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에메랄드 반지를 낀 새끼손가락으로 눈썹을 매만지는 남자.
베어백 드레스를 입은 곧고 가는 등의 여자.
벨벳 커튼 뒤의 격렬한 키스.
완벽하게 드레스업한 남녀들 사이로 농염하게 스며들어가는 느리고 무거운 선율.
"어쩐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음악이야."
성숙한 여성의 실루엣처럼 유들한 선을 흘리는 나선형의 bar에 기대앉은 남자는
기름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냉정한 얼굴을 하고있다.
오늘 아침, 욕실의 거울앞에 서서 엄지 손가락만한 나이프로 세심하게 다듬은 듯
한 검은 눈썹과 음악에 홀린 듯 반쯤 흘러내린 얇은 눈꺼풀.
그 사이로, 여유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반짝임을 간직한 눈동자가 초생달처럼 걸
려있다. 소년의 호기심과 중년의 노련함이 그의 손에 들린 칵테일속의 몇가지 알
코올처럼 적절한 비율로 뒤섞여있는 매력적인 눈동자다.
"이런 파티, 네 취향이잖아."
곁에 앉은 또다른 남자는 높게 걸터앉은 의자를 휙 반바퀴 돌리며 홀안의 물을 점
검한다.
-휘익
점잖지 못한 가벼운 휘파람 소리에 냉정한 얼굴의 남자가 미간에 주름을 잡는다.
그 주름의 자리마저 완고해 보이는, 모든 것이 적절하게 제자리를 갖추고있는, 결
코 쉽지않아 보이는 남자다.
"여전하구나. 자식- 고리타분하게 굴기는."
곁에 앉았던 까무잡잡한 피부와 천박한 돈냄새를 향수대신 뿌린듯한 차림의 남자
는 그의 어깨를 두어번 툭툭 치고는 바지단이 비칠만큼 반짝거리는 에나멜구두의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홀 안 가득한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어간다. 오늘 밤이 가기
전에 가슴이 깊에 파인 톰 포드의 어느 드레스속으로 손을 넣어야만 하므로.
늘 그렇듯, 파티는 파티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 파티뒤의 한층 더 흥미로운 파티
를 위한 가장 신사다운 초대장일 뿐.
"여긴 변한게 없군."
남자는 사라져가는 동료의 뒷모습에 혼잣말을 던진다.
서울이라는 도시. 그 안에서 거의 매일 연이어지는 상류층의 이브닝파티.
하이톤의 웃음소리에 섞여 들어가는 기름진 말솜씨들.
정말이지, 변한 것이 없었다.
여러 개의 작은 룸들이 진한 자주와 보라의 벨벳 커튼으로 슬몃 가려진채 넓은 홀
을 감시하듯 빙 둘러싸고 있다. 조금 젖혀진 어두운 틈 사이로 드레스 아래 훤히
드러난 눈부시게 흰 허벅지와 하이힐, 그리고 그 사이를 황홀하게 쓰다듬는 마디
가 굵은 손가락들이 비치기도 한다.
약간의 컬이 들어간 윤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살짝 걸쳐진 bar의 남자는
다시 시선을 거두어온다.
그러나 시선은 홀의 끝에서부터 자신의 손에 들린 잔까지 되돌아오지 못하고 팽팽
하게 걸려버린다. 무자비한 배태랑 낚시꾼의 미끼에 걸려버린 연한 아가미처럼 그
는 거의 반사적으로 시선을 되돌려 고정시킨다.
로라 피기의 The look of love, 베이스 음이 두둥 울리는 순간에 맞춰 하얀색 재킷
이 펄럭였을 때는 심장이 덜컹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Don't touch me!"
날랜 동작으로 작은 몸을 휙 돌리며 양손을 들어보이는 뒷모습. 재치있는 제스츄어
였지만 오히려 그것에 반어적인 힘이 실려 상대에 대한 불쾌감이 노골적으로 드러
났다.
bar의 남자는 끝이 둥글게 정돈된 완벽한 분홍빛의 손톱 사이에 담배를 걸었다. 재
킷의 안쪽 포켓에서 손에 익은 오래된 라이터를 꺼내는 동작마저 미끈하고 담백하
다. 그를 지켜보는 홀 안의 울긋불긋한 아이섀도들을 지금까지도 그는 전혀 의식하
지 못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남자는 가느다란 담배끝으로 유난히 가냘프게 번지는 연기를 길게 뱉으며 하얀 재킷
을 입은 날씬한 뒷모습의 남자가 마주 서있는 룸안을 슬쩍 들여다 본다. 마치 누군가
봐주기를 원하는 듯이 활짝 열려진 커튼 틈 사이에서 몸이 달아올라 서로를 탐닉하
는 것은 턱시도와 드레스가 아니였다. 남자는 도톰한 입술 사이로 숨을 깊이 들이쉰
다. 하얗게 바짝 여윈 담배끝에서 타닥, 빨간 불꽃이 수줍게 일어난다. 그의 입술에
닿은 것을 기뻐하는 처녀마냥.
또 한번 휘릭, 하고 턴을 도는 하얀 재킷을 엷은 갈색의 털로 뒤덮인 커다란 손등이
덥썩 잡아챈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포개진 다리의 방향을 바꾸어 앉았다. 세상에 태
어나 이십년 조금 넘는 그동안의 삶속에 꾸준히 계속 되어왔던 신사다움에 대한 교육
이 아니었다면 손에 들린 담배를 미련없이 떨구어 버리고 저벅저벅 걸어가, 그 날개
같은 하얀 재킷을 입은 자의 얼굴을 당장에 확인하고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담배에 호흡을 맞추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one. two. three....
활짝 젖혀진 커튼 틈 사이에서 서로 뒤엉킨 검은 턱시도와 검은 나비 넥타이. 말끔하
게 주름을 잡은 이탈리안 셔츠위의 blue eyes. 아르마니의 베일듯한 컷팅위로 쾌락
의 신음을 뱉는 brown eyes.
그의 흥미는 더욱 고조된다. 그럴수록 분홍빛 손톱사이 가느다란 담배가 뱉어내는 회
색 재의 길이도 더욱 깊숙해진다. 이것은 이미 초조함에 가깝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음악이 멈추고 파티의 호스트가 인사말을 하는 동안에 몇개인가의 핀라이트가 홀안
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여우주연상 발표를 앞둔 시상식같은 촌스러운 설정이라고
그는 입술 끝을 올렸다. 이미 흥에 취해버린 호스트의 횡설수설에 사람들이 호들갑
스럽게 응해주는 동안에도 그는 벨벳커튼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작은 소란에만 신경
이 쏠려 있었다.
four. five. six....
그의 상쾌한 두뇌는 천천히 상황을 추리해 나간다. 몇 개의 그럴듯한 가설들이 1번,
2번... 하는 식의 번호표를 들고 죽 늘어선다.
가위로 오리고 풀로 잘라 정성스레 다려놓은 듯 가벼운 하얀 재킷이 금발의 덩치에게
날린 것이 매운 주먹이나 발길질이 아닌 깜찍한 따귀였을때, 그는 재빨리 머릿속의
리스트를 몇 개로 간추렸다.
seven. eight. nine....
그는 우아한 손놀림으로 크리스털 재털이에 담배를 비벼끈다. 스륵, 손가락을 들어
바짝 마른 입술을 매만지고는 재킷의 매무새를 바로잡는다. 거만한 턱의 각도가 느
린 움직임으로 단 한방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하얀 재킷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펄럭이는 순간.
ten.
그는 웃고 말았다.
동그스름한 선을 그리는 입술옆으로 보조개처럼 잡히는 몇 가닥의 주름이 황홀하다.
밝게 물들인 짧은 머리칼을 정성껏 손질한 하얀 재킷의 작은 얼굴. 짝, 하고 좋은 소리
가 나도록 뺨을 후렸건만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꼭 깨문 입술안으로 주륵 눈물이 흐르
고만다.
"뭐야!"
잔뜩 성이 난 흰 나비는 자신의 거침없는 발길을 붙잡는 또다른 불청객에게 화르륵 쏘
아붙여주지만, 그는 정말로 뜨거운 불이라해도 절대 놓지 않겠다는 기세다. 여유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반짝임은 이제 눈동자를 벗어나 얼굴 전체에 꽃처럼 만개해있다.
음악은 다시 시작됐다. 옆선이 허리선까지 트인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높은 스테이지
위에 올라가 몸을 꼬고 있었다. 술과 담배와 음악과 색(色)에 취한 사람들은 번쩍이는
조명과 후끈한 열기를 핑계삼아 낯선이의 몸에 더욱 가까이 자신을 밀착시킨다. 망설
일 필요는 없다.
"망설일 필요 없어."
내일 아침이 밝아오면 짙은 화장을 지우고 야한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긴 머리에 핀을
채우고 검은 정장 스커트를 입은채 자신의 사무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며 일주일의
스케쥴을 체크할 것이다. 오늘이란, 이 장소란, 암묵적으로 허가된 탈선을 즐기는 시간
과 공간이다. 그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
남자는 눈물때문에 반들반들 윤이나는 눈동자가 한순간 유리처럼 잘게 부서졌다가 곧
어지럽게 교차되는 생각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느긋이 지켜본다. 이제 남자의
머릿속 리스트에서 선택된 가설은 하나뿐이다. 그것을 정설로 발표하는 일만을 기다리
고 있다. 흰 나비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 뒤늦게 날개를 파닥거려 본다. 노려보는 시선
은 마냥 귀여울 따름이다.
여전히.
"따끔거려. 노려보지마."
그의 말은 나비의 자존심에 흠집을 낸것이 분명하다. 파닥이는 날개짓이 좀 더 신경질
적으로 변했다. 짧게 친 머리덕분에 가냘픈 뒷목이 훤히 드러났다. 남자는 마른 침을
삼킨다. 세포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라고 하지마.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좋아했던 몇몇 곳은.
턱과 목이 연결되는 옴폭 파인 그곳.
"턱을 좀 더 들어봐."
"하아..."
뜨거운 온기 가득한 숨을 가늘게 내쉬며 부서질 듯 가녀린 턱을 뒤로 더 치켜들면 아름
다운 선이 훤히 드러난다. 얇은 턱뼈와 한줌에 들어오는 목으로 이어져 어깨와 팔로 미
끄러져 내려가는... 숨. 붉은 숨.
그곳에선 희미한 제비꽃 향기가 났다. 제비꽃의 암술 수술에 코를 대고 그 향을 맡아본
적은 없었지만 그는 늘 확신했다. 분명 제비꽃의 향일거라고. 그것이 소년에게 어울린
다고.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야윈 몸을 내리누르는 하체에 모든 것을 실었다.
-나를 잊지 못하게 해주겠어.
너를 더욱더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어.
더 가까이. 더 깊게 닿을 수만 있다면, 나는 날이 밝아온다해도 멈추지 않겠어.
결코, 나를 잊지 못하게 해주겠어.
그 사랑스런 입술과 혀끝에 아예 나의 이름을 새겨넣겠어!
"그렇게 온몸으로 싫다하더니, 내가 없는 사이에 취향이 많이 바꼈나봐.
양키들까지 상대하고 말야."
치졸한 질투심.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던 나를 뒤흔들고, 이십여년간 몸에 베이도록 훈련받아온 신사
다움을 송두리째 위협하던 너의 치명적 매력.
남자는 뱉은 말을 후회한다.
후회 - 너무나 낯선, 어색한 단어.
"상관없잖아."
으으음.
그럴때는 좀 더 비꼬는 투로 눈을 내리깔라고 가르쳐줬잖아. 그렇게 원망스러운 표정으
로, 마치 좀 더 철저히 상관해달라는 듯이 말하면 곤란하다구.
서울의 밤. 그 아래 은밀한 곳에서 밤마다 이어지는 여자의 꼬리처럼 부드럽고 요사스러
운 파티. 파티. 파티들. 변한것이 없었다.
남자는 나비의 손목을 쥐지않은 다른 손으로 잔을 들어 남아있던 칵테일을 한모금에 털
어넣는다. 그래도 한번 치솟기 시작한 질투의 불길은 좀처럼 잡아지지가 않는다.
이런식으로 언제나 나를 엉망으로 만들지. 너는.
"아파! 놔!"
형편없이 취해버린 가슴이 빈약한 말라깽이 여자와 기름기 흐르는 긴 머리를 올백으로 넘
긴 남자가 서로의 허리에 대롱거리며 벨벳 커튼뒤에서 기어나왔다. 그쯤 됐으면 이제 진
정한 파티를 위해 장소를 옮길때도 된 것 같다. 둘 다 너무 취해버려서 그게 잘 될지는 모
르겠지만.
남자는 그들이 허물벗듯 빠져나온 커튼 뒤의 작은 요새로 흰 나비를 잡아끈다. 거칠어지고
싶지 않지만, 손아귀 안에서 자꾸만 꿈틀거리는 가는 손목의 반항을 느낄때마다 저지할 수
없는 정복욕이 끓어오른다.
여유를 부릴 수 있는것도 처음 몇 초 뿐.
여전히.
아찔한 감촉의 실크가 길게 늘어뜨려진 소파위에 내던지듯 흰 나비를 놓아준다. 그와 거의
동시에 묘한 광택을 내는 벨벳 커튼으로 입구를 봉해버린다. 나비는 줄곧 잡혀있던 왼쪽
손목을 주무르며 물기 촉촉한 눈을 치켜떴다.
"상대를 위협하고 싶을땐 그렇게 하는게 아니랬잖아."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리며 느긋한 척 연기를 해보지만, 이런건 비아냥거림일 뿐 결코 여유
가 아니다. 더욱 마음이 상해버린 나비는 가득 고여있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눈에 바짝
힘을 주며 자리에서 발끈 일어선다.
여리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정작 섬세
한 망이 달린 자루를 가지고 조심조심 나비를 잡으러 다가갈때면 그런 주의사항들은 까마
득히 사라지고 말았다. 나비의 어딘가 연약하고 슬퍼보이는 아름다움은 말초신경의 바닥
끝을 살살 긁어대며 남자의 이성을 박살내버리곤 했다. 나비를 잡기위해 준비했던 레이스
처럼 고운 망사가 달린 자루는 멀리 던져버리고 부드러운 날개를 두 손으로 우악스럽게
쥔채 나비의 곳곳을 자신의 흔적으로 채우는 데에만 정신이 팔리는 것이다.
나비가 외마디의 가냘픈 비명을 지를때쯤 후회는 시작되고 남자는 무너진 자존심을 억지
로 추스리며 말하곤 했다.
"네탓이야."
내 핀을 확 뽑아버리는 너의 잔혹한 아름다움 때문이야.
두 손을 비비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동정을 호소하면 오히려 더욱 괴롭히고 못쓰게 만들어
버리고 싶은 가학성을 자극하는데에 너는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것도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 얘기지만.
그러니 네탓이야.
나는 나비의 날개를 꺾으려던게 아니라구!
"착각하지마. 장우혁.
나 더이상, 예전의 병신같던 안승호가 아니니까."
그 혀와 입술에 새겨놓았던 내 이름을 뱉음으로써 너는 결국 내게 말할 수 없는 쾌감과
승리감을 안겨 주었다는걸... 너는 꿈에도 모르겠지.
남자는 아직까지 남아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 하나마저 성감대를 간질이듯 속삭이는 여가수
의 흐느적거리는 목소리에 스르륵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며 흰 나비를 한쪽 벽으로 바짝 붙
여 세웠다. 그렇게나 좋아했던 목선이 바로 앞에서 눈과 정신을 홀리고 있었다.
"그렇게 바짝 털세우지 않아도 돼.
오늘은, 이 장소는, 모든 것을 모른척 해줄테니까."
우연히 어깨를 부딪힌 섹시한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춤을 청하고 지나치게 밀착된 하체의
짜릿한 자극에 맞추어 자신의 가슴을 상대의 단련된 근육에 지그시 누르는 것. 그리고는
남자의 에스코트를 따라 이 호텔 윗층의 근사한 룸에서 파티의 절정을 불사르는 것. 그게
이곳의 여자들이 오늘 밤을 위해 드레스를 고르고 정성껏 화장붓을 놀린 이유인 것처럼.
너도. 나도. 잔뜩 풀어 헤쳐진 이성의 끈 사이로 서로의 혀가 너무 촉촉해 보여서 끌린 것처
럼. 그렇게 생각해버려.
오늘 밤은, 이 장소는. 그것을 위해 마련된 것이니까.
"턱을.. 좀 더 들어봐."
몸에 착 감기는 돌체앤가바나의 화려한 티셔츠위로 아슬아슬 드러난 쇄골에서부터 시작해
가늘고 긴 목을 타고 올라가는 아랫입술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런데 어떻게 처음
만난게 될 수 있을까.
턱과 목이 이어지는 그 매끈한 황홀경속으로 막 빠져들려는 찰나, 고맙게도 바싹 마른 내 입
술을 적셔주는 축축하고 짭짜름한 액체를 삼켜내면서.
여전히 아련한 제비꽃 향기.
"네가 나빠. 네가 먼저 버린거니까. 그러니까 네가 다 나빠."
등을 두드려대는 두 주먹에 애초에 힘따위는 실려있지 않은걸.
좋아하지도 않는 이런식의 너저분한 상류층 파티에 때마다 잊지않고 얼굴을 내민건 굳이
말로 설명하기엔 낯부끄러운 이유때문.
탄탄한 어깨에서 이어진, 푸른 힘줄이 솟은 한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우아한 동작으로 턴
을 도는 남자.
그 남자의 다른 한손에 들린 잔에서 경쾌하게 찰랑이는 벨벳같은 와인.
아찔한 하이힐위에 가느다란 발목을 올리고 하늘거리는 부채뒤에서 뜻모를 웃음을 흘리는
여자.
매캐한 담배연기 아래에서 몽롱해져만 가는 눈빛들.
목을 조르는 띠를 풀어라.
뇌를 감시하는 눈동자를 나이프로 찔러라.
오늘 밤은, 이 장소는, 오직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파라다이스.
그러니 망설일 필요 없어.
안겨. 나의 품에.
감아봐. 너의 혀를.
신음과 숨결과 떨림을 모조리 이 밤에, 이 장소에 다 풀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