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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바꾸는 전염병
2. 전염병의 시작
글 출처 : 정역주의,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바꾸는 전염병이란 무엇인가? (노영균,윤석현 공동저자. 아람 2004)
글 연재 : 개벽밸리
윤 석 현 가정의학과 전문의 (태전 증산도 사상 연구회원)
전염병이 처음 발생하게 된 때는 언제일까요?
역사 문헌상 처음 등장하는 전염병은 천연두로 지금으로 부터 3천여년 전인 기원전 1350년에 이집트와 힛타이트 간의 전쟁 중에 천연두가 유행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질환은 이집트 죄수들에 의해 힛타이트 국민에게 전파되었으며 군인과 시민들이 모두 감염되었고 힛타이트 왕인 수필룰리우마스 1세와 그의 후계 자인 마르루완다스도 희생되었으며 이후 이들의 문명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고 전해 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전염병은 분명 존재를 해 왔습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실제로 전염병이 처음 발생한 시기, 그 존재의 첫 시작, 전염병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전염병은 인간의 역사에서 언제 처음 나타났을까 하는 전염병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은 결국 전염병이 발생 할 수 있는 조건이 언제 처음 만들어 졌는가에 대한 연구가 일을 때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전염병이 발생 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합니다.
대규모 인구 집단과 전염병
우선 전염병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인구수가 어느 수준 이상 되어야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염병과 인구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지역에서 질병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풍토병과는 달리 전염병이란 단어에는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병이 옮겨진다는 개념이 내재 되 있기 때문에 전염병이 생기기 위해서는 전염병이 발생 할 수 있는 인구 집단이 여러개 존재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회 조직과 전염병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페너 Fenner는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였습니다.
다른 유형 (유전적, 외상성, 신생물)의 질병과는 대조적으로 전염성 질병은 동종의 개체들 사이나 동물과 인간 사이, 그리고 다른 종의 개체들 사이의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접촉에 의한다. 이 때문에 사회 조직, 특히 공동체의 규모나 동일 공동체나 다른 공동체의 개인들간의 접촉 빈도가 인간 전염성 질병의 특성과 유병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인구 집단이 있을 때 전염병이 발생 할 수 있을 까요?
집단 규모의 중요성을 생각한 최초의 인물은 해머Hamer 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1902년 유행성 감기의 유행을 분석한 결과 5천명의 집단이 있다고 할 때 약 13주 후에는 실질적으로 병의 발생이 종료 되고 반년이 되기 전에 소멸한다는 것을 발견 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험에 근거하여 페너는 홍역이 유지 되기 위해서는 연간 3천명의 환자가 필요하고 30만명의 집단이 필요할 것이라 주장을 했습니다.
콕번은 1백만명의 인구는 홍역이 재발 되는 유행성 전염성 질병으로 확힙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수준이라 하였고 블랙은 50만 명 이하의 섬에서는 재유입 되지 않으면 홍역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매큐언은 대부분의 전염성 질병은 빈번한 접촉이 있는 집단이 최소 수천 명에 이르지 않는다면 존재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인간의 인구 집단 형성의 시기
인간의 전염병의 첫 시작이 언제 부터인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 인간이 언제 부터 전염병이 발생 할 정도의 인구 사회를 형성하였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인의 조상은 160만년전에 나타난 호모 에렉투스로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손을 이용한 도구를 사용 하는 정도 수준의 지능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60만년전이지만 협동 사냥과 같은 사회적 기술적 진보를 하기 시작 한 것은 10만 년경 부터 입니다. 하지만 사회를 형성을 했을 만한 증거가 이 시기에는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언어를 사용 하기 시작한 것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이 나온 3만 4천년 전 부터인데 언어의 사용은 곧 사회의 형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때 부터 전염병의 발생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분석해 볼 때 이 당시 살던 인종들은 주로 동물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 먹는 수렵 채취인들로써 대개 25명에서 50명 정도의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생활화였다고 합니다. 작은 무리 내에서 다른 무리와도 별로 접촉하지 않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수는 전염병 질병을 직접적으로 전파시킬 만큼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만년 전부터 수렵 채집의 문화 형태가 농경 정착 문화로 바뀌게 되면서 300명 이상의 정착 촌락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매키디브 McEvedy와 조운스 Jones의 추정에 의하면 기원전 1만년에 4백만이었던 인구가 기원전 5000에 이르러서는 5백만으로 증가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부터 인구 수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 하였는데 이는 하천 삼각주에서의 관개 이용을 하는 새로운 농경법의 도입때문이었다 하며 이로 인해 전염병이 일어날 수 있는 규모로 까지 인구가 성장 증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Figure 1: Human Population Growth over Time
http://www.globalchange.umich.edu/globalchange2/current/lectures/human_pop/human_pop.html
영국 버밍햄 대학교 사회의학 명예교수를 역임하였던 토마스 매큐언 Thomas McKeown 은 질병의 기원에서 위의 내용들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공동체 규모에서의 큰 변화는 약 6천년 전 (표2.2에는 5500년 전) 에 시작되었다고 믿어진다. 그 시기 이전에 인류의 정착지는 전염성 질병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인 3백 명 이내의 사람으로 되어 있는 촌락으로 구성되었다. 몇몇 도시들이 10만명의 인구를 갖게 된 것은 발전된 농업 기술, 특히 관개농업이 도입된 후였고, 50만 명의 인구를 갖게 된 것은 산없화 이후인 지난 수 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전염성 질병의 양상은 약 5천 년 전의 급속한 인구 성장과 도시들의 확립에 의해 변화되었다. 그러한 조건들은 다른 동물 숙주를 전혀 갖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번식과 확산을 위해서는 밀집된 대규모의 인구 집단을 필요로 하는 병원체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의 전염성 질병에게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전염성 질병은 대부분이 가축 및 다른 동물들로 부터 얻어졌기 때문에 수렵 채취인에게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실질적으로 인간 사회에서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정도의 인구가 구성이 되었던 것은 관개 농경 문화가 들어오면서 부터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http://www.acad.carleton.edu/curricular/GEOL/DaveSTELLA/Population/pop_modeling.htm
농경문화의 시작과 전염병 발생
농경의 발달에 의한 인구 증가는 드디어 인간 사회에 전염병이 돌 수 있는 최초로 조건을 형성하였습니다.
아노 카렌은 그의 저서 전염병의 문화사에서 농경혁명과 전염병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언급을 하였습니다.
좀더 많은 식량이 생간 되었고 인구가 팽창하였으며 새로운 질병들의 물결이 밀려왔다.....그리고 그것들은 농업 혁명은 승리이자 재앙이었다. 인간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숱한 질병의 희생자가 되었다. 좀더 많은 식량과 감염병을 향한 이 변화들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농업의 출현과 함께 그들은 마침내 유행병 위기 시대를 출법시켰다. 이러한 일은 오로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있었다.
그의 말에서 알수 있듯이 농경 사회가 시작 되면서 전염병이 발생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농경 사회가 있기 전에는 인간 사회에서는 전염병이란 것이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농경 발달에 의한 인구 증가만으로는 전염병의 발생 이유를 다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농경 발달의 어떠한 점이 전염병을 발생 하게 만들었을까요?
전염병이 크게 대발 하기 위해서는 4가지 요인이 필요하다 합니다.
1) 인류의 전염성 질병이 생기고 퍼질 수 있을 만큼의 집단이 존재해 합니다.
2)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 시킨 영양결핍
3) 전염병 질환에 노출을 증대시키는 불결한 위생과 군집성
4) 많은 미생물의 근원지가 될 수 있는 가축 및 기타 동물들과의 밀접한 접촉등이 그 요인입니다.
농경 문화는 이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을 시켜주는 환경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인간 사회에서는 전염병이라는 새로운 사회 현상, 문화 코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농경의 영향 1 : 저항력을 약화 시킨 영양 결핍
고고학에서는 뼈의 성장과 관련된 해르스선, 그리고 치아에 있는 윌슨 띠와 에나멜 형성 상태를 보고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들의 건강 상태를 가름 합니다.
그런데 농업 혁명이 일어 나고 난 뒤의 인도, 중동, 유럽, 북아미리카 거주인의 뼈를 분석해 보니 대부분의 경우 농경 문화 이전 시대의 조상들보다 덜 건강했고 영양 상태도 더 나빴던 것으로 나왔습니다. 또한 도시 문화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관절염과 피로 골절과 같은 직업병과 영양 상태의 저하도 보였습니다.
또한 농경 사회가 들어오면서 인간은 구석기 시대 조상들 보다도 키가 작아졌고 평균 수명도 구석기 시대의 40대에서 30대로 짦아졌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 한 것일까요 ?
옥수수, 쌀, 밀, 감자, 고구마, 마니옥과 같은 전분류는 탄수화물과 칼로리는 풍부하지만 육류나 다른 식물성 식품과 달리 단백질과 일부 비타민 및 미네랄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영양소 부족이 영양 상태 결핍을 가져 오게 된 것입니다.
2000년전 덴마크와 노르웨이 초기 거주민에게서는 비타민 D 부족으로 인한 구루병이 많았으며, 중동과 지중해의 초기 농경 정착지에서는 모유가 곡류로 대체되면서 어린이들에게서 철 결핍성 빈혈이 많이 생겼습니다.
5000년 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인류는 탄수화물 위주의 식행활로 접어들면서 인간의 체구는 작아지기 시작했고 힘이 약해졌으며 점차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으며 결국 감염병을 많이 얻게 되었고 전염병이 발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농경 문화가 인간의 역사에 가져다 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농경의 영향 2 : 불결한 위생과 군집성
농경이 발전을 하게 되면서 인구의 수가 증가하게 되었고. 증가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하게 되었고 더 발달된 농경법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관개와 퇴비 사용입니다.
그런데 관개된 경작지의 도랑과 수로는 병원균과 그것을 옮기는 동물들에게는 아주 이상적인 거주지로 작용하게 되었고 특히 관개는 여러 식수원에 분변 오염물들을 옮기는데 한목을 했습니다. 뒤에 개발되는 촌락의 개천과 수로는 병원균이 더 넓은 지역으로 이동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퇴비의 사용은 오래된 또는 새로운 질병들을 어느때 보다 빠른 속도로 전파시켜습니다.
또한 도시의 발달로 사람이 많이 밀집 되면서 인구 수에 비례 하여 생기는 대소변과 같은 오물과 쓰레기의 발생하게 되면서 농경 사회때 보다도 더 큰 위생 문제가 대두 되게 됩니다.
콜레라는 촌락이 형성되고 촌락에 대한 물 공급체계가 확립 되었을 때 나타났고, 말라리아는 농경의 발달에 따라 인류 집단의 규모와 매개충의 번식 기회가 증대 되었을 때 심각하게 나타났습니다. 장티푸스, 이질, 결핵, 살모넬라와 같은 장 전염성 질병 또한 음식과 물의 오염에 의해 전파가 되었습니다.
이와 별도로 농경의 발달은 식량 공급의 증대에 따른 인구 팽창이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사람들 간의 접촉이 지속적이고도 밀접하게 만드는 도시 지역의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게 되면서 그로 인해 호흡기로 전파하는 전염성 질환을 비록하여 다른 전염성 질병이 창출하기 되었습니다.
대규모의 밀집된 도시 인구는 인간에게 전염병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였고, 대부분의 역사 시기 동안 전염병이 유행하도록 한 것은 전염병에 대한 노출의 정도가 높은 반면 이에 대한 저항력이 낮았기 때문이며 노출의 정도가 높았던 것은 부분적으로는 위생 상태가 좋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농경의 영향 3 : 인수공동감염의 증가
농경 사회는 인류가 자신의 주변 자연 환경에 대한 통제를 시작하였음을 뜻합니다. 또한 농경 사회가 되었다는 말은 식물과 동물을 인간이 직접 길들여 키우는 것을 뜻하며 이는 곧 방랑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의 변화를 뜻합니다.
더 많은 경작지를 얻기 위하여 벌목을 하게 되고 화전을 일구어 경작하면서 자연 생태계에 대한 회손을 가져 오게 되었고 숨어 있던 새로운 균 종류에 노출되는 기회도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경작을 위해서 동물들을 사육하게 되면서 자연히 사람과 동물간의 접촉 기회가 증가 하게 되고 동물에게만 있는 질병이나 전염병들이 사람에게 전염이 되는 인수공동감염과 같은 질병 발생의 기회가 더 늘어나게 됩니다.
가축들과 같은 공기와 먼지를 흡입하고, 가축들의 대소변을 치우면서 배설물과 접촉하고, 도살을 하여 털과 가죽을 이용하고, 젖과 알과 고기를 섭취 하면서 가축에게 있는 수없이 많은 세균들을 같이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인플루엔자, 천연두, 홍역, 결핵 등이 이러한 가축으로부터 기인된 전염병입니다.
보통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 (rhinovirus)는 자연계의 유일한 숙주인 말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소 천연두, 쥐의 사지결손증, 조류와 돼지에게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친척입니다. 홍역 바이러스는 개의 디스템퍼 (canine distemper), 소의 우역 (rinderpest), 그리고 돼지콜레라의 일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호흡기 결핵을 일으키는 결핵균 (tubercle bacillus)는 야생소로 부터 인간에게 전이되었던 병원체 (bovine type)의 돌연변이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농업은 인간에게 너무도 많은 새로운 병원균을 가져다 주어서 인류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아노 카렌
전염병은 농경문화에서 시작 되었다.
전염병은 농경의 발달이 있기 전에는 없었던 현상으로, 5천년 전 농경문화에 의한 급속한 인구 성장에 따른 도시국가의 확립이 이루어 지면서 생긴 인구의 군집, 불결한 위생과 탄수화물 섭취에 때른 영양 부족, 그리고 가축 사육에 의한 인수공동감염에 의해 처음 형성이 되었습니다.
농경의 발달은 전염병을 발생 시킬 수 있는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게 되었고 농경문화의 발달이 곧 전염병 문화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전염병은 철저히 인간의 문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상이며 자연의 이법이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문화 현상입니다.
인류는 농경문화로 접어드는 순간 부터 전염병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고 영원히 전염병으로 부터 자유로와 질 수 없는 공동체 운명의 길을 들어서게 되었고, 50억 인류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와서도 그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전염병의 시작은 농경 문화에서 비롯 되었고, 모든 것의 시작은 인간으로 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생각해봐요> 전염병의 시작은 신농씨로 부터?
증산도의 도전에도 보면 5300년전에 신농(神農 : 서기전 3218~서기전 3070)씨가 이 농사짓는 법 백곡을 정하고 온갖 풀맛을 직접 먹어 보면서 의약을 짓고 의술을 가르쳐 천하만세를 윤택하게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의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신농씨가 아닌 태호 복희(太昊 伏戱 : 서기 3528∼3413)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호 복희는 5600년전 사람으로 배달국의 5대 환웅인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로서 천하(天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서 나타난 상(象)을 보고서 팔괘를 처음 그려 역의 창시자인로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이분이 태어난 감숙성 성기(成紀)- 곧 지금의 중국 천수(天水)시 복희 사당에 들르면 복희 천제가 침구를 처음 시작해 침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금슬(악기)은 물론, 신농처럼 신농보다 먼저 백초를 맛보고, 양잠을 처음 시작해, 여와씨가 장려했음이 기록이 나와있다고 합니다.
깐쑤(감숙)의 천수시 복희묘의 태호복희
그럼에도 불구 하고 신농씨가 의술의 원조로 역사에 기억되는 것은 신농씨대에 와서 실질적으로 의술과 관련된 큰 업적을 세울 수 있는 환경, 즉 전염병이 존재 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염제 신농의 부친 소전은 동이 배달 환웅국(9대 안부연 환웅)때 지금의 섬서성 바오지(寶鷄)시 강수(羌水)의 감병(監兵)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桓檀古記」『太白逸史』에 의하면 소전(少典)은 소호(少昊)와 함께 고시(高矢)씨의 방계자손이라 했으니 곧 태호 복희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농경의 발달에 따른 인구 증가와 전염병의 관계를 생각 해 볼 때 태호 복희씨 때에는 아직 관개 농경이 발달 되지 않은 시대였던 만큼 인구도 전염병이 발생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가 되지 않았습니다. 태호 복희시 때까지는 전염병과 같은 커다란 병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신농씨대에 와서 농경이 발달 하게 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전염병이 처음으로 창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게 되었습니다.실제로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는 일찍이 남쪽으로는 교지(交趾 : 지금의 영남(嶺南-광동,광서)일대를, 북쪽으로는 유도(幽都:지금의 하북河北 북부)를, 동쪽으로는 양곡(陽穀:지금의 山童산동 서부), 서쪽으로는 삼위(三危:지금의 감숙甘肅 돈황敦煌일대)의 중국 일대의 반을 관할하는 대 제국을 형성하였다고 합니다. 근래 실제적인 고증에 의하면 염제(炎帝)의 후예들은 확실히 이 지방에 도달하였고, 대량의 쟁기와 곡물들이 발굴이 되면서 유력하게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 및 그 후예들의 사실성이 증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석학 서량지는 동이족인 신농씨를 공인된 중국농업의 창시자라 못박았습니다. 이 문화 유적지는 세석기 문화유적지로 화북(華北), 화서북(和西北)의 황토고원에 있어 멀리 홍적통 중기에 있으니 또한 곧 수인(燧人)씨 시대 말기에 이미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석기와 홍도문화의 신농시대는 비단 농업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목축, 교역(일중위시), 의약(백초, 샘물의 달고 쓴맛을 맛보고 백성에게 알게 했다), 건축(궁실,명당,원구)이 있었다고 하는데 근동 세석기 문화 유적지 발굴보고에 근거하면 이러한 사실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확실하게 드러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예합문가」라는 책에는 "신농은 신(神)이니 믿음이시며 농자(農者)이시니 농(濃:태도 행동이 깊음)이시다. 쟁기와 보습을 시작했으며 백성에게 밭 갈고 씨뿌리는 법을 가르쳤으며 그 의식(衣食)을 잘 했고 덕을 신과 같이 짙고 후하게 했으므로 신농(神農)이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신농씨는 농경에 의한 도시 국가의 발전으로 이전 질환과는 차원이 다른 전염병이라는 질병에 직면하게 되었고 전염병을 다스릴 방법을 구하기 위해 태호 복희때 부터 있어 왔던 의술과 새로운 약초의 개발하게 되었으며 전염병에 성공을 하면서 의학의 원조로 숭상받게 되었을 가능성을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섬서성 바오지(보계) 염제 신농씨 능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고고학에 의해 밝혀진 인간의 공동체 규모에 있어서의 큰 변화와 이로 인한 첫 전염병 발생 가능성 연대도 신농씨가 살았을 무렵인 약 5500년전 이후로 잡고 있고 또한 농경의 발달로 인한 인구수의 증가가 곧 전염병의 발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위의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신농씨가 전해준 농경법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형성되면서 필연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하여 의술의 필요성이 증가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신농씨가 경농의 시조이자 의학의 원조(元祖)가 동시에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전염병의 첫 발생이 신농씨의 농경법 전수로 부터 시작 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해 보았습니다. 바꾸어 이야기 하자면 신농씨때 부터 인류는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의 도시 국가가 처음으로 형성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에서 시작된 생각이지만 전염병학의 원리를 생각해 볼 때 전혀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라 생각이 되지며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 까 생각 합니다.
(신농씨와 관련된 자료는 http://cheramia.net/index.html 안원전 선생님의 21세기 담론 199.신농의 부족이 남부로 스며들어갔을 때는 홍도시대의 일로, 세석기 문화인은 홍도문화인과 더불어 이미 목축, 교역, 건축, 의약을 알고 있었다(서량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