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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25 농사지은 과일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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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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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지은 농산물을 아들이나 딸에게 흔히 보낸다. 이것은 보편적이고 당연하다. 그러나 사과, 배, 포도, 귤, 복숭아, 자두, 감 등, 과일의 경우는 보내는 범위가 아들딸보다 확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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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도의 경우는 감과 복숭아 주산지이기 때문에 지인들에게 대부분 농가가 감이나 복숭아를 보낸다. 나도 이들 중에 한사람이다. 촌사람이니까 촌사람 근성이 몸에 배어 수년 동안 한해도 거른 적이 없이 복숭아나 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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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나 복숭아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줄로 인식되어 있고, 특히 감의 경우는 특히 더하다. 청도군에 감 없는 집이 없다. 그러니 많은 농가에서 지인과 친인척들에게 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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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글을 쓰는 이유는 감이나 각종 과일을 보내는 쪽이나, 받는 쪽에서 어느 정도는 서로가 이해했으면 하는 의도에서 잡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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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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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을 탁배로 보내니 수취인 거절이라는 통보를 받고.
청도 택배사장이 전화가 왔는데, 수취인이 거절한다는 통보를 한다. “ K가 수취 거부를 합니다” 하는 것이다. 수취 거부 이유는 물어보니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라마 내가 알아보지 하고 전화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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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하는 말을 들어보니 배송과정에 서로가 견해차이가 있었는 것이다.
K사촌의 말은 감박스를 자기가 집에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갔다 달라고 했고, 탁배기사는 기록된 주소지로만 택배한다는 것이었다. 이 거리가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래서 탁배기사는 대문 앞에 두겠다고 했는 모양이고, K사촌은 그기에 두면 분실한다고 했는 모양이다. 이렇게 하다가 서로가 욕설이 오고간 모양이다. 누가 먼저 욕했는지 모르겠고, 내가 생각하기에 K사촌이 성질이 나서 욕을 먼저한 것으로 추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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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니 택배기사가 수취인 거절로 인정하고 반송한다는 것이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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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는 다음부터다.
내가 사촌에게 전화를 하니, “형님이 보냈는교” 한다. “그래, 내가 보냈다”하니 경과 과정을 자기 입맛대로 말하더니 하는 말이 “치앗부소” 하는 것이다. 치앗부소 하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인데 번역을 하면 그만 두라는 뜻이다. 치앗부소는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그 사실을 알고 미리 하지마라는 뜻도 있고, 어떤 일이 실행되었다고 카더라도 취소하라는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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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건은 이미 택배가 실행되고 있는 것이고 수취과정이 말썽이 생긴 것이라 쉽게 치울 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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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사촌에게 한 말은 “택배기사에게 다시 전화해서 감을 받아라”고 하니 이런 말을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고, 뭐라 말해야 하나. 전화를 끊고 청도 택배사장에게 배송과정을 말하니 택배기사가 욕을 얻어먹고 배송을 못하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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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우째야 되노, 택배사장이 하는 말이 “나도 모르겠심더” 한다. 그래서 내가 한 말이 다시 반송 받기도 그렇고 “그라마 택배기사 무이뿌라카이소”하고 전화를 마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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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3일 후 어찌되었는지 궁금해서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제수씨가 감을 받았다고 하며 자기가 전화하려 했는데 못했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배송되었으니 잘되었다 싶더라. 그렇지만 좀 씁쓸레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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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짖는 시골 형님이 감을 보내면 우짜기나 받을 생각은 아니하고, 치아뿌라고 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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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촌은 50대 후반이고, 40여년 동안 1년에 한번은 만난다. 최근 수년간에는 문중 벌초에서 만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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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부터 나의 주변 지인과 친인척들에게 모두 보낸다. 그리고 감 보낸 것에 대한 특별한 반대급부를 생각하는 것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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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전화 통화만 한 사람에게 감, 복숭아를 보낸다.
이것도 4년째인지 5년째인지 몇 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이는 나보다 10살 위인 것만 안다. 서울에 사시는데, 쉽게 만날 수도 없다. 감 한 상자 보냈다고 서울까지 가서 만날 이유도 없고, 자신은 서울에 오면 꼭 오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서울에 갈 일도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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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면
국제농업에 해박한 지식이 있고, 실천한 사람이고, 박정희 전두환을 거쳐 소련 연해주 땅에 경상북도 만한 면적에 개척했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여기서 생산한 쌀은 북한으로 보냈다는 분이다.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 것을 했다. 얼마 전, 11월 5일인가 조선일보에 이분에 관한 신문 기사가 한 면으로 크게 나왔더라. 이 때 사진 속에 얼굴을 처음 봤는데 얼굴이 내가 생각했는 그런 얼굴이 아니고, 완전 영감 얼굴이더라. 그런데 전화 통화 중에는 젊음이 철철 넘쳐 내 또래 정도로 보였다. 월간지 농업상업경영에서 조그마한 사진은 본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 속의 조그마한 사진 얼굴하고는 영 딴판이더라. 과연 이 분이 맞나 싶은 생각이 자꾸 난다. 내가 귀신에 홀렸는지. 내가 이 귀신에 홀려 청도 감 복숭아를 5년 동안이나 보냈는지, 이분은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대선 당시에 “kimsunbee 나는 광화문으로 간데이”하신 분이니까, 첫 통화는 박근혜 대통령 선거 1년 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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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이 분이 내게 전화가 처음 왔을 때는 여름인지라 농약치고 집에서 빨가벗고 샤워하고 있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이 분 첫 말씀이 “kimsunbee이요”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니까, 우연히 나의 잡글을 읽었다고 하길래, 네이버 카페에 정치대학이라는 것을 운영(카페지기)하고 잡글을 올린다고 하니까. 그 날 하루 종일 잡글 모두를 읽은 모양이다, 잡글 모두를 읽고 전화가 왔다. 당시에도 글 수와 내용이 길고 많다. 지금은 더 추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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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하시는 말씀이 “kimsunbee, 나와 정체성이 다르더라”고 했다.
나는 정체성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혹자는 그렇게 표현하는 모양이다. 이 분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나는 다른 분을 지지했지만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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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하는 말이 kimsunbee는 국내농업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자기는 국제 농업에 잘 안다는 것이다. 국내농업과 국제농업 접목을 잘하면 뭔가 이룰 수도 있겠는데 하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지만 나의 입지가 너무 초라하다. 앞도 산이고 뒤도 산인 곳에 갇혀있는 촌로가 지금도 농업정책론(1~89)을 아무리 설파해도 저 높은 서울 사람들 귀엔 들어가지가 않고, 정체성이 다르다는 분이 관심을 가지니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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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주시는 분에게 내가 농사짓는 한, 청도감을 부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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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취거부를 하는 자에게도 감을 보내고.
감을 보내지 마라고 하는데도 보낸다. 좀 이상하지요,
보통사람이라면 관계가 나쁘니 상대방이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관계가 좋지 않은데 감을 보낼 사람이 또 있겠나. 내겐 참으로 희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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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감을 보내지 마라고 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주고 싶으니까 통보도 없이 무조건 보냈다. 그러니까 위 사촌동생 같은 배송사고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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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지역에 사는 후배인데 주소가 혹시 바뀌었나 싶어 확인 차원에서 전화를 하니, 이사를 해서 주소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주소를 모르긴 뭐가 모르는데, 주소 때문에 20분가랑 시소했다. 후배 말은 힘들게 농사지은 것을 받으려니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동문들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더라.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통적인 현상이다. 힘들게 농사지은 것을 가만히 앉아서 받는다. 이건 도리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더라. 나는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더라, 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연락이 되고 만났으면 또 다를 수 있겠지만, 계속 연락이 되고 만난 사이도 사고방식은 똑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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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후배는 계좌번호를 보내 달라고 한다. “야! 이너묵 손아, 감 한 상자 보내 놓고 니한테 돈 받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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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감이나 복숭아 등 과일 선물 품질에 대하여
늘 복숭아나 감을 보내면 신경 쓰이는 것이 어떤 것을 보낼까 고민이다.
작업을 하다보면 여러 등급이 나온다. 받는 사람에 따라 보내는 과일의 등급도 달라지지만, 혹자는 자기가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최고등급을 요구 하는 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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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농가 입장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좋은 물품은 공판장에 출하하여 돈을 싸야 되는데, 받는 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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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100상자를 포장해서 공판장에 출하를 한다면 1등급이 10상자 정도이고 2,3,4,5등급이 90상자 정도이다. 대개 3, 4 등급이 60% 차지한다. 이 경우 1등급을 속 빼내고 2,3,4,5 등급을 출하하면 대부분 농가에서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고 인식한다. 실재 농산물 경매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상인들은 귀신이라 상황 파악을 잘한다. 그러니 농가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1등급을 속 빼어 내어 선물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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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보내는 농가 입장에서는 먹을 만 한 과일을 보낸다. 먹지도 못할 과일을 보낼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받는 입장은 더 좋은 것을 원하니 여기서 갈등이 일어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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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아무거나라도 좋으니 보내 달라는 사람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참으로 편하다. 이런 지인들에게는 매년 부담 없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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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시골에 농사짓는 분들 중에 농작물을 무상으로 보내 주는 친인척들이나 지인이 있다면 무조건 잘 먹었다, 고맙다 하는 말을 하시라. 그렇게 하면 다음해 또 보내준다. 그렇지 않고 받은 물건이 좋으니 안 좋으니 이런 말을 하면 그 후부터는 농산물을 받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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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는 어떠한가 하면 감을 보내 놓고 나면 받은 지, 안 받은 지 궁금한데 아무 소식이 없다. 그래서 보냈는 내가 전화 한다. 나는 참 바보다. 여기에는 매년 보냈다. 여기에는 또 감이나 복숭아를 가장 좋은 것만 바란다. 내원참, 올해 역시 무소식이다. 그래도 내년에도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지만 또 보낼 것이다. 보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좋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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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도 있다.
감, 복숭아를 보내지 않은지 5년이 지난 곳이 있는데, 세월도 흘러갔고, 생각이 나서 감을 보내려고 하니 마누라가 한사코 반대한다, 마누라 왈, 그 집에는 보내지 마라 한다, 보내려면 내가 포장해서 보내고, 자기는 포장 못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내가 주섬주섬 주어 마누라 몰래 1등급짜리 감을 포장 했다. 그런데 주소를 몰라 이리저리 알아보고 탁배를 했는데 감 받고는 전화는 왔는데, 그 후로는 전화가 없다. 청도감은 포장일로부터 5일이 지나야 달콤한 홍씨로 변하는데 아직까지 맛있게 잘 먹었는지 연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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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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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농민들은 농산물을 수확을 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댓가 없이 잘 준다. 이것은 농민들의 본성인 것 같다. 오늘날 시대에 택배라는 운송수단이 나오니 멀리까지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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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에서 감 복숭아 사과 한 상자 보내고 청탁을 요하는 농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냥 주는 것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나누어 먹는 관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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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농사짓는 농민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과일 한상자라도 주기 싫다고 하는 경우가 흔이 있다. 아무리 보내 주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말이라도 이쁘게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대부분 농가에서 농산물을 보낸다면 아들, 딸, 형제이고 범위가 확대 된다면 아들딸 사돈지간이다. 더 확대된다면 3.4촌 이내이다. 4촌까지 농산물을 보내는 경우는 멍청하게 살고 있는 kimsunbee같은 자이고 대부분 그러하지 않다. 어떤 농가는 형제지간이라도 감 한상자 보내주지 않고 왕래도 없다. 이게 현실이다. 형제지간에 우애가 돈독한 경우는 참으로 드물더라. 결혼하고 세월이 흘러가니 형제간 사이가 벌어지더라. 나는 이런 경우를 시골에 사니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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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보니, 내가 받은 것도 없지만, 내가 준 것도 없더라.
그래서 재작년부터인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4촌을 넘어 5촌 종조카까지 감을 보냈다. 올해 6촌까지 보낼라 했으니 그러 하지 못했다. 6촌은 서울에 사는데 얼굴 안 본지가 수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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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안보내면 안 되는 줄 생각하는 곳도 있다.
한 분은 제주도 서귀포 신효동에 사는 강국일 사장님인데 매년 서로가 청도감을 보내고, 제주도밀감을 보내준다. 아마 10년이 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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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분은 4촌 형님인데 나이가 82세다.
5대조 이하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10대조 이하에서 두 번째이다.
나이가 많으시다고 감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형님은 양산에 사시는데 수년 전에 감 따주러 몇 번이고 오셨는데, 나는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당시에 형님은 70대 시절인데도 몸이 가볍고 나보다 더 잘 감을 따시더라, 내가 지게로 감을 지어내니 하시는 말씀이 언제 지게질을 배웠느냐고 하셨다. 형님의 관념으로는 공부만 했는 4촌이 지게질 할 줄 안다고는 상상도 못하셨는 모양이다. 사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농사꾼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내 스스로도 보통 농사꾼이라기보다는 방거치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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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촌이 농사짓는데 감 따주러 온다!
이게 쉬운 것이 아니다. 물론 형님은 나이가 있어서 놀고먹는 갈 곳 없는 백수라 할지언정 고맙지 아니한가. 그리고 4촌 형님의 머릿속에는 항상 내가 들어 있는 것 같더라. 이제는 몸이 아주 불편하고 형수님도 몸이 아프시다. 허구 헛날 병원에 가지 않는 날이 없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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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는 감 따러 오시라고 말을 하지도 못한다. 맘은 4촌 감 따주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맘만 아프게 한다. 그래서 감 철이 되어도 말을 하지 않고 감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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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검은콩(속청)과 팥을 형님에게 보내면 올해 일은 마무리 된다. 도리깨로 콩 타작하고, 팥 타작하고 선별하느라 아직까지 못 보냈다. 콩과 팥을 받으면 좋아할 사촌형님 모습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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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3.
청도 촌사람 kimsunbee 쓰다.
010 3516 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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