되었는지 내일 당장 집에 가야 되겠다고 서두르시던 엄마.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짬을 내어서 이 모든 일을 다 해 준 남편이 가장 큰 수술 공로자가 될것이다.
걷지 못하는 아내와 더 걷지 못하는 장모를 위해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
이제 2주 후면 깁스를 풀고 내 오른 발이 해방을 맞는 날이다.
복사뼈에 인공 연골을 주입하는 수술을 다시 할 지라도, 낮은 단화를 신고 온천천을 자유롭게 걷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그동안 걱정해준 가족 친구들, 병원에 와서 무료한 시간을 같이 보내준 여러 지인에게 감사를 보내면서...... |
첫댓글 계단을 오르내리며 힘들어하는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그렇게 힘드셨는데 다니시기는 얼마나 많이 다녔습니까...병문안 가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얼른 나으셨어 함께 여행 갔으면 좋겠습니다. 조리 잘 하세요^^
늘 바쁜 경효씨 안와도 괜찮아요.얼마나 길이 먼데 ㅎㅎ..독토때에 가서 뵈요 ㅎ
언니! 그동안 어떻게 그렇게 씩씩하게 다니셨어요? 다행히 수술도 잘되고 회복도 잘 되고 있다니 기쁨니다. 늘 정성을 다해주시는 언니의 아저씨께 저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빠른 회복 기대하고 있을께요.
무슨일이든지 하려고 결정했으면 해야 되니 바빳었던것 같네요 독토때 바요 아니, 31일날 문교과 영화로 생각하기 할때 오세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