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상의 탄생과정을 꼼꼼히 따라잡았는가? 의상감독 4인의 인터뷰를 독파했는가?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들이 있는가? 샘솟는 우물처럼 호기심 왕성한 당신을 위해 영화의상에 관한 시시콜콜 질답의 자리를 마련했다. 이 사소한 Q&A가 끝난 뒤에도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있으신 분은 4800만 국민의 지식창고 ‘네이휑~’을 이용하거나 담당기자에게 이메일을 날려주시길.
-<친절한 금자씨>의 물방울 원피스 원단은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CJ몰 경매 때 타이밍 놓친 <친절한 금자씨> 열혈 관객)
=그 원단은 2년 전에 동대문 원단상가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당시 조상경 의상감독이 수십개 원단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유일하게 한곳에서만 발견한 원단이라고 하네요. 수십 가지 도트무늬 원단들 중 그 원단을 선택하면서 바탕이 하늘색이냐 검은색이냐 핑크색이냐를 두고 고심하던 끝에 최종으로 크림색 바탕을 골랐다고요. 패턴이 들어간데다 2년이나 지나서 원단 자체는 아마 생산이 중단됐을 거라는 게 조상경 의상감독의 추측입니다. 근데 얼마 전에도 동대문시장에서 그 원단으로 만들어진 금자 원피스를 봤다고 합니다. 실은 금자 원피스가 2년 전 현장공개 사진이 언론에 공개됨과 동시에 동대문 일대에 좍 깔렸다죠. “그게 안 팔리지. 왜 팔려요. 누가 사입어 그걸. 얼마나 촌스러운데. (웃음)” 이는 금자 원피스를 디자인하고 제작한 조상경 의상감독의 말입니다. 어쨌거나 얼마 전에 그 원피스, 세일 중이었답니다.
-<음란서생>에서 정빈(김민정)의 검은색 한복을 보고 충격받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실제로 검은색 한복을 입었습니까?(옷 대물림 전통에 스트레스받고 사는 인사동 모 찻집 딸)
=정경희 의상감독에게 검은색을 쓴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검은색을 입히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라고 하시더군요. 정경희 의상감독이 <음란서생> 때 참고한 비주얼 자료는 강렬한 원색과 거친 터치를 보여주는 앙리 루소의 그림들입니다. “<음란서생>의 색감을 고민하면서 참고한 그림인데 루소의 그림에 검은색이 많이 쓰였다. 그 그림들을 보면서 영화 프레임 안에서 위화감만 주지 않으면 검은색을 써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정경희) 고증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자료가 있는데, 하나는 정경희 의상감독이 왕의 의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참고한 조선시대 말 구장복입니다. 종묘제례, 정초 하례식 등에 쓰인 대례복으로 왕의 의상 가운데 가장 존엄한 의상이었다고 하는데 이 의상에 검은색이 사용된 바 있습니다. 여성의 궁중의상에 검은색이 쓰였단 기록은 없습니다만 정경희 의상감독이 개인소장한 앤티크 의상 가운데 겉천과 고름이 검은색 천으로 만들어진 저고리가 있습니다. 이 저고리는 80∼100년 전의 서민 의복이라고 합니다.
-전쟁영화 같은 데서 보조출연자들이 입는 다량의 군복, 경찰복 등은 해당 기관에서 빌리는 건가요, 아님 구매하나요? 설마 제작하나요?(제대 6개월 남은 용산 카투사 병장)
=특수의상만 전문 취급하는 업체로부터 주로 대여합니다. 한 예로 ‘메탈자켓’이란 업체는 의경, 교통경찰, 전경, SWAT 등의 하·동복을 포함한 각종 경찰 유니폼, 얼룩무늬 군복과 민자무늬 군복을 포함한 시대별 군복, 스튜어디스, 공익근무요원, 경비업체 직원, 심지어 요리사의 옷까지 유니폼이라 불리는 의상 종류는 거의 다 갖추었다고 합니다. 규모로는 경찰복과 군복이 100여벌씩 된다고 하고요. 공권력과 관련된 제복은 시대극 의상보다도 리얼리티와 고증이 중요합니다. ‘메탈자켓’의 설용근 실장은 “실제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기관에서 먼저 얘기가 들어온다”며 옷을 대여해간 의상팀이 배지 하나라도 잘못 달까봐 일일이 관리한다고 합니다. 완벽한 모사품이다보니 경찰복을 대여해간 어떤 촬영장에서는 연출부원들이 도로 통제를 할 때 슬쩍 제복을 입기도 했다고요. 도로 통제가 몇배는 쉬워진다고 합니다. 다른 예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조연급 군복과 중공군복 전체는 제작한 것이고 나머지 국군복 및 인민군복은 대여품입니다. <태극기…>팀과 거래한 소품실의 규모는 엄청납니다. <태극기…>팀이 국군복 500여벌과 인민군복 300여벌을 대여받고도 물건이 남아 있었다고 하니까요. 대여 외에 <태극기…>가 제작한 군복 규모는 주요 인물의 군복 30여벌, 중공군복 500여벌입니다. 기타 의상을 포함해 총 1400여벌의 의상이 이 영화에 쓰였고 의상대여비는 5천만원, 제작비는 총 1억7900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럼 제복이 아닐 경우 보조출연자들의 의상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것도 대여하나요? 아니면 제작하나요?(주연으로 연기자 데뷔하기를 희망하는 배우지망생)
=사극이면 제작 또는 의상실간의 대여가 이뤄지고요, 현대물의 경우 보조출연 업체에 미리 의상컨셉을 일러둡니다. 가령 <괴물>의 경우 조상경 의상감독은 5월5일 어린이날 한강에 놀러온 사람들의 느낌이 나도록 밝은색 계열의 평상복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여벌까지 요구하기도 하고요. 그렇더라도 만약을 대비해 의상팀 역시 여벌의 의상들을 준비해둡니다. 정구호 의상감독이 <정사>를 작업할 당시 고급 와인바 장면이 있었는데 30여명의 보조출연자들이 입고 온 의상이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정구호 의상감독은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의상들을 죄다 꺼내와서 보조출연자들에게 새로 입혔습니다.
-재난영화나 액션영화를 보면 인물의 옷이 한벌로만 쭉 갈 때 후반부로 갈수록 망가지고 더러워지잖아요. 옷이 그런 상태가 되면 나중에는 입기조차 불쾌하지 않을까요? 더러운 게 설정이라고 해도 냄새가 날 텐데 세탁 안 하고 그대로 두나요?(매달 10만원 이상의 돈을 세탁소의 세탁비용으로 지출하는 여대생)
=피터 잭슨의 <킹콩> 메이킹 필름에 해답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해골섬에 있을 때는 의상도 단벌 설정인데, 드라마 진행에 맞춰서 의상이 더럽고 해진 정도가 단계별로 준비됩니다. 제일 깨끗한 옷에서부터 가장 더럽고 낡은 옷까지 필요에 따라 3∼5단계로 준비되는 것이 보통이죠. 모두 새 옷입니다. 겉보기에만 냄새와 땀범벅일 뿐 가장 더러워 보이는 옷조차 매번 세탁해서 입습니다. 때를 만들 땐 물감, 파스텔, 커피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괴물> 역시 주요 인물들의 의상이 단벌 설정인데 조상경 의상감독도 이를 위해 몇 단계의 의상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전쟁신 등을 찍을 땐 촬영 중에 옷이 망가질 텐데, NG가 나면 어떡하나요? 도로 고쳐야겠네요.(동대문 단추가게 주인아줌마)
=영화마다 쓰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청풍명월>을 예로 들면 권유진 의상감독은 갑옷의 이음부분을 일부러 약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액션신에서는 옷이 약해야 한다. 이음새 부분이 너무 튼튼하면 오히려 배우가 다친다. 만에 하나 옷자락이 틈에 끼거나 걸리기라도 하면 옷이 찢어지는 대신 배우의 몸이 딸려가니까. 말타고 가다 케이프(어깨 부분에 덧대는 장식)가 나뭇가지에 걸리면 케이프가 찢어져야 한다. 아니면 옷 때문에 배우 목이 졸린다.” 촬영 중에 의상이 망가지는 건 일반사입니다. 이를 수리하는 것은 당연히 의상팀의 몫이죠. <청풍명월>의 의상팀은 격한 전투신 촬영 기간 중에 매일 그날의 촬영이 끝나면 둘러앉아 갑옷에서 떨어져나간 비늘들을 꿰매고 있었다고 합니다.
-의상을 입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배우 아닙니까? 배우의 의견이 의상에 강하게 반영될 때도 있지 않나요?(영화의상 스탭 지망생)
=고우영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가루지기>(1988)를 찍을 때 일입니다. 주연배우 이대근이 권유진 의상감독에게 강하게 어필하기를, “내 모습이 만화 캐릭터와 똑같이 보이도록 의상을 만들어달라”고 했답니다. 고우영 만화 속의 변강쇠는 어깨가 무지막지하게 넓은 사내였는데 그 모습을 만들어주기 위해 양 어깨에 함석을 20개씩 대어야 했다고 해요. 그 옷을 만드느라 당시 샘플 작업만 7번 넘게 했답니다. “요새 말로 하면 코스프레를 하자고 했던 셈이다. (웃음)” 다른 예로 <혈의 누>에서는, 주연배우 차승원이 사극을 처음 해보는 탓인지 의상을 많이 어색해했다고 합니다. 특히 관모 쓰는 것을 불편해했는데, 상투를 트는 것부터가 머리칼을 죄다 잡아매야 하는 거라서 매우 힘든 일인데다 촬영기간이 여름이라 관모를 쓰면 덥기까지 했다지요. <혈의 누>를 유심히 보시면 수사관 원규가 관모를 쓴 모습이 웬만해선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아실 겁니다.
-영화에 쓰이고 난 의상들은 대부분 어디로 가나요?(지난해 부산영화제 때 <웰컴 투 동막골>의 이연(강혜정) 의상 입고 사진찍었던 관객)
=님께서 입으신 옷은 권유진 의상감독이 제작한 바로 그 옷입니다. 권유진 의상감독이 지난 부산영화제 때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이연 옷을 입혀주고 사진찍어준 다음 돈을 받는 사람을 봤다고 합니다. 의상을 만드는 사람은 딱 보면 그 옷이 자기 손에서 만들어진 건지 모조품인지를 웬만해서 가려낸다고 해요. 권유진 의상감독의 눈에 당시 영화제 현장에 있던 의상은 자신의 손에서 만들어진 거였죠. 영화가 끝나고 주인을 떠나보낸 의상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집니다. 제작사로 가기도 하고요, 투자사로 가기도 하고요, 의상감독의 창고로 들어오기도 하고요. 엄밀히 말하면 영화의상은 주인을 결정짓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만든 이는 의상감독이지만 제작비는 영화사에서 댔으니까요. 어쨌든 영화의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영화가 끝난 뒤 이벤트성 경매로 의상을 파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화의상이 모두 잘 보관되어서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정부 차원에서 수집, 보관, 관리를 지원하는 정책이 생기기를 희망하는 스탭도 있습니다.
첫댓글 그런데 나는 의상감독이라는 말을 안좋아한다 의상 디자이너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