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話頭]를 참구하는 법
대혜스님의 가르침을 위시한 여러 선장들의 어록과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화두 참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마음으로 모색할 길이 끊어짐
첫째, 화두에는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잡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沒巴鼻)’거나 ‘아무 맛도 없다(無滋味)’(書狀 「答呂舍人狀」)거나 ‘손잡이가 없는 쇠망치(無孔鐵鎚)’(大慧語錄 권9) 같다거나 하는 등의 비유는 이렇게 어떤 길로도 통하지 않는 화두의 본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화두를 공부하는 사람이 그 본질을 실현하게 되면 ‘마음으로 모색할 길이 끊어졌다(心路絶)’(無門關 1則)고 한다.
2. 의단이 독로
둘째, 화두는 그자체가 예를 들면 ‘無’는 있느냐 없느냐 하는 등 논란거리가 아니라 이를 놓고 벌어지는 모든 분별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요한 뜻을 가진다.(무자십절목 참조)
이처럼 조주의 화두를 참구한다고 하는 것은 화두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양귀비가 시녀 소옥이에게 시킬 일이 있어서 소옥아! 소옥아!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3. 무전제의 수행
셋째, 그러므로 언어에 의존하는 어떤 구절이나 그 한계를 넘어서 표현하는 방과 할까지 모두 사구이다.
그러므로 화두는 어떤 전제든 다 부정하는 ‘무전제의 수행’이라고 발제자는 표현한다. ‘무전제’라는 말은 부처님께서 고구정녕히 설하신 ‘무아’와 같은 말이요 용수스님의 공(空)을 뜻한다. 아울러 이것은 금강경과 최초기 부처님 말씀으로 세계의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숫따니빠따 4장에서 말하는 일체 산냐(개념, 관념, 경계, 인식, 명칭)를 척파하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금강경은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자리잡았고 한국불교의 대명사요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된 것이다.
주) 2002년 겨울 실상사에서 열린 금강경결제의 논주로 참여한 각묵스님은 제9일째 발제문에서 금강경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내용과 숫따니빠따 4장의 여러 경전들을 직접 예시하며 이 부분을 확인하였다.
4. 의정의 돈발
그러므로 아무리 정교한 이론을 들이대고 아무리 대신심을 가지고 대분지를 촉발해도 의정을 일으키지 못하면 그것은 간화가 아니다. 그래서 화두를 향해서 끊임없고 쉼없이 의정을 촉발할 것을 종장들은 고구정녕히 설하고 있다. 한 생각이 두 생각이 되기 전에 화두를 제기하여 의정을 일으키는 것이 간화선의 출발이다. 화두를 지속적으로 챙길때 때 의단이 독로한다. 이런 의정을 돈발하게 하는 것 이외에 간화선에 다른 방편은 없다. 화두는 개념적 사고나 특정한 인식 범주를 수단으로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화두에는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은산철벽 앞에 선 것과 같이 어떻게 해 볼 수단도 전혀 없는 경계까지 가야 비로소 선어禪語로서의 화두가 그 효용을 발휘한다. 그래서 고봉스님은 "바로 이러할 때는 은산과 철벽을 마주한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자니 문이 없고 물러서면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선요禪要』)"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퇴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궁구하도록 하는 것이 배촉관이다.
대혜가 "무소뿔로 만든 미끌미끌한 쥐틀에 들어가 거꾸로 뒤집혀서 나아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 쥐"(『서림書狀』「答張舍人狀])라 한 비유도 마음이 더 이상 어떤 수단과 기량도 부릴 수 없는 은산철벽의 경지를 이른다. 이렇게 되어야 참으로 바른 의심 덩어리(의단)를 이룬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 기연을 만나서 견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5. 결론
간화선은 정통 남종선이 본자청정이므로 아무런 공용을 드릴 필요가 없다는 무사선無事禪과,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불리문자不離文字로 되어버린 문자선文字禪과, 깨닫지도 못했으면서 그것을 깨달음의 현성이라 간주하여 앉아서 묵묵히 좌선하는 묵조선黙照禪의 폐풍을 극복하고자 대혜 스님이 주창한 수행법이다. 대혜 스님은 이렇게 무사선과 문자선과 묵조선의 폐풍을 화두나 공안이나 조사관 등으로 불리는 극칙처라는 관문을 세워 이를 통과하는 것으로써 극복한 것이다.
한편 화두는 화두 그 자체보다는 모든 분별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주요한 뜻을 가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정을 일으켜야하며 이 의정이 타성일편이 되어 의단이 독로할 때 화두는 활구가 되는 것이다. 이런 화두 참구는 무전제의 수행이며 이것은 불교의 핵심인 무아와 합치하며 산냐의 척파를 가르치는 선종의 소의경전인『금강경』의 사상과도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