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항상 길 끝에서 날아들었다
날아들어 다른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돌아보면 길은 없고
팻말만 혼자 우두커니 세워져 있었다
‘길’이라고.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없어, 이 길은 숨은 길이다.
그분은 항상 길 끝에서
다른 길을 가리켰다.
그러나 알고 보면 영혼이 갈망하던
그 길이다, 낯설지만 오히려 익숙한.
서울에 올라와 지낸 뒤로 간간이 경주에 가기는 했지만, 한 주일을 옴팍 경주에서 보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경주에 가더라도 하루 일을 모두 마치고 심야버스를 타고 한밤중에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길을 걸었습니다. 경주박물관 앞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5분 거리였지만,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고 반월매운탕집 앞을 지나면 들길입니다. 보안등 불빛에 기대어 걷는 새벽길. 적막하고 아스라합니다. 경주의 하루는 늘 새벽을 이고 찾아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루 이틀 머물다 이내 저녁차를 타고 서울로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어린이집이 한 주간 동안 방학이라서 딸아이와 놀아주려고 나도 덩달아 정해놓은 휴가입니다. 한 주일을 경주에서 지내고, 일과 관련 있는 회의도 있고, 20년 만에 만나는 동무들의 송년회도 있고 하여 날을 잡아 잠깐 서울로 인천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지요. 내가 수년 전에 떠나왔던 곳으로 다시 가는 것입니다. 인천엘 먼저 갔는데, 아침 일찍 서두른 탓인지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한 시간쯤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찾아간 곳이 동인천 시내에 있는 책방입니다. 내 기억이 닿는 데까지 달려가 보아도 예전 그 자리에 있던 책방입니다. 이제는 제법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삼층짜리 책방, 자유공원 오르는 길목에 자리잡은 책방에 들어가 장정과 제목이 눈에 들어와 잡은 책이 도종환 시인이 지은 시집입니다. <해인으로 가는 길>.
해인으로 가는 길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 못하였다”라고 시작되는 ‘해인으로 가는 길’이라는 시편은 일종의 화두(話頭)로 머리에 박혀 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지난 몇십 년 화엄의 마당에서 나무들과 함께 숲을 이루며 한 세월 벅차고 즐거웠으나 심신에 병이 들어 쫓기듯 해인을 찾아간다. 애초에 해인에서 출발하였으니 돌아가는 길이 낯설지 않다. 해인에서 거두어 주시어 풍랑이 가라앉고 경계에 걸리지 않아 무장무애하게 되면 다시 화엄의 숲으로 올 것이다. 그땐 화엄과 해인이 지척일 것이다. 아니 본래 화엄으로 휘몰아치기 직전이 해인이다. 가라앉고 가라앉아 거기 미래의 나까지 바닷물에 다 비친 다음에야 화엄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해인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지친 육신을 바랑 옆에 내려놓고 바다의 그림자가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누워 있다. 지금은 바닥이 다 드러난 물줄기처럼 삭막해져 있지만 언젠가 해인의 고요한 암자 곁을 흘러 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이 있으리라. 그날을 생각하며 천천히 해인으로 간다.”
여기서 화엄(華嚴)은 보살행의 세계를 이르고, 해인(海印)이란 아라한의 세계를 이르는 말인듯 싶습니다. 일찍이 황지우 시인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화엄’이라 부른 적이 있지요. 화엄 광주. 신군부의 폭력 앞에서 낭자하게 피를 흘려야 했던 빛고을 한가운데서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자비와 헌신을 두고 시인은 ‘화엄’의 경지라 말했습니다. 민중의 숲 속에서 서로 형제요 자매라 부르며 이루었던 대동세계이지요. 그들은 모두 보살이 되어 상처입은 이들을 보살피고, 의로운 이들을 격려하며 먹을 것과 마음을 나누었던 것이지요. 그렇듯 도종환 시인은 오랫동안 시인이기 전에 투사(鬪士)처럼 의인의 숲을 이루고 벅차게 살았던 것이지요.
그 이가 이제 해인의 바다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시(詩)를 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잠시 화엄의 현장에서 벗어나 산촌에 들어, 선방에 들어, 가라앉고 가라앉아 제 영혼의 바닥 깊은 곳에서 하늘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늘을 보고 나면 그는 다시 화엄의 숲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더 깊은 맑고 고요한 눈빛으로 사람에게로 가리라 다짐합니다. 그는 본래 시인이었으니 해인이 애초부터 낯설지 않고, 그가 하늘빛을 다시 찾아 저희에게 안아올 것을 나는 믿습니다. 시집 날개에 새겨놓은 사진 한 장. 목장갑을 낀 손으로 호미를 들고 햇발처럼 웃고 있는 시인의 얼굴이 참 따뜻합니다.
종로에서 그를 보다
지난 겨울 초입에 그 사람을 보았습니다. 미군기지 이전으로 집과 농토를 빼앗긴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위해 뜻있는 예술인들이 종각에서 100일째 하던 거리공연을 마무리하던 자리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연구소 계단에도 ‘평택, 평화를 택하라!’는 스티커가 붙여 있지요. 국정사업이기에 국방부에선 군대까지 동원하였고, 아이들의 풍금소리 들려나왔을 대추리 분교가 폭탄을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린 광경을 지난번 대추리 미사에 가서 본 적이 있습니다. 기성 언론에선 대추리 이야기를 기사로 실어주지도 않고,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외롭게 몸바쳐 일하시는 문정현 신부님은 ‘용공 폭력 과격 빨갱이 신부’로 매도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맵싸한 바람이 부는 마지막 공연, 그 자리 역시 화엄의 자리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해인으로 가는 길목을 돌아서 잠시 화엄의 바다에 다니러 오셨던 것일까요? 한 겹 은박지 깔개 위에 앉아 앞줄에 촛불을 세 개나 들고 계셨던 문정현 신부님을 가서 안아드렸지만, 저야 그저 발만 동동거렸을 뿐 아무 도움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화엄의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몸으로 파도를 막고 서계신 문정현 신부님은 그 자체로 화엄에 드신 분이지요. 도종환 시인은 준비해온 시를 낭송하기에 앞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지만, 내게 전해져 온 것은 그 막막함과 안타까움, 그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분들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더불어 숲으로 서있는 것일 텐데, 그마저 쉽지 않은 노릇이기에, 따라서 내 마음도 막막하고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삶으로 길을 열어 가시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을 따라 걷고자 마음을 먹는 것은 그 길이 새로운 길이 아니라, 누군가 이미 갔던 길이고, 다만 내가 처음 걷고 길일뿐이기 때문이지요. 그분들은 그늘진 인생에 지도 한 장 펼쳐 놓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이고, 나는 그 지도를 읽어가며 내 가야 할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겠지요. 화엄에서 해인으로, 해인에서 다시 화엄으로. 이 순간 혁명과 시가 아름다움 안에서 한통속임을 알아채는 지혜를 구합니다. 눈물겨운 사랑이 혁명을 하고, 눈물겨운 시 한편이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움직입니다.
성탄절과 사순절 사이
성탄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사순절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백성들이 빛을 보겠고, 그 빛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게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림시기 동안 한 사람의 탄생을 기쁘게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리한 고난의 끝에, 한 목숨이 소멸한 뒤에 부활의 새벽이 문득 서있음을 깨닫게 되는 게 부활절입니다. 어둠과 빛, 죽음과 부활이 사실상 둘이 아님을 알아보는 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의인의 길이든 성인의 길이든, 화엄의 길이든 해인의 길이든 실상 같은 얼굴로 서로를 비추어줍니다. 어둠과 고난과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게 화엄의 세계입니다. 이 세상이 화엄의 장소일 텐데, 이 세계는 우리가 마침내 기다리던 그 날이 올 때까지 다툼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희망을 던져 주는 것은 의인이요 성인입니다. 그들의 삶이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켜두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다시 살려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성인에게서 길을 얻고, 성인은 의인에게서 몸을 얻습니다. 만일 도종환 시인이 해인에 이르고자 한다면 성인에게서 길을 얻기 위함이고, 다시 화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뜻은 의인에게서 몸을 얻어 온전한 사람, 참사람을 세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독일의 수도승이며 신비가였던 마이스터 엑크하르트가 “사람의 목적은 신이 되는 것에 있다”고 말한 것은 하느님께 우리 영혼이 함몰되어 그분의 바다에 잠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다함없는 하느님의 사랑에 심취하여, 그 든든한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겠지요. “먼저 사랑하라. 그리고 뭐든지 행하라.”고 아우구스띠누스 성인이 말한 것도 같은 뜻이겠지요.
우리가 만일 지금 의인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라면 아직 가야할 길을 마저 걷지 않은 까닭입니다. 우리는 의인도 되어야 하고 마침내 성인도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해인의 바다에 이르어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화엄의 세계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그 희망을 나누어야 합니다. 오래된 땅 경주에서 암세포처럼 커져가는 서울 사이를 오고가는 동안에, 내 안에서 해인의 깊은 뜻이 새겨지고 화엄의 비장한 투신이 아름답게 피어나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날은 어두워지는 데 길은 멀고, 갈 길은 먼데 몸은 피곤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만큼 그분께 가까이 다가서 있음을 안다면 그것도 기쁜 일입니다. 이승에서 다 못하면 저승에서라도 가야할 길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따져 물으면, 우리 삶의 목적은 하느님, 그분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ㅎㅏ늘.
해인(海印)은 묵시록에 보면 다른천사가 도장을 갖고 올라 옵니다.이는 내 백성이다하고 추수해서 도장찍는 천사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