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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삿기7:15-23절 // 큰용사 미디안 :빈항아리,나팔,횃불 // 2024년 8월 21일 // 찬송:
◈고통받는 이스라엘 ; 부르짖음
이스라엘백성이 목전에 악을 행할 때 7년동안 미디안 손에 넘겼습니다. 산속에 숨어서 웅덩이, 산성,굴을 파고 살았습니다. 파종할 때 토지소산을 망쳐서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양,소,나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메뚜기떼처럼 올라와서 괴롭힙니다. 탈취해갑니다. 궁핍함이 심하므로 부르짖었습니다.
애굽종되었던 때에도 부르짖어서 건져내고 땅을 주고 살게하였더니 아모리땅의 신들을 두려워섬기고 내목소리를 듣지 않았는데 지금도 부르짖느냐?
◈기드온을 부르심
여호와의사자를 보냈다. 몰래 숨어서 타작을 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계신다..미디안 사람에게 들킬까 밀을 포도주 틀에 몰래 타작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시는 말입니다.
기드온 미디안의 공격이 무서워 7년 동안 바위를 파서 만든 좁은 포도즙 틀에서 남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몰래 타작을 하던 소심한 청년 이었다. 겁쟁이, 쫄보입니다. 그런데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그러나 기드온은 바로 반박을 한다.
"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왜 이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애굽에서 올라오게하실 때 그 이적이 어디있습니까? 우리를 버려 미디안 손에 넘겨버렸나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라.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나의 집은 극히 약하고 나는 아버지집에서 가장 작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을 해치우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할 것이다"라고 확신을 심어준다.
만일 그것이 확실하다면 표징을 보여주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와서 그것을 주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소서 .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바위에 놓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일 끝을 내밀어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살라버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버렸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라고 고백한 후 죽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죽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다.
이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사람들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했습니다 (삿 6:34) 영이 임해야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성령하나님
그래서 사자들을 온 므낫세와 아셀과 납달리 스불론으로 보내어 군대를 소집합니다. 소집 명령은 오늘날 성령의 음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 중에 겨우 32,000명이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요구 : 백성들이 너무 많다. 돌려 보내라.
이렇게 전쟁 준비를 한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적을 너희 손에 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2). 그 이유는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2)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6장 36절에서 기드온이 하나님께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이라는 말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그의 백성이 자신의 힘으로 승리했더라고 여기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에게 돌릴까 봐 이렇게 시험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드온과 함께한 백성은 그의 소속 므낫세 지파와 므낫세 북부에 거주하는 아셀, 스불론, 납달리 지파 사람들로(6:35), 총 32,000명에 이르렀습니다(3). 드보라 때는 약간 더 많은 지파에서 40,000명이 운집했습니다(5:8). 그러나 미디안 연합군의 135,000명(8:10)에 비하면 1/4에도 못 미칩니다. 현재 상태만으로도 하나님께서 같이 싸워 주시지 않으면 힘든 전쟁인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군사가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백성이 많아 그들로 미디안을 이기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로 바라보지 않고 그를 믿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현 인원으로 미디안을 무찌르면, 이스라엘이 교만해져서 구원의 공로를 자신들에게 돌릴 위험이 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숫자를 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이 말씀은 이 전쟁만 아니라 사사들의 모든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신 분이 하나님이며, 그가 모든 영광을 받아야 함을 분명히 일깨웁니다.
그래도많다. 아직도 많다.
◈ 군사를 축소하는 방법은 지금 두려워 떠는 사람은 길르앗 산에서 떠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3).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러준 가나안 전쟁의 수칙이었습니다(신 20:8). 즉,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신앙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돌아가라는 것입니다.이런 겁쟁이들이 남으면 사상자만 늘고, 다른 백성까지 겁먹게 하여 싸움에 방해가 됩니다. 이에 32,000명 중 무려 22,000명이 돌아가 10000명만이 남았습니다. 이처럼 많은 숫자가 돌아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는가를 보여줍니다.많은 백성이 두렵고 떨면서 돌아갔기에, 이곳 샘의 이름이 ‘하롯’(하로드: ‘떨림’)이 되었다. 이때 기드온의 심정은 복잡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표징을 구한 끝에(6:36-40) 간신히 마음을 추슬러 전투를 하려는데, 병력이 1/3로 줄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여전히 10000명의 군사를 보고 이들도 많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기드온의 눈에는 이만큼 남은 것도 적다고 생각하고 더욱 두려워졌을 것인데, 하나님의 눈에는 이들도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이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전쟁은 어차피 이스라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사들을 또 시험하라고 하십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믿지 못해 시험을 시작되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시험하고, 또한 이스라엘을 시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10000명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라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사람을 지목할지 미리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곳에서 같이 가라고 지명한 사람들만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모호하게 말씀하십니다(4). 이것은 물가에서 상황을 보고 결정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물 마시는 모습에 따라 한 무리를 선택하려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물가로 가서 물을 마시게 합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1) 무릎을 세우거나 선 채로, 손에 한 움큼 뜬 물을 핥는 자와 (2)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물에 가까이 데고 마시는 자를 따로 세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결과로는 수를 세어보니 (1)번 무리는 300명이었고, 나머지 9,700명은 (2)번에 해당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신 300명만을 선택하셨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돌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시험하신 것은 물 마실 때의 경계와 방어 태세였을 수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마시면 적을 경계하거나 공격에 재빨리 방어할 수 없지만, 무릎을 세우거나 서서 마시면 그럴 가능성이 줄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만 빠져있는 사람, 경계하는 사람....
그러나 하나님의 일차적 목적은 인원 감축이므로 어떤 자세였든 소수를 택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300명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을 무찌르게 하실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이제 미디안 군대의 수는 이스라엘의 450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골짜기에서 대치 중입니다.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이렇게 하신 뜻은, 전쟁은 사람의 수에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두려웠습니다.
“네가 두렵거든 부하 부라와 함께 적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11)라고 하십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두려워하던 기드온이 적들의 말을 들으면, 기드온이 용기가 생길 것이고 그러면 미디안을 공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기드온은 부하를 데리고 적진의 전초 기지 경계로 내려갑니다. 9-11절까지는 ‘내려가다’가 네 번 반복되어 미디안을 향한 공격이 다가옴을 알립니다. ‘내려가다’의 문자적 의미는 적진이 골짜기(평원)에 있어 지형학적으로 내려간다는 뜻이며, 실제 미디안 진영은 이스라엘 진영의 북쪽에 있었습니다(1).
적군의 진영에는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들의 장막이 쭉 펼쳐져 있었고, 그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은 미디안을 주축으로 이스라엘을 약탈하던 유목민 무리들입니다(6:3-5). 이들에 대한 묘사(12)는 6:5과 유사합니다. 메뚜기 떼로 비유된 적군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보냈음을 상기시켜(욜 1:4; 2:25), 적군의 침략이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의 죄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께서 이제 이 메뚜기 떼를 다 쓸어버리실 것입니다. 적군이 끌고 온 낙타도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전쟁에서 낙타의 존재는 그 크기와 생김새로 이스라엘에게 위압감을 주고, 말과 철병거처럼 전쟁의 기동력을 대신하며, 노획물을 많이 실어갈 것을 암시합니다.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적진은 기드온을 더 두렵게 했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예고하신 대로(11) 기드온이 적들이 하는 말을 듣게 하시고, 이를 통해 두려움을 없애주십니다(13-14). 적들의 말은 꿈 얘기와 그 해몽이었습니다.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왔고’, 그것이 한 장막까지 ‘와서’, 그것을 ‘치고’, ‘무너뜨리고’, ‘뒤집어버렸으며’, ‘그 결과로 장막이 쓰러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리떡이 장막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자세하고 느리게 전개되는데, 이는 대적 시스라가 야엘의 기습 공격으로 죽는 장면과 유사하며(5:27), 장막의 파괴를 부각합니다.
꿈 풀이는 적군의 친구를 통해 들려옵니다. 보리떡 한 덩이는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을 뜻합니다. 장막이 부서진 것은 ‘하나님이 미디안 모든 군대를 기드온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뜻입니다.
나팔, 횃불, 항아리
2. 300명의 용사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1)이들은 기드온이 하는 대로 따라 갔습니다.
300명의 용사가 한 것은 기드온이 한 대로 한 것 뿐입니다.
“너희는 나만보고 내가 하는 대로 행하되” (7:17)기드온이 나팔를 불며 항아리를 깨고 횃불릉 들고“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라고 외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입니다. “기드온의 칼”에서 기드온이 예수님을 상징한다면 칼은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의 검인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는 성령의 검인 것입니다
[에베소서6: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영적 전쟁에서 성령의 검, 말씀의 검으로 싸워야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전략을 다 가르쳐 주시는 싸움입니다. 그러니 이긴 자 되시는 예수님의 승리가 다가오는 것입니다.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로 이기는 것입니다.
2) 300명을 세대로 나눕니다.
3의 숫자는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이 전쟁에 개입하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군대라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어떻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기드온은 대장되신 예수님 상징한다고 했습니다,횃불은 성령 상징합니다.그리고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사로 택하시고 기드온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고 이 싸움을 승리로 계획하신 분입니다.그러니 삼위일체 하나님이 개입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는 전쟁은 패배를 가져올 수 밖에 없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기 때문에 승패가 여호와께 달려 있습니다 (삼상 17:47)
3)그들은 나팔을 불어 이겼습니다.
구약적으로 나팔은 회중의 모임, 진군, 전쟁 때, 절기의 때에 불려지고 하나님의 임재, 강림시에 불려집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 나팔소리와 함께 임했습니다. (출 19:16)
주님이 오시는 그때에도 재림의 나팔소리가 불려질 것입니다 (마 24:31)
기드온 전쟁에서 나팔을 불었다는 것은 여호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여호와가 강림하셔서 개입했다는 것입니다. 적군들도 이스라엘의 나팔소리의 의미를 이스라엘의 전쟁역사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전쟁에 개입하셨다는 신호로 보는 것입니다. 적군은 나팔소리만 들어도 이미 그 사기가 꺽이고 마는 것입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호와의 나팔이 불려져야 합니다.
오늘날 실제 나팔을 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호와가 함께 하시도록 간구하는기도의 나팔소리,찬송의 나팔소리,영적 파숫군의 나팔소리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4)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어야 합니다.
횃불을 항아리에 감추어 300명이 적진으로 들어갔습니다 적진 속에서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꺼내들었을 때 승리한 것입니다.
항아리 속의 횃불은 항아리와 같은 우리 속에 횃불과 같은 성령의 불이 있는 모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항아리가 깨지듯이 자아가 깨져서 성령이 역사하도록 드러나도록 해야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항아리를 깨지 않으면 횃불이 들어나지 않습니다. ‘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아가 깨져야 하며 그러면 성령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시고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죄인 된 자아, 탐심과 정욕으로 가득찬 자아가 깨어져야 하는데 회개함으로 깨어집니다.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깨어집니다.(갈 5:24) 의지적으로도 날마다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고전 15:31)
전쟁의 결과를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 곧 성령의 음성을 듣고 전쟁에 참가하고 대장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여 자아라는 항아리를 깨고 성령의 횃불을 든 자들로 한마디로 순전히 성령의 사람들이 나아가니 적군은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며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승패가 결정되게 된 것입니다. 이미 이긴 전쟁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지 아니하면 우리들끼리도 자중지란이 일어납니다
납달리, 아셀, 므낫세 지파의 사람과 나중에 에브라임 지파가 참여하여 마침내 적군 13.5천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300명으로부터 시작된 승리인 것입니다.
300명으로 이미 전쟁에서 승패가 결정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삭줍기 하듯이 전쟁의 열매를 취하는 모습입니다. 영적전쟁에 참가한 300명의 용사입니까?
이제 더 나아가 두려워 적군의 수를 보고 떨고 다시 집에 가는 사람입니까?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한 자들입니까? 아니면 제대로 쓰임을 받는 300명입니까?
그래도 마지막이라도 전쟁의 승리에 동참한 자들입니까?
우리 모두 300명의 기드온 용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두려워 떨며 안되고 깨어 있어야 하고 대장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자아를 깨고 성령의 횃불을 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