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오면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가을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 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을
산그늘 내린 메밀밭에 희고 서늘한 메밀꽃이라든가
그 윗밭에 키가 큰 수수 모가지라든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깊은 산속 논두렁에 새하얀 억새꽃이라든가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노랗게 고개 숙인 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농부와 그이 논이라든가
우북하게 풀 우거진 길섶에 붉은 물봉숭아꽃 고마리꽃 그 꽃 속에
피어 있는 서늘한 구절초꽃 몇 송이라든가
가방 메고 타박타박 혼자 걸어서 집에 가는 빈 들길의 아이라든가
아무런 할말이 생각나지 않는 높고 푸른 하늘 한쪽에 나타난 석양빛이라든가
하얗게 저녁 연기 따라 하늘로 사라지는
저물 대로 다 저문 길이라든가
한참을 숨가쁘게 지저귀다가 금세 그치는 한수형님네 집
뒤안 감나무가 있는 대밭에 참새들이라든가
마을 뒷산 저쪽 끄트머리쯤에 깨끗하게 벌초된
나는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의 고요한 무덤들이라든가
다 헤아릴 수 없이 그리웁고
다 헤아릴 수 없이 정다운
우리나라의 가을입니다.
첫댓글 아름다운 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