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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문신 정홍순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의 일이다. 왕이 동구릉에 행차를 했다. 정홍순은 그때 왕의 행차에 구경을 갔는데 비가 올 것을 대비하여 갓모를 두 개 가지고 갔다. 하나는 자신이 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이 쓸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때마침 그날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그는 갓모를 썼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비를 맞고 쩔쩔매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내게 갓모 하나 더 있는데 빌려드릴까요?"
그러자 그는 너무 고마워하면서 갓모를 빌려 썼다.
구경을 끝내고 헤어질 무렵 정홍순은 빌려준 갓모를 되돌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비가 그치치 않고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부탁을 했다. "죄송하지만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이니, 댁의 위치를 가르쳐 주시면 제가 비가 그친 후 꼭 돌려드리리다."
인정상 우겨서 되받아 오기는 곤란해서 정홍순은 자기 집을 자세히 일러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상대방 집 주소도 알아 두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이 되자 갓모를 빌려 간 사람이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이었다. 저녁때까지 기다렸으나 헛수고였다. 화가 난 정홍순이 해질 무렵 그 집에까지 가서 갓모를 되찾아 왔다.
그런 후 세월이 흘러 정홍순이 호조판서가 되어 새로 부임한 호조좌랑의 신임 인사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정홍순은 그 신임자가 오래 전에 갓모를 빌려 갔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정홍순이 그에게 말했다. "갓모 하나도 약속한 날 되돌려주지 못하면서 어찌 나라의 살림을 맡게 될 호조의 관리가 될 수 있겠는가. 자네는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네."
그래서 정홍순은 그를 파직시켜 버렸다.
신용을 저버리는 사람은 큰일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신용이 없는 사람은 온전한 인격체라 할 수 없다.
또 어느 날은 정홍순이 호조판서로 있을 때 그의 집을 수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 수리가 끝나자 목수가 처음에 약속한 돈보다 더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단호히 거절하자 목수와 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다.
이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그까짓 것 몇 푼 안 되는 돈인데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느니 차라리 주어 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정홍순은 아들의 말을 한마디로 거절하면서 말했다. "당초부터 서로 약속했던 액수이므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옳은 도리이다. 그리고 돈을 마구 올려주면 돈이 없는 사람들이 곤경을 겪을 때가 반드시 생길 것이다."
-한국인의 유머 중에서-
신용을 잃으면 예나 지금이나 설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가볍게 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시간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사람이 시간을 어기면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지난 일요일 한 산악회를 따라 산행을 했는데 출발시간이 칼이었습니다. 단 1분도 지체함 없이 출발했습니다. 지난 날 우리가 성지순례할 때 20~30십분 지체함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불자가 아닌 일반 산행인들의 시간 지킴이 이와 같아서 지난 날을 뒤돌아 보니 단 한 번도 20분이내에 출발한 적이 없음을 보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이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오늘도 비내리는 화요일입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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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작고 보잘것 없는 약속도 지켜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갓모 하나로 신용없는 사람이 되버렸으니, 저도 될 수 있으면 시간약속은 지키고 있지만 시간개념 없는 사람들 꽤 많더군요.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예, 사소한 것을 저버리는 사람이 무엇인들 가벼이 여기지 않겠습니까 입에서 나온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약속하기 전에는 심사숙고해야 하는데 가볍게 공약 남발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신용을 땅에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_()_
아, 이 얘기군요. 무슨 얘기 해준 것이... 신용을 지키지 않으면 경망하게 보이죠.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