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의숭 장로의 시련과 축복
요즘 채의숭 장로님이 쓴 “주께 하듯 하라” 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는 우리 감리교회의 장로요 예수님이 12제자를 두신 것처럼 12개의 회사를 차려서 전 세계에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하는 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세 개의 꿈 즉 사장과 교수가 되는 것 그리고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성실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그 결과 36세에 장로가 되었고, 사장을 넘어 그룹 회장이 되었으며,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가 되었고, 지금까지 약 80여개의 교회를 지어 봉헌했다. 앞으로 100개가 채워질 것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엄청난 시련이 될 만한 시험거리가 있었다. 1986년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세워 각종 설비를 갖춰 놓았는데 100년만의 폭우가 내려 공장이 바닷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회사를 세운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승승장구의 인생이었는데 노아 홍수와 같은 어려움을 당한 것이다.
1991년 회사는 수재의 아픔을 딛고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천안에 부지를 마련하고 크게 도약을 하려고 큰 투자를 했는데 불이 나서 화마, 불마귀로 변한 것이다. 소돔처럼 불로 타버려 잿더미로 변한 공장, 물로 한번, 불로 한번 큰 시련을 겪었다.
이를 악물고 이 시련을 이기려고 열심히 회사를 일군 결과 1년 후 모든 부채를 다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8,000평의 견고한 회사를 차릴 수 있었다. 채의숭 장로는 시련이 없는 인생은 성공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시험은 곧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때부터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더니 사업은 탄탄했고 100개의 교회를 짓는 꿈을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채 장로님은 해외 선교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분이다. 100개의 교회, 행복한 숙제를 다 이루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선교지로 향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대학교 2학년 때에 우연히 학교 앞 천막교회에 출석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교회였다. 그곳이 바로 나의 영적인 고향 화양감리교회이다. 나는 중고등부 교사와 찬양대, 청년부 회장을 맡아 열심히 봉사했다. 거의 교역자나 다름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나의 삶은 ‘학교=교회=과외’를 세 꼭지점으로 삼고 항상 그 위에서 움직였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인생의 로드맵에 따라 착착 앞길이 열렸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으며 삼성에 입사, 6년 7개월을 근무하고 대우에 스카웃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길을 예비해 놓으신다. 다만 응답이 좀 늦는 경우가 있다. 또 하나님의 응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세 가지 꿈 중 가장 먼저 실현된 것이 대기업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1981년 (주)대우 아메리카 사장이 되었고, 1985년 대의테크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십일조를 도둑질하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10의 3조 이상을 드렸다. 그리고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의 비전을 밝히고 도움을 청했다. “하나님, 이제 제 사업을 시작합니다. 교회를 100개 세우려면 사업이 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회사의 사장이 되 주세요. 지금까지 제가 어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시잖아요?”
월급쟁이로 100개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자신이 있었기에 승부를 걸었다. “주님, 교회 100개를 세우기 위해 사업을 시작합니다. 지혜와 명철을 주옵소서.”
어머니께 배운 세 가지 교훈
채의숭 장로의 아버지 채희구 장로와 어머니 김유단 권사는 6남매 자녀교육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간 것처럼 어머니는 자녀 교육이라면 이사를 가서라도 교육을 시키는 열정이 넘치는 분이셨다. 또한 자녀의 신앙교육 역시 강하게 훈련시키셨다.
그래서 채의숭장로는 어머님의 열정적인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서 장로가 되었다. 자랑스러운 것은 할아버지도 장로, 아버지도 장로, 채의숭 3형제도 모두 다 장로, 막내 동생은 목사가 되었다. 채 장로의 모친은 “우리 가정에서 3대째, 3형제가 장로로 배출된 것이 감사하다.” 라며 즐거워 하셨다.
어머니 김유단 권사는 철저하게 자녀의 신앙훈련을 시켰는데 크게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주일을 성수하라. 가능하면 본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라. 예배를 드릴 때는 가능하면 앞자리에 앉아라. 둘째, 십일조를 철저히 하라. 십일조를 하면 분명히 물질의 복을 받는다. 십일조를 도적질하면 언젠가 쌓아둔 재물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법이다. 셋째, 목사님께 순종하라. 특히 성도들을 잘 살펴야 한다. 주의 종과 대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특히 너의 달란트를 복음을 위해 사용하라.
채의숭 장로는 어머님의 가르침을 성경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겼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어려서부터 예배당의 앞자리는 채 장로와 가족들의 것이 되었고,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열정적인 인생이 되어 세자지 꿈 즉 사장이 되고, 교수가 되고, 교회 100개를 짓게 되었다.
세 가지 꿈을 이루는 채의숭 장로
심방을 갔는데 그 가정에 “주께 하듯 하라” 라는 책이 있어 펼쳐보니 채의숭 장로님의 자서전적인 글이었다. 채 장로님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지만 세 가지 큰 꿈을 꾸고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둘째는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 셋째는 교회 100개를 건축하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 꿈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서는 허황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요셉이 꿈 때문에 시련을 당하다가 나중에 결국은 그 꿈을 이루어 총리로서 가정과 나라를 살리듯이 채 장로님은 요셉과 같은 삶이 되었다고 한다.
단 하루도 세 가지 꿈을 되새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삶을 하찮은 곳에 낭비하지 않았다. 세 그루의 꿈나무를 가슴에 심어놓고 매일 기도의 물을 주면서 그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꿈과 비전은 더 이상 신기루가 아니었다. 1981년 대우 아메리카 사장이 되었고, 1984년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교수가 되었다. 두 개의 꿈은 25년과 28년 만에 성취가 되었다. 100개의 교회를 세운다는 꿈은 현재 진행형이라 책이 써진 2007년까지 21개국에 60개의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
1990년 이후 설날과 추석에는 항상 외국에 선교 여행을 가고 그 곳에서 교회를 지어 봉헌을 해 오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 년에 두 개 이상의 교회를 지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다보니 주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