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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 <독고탁> <날아라 슈퍼보드> <아기공룡 둘리>같은 애니메이션의 황금기가 있었다. 어느 순간 그 맥류가 뚝, 끊겼다. 모두 사라졌다. 그건 백일몽이었나? 누구 책임인가? 왜 더 이상 볼만한 애니메이션이 나오지 않는가?
이것은 슬픈 영웅의 이야기다. 일단 한 쪽 손 치켜 올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시고. 다른 손 치켜 올리고. 축구공 없이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명제가 유효하다는 걸 증명했으며. 두 손 다 번쩍 올리고. 양키들 앞에서 실력으로 당당하게 인정받는 등 달리는 시내버스에서 뛰어내리거나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내는 것 빼고 뭐든 다 해낼 것 같은 초인적 국민 영웅이 있었다. 뭐야 또 <디 워>와 심형래의 앗 뜨거운 애국애족 민족주의 광풍 이야기냐, 싶겠지만 사실 2005년 봄의 일이다. 박세종이라는 이름의 생소한 호주 출신 교포 감독이 미국아카데미시상식 최우수단편애니메이션 부문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이 한국을 강타했다. 난리가 났다. 한국인이 김치보다 좋아하는 ‘최초’ ‘미국’ ‘헝그리 정신’ 삼박자를 고루 갖췄으니 영웅이 아니 될 수 없다.
후보작에 오른 9분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버스데이 보이>는 과연 훌륭한 작품이었다.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한 해 동안 35개의 영화상을 휩쓸었으며,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 조금 앞선 영국아카데미시상식에서 이미 최우수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바 있었다. 언론은 교포 감독의 놀라운 성과 위로 “11년 전 배낭여행 중 멜버른에서 만난 호주 여대생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다가 7년 전 결혼, 호주에 정착한 가난한 미술가가 동양의 서정성을 간직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이 같은 업적을 이룩했다”는 신화를 더 했다.
그는 아쉽게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소식을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 2006년 5월, 강원정보영상진흥원은 박세종 감독을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검증된 감독과 함께 세계 시장을 겨냥한 한국형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언론은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이후 숱하게 많은 해외의 메이저 제작사들로부터 영입을 제의받았으나, 모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을 위해 내린 용단“이라고 보도했다. 때를 맞춰 창작 애니메이션 콘텐츠 육성의 중요성을 고취시키고자 <버스데이 보이>가 국회에서 상영되기까지 했다. 그는 가족을 이끌고 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강원도에서 모든 생활 수단과 편의를 제공했다. 그리고 향후 2년 안에 창작 장편애니메이션 기획완료, 4년 안에 완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요구한 사람이나 받아들인 사람이나 똑같이 자신만만해보였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실명을 밝히길 거부한 어느 OEM(주문자 생산방식)제작사 스텝의 말에 의하면, 박세종 감독은 어느 술자리에서 ”식구들 다 데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진행되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라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는 결국 식구들과 함께 호주로 돌아갔다. 거창한 프로젝트는 빛이 바랬다. 상당한 예산이 낭비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토록 열광했던 언론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강원정보영상진흥원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쩌면 애초 기대하지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세종 감독은 애니메이션계의 황우석이었나? 아니다. 그에게는 <버스데이 보이>라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줄기세포 원천기술이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강원도는 박세종 감독을 “검증받은” 창작자라고 생각했다. 오산이다.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맥락 위에서 검증받아본 일이 없다. 창조성이 강조되는 해외와, 한국의 별 다른 체계를 찾아볼 수 없는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 사이의 차이는 너무나 크고 공고하다. 호주에서 한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경험이 전부인 감독에게, 전혀 다른 환경에서 무언가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그저 무식한 도박에 불과하다.
박세종 감독의 이야기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겪고 있는 딜레마의 팔 할 이상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문제는 명백하다. 아카데미에서 상 받을뻔한 사람에게 무턱대고 수백억을 때려 넣기만 하면 아카데미에서 상 받을만한 작품이 뚝딱 나올 거라는, 근거도 없고 원칙도 없는 지원제도의 근시안적 태도. 대규모 예산과 시간을 들여 단박에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만들어내겠다는 허황된 영웅주의 발상. 바로 거기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부터 개판은 아니었다. 한 때 우리에게도 <달려라 하니> <떠돌이 까치> <장독대> <머털도사> <독고탁> <날아라 슈퍼보드> <아기공룡 둘리>같은, 그 이름을 훑기만 해도 어깨가 들썩이는 애니메이션들이 있었다. 올림픽 전후로 KBS와 MBC 사이에 벌어진 TV애니메이션 경쟁 덕이었다. 어느 순간 그 맥류가 똑, 하고 끊겼다.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리고 갑자기 <블루시걸>(94) <헝그리 베스트 5>(95) <아마게돈>(96) 처럼 고약한 사례로 인용되곤 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나머지는 대부분 완전 아동용 애니메이션들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선보인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전 세대와 분명하게 차별돼 보였다. 연대별 흐름만 따져보면 거의 하루아침의 반전 같이 느껴진다. 한국 애니메이션 전부 빌어먹으라고 누가 저주라도 퍼부었단 말인가. 90년대 중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교롭게도, 정부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원을 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겹쳐진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1993년에 <쥬라기 공원>이, 1994년에는 <라이온 킹>이 있었다. 영상물 한 편의 해외 흥행수익이 자동차 수출 몇 십 만대에 버금간다는 말에 문민정부는 정신을 놓아 버렸다. 눈앞에 노다지가 펼쳐졌다. 1996년 1월, 정부는 드디어 '만화산업육성발전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의 의지를 보이기 전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은 ‘예술 산업’이었다. 정부가 손을 대자 ‘예술’은 사라지고 ‘산업’만 남았다. 애니메이션은 공산품으로 전락하고, 제작자는 수출 역군이 됐다. 애니메이션 산업에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조금이라도 인연을 걸친 사람이라면, 정부로부터 쏟아지는 눈먼 돈을 손에 쥐기 위해 걸인처럼 달려들었다. 일본에 주문을 넣어 이순신 장군 같은 위인을 소재로 한 5분가량의 프로모션용 애니메이션 영상을 만들고, 63빌딩에서 성대한 제작발표회를 가진 뒤 지원금만 챙겨 달아나는 행태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블루시걸>은 그런 환경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제작비 횡령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는 작품이지만, 그나마 완성이라도 됐으니 비교적 양심적인 셈이다.
애초 시장성에 눈이 멀어 시작된 지원제도의 오류라면 어째서 시장에 충실한, 즉 일반 관객이 환호할만한 작품이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간단하다. 사실 수출산업으로서의 한국 애니메이션은 꾸준히 성장해왔다. 후퇴한 적이 없다. 이른바 ‘산업형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리는 해외 수출용 애니메이션은 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 꾸준한 시장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쓸 만한 애니메이션 작품이 없다고 느끼는 걸까. 우리 잘못이 아니다. 수출산업으로서의 애니메이션은 한국의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할만한, 즉 영화 언어로 구성된 작품이 아니다. 쉽게 해외를 공략할 수 있는 아동물 애니메이션, 캐릭터 머천다이징 상품만이 존재한다. 산업형 애니메이션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수출 역군만을 길러내는 지원 방식으로는 작품이 아닌 상품 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이다.
재밌는 건 그런 수출역군을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스타 애니메이션 감독이 배출되길 바란다는 점이다. <이온 플럭스>의 피터 정 감독은 한국을 찾은 길에 “한국은 이상하다. 늘 미야자키 하야오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미국에서 돈을 번 건 <포켓몬> 시리즈다”고 말했다. 분열증이다. 수출을 할만한 세계적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겠는데 딱 보니 하야오 감독이 꽤나 유명해보이고, 그런 인재를 찾아내겠다며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붇고 한 방에 뭐가 나오길 기대한다.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계에서 가장 눈부신 발전을 보이며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는 <지옥>의 연상호 감독은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고목나무라고 해보자. 그 고목나무는 ‘문화적, 산업적 기반’이라는 이름의 넓고 푸른 자연 위에 서 있다. 그 고목나무가 없더라도 대자연은 변함없이 위대하고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라난다. 한국은 이 고목나무를 하나씩 허허벌판 위에 심어두고 싹이 트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내 주변 감독들은 차라리 지원제도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없어져야 할 작품은 살고, 살아야 할 작품들은 죽는다. 이대로는 결국 공멸하는 수 밖에 없다.”
최소한 세 가지의 대안이 있다. 우선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라이온 킹>의 환상이 너무 오래간다. 시장성이 검증된 원작만화의 애니메이션화가 필요하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폐퇴가 거듭되다보니, 전과 달리 요즘은 원작자들도 판권을 내놓지 않는다. 차라리 영화 기획을 선호한다. 일본의 경우 원작의 애니메이션화를 통해 시장의 기반을 마련했다. 지원 자본은 창작 애니메이션이 아닌 원작의 애니메이션화에도 동일한 기회를 줘야하며, 원작자들과 애니메이션 기획자, 연출자 사이의 신뢰 구축에 기여해야 한다.
둘째로 제작비 절감을 통한 영화사의 애니메이션 제작 참여다. 애니메이션은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영화보다 높을뿐더러, 제작기간이 길어 감수해야할 위험도가 큰 분야다. 하지만 거품이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방법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애니메이션 학과를 보유한 대학교와의 협력을 통해 장비대여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영화사는 인건비만 투자하면 된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의 최규석 작가와 연상호 감독은 최근 10억 예산으로 1년 6개월 동안 만들 수 있는 장편 애니메이션 기획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스텝의 임금 착취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 기획이라고 입을 모은다. 130억을 들여 <원더풀 데이즈> 한 편을 만드는 것보다, 10억 예산의 애니메이션 13편을 만들어 시장에 소개하는 게 우선이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작품을 무조건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잘 못 만든 작품을 “얼마나 힘들게 만든 건데” 혹은 “한국 애니메이션인데”라며 지지하거나 옹호해선 안 된다. 오히려 일반 상업영화를 평가하는 잣대보다 훨씬 더 엄격한 관점을 견지해야할 필요가 있다. 독립영화 감독들도 똑같은 요구를 한다. 못 만든 영화는 퇴출되야 마땅하다. ‘봐줘야 하는“ 작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봐줘야 하는' 작품들 때문에 '정말 볼만한' 작품들은 관객 앞에 선보일 기회를 잃고 있다.
<천년여우 여우비>나 <아치와 씨팍>이 흥행하지 못했다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까지 비관하는 건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2006년 한 해 동안 개봉한 한국영화가 110편이었다. 고작 두 편 가지고 미래를 운운할 필요는 없다. 애니메이션에 ‘예술’의 지위를 돌려 달라.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더 이상의 슬픈 영웅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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