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관(下官)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중의법①관을 내리는 밧줄 ②인연과 정의 줄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1) 하직(下直)했다. 중의법①아우와 작별 ②흙을 떨어뜨림
▶아우의 장례식 장면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동생의 착한 모습
형님! 그리움의 환청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승과 저승의 거리감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죽음으로 인한 슬픔의 심상이 집약됨
▶꿈속에서 만난 아우와의 단절감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이승과 저승의 아득한 차이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2)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이승과 저승의 거리에서 느끼는 간절한 그리움
-<난․기타> (1959년)
[맥락 읽기]
1. ‘하관’의 뜻을 말해보고 어떤 상황인지를 말해보자.
-관을 내린다. 땅 속에 동생의 관을 묻고 있다.
2. 말하는 사람은?-나
3. 무엇을 했다고 말하고 있나?
-좌르르 하직했다. / 그를 꿈에서 만났다. /전신으로 대답했다.
4.‘좌르르 하직했다.’ 는 말의 의미를 ①‘좌르르’와 연결시켜서, ②‘하직’이라는 말의 일반적 쓰임을 고려해서 정리해 보자.
―①동생이 죽고 동생의 시체를 관에다 넣어 땅을 파고 그 속에 안치하고 흙을 좌르르 쏱아 부었다.
―②동생과 사별했다.
5. 내가 동생과 다시 만난 곳은? -꿈 속
6. 꿈 속 부분을 찾아 보고 꿈의 내용을 말해 보자.
-꿈 속 부분: 그후로~못 들었으리라.
꿈에서 만나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는 나도 불러 봤지만 내 목소리는 동생에게 미치지 못함.
7.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아우)는 왜 못 들었을까?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
8. 동생이 있는 세계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여기는 눈과 비가 오고,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감각의 세계
9. 결국 내가 있는 곳은 동생의 세계와는 달리 쓸쓸함과 적막감이라는 감각적 고통이 툭 하고 크게 느껴지는 세계구만
[생각해 볼 거리]
1. ‘이별가’와 비교해 보자.
2. ‘향가인 ’제망매가‘와 비교해 보자.
▣ 핵심 정리
▶성격: 서정적, 기구(祈求)적, 사색적, 상징적
▶제재: 아우의 죽음
▶주제: 죽은 아우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표현:
1. 산문적인 서술로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
2. 슬픔을 객관화시켜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
3. 화자의 슬픔이 경견한 종교적 태도를 통해 극복되고 있다.
▶짜임
① 아우의 장례식 장면
② 꿈속에서 만난 아우와의 단절감
③ 이승과 저승의 거리에서 느끼는 간절한 그리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아우가 죽은 지 1년 후에 지었는데, 아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고 아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절실한 시적 정서와 절제된 어조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아우의 육신을 담은 관이 마치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밧줄로 달아 내리듯 무겁게 내려진다. 그리고 그는 옷자락에 흙을 받다 쏟음으로써,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이별을 확인하지만 이 과정에는 슬픔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한 마디의 말도 없다. 그것이 오히려 억제된 슬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데 지극한 슬픔을 지니면서도 그것을 조용히 안으로 다스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중년 이후의 쓸쓸한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라는 대목에는 애써 억제하는 깊은 슬픔이 엿보인다. ‘툭 하는 소리’는 아우가 없는 이 세상의 삭막함을 암시하면서, ‘열매’로 상징되는 모든 살아있는 목숨이 덧없이 떨어져도 한 순간의 조그만 소리뿐인 허무함을 느끼게도 한다. 그의 시가 대부분 향수의 정분을 다투고 있다면 이 시는 정분이 짙게 깔린 작품으로 리듬과 의미의 복합을 시도하고 있다.
‘하관’은 지은이가 사랑하는 아우를 잃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아우의 주검을 땅에 묻은 형의 애절한 심경을 이승과 저승의 대비로서 절실하게 나타냈다. 이 시의 리듬과 의미의 복합은 매우 특징적이다. 26행으로 된 전연의 작품인데, 다음과 같이 2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 1단락(1행~17행): ①아우의 관이 땅 속에 내려졌다. 그것은 마치 나의 깊숙한 마음 속의 공간에서 밧줄로 달아 내리듯 무겁고 슬프게 내려졌다. ‘주여, 이 주검을 은총으로써 받아 주옵소서’하고 빌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옷자락에 흙을 받아 덮음으로써 그와 하직했다(7행까지). ②그 뒤로 나는 아우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아우가 나를 보고 ‘형님’하고 불렀다. ‘오오냐’하고 나는 온 몸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더는 못 들었을 것이다(14행까지) ③이제 너의 음성을 나의 절실한 그리움 속에서나 들을까 실제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이다(17행까지).
-우선 이 시는 수식어 특히 형용사가 극도로 억제되어 있고, 대화가 거리낌없이 지문화되어 있는 구어체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정의 유로가 또한 억제되어 감상(感傷)을 찾을 수 없다.
제 2단락(제18행~26행): ①참으로 내 절실한 대답조차 듣지 못하는 너는 어디로 갔단 말이냐.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말이다. 내 마음 속에서 그리움에 젖은 ‘형님!’하고 부르는 너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이 나의 목소리가 미치지 못하는 곳, 너는 어디로 갔느냐(22행). ②다만 여기는 어떤 일이 매듭져 끝나면 ‘툭’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다[끝행까지]
-‘형님!’하고 부르는 소리는 아우의 실제의 목소리가 아닌, 사실은 그리움에 젖은 시인의 목소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우의 목소리로 갈라놓음으로써 시인의 공허한 허무가 메아리친다. 그리하여 마지막 끝에서 ‘열매가 떨어지면/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으로 매듭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