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음 | 설 음 | 순 음 | 치 음 | 후 음 | 반설음 | 반치음 | ||
전 청 | ㄱ 君 | ㄷ 斗 | ㅂ 彆 | ㅈ 卽 | ㅅ 戌 | ㆆ 挹 | ||
차 청 | ㅋ 快 | ㅌ 呑 | ㅍ 漂 | ㅊ 侵 | ㅎ 虛 | |||
불청불탁 | ㆁ 業 | ㄴ 那 | ㅁ 彌 | ㅇ 欲 | ㄹ 閭 | ㅿ 穰 |
기본자 가획자 (이체자) | |
아 음 설 음 순 음 치 음 후 음 | ㄱ → ㅋ (ㆁ) ㄴ → ㄷ → ㅌ (ㄹ) ㅁ → ㅂ → ㅍ ㅅ → ㅈ → ㅊ (ㅿ) ㅇ → ㆆ → ㅎ |
ㄴ, 중성체계
훈민정음의 중성은 중국 음운학에 해당하는 것이 없고 독자적으로 만들어졌다. 중성의 세 기본자는,ㆍ’는 하늘의 둥근 모양, ‘ㅡ’는 땅의 평평한 모양, ‘ㅣ’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 地, 人 天 삼재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나머지 중성 8글자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는 기본자들의 합성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밖의 중성 글자들은 이들 11자를 합용하였다.
ㄷ. 병서와 연서
둘 또는 세 자음자를 좌우로 결합하는 방법으로, 동일문자의 결합인 각자병서는 ‘ㄲ ㅃ ㄸ ㅉ ㅆ ㆅ’ 등이며, 서로 다른 문자의 결합인 합용병서는 ‘ㅺ ㅼ ㅽ, ㅳ ㅄ ㅶ ㅷ, ㅴ ㅵ, ㅻ, ᅒ’ 등이 있다. 두 자음자를 상하로 결합하는 방법인 연서는 ‘ㅱ ㅸ ㆄ ㅹ’ 가 있다.
ㄹ, 합자와 방점
합자는 초성, 중성, 종성이 음절을 표시하는 결합체를 형성하는데, 당시의 음절을 중요시한 음운이론을 반영한 것이다
방점은 중세어의 성조를 표시한 것으로 저조(평성)은 무점, 고조(거성)은 1점, 병치(상성)은2점으로 표기하도록 하였다.
2) 표기법
ㄱ, 15세기 맞춤법의 원리
1차적 원리는 음소적 원리로, 각 음소를 충실히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모든 형태음소론적 교체가 표기상에 반영되고 종성으로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의 8종성만을 쓸 것을 규정하고 있다. 2차적 원리는 음절적 원리로 각 음절이 충실히 표시된다.
ㄴ, ‘사이시옷’ 표기
‘사이시옷’ 이라 불리는 ‘ㅅ’은 15세기 국어에서 속격조사였다. 앞 단어의 말음이 불청불탁음인 경우 그것과 같은 계열의 전청자로 표기하며 나중에 ‘ㅅ’ 하나로 통일된다.
3) 한자음 표기
동국정운의 표기법은 우리나라의 현실 한자음과 다른 비현실적인 표기법이었으므로 오래 가지 못함. 성종 대에 와서 일부 불경 언해에 사용되고 폐지되었다.
우리나라 현실 한자음을 기초로 한 표기법은 16세기의 문헌은 이 표기법을 따르며 연산군 때에 전반적으로 채택되었다. 육조법보단경언해, 훈몽자회 등이 있다.
4) 자음
된소리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에 의해 15세기 국어의 폐쇄음과 파찰음에 평음과 유기음 계열이 있었음은 확인되며, 동국정운에 국어에는 ‘탁성’이 있다고 언급되어 있어서 된소리로 해석된다. 합용병서 ‘ㅺ, ㅼ, ㅽ’ 등의 ‘ㅅ’은 ‘된시옷’이다. 15세기 후반에 ‘그-’가 ‘-’로 ‘딯-’이 ‘-’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된소리가 어두에서 표현적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려면 이미 어두에서 확고한 지반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므로 된소리는 15세기 후반보다 앞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ㅎ’의 된소리 ‘ㆅ’은 원각경언해에서 각자병서의 전반적 폐지로 ‘ㅎ’으로 바뀌었다가 끝내 부활되지 못했는데 이는 된소리 ‘ㆅ’의 기능 부담량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며 된소리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초성 합용병서에 ‘ㅾ’이 없는 점 등 ‘ㅈ’의 된소리가 어두에 존재한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유성 마찰음
-ㅸ-
해례 제자해의 설명등 여러 증거로 보아 양순 유성마찰음 [β]으로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분포는 모음 사이, ‘ㄹ’ 또는 ‘ㅿ’과 모음 사이였다.
조선관역어는 이 음소의 소실을 보여주지 않으며, 1450년대까지는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ㅸ’은 일반적으로 w로 변하였으며 ‘’만 wi 또는 i로 변화하였다.
-ㅿ-
불청불탁의 반치음이며 그 음가는 [z]로 추정되며 기원적으로 보면 후기 중세국어의 ‘ㅿ’에는 크게 2종류가 있는데 계림유사 시대 이전으로부터 내려오는 것과 13세기 이후 ‘s>z’의 변화로 나타난다.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소실이 일어났으며 ‘i’ 모음 앞에서 시작되었다.
-ㅇ-
15세기 국어의 문헌을 검토해 보면 두 가지 종류의 ‘ㅇ’이 있었는데, 소극적 기능으로 어두음이 모음임을 표시하거나 어중에서 두 모음 사이에 사용되어 서로 다른 음절에 속함을 표시되었으며 적극적 기능으로는 유성 후두 마찰음 [ɦ], y, ‘ㄹ’ 또는 ‘ㅿ’과 모음 사이에만 나타난다. ‘ㅇ’의 소실은 먼저 ‘ㅿㅇ’에서 일어났다.
자음 체계
평 음 ㅂ ㄷ ㄱ ㅈ ㅅ ㅎ
유기음 ㅍ ㅌ ㅋ ㅊ
된소리 ㅽ ㅼ ㅺ ㅆ ㆅ
유성마찰음 ㅸ ㅿ ㅇ
비 음 ㅁ ㄴ ㆁ
유 음 ㄹ
어두 자음군
후기 중세국어에는 어두에 두 자음이 올 수 있었으며 ‘ㅂ’계 (ㅳ, ㅄ, ㅶ, ㅷ) 합용병서와 ‘ㅄ’계 (ㅴ, ㅵ) 합용병서는 자음군을 나타낸 것이다.
‘ㅂ’계 합용병서는‘ㅂ’이 발음되었던 흔적이며 15세기의 ‘’에 대응하는 단어가 계림유사에서 ‘菩薩’(*)로 표기되었다. 현대국어 ‘좁쌀, 입짝, 볍씨, 부릅뜨-, 휩쓸-’ 등의 ‘ㅂ’은 중세국어의 ‘, , , -, -’ 등의 ‘ㅂ’이 화석화된 것이다.
‘ㅄ’계 합용병서 는 ‘ㅂ’은 발음되고 ‘ㅺ, ㅼ’은 된소리로 나타낸 것이다. 현대국어 ‘입때, 접때’의 ‘ㅂ’은 중세국어의 ‘’의 ‘ㅂ’이 화석화된 것이고, 15세기의 ‘’가 16세기에 ‘’가 된 것은 ‘’의 ‘ㅂ’의 영향 때문이다. ‘ㅴ’은 15세기 중엽부터 ‘ㅺ’으로도 나타난다.
음절말 자음
15세기 국어의 음절말 자음의 대립은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해례 종성해는 ‘ㄱ ㆁ ㄷ ㄴ ㅂ ㅁ ㅅ ㄹ’의 8종성의 사용을 규정하였는데, 음절말 위치에서 평음과 유기음의 대립이나 ‘ㅅ’, ‘ㅈ’, ‘ㅊ’의 대립은 중화되었다. ‘ㄷ’과 ‘ㅅ’의 대립 -조선관역어에서 어말의 ‘ㅅ’은 ‘思’로 표기하였지만 ‘ㄷ’은 별도의 방법이 없었다. ‘ㅿ’은 ‘ㅇ’에 선행한 위치에서 음절말에 올 수 있었다. 15세기와 16세기의 교체기에 음절말의 ‘ㅿ’이 없어졌고 ‘ㅅ’과 ‘ㄷ’이 중화된 결과 7자음 체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5) 모음
단모음 체계
15세기 국어에는 ‘ㆍ ㅡ ㅣ ㅗ ㅏ ㅜ ㅓ’의 7개 단모음이 있었다.
iㅣ ɨㅡ uㅜ
əㅓ oㅗ
aㅏ ʌㆍ 와 같은 체계로 추정된다
이중모음 체계
y가 앞선 상향 이중모음은 ㅑ, ㅛ, ㅕ, ㅠ이며 w가 앞선 상향 이중모음은 ㅘ, ㅝ, wi 이다.
하향 이중모음은 ㆎ, ㅐ, ㅔ, ㅚ, ㅟ, ㅢ이다.
모음조화
한 단어 안에 양모음(ㆍ ㅗ ㅏ) 또는 음모음(ㅡ ㅜ ㅓ)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의 공존은 허용되지 않으며 중립 모음(ㅣ)은 어느 것과도 연결될 수 있다.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는 모음조화의 일반 규칙을 따랐지만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들은 이를 따르지 않는다. 15세기 국어에서도 모음조화 규칙은 이미 문란해져 있었다.
6) 조어법
합성어
합성명사를 만드는 방법은 현대어와 별로 다름이 없었으며 합성용언은 용언 어간이 직접 연결되어 새로운 합성용언을 만들어내는 비통사적 합성용언의 형성이 중세국어에서 매우 생산적이었다.
합성동사는 빌먹-, 딕먹-, 것곶-, 듣보-, 죽살- 등이며 합성형용사는 됴쿶-, 놉갑-등이다.
파생어
명사에서 파생된 파생명사는 명사+‘-이’, ‘-억’, ‘-’, ‘-지’ 등이 연결되어 부형, 그럭 등이 부이, 그려기, 아비, 어미, 터럭, 기, 숑지, 강지 등으로 되었다.
용언 어간에서 파생된 것은 동사 어간에 ‘-(/으)ㅁ’이 연결되어, 여름, 사, 거름, 어름 등과
‘-이’이 연결된 우우, 죽사리, 글지 등이 있으며 형용사 어간+ ‘/의’가 연결되어 킈, 기픠, 노, 너븨, 기릐 등이 있다.
명사 어간에서 파생된 파생동사는 -, 자히-등이 있으며 용언 어간에서 파생된 사동 어간과 피동 어간이 있다. 사동 접미사는 ‘-히-’, ‘--’, ‘-ㅎ-’, ‘--’ 등이 있고, 어간 말음이 ‘ㅂ, ㄷ, ㅈ’이면 ‘-히-’(예 : 너피-, 구티-), ‘ㅁ, ㅅ’이면 ‘-기-’(예 : 숨기-, 밧기-), ‘ㅿ, ㄹ’이면 ‘-이-’(예 : 이-, 이-, 말이-), 그 밖의 자음이나 모음이면 ‘ㅣ’(예 : 셰-, 내-)로 나타난다.
15세기 중엽 이전에는 ‘-/-’였던 것이 그 이후에는 ‘-오/우-’로 나타난다.
피동 어간의 용례는 중세어에 매우 적으며 접미사는 사동 어간 ‘-히-’의 경우과 거의 같다.
파생형용사
명사 어간에서 파생된 것은 접미사 ‘--’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용언 어간에서 파생된 것은 접미사 ‘--’, ‘--’, ‘--’ 에 의해 형성되었다.
파생부사
체언에서 파생된 몸, 손가, 용언에서 파생된 것은 동사 및 형용사 어간에 연결된 ‘-이’, ‘-히’, ‘-오’ 가 있다.
7) 곡용
중세국어의 곡용에서는 체언 어간이 교체를 보여준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며 현대국어과 달리 중세국어에서는 체언도 비자동적 교체를 보여준다.
‘ㅎ’말음 명사
중세국어에는 ‘ㅎ’을 말음으로 가지는 명사들이 있었으며 그 단독형은 ‘돌’이었지만 곡용형은 ‘돌히, 돌해, 돌, 돌로, 돌콰’와 같다.
비자동적 교체
나모(木) : 나모//남|, 노(獐) : 노/놀ㅇ,(棟) : /ㄹ, 아(弟) : 아/로 교체
격조사
주격 조사는 체언 어간의 말음이 자음일 때에는‘ㅣ’, 명사가 모음으로 끝날 때는 그 모음과 하향 이중모음을 형성하였다. 현대어의 주격 ‘가’는 15세기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다.
속격 조사 ‘-/의’는 유정물의 평칭에, ‘ㅅ’은 유정물의 존칭과 무정물에 사용하였다.
처격 조사 ‘-/의’, ‘-애/에/예’가 있으며 모음조화의 규칙에 따랐다.
대격 조사 ‘-ㄹ’, ‘-/를’이 있으며 자음으로 끝난 체언 뒤에서는 연결 모음‘ㆍ/ㅡ’가 삽입되었다. 조격 조사 ‘-로’는 향격 조사였다.
공동격 조사 ‘-와/과’는 체언 말음이 ‘ㄹ’이거나 모음이면 ‘-와’, 그밖의 환경에서는 ‘-과’가 나타났다. 호격 조사는 존칭의 ‘-하’와 평칭의 ‘-아’ 가 있다.
대명사의 곡용
‘나’의 주격형은 ‘내’(거성), 속격형은 ‘내’(평성)이고 ‘너’의 주격형은‘네’(상성), 속격형은 ‘네’(평성)이다이며 ‘누’의 주격형은 ‘뉘’(거성), 속격형은 ‘뉘’(상성)이다.
8) 특수조사
(1) 게, 그, 거긔, 손 등은 속격 ‘’를 지배하였으며 평칭의 여격을 나타내었다.
(2) 여격을 나타낸 것으로 '려'가 있다. 동사 ‘리-’의 부동사형으로 대격을 지배하였다..
(3) 현대국어의 ‘은/는’에 해당하는 조사의 기본형은'ㄴ'이었다. 자음 뒤에서는 연결모음이 삽입 되어 ‘/은’으로 모음 뒤에서는 ‘/는’으로 나타난다.
(4) 명사에서 기원한 '장'은 속격 ‘ㅅ’을 지배하였으며, 현대어의 ‘까지, 껏’의 두 의미로 사용 되었다.
(5) 자히는 동명사에 붙어 동작 또는 상태의 지속을 의미하였다.
(6) '두고'와 '라와'는 비교를 나타내는 특수조사였다. '라와'는 16세기 이후 찾아볼 수 없다.
(7) ‘이시-’(有)의 부동사형에서 기원하는 '셔'는 광범위한 분포를 보였다..
(8) '븥'에서 온 '브터'는 대격과 조격을 지배하였다.
(9) 더브러는 ‘더블-’의 부동사형이 굳어진 것으로 대격을 지배하였다.
(10) ‘좇-’에서 온 조차, 조초와, ‘조치-’에서 온 조쳐가 있다.
(11) 다는 고대의 어간 ‘-’에서 파생된 부사가 조사로 굳어진 것이었다.
9) 활용
ㄱ.어간의 교체
용언 어간의 비자동적 교체에는 현대에서도 볼 수있는 '듣-/들-, '묻-/물'등과 '시므-' : 시므-/-, 다-(異) : 다-/달ㅇ-, 모-(不知) : 모-/몰ㄹ-, -/ㅇ- 등이있다.
ㄴ. 선어말 어미
의도법은 근대국어나 현대국어에서는 볼 수 없는 중세국어의 특기할 만한 문법 범주로
선어말 어미 ‘-오/우-’로 표시되었다. 과거 시상의 선어말 어미'-더-'와 결합하면 '-다', '-거'와 결합하면 '-과-', 경어법의 '-시-'와 결합하면 '-샤-', 계사와 결합하면 '-이로-'가 되었다.
경어법은 겸양법, 존경법, 공손법이 있었으며 모두 선어말 어미로 표시되었다.
겸양법은 어간 말음이 ‘ㄱ ㅂ ㅅ ㅎ’이면 ‘--’, 모음이나 ‘ㄴ ㅁ ㄹ’이면 ‘--’, ‘ㄷ ㅈ ㅊ’이면 ‘--’으로 나타났고, 뒤에 오는 어미가 자음으로 시작되면 ‘ㅸ’은 ‘ㅂ’으로 교체되었다.
존경법은 존자의 동작, 상태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며 ‘-(/으)시-’, 현대국어에도 사용된다.
공손법은 존귀한 청자에 대한 화자의 공손한 진술을 표시하며 ‘--’, ‘--’이다.
시상법 ‘--’는 현재, ‘-거-’, ‘-아/어-’, ‘-더’는 과거, ‘-리-’는 미래를 나타냈다.
감동법에는 ‘-도-, -돗-/-로-, -롯-’(‘-리-’와 계사 뒤), ‘-ㅅ-’가 있다.
배열 순서는 ‘겸양법-과거-존경법-현대-의도법-미래-감탄법-공손법’순이었다.
ㄷ. 어말 어미
동명사 어미(전성어미)에는 ‘-ㄴ, -ㄹ(ㅭ), -ㅁ, -기’등이 있었다.
부동사 어미(연결어미)는 현대국어와 같이 다양하였으며 희구를 나타내는 ‘-과뎌, -과여, -긧고’, 현대국어의 ‘-ㄹ수록’의 뜻을 지닌 ‘-디옷’, 앞 문장의 긍정적 의미를 강조한 ‘-디’ 등이 있었다.
정동사 어미(종결어미)는 서법을 나타내었다.
설명법의 ‘-다’는 선어말 어미 ‘-오-’, ‘-과-’, ‘-더-’, ‘-리-’, ‘-니-’ 및 계사 뒤에서 ‘-라’로 교체되었다.
명령법의 ‘-쇼셔’, ‘-아쎠’, ‘-라’는 2인칭의 명령으로 공손법의 등급을 나타내었다.
넓은 의미의 명령법 범주에 드는 어미로 ‘-져’, ‘-사다’, ‘-고라’, ‘-고다’, ‘-지라’, ‘-지다’ 등이 있었다.
의문법은 판정 의문은 ‘-가’, ‘가’, ‘-녀’, ‘-려’,로 쓰였으며 설명 의문은 ‘-고’, ‘고’, ‘-뇨’, ‘-료’ 가 쓰였다. 특수한 의문법으로는 2인칭 대명사 ‘너’가 주어일 때, 동명사 어미 ‘ㄴ, ㄹ’에 첨사 ‘다’가 연결된 ‘-ㄴ다’, ‘-ㄹ다’라는 의문법 어미가 사용었다. 수사의문으로는 ‘-이, -이녀, -이니가’가 쓰였다.
감탄법 ‘-고나’는 16세기 초엽의『번역박통사』에 처음 보인다. 15세기에는 선어말 어미 ‘-도-’와 평서법 어미 ‘-다’의 연결로 감탄법 표시되었으며 이 밖에 ‘-ㄴ뎌’, ‘-ㄹ쎠’가 있다.
ㄹ. 계사의 활용
계사의 형태는 표기상으로는 주격과 같았으나 매우 특수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선어말 어미와 어말 어미의 ‘ㄱ’을 ‘ㅇ’으로, ‘ㄷ’을 ‘ㄹ’로 교체시켰으며 의도법의 선어말 어미가 계사에서 ‘-로-’로 나타났다.
10) 첨사
강세를 나타내며 한 음소 또는 한 음절로 되어 있음이 특징이다. ‘ㄱ, ㆁ, ㅁ’가 있으며 강세의 첨사 ‘’는 고대의 ‘沙’에 소급하는 것으로 ‘야’로 변했는데 16세기 후반의 문헌에 이미 나타났다. 강세 첨사 ‘곳/옷’이 있다. ‘곰/옴’ : 부사나 부동사에 붙어 강세를 나타내거나 명사에 붙어서 현대어의 ‘씩’과 같은 뜻을 나타냈었고 열거를 뜻하는 첨사 ‘여’는 16세기에는 ‘야’ 혹은 ‘이여’로도 나타난다.
11) 문장구조
중세국어의 문장구조는 근대나 현대국어와 대체로 일치한다.
종속절의 주어가 속격형으로 변형되어 있으며 한 문장에서 동격으로 사용된 명사들은 마지막 것만이 필요한 집단 곡용을 취한다. 몇몇 용언은 특수한 격을 지배하였는데, ‘-’(如), ‘-’ 등은 주격형을 지배하였고, ‘다-’는 ‘-애’, ‘-애셔’, ‘-게’, ‘두고’를 지배하였다. 순전히 통사적인 기능만을 맡고 있는 형식명사 ‘’, ‘’ 는, ‘-ㄹ’ 동명사 뒤의 ‘씨, , ’, ‘-ㄴ’, ‘-ㄹ’ 동명사 뒤의 ‘디, , 로, ’ 등에서 사용되었다.
명사나 동명사에 첨사가 연결된 문장이 많은 의문문에서 명사문의 흔적이 나타났다.
한문 문장의 여향을 받은 ‘與, 以 ,使, 及’ 등이 ‘다, , 여, 밋’으로 직역되어 국어에서 일반화었다.
12). 어휘
ㄱ. 고유어
음운 대립에 의한 의미 분화
- : 푸르-, 보드- : 부드-, 벗- : 밧- 남- : 넘- 등과 같이 모음의 대립이 미세한 의미 차이를 나타내기 위하여 이용되었으며, 두드리- : 드리-, 그- : 끄- 등 자음에 있어서도 평음과 된소리의 대립이 미세한 의미 차이를 나타내기 위하여 이용되었다.
어휘에 의한 경어법
중세국어에도 어휘에 의한 경어법이 발달하여 있었는데 현대어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이시- : 겨시- , 먹- : 좌시-’의 짝은 있는데 ‘자-’에 해당하는 ‘주무시-’는 없었다.
3인칭 존칭 대명사에는 재귀대명사 ‘저’에 대한 존칭 ‘갸’가 있었다.
겸양법에는 -, 엳-, 뵈-, 뵈-, 드리-, 받-, 받-, 뫼-, 뫼- 등이 있었다.
ㄴ. 한자어
한자어의 대량 유입뿐만 아니라 중국어의 어휘도 차용되었다.
고유어 ‘슈룹’은 ‘우산’으로 대체되었으며 ‘온’, ‘즈믄’ 등은 16세기 말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오랜 사용으로 인해 의미의 변화를 겪은 것에는 간난(>가난), 분별, (>즘)등이 있다.
고대로부터 중세까지 불교의 영향이 컸으며 많은 불교 용어가 국어 어휘 속에 들어와서 종교 혹은 시대 사상이 국어의 어휘에 미친 영향을 미쳤다.
ㄷ. 중국어 차용어
한자어의 대량 유입뿐 아니라 중국어의 어휘 차용되었다. 16세기의 번역박통사, 번역노걸대, 훈몽자회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투구, 비갸, 딩, 후시, 미, 노, 야청, 야투로, 솨, 피리, 사탕, 쳔량, 진디, 등이 그 예이다.
ㄹ. 15세기와 16세기의 어휘 개신
15세기와 16세기 문헌 사이의 어휘에서 흥미 있는 개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다가 → 만일에, 반기 → 반시, 반드시, - → -, -
16세기 초엽과 말엽 사이에도 차이가 발견되는데 마 →이믜, 우틔 → 치마,비 → 단장
『소학언해』에서 비로소 '톄로'는 톄로 → 텨로 → 쳐로를 거쳐 현대어의 '처럼'에 도달한다.
7. 근대국어
17세기 초에서 19세기 말까지 3세기에 걸치며 음운, 문법, 어휘의 여러 분야에 걸쳐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면서 현대국어의 특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글이 널리 보급되면서 한글로 씌어진 문학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1) 자료
언해서는 국어사 연구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자료이며 중간본이 많이 간행되었는데 고의적인 개정이 국어의 변화를 보여 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언해태산집요, 언해두창집요(선조 41, 1608), 동국신속삼강행실도(광해군 9, 1617), 마경초집언해(17세기), 어제내훈(영조 12, 1736), 신간증보삼략직해(순조 5, 1805)등이 있다
역학서
노걸대언해(현종 11, 1670), 박통사언해(숙종 3, 1677). 청어노걸대(영조 41, 1765)등이있다.
윤음은 임금이 백성에게 내린 조칙(詔勅), 널리 민간에 알리기 위해 언해의 형식을 취하였으며 영조 이후 많은 윤음이 언해되어 국어사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문학서로는 시조집, 한글소설, 의유당일기, 계축일기와 한글편지가 있다.
학술서 실학자들이 저술한 백과사전류의 책과 국어와 국문, 한자음에 대한 다양한 연구서가 있다.
2) 문자체계와 표기법
방점이 완전히 소실되고 ‘ㆁ’자와 ㅿ’자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17세기에는 어두 합용병서 ‘ㅴ ㅵ’ 등 소멸되고 ‘ㅴ’의 이체로 ‘ㅲ’이 등장하여 ‘ㅺ’와 ‘ㅲ’이 공존하엿다. 동일한 된소리에 서로 다른 표기가 자의적으로 선택되엇다. 17세기 문헌에 ‘ᄻ’이 나타났고, 종성 ‘ㅅ’과 ‘ㄷ’의 혼란 : 18세기부터 ‘ㄷ’은 점차 없어지고 표기상 ‘ㅅ’으로 통일되는 경향과 모음 간에서 ‘ㄹㄹ’과 ‘ㄹㄴ’이 혼용되었다.
근대에 있어서의 맞춤법은 중세로부터의 전통의 잔재를 완전히 씻어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유지하면서 표음적이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한 결과 명사와 조사를 분리하여 표기하려는 분철 의식이 뚜렷이 나타났다.
3) 음운
17세기에 어두 자음군이 된소리가 되었으며 그 완성은 17세기 중엽이며 ‘ㅎ’의 된소리 ‘ᄻ’가 있었다. 평음의 된소리화는 근대에 들어 더욱 일반화되었다.
모음 ‘ㆍ’는 16세기에 제2음절 이하에서 첫 단계의 소실을 경험했는데 18세기 후반에 와서 어두 음절에서도 소실되는 둘째 단계의 소실이 일어남으로써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고 둘째 단계의 변화 공식은 ‘ㆍ>ㅏ’였다.
‘ㆍ’의 소실로 제1음절의 이중모음 ‘ㆎ’가 ‘ㅐ’로 변했는데 그 얼마 뒤에 ‘ㅐ, ㅔ’는 각각 [ɛ]와 [e]로 단모음화되는 움라우트 현상이 일어났다. ‘ㅚ, ㅟ’의 단모음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음운 체계
자음 체계
평 음 ㅂ ㄷ ㄱ ㅈ ㅅ ㅎ, 유기음 ㅍ ㅌ ㅋ ㅊ
된소리 ㅽ ㅼ ㅺ ㅾ (ᄻ), 비 음 ㅁ ㄴ ㆁ, 유 음 ㄹ
모음 체계
iㅣ ɨㅡ uㅜ
eㅔ əㅓ oㅗ
ɛㅐ aㅏ
구개음화는 ‘i, y’ 앞에서 ‘ㄷ ㄸ ㅌ’이나 ‘ㄱ ㄲ ㅋ’이 ‘ㅈ ㅉ ㅊ’으로 변하는 현상으로 남부 여러 방언에서 매우 일찍 일어나 북상하여 서울말에서는 ‘ㄷ ㄸ ㅌ’의 구개음화만 일어났으며 일어난 시기도 매우 늦었다.
원순모음화는 순음 ‘ㅁ, ㅂ, ㅍ, ㅽ’ 아래에서 모음 ‘ㅡ’가 원순모음 ‘ㅜ’로 바뀌는 현상으로 17세기 말엽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모음화는 ‘ㅅ, ㅈ, ㅊ’ 아래에서 ‘ㅡ’가 ‘ㅣ’로 바뀌는 현상으로 19세기 들어 전설모음화가 일어났다.
16세기에 ‘ㆍ’가 비어두 음절에서 ‘ㅡ’로 변한 사실은 근대국어의 모음조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ㅡ’는 부분적 중립성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ㅡ’의 부분 중립화는 국어 모음조화의 붕괴를 결정적으로 촉진하였다.
4) 문법
근대국어의 문법 체계는 중세국어보다 간소화되어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체계로 지향하였다.
조어법
동사에서 명사를 파생시키는 접미사는 ‘-(으)ㅁ’이 여전히 대표적이었으며 동명사 어미는
‘-(오/우)ㅁ는 구별이 없어졌다.
사동 어간을 파생시키는 접미사는 ‘-히-’, ‘-우-’가 남고 나머지는 비생산적이라 사라졌다.
명사로부터 형용사를 파생시키는 접미사의 교체형 중 ‘-/-’, ‘-/-’는 각각 ‘--’, ‘-되-’로 변함. ‘-스럽-’이 출현했다.
동사 어간으로부터의 ‘-ㅸ-’, ‘-/브-’에 의한 파생법은 생산성 잃고 동사의 부동사형과 ‘-’의 합성어가 생산성을 가지게 되었다.
곡용
체언의 비자동적 교체를 지향하고 단일화를 성취하려는 경향과 근대 후기에 와서 ‘ㅎ’이 탈락하였다. 주격조사 ‘-가’의 등장 : 17세기 문헌에서 그 존재가 뚜렷이 확인되고 ‘-의’만이 속격의 기능을 가지게 되고 ‘ㅅ’은 사이시옷이 되었다.
대명사에서는 1인칭과 2인칭의 주격형으로 ‘내가’, ‘네가’가 사용되고, ‘누’와 여기에 의문첨사 ‘고, 구’를 결합한 ‘누고, 누구’가 함께 대명사로 쓰였다.
특수조사
근대어에서 특수 조사는 상당히 간소화되어 평칭의 ‘의게’, 존칭의 ‘’로 통일되고 ‘셔’가 근대어에서 존칭의 주격을 표시하게 되고 18세기에 생긴 ‘보다가’가 ‘도곤’을 물리치고 19세기 후반에 유일형이 되었다.
활용
활용 어간 ‘ㅸ’은 ‘w’로 변하고 ‘ㅿ’은 탈락하고 어간 말음 ‘ㅺ’은 근대에 와서 역행동화로 ‘ㄲ’이 되며 ‘ㅼ’을 어간말음으로 가졌던 ‘-’은 ‘맡-’으로 변하였다.
선어말 어미
중세어에 있었던 의도법은 근대에 와서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경어법은 중세의 존경법, 겸양법, 공손법의 체계에서 존경법과 공손법의 체계로 이행되었다.
과거의 ‘-앗/엇-’은 부동사 어미 ‘-아/어’와 동사 어간 ‘잇-’의 결합으로 이루어지고 중세어의 현재 시상 선어말 어미 ‘’와 정동사 어미 ‘-다’의 결합인 ‘다’는 근대어에서 모음으로 끝난 어간 뒤에서는 ‘-ㄴ다’로, 자음으로 끝난 어간 뒤에서는 ‘-는다’로 되는 등 중세어의 시상 체계는 근대어에서 심각한 동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감동법 선어말 어미는 ‘-도-’만 남았다.
어말 어미
근대어의 동명사 어미들은 중세어와 마찬가지로 ‘-ㄴ’, ‘-ㄹ’, ‘-ㅁ’, ‘-기’가 있었으며 근대어에서는 의도법 어미의 소멸로 동명사와 파생명사 사이의 형태상의 구별이 사라졌다.
부동사 어미는 중세어와 비교할 때 간소화되었고 ‘-디옷’, ‘-디>-디위’는 소멸하였다.
정동사 어미
설명법 어미 ‘-롸’가 한때 나타났다.
명령법은 중세의 ‘-아쎠’가 없어지고 ‘-소’가 등장하고, 1인칭 복수 명령 ‘-새’가 보인다.
판정의문과 설명의문의 구별이 점차로 사라지고 수사의문의 ‘-이’, ‘-이녀가 ’ 소멸한다.
감탄법은 16세기에 나타난 ‘-고나’가 일반화되고 ‘고야’, ‘괴야’등도 사용되었다.
첨사
강세 첨사 : ‘야’, ‘곳’과 ‘ㆁ’는 ‘-’에만 보이는데 ‘오 가’에 화석화되어 남아 있다.
문장구조
중세어의 형식명사 ‘’와 ‘’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고 ‘-기’ 동명사가 크게 세력을 떨치고 ‘-(으)ㅁ’은 크게 위축되었다. 근대어의 문장들은 동사문이 되어가는 경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5) 어휘
많은 순수 국어 단어들이 한자어로 대체되었고, 한자어로 대치되지 않고 폐어가 된 것들도 있고 어엿브-’, ‘어리-’, ‘랑-’ 등의 고유어가 미려, 유소, 사랑하다의 의미로 어휘가 변화했다
근대어 시기에도 중국어가 차용어의 가장 중요한 공급원이 되었으며 만주어(청어) 도 또 하나의 공급원이었다.
주로 북경을 통해 기계, 지도, 천문지리서, 과학서, 종교에 관한 서적 등이 유입되며 서양의 새로운 단어도 함께 들어왔다.
8. 현대국어
현대국어는 오늘날 우리 민족이 날마다 사용하고 있는 국어를 가리키는 말이요, 또 하나는 국어사의 시대 구분의 관점에서 대체로 20세기 초에서 지금까지의 사용되는 국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1). 문자 체계와 맞춤법
언문일치의 필요성 속에 국문체와 국한문체의 대결에서 국문체는 근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소설에서 사용되었고 ‘한글 전용 운동’ 등으로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하였다.
<한글맞춤법통일안>은 주시경의 이론을 기초로 한 것이었고 오늘날 문자 생활의 규범이 되었다. 종래의 관용을 존중하면서 최소한의 개혁을 하고자 하였으며, ‘ㆍ’를 없애고 된소리 표기에 합용병서 대신에 각자병서를 채택한 것이 개혁의 전부이다.
맞춤법의 기본 원리는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하는 형태음소적 원리를 채택하였다.
한 국가 안에서 사용되는 여러 방언들 중에서 문화, 정치, 경제의 중심이 되는 고장의 말을 표준어로 정해서 모든 공적인 언어 생활을 표준어로 하도록 규제하였다.
우리나라의 표준어에 대한 최초의 규정인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1988년 <표준어 규정>이라는 명칭으로 여기서는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규정하였다.
2) 음운
현대국어의 자음 체계는 구개음화가 일어난 뒤인 18․19세기의 그것과 대체로 일치하고 폐쇄음, 파찰음에 평음, 유기음, 된소리의 3계열이 있다.
마찰음에는 평음과 된소리만 있고 비음 [ŋ]과 유음 ‘ㄹ’은 어두에 오지 않으며 비음 ‘ㄴ’도 어두에서 ‘i, y’ 앞에 오지 않는다. 어두에 자음군이 허용되지 않으며 모음간의 자음 결합은 두 자음에 한한다.
모음 체계는 전설 원순모음을 가졌다는 점에서 19세기의 모음 체계와 다르며
ㅣ ㅟ ㅡ ㅜ ㅔ ㅚ ㅓ ㅗ ㅐ ㅏ의 10모음 체계다.
서울말에는 음장이 있는데 이는 중세어의 성조가 없어지면서 상성의 음장이 남은 것이며 모음조화는 극도로 쇠퇴했으나 아직 언중에 의해 분명히 의식됨을 알 수 있다.
3) 문법
곡용
서울말에서는 비자동적 교체를 보여준 모든 체언이 단일화되고. 주격 조사 ‘이/가’의 교체 확립과 속격의 ‘ㅅ’은 복합어 구성에만 사이시옷으로 남았다.
번역체의 영향으로 ‘에의, 에서의’와 같은 새로운 연결 등장하고 1,2인칭 대명사에서 주격형 ‘내가’, ‘네가’, 속격형 ‘내’, ‘네’ 등의 형태가 생겨났다. 주격형 ‘제가’, 속격형 ‘제’가 생겨났다.
활용
계사의 활용이 현대어에 와서는 용언의 활용에 유추되었고 경어법에는 존경법과 공손법이 있다. 반말이 많이 사용되며 젊은 세대는 ‘하오체’, ‘하게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어휘
현대 서양 학문의 새로운 개념들이 대개 한자어로 번역되어 대량으로 수입되고 있으며 순수한 고유어보다 한자어가 더 많다. 관념어나 학술어는 대부분 한자어에 의존하고 있다.
구미 제어로부터 많은 차용어가 들어오고 있다.
국어의 고유 어휘는 일상 어휘와 감각어에 많이 남아 있으며 의성어와 의태어가 풍부하고 약어의 빈번한 사용도 현대국어의 특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