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희 아빠와 승희와 관호와 함께 어제 새벽 네시에 포항에서 태백산으로 출발했다. 동해안을 따라 울진까지 가서 거기서 태백으로 갔다. 가면서 보니 차의 바깥 온도가 영하 18도였다. 무척 추운 날씨겠구나 생각했다.
태백산에 도착하여 눈꽃축제 하는 주차장 매표소 근처 식당에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먹었다. 다시 택시를 타고 유일사로 갔다. 택시비는 팔천원이 나왔다. 태백산은 눈꽃축제 하는 곳에서 오르는 것보다 유일사에서 오르는 것이 경사도 완만하고 오르기가 쉽고 이미 조금 올라간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라 쉽다고 택시기사가 말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눈꽃축제 하는 근처에 찜질방이 있으니 거기서 자고 바로 등산하는게 새벽내내 몇시간을 운전해 오는 것보다 편할 것이라 했다.
유일사에서 표를 끊었다. 어른 2000원 어린이 1500원이었다. 승희와 관호는 눈이 신발에 안들어 오도록 발토시를 하고 그 위에 아이젠을 신었다. 승희 아빠와 나도 아이젠을 신었다. 등산길은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되어 오르기가 편했다.
주목이 많이 있었는데 주목옆 팻말에는, '이 나무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여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진 뒤에도 몇천년을 여기서 더 살아갈 것입니다. 나무를 소중히 합시다.'라고 써져 있었다. 이 나무들에게 우리 인간은 잠시 왔다가 사라져 가는 생물체일 것이다.
날씨는 과연 추웠다. 마시려고 가져갔던 물이 병속에서 얼어 얼음이 되어 병의 입구를 막고 그 속에 남은 물도 서걱거리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음덩어리로 변해갔다. 그 추운 날씨에도 우리는 버너에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였다.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니 너무 추워서 몸이 꽁꽁 얼어 붙어 그대로 죽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희 아빠가 등산 잠바를 벗어 앉아서 떠는 내 위에 덮어 주었다. 관호도 잠바안에 입고 있던 가디건을 내 무릎에 덮었다. 그래도 추워서 이대로 살아서 집에 까지 갈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보온 밥통에 밥과 김치를 조금 싸 갔는데, 라면과 밥이 어떻게 입안으로 들어 갔는지도 몰랐다. 승희아빠가 내게만 라면을 많이 퍼 준것 같았는데, 아이들과 승희 아빠가 라면이 모자라는지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말할 힘도 없었다. 그대로 입안에 쑤셔넣고 빨리 집에 가자고만 했다
우리는 태백산 정산 천제단 아래로 바로 내려오는 길을 택하지 않고 조금더 갔다. 천제단 아래에서 하산하는 길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미끄럼을 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가다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로 내려왔다. 우리는 비닐포대기를 몇개 가지고 갔는데, 모두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다. 그 길은 오솔길로 미끄럼을 타기에 딱 적당한 경사였다. 그리고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가 비닐포대기를 엉덩이에 깔고 미끄럼을 타며 내려오기에 방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가끔 바닥이 돌멩이 때문에 약간 울퉁불퉁한게 불편할 때가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 흙바닥으로 된 오솔길이라 미끄럼타기에 좋은 곳이 많았다. 승희가 제일 신나게 미끄럼을 타고 관호와 아빠와 나도 즐겁게 미끄럼을 타며 내려왔다. 미끄럼을 타니까 아까 라면먹을때 보다는 훨씬 덜 추웠다.
산 아래에 내려와서 아침에 밥을 먹은 눈꽃식당에 가니, 예약손님이 꽉 차서 자리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냥 차를 타고 출발했다. 다시 태백에서 울진으로 왔는데, 오는 길에 불영계곡을 지나서 왔다. 새벽에 지나간 길이었는데, 올때도 그길을 지나서 왔다. 갈때도 차가 한대도 없었는데, 올때도 차가 한대도 없었다. 새벽에는 캄캄해서 이유를 몰랐는데, 오후에 집에 오면서 보니, 그 길은 천길 낭떠러지 절벽위에 있었다. 길이 얼어 차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는 날에 그대로 형체도 없이 절벽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마는 그런 길이었다. 절벽아래에는 수북이 내린눈과 추위로 얼어붙은 계곡물과 커다란 바위들과 눈덮인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부령계곡의 너무나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었지만, 우리는 무서웠다. 길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계곡은 길기도 했다. 여름에 수박 한덩이 들고 놀러 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울진 망향정 휴게소에서 과자를 조금 사서 먹었다. 그리고 영덕을 지나 흥해사거리에 있는 무봉리 순대국밥 집에서 우리는 순대국을 사 먹었다. 모두들 순대국밥을 시켰는데, 양이 조금 많았다. 승희와 나는 다음부터는 한명분을 시켜서 둘이서 나눠먹자고 했다. 그게 양이 맞는 것 같았다. 관호와 아빠도 좋아 하며 맛있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텔레비젼을 조금 보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