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의 『달의 지평선』은 한 편의 서사라기보다는 정교하고 세련된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읽힌다. 그 조합에는 달, 태양, 별 등의 천체어와 안개, 바람 등의 기상어가 교묘히 섞여들어가 환각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분위기에 소설의 서사가 가물가물 꿈결처럼 이어진다.
운동권 출신인 남창우, 철하, 은빈이 있다. 남창우는 은빈과 결혼했다. 철하가 감옥에 있었던 관계로 창우와 은빈은 철하에게 부채의식이 있다. 이 부채의식은 질투심과 맞물려 그들을 이혼하게 만든다. 은빈은 이탈리아에, 철하는 제주도에, 각각 자신을 유폐시키고 창우는 탤런트가 되어 텔레비전 속에 자신을 가둔다. 그 다음의 소설의 진행은 창우의 연애담으로 이어진다. 서주미, 김혜정, 나수연, 이명숙, 다시 은빈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각각의 이미지로 자신을 연출한다. 서주미는 달과 어둠을 표상하는 여인이다. 정체불명의 낚시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인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서 어머니의 사주를 받아 남창우와 심각한 연애를 하고 상처받는다. 나수연은 사라반드라는 장미와 햇볕과 하얀 자전거로 표징되는 빛의 여인이다. 몹시도 몽환적인 이 여자는 이 소설에서 님프 혹은 모신(母神)과도 같은 존재로 자기 희생을 통해 남창우에게 삶의 계시를 던져준다. 이명숙은 무주의 설천과 형천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여인이다. 이 여인은 창우와 은빈의 재결합을 감질나게 하기 위해 설치된 소품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남창우는 은빈과 재결합한다. 이렇듯 이 소설은 80년대의 후일담에다 90년대 한 남자의 여성 편력이, 주된 서사적 골격이다.
이 소설에서 주목하고 싶은 인물은 주미의 어머니와 나수연이다. 주미의 어머니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버린 낚시꾼에 대한 복수를 남창우에게 감행한다. 그러니까 남창우는 처녀성을 훼손한 모든 남자의 대표가 되는 셈이다. 남창우 입장에서 본다면 주미의 어머니는 악녀 그 자체다. 그녀는 남성성의 행사를 방해하고 동침의 책임을 요구하는 훼방꾼이며, 나쁜 장모의 표본이다. 다른 말로 「춘향전」에서의 월매의 현대적 변용이다. 반대로 나수연은 자신의 처녀를 제 손으로 찔러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면서까지 남창우의 홀로 서기를 돕는다. 그녀는 평강공주이면서 조해일의 『겨울여자』의 ‘이화’여서, 남자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천사 그 자체다. 이 둘은 이 소설의 종착역인 남창우와 은빈의 재결합에 역기능과 순기능을 각각 수행한다. 바로 이런 여인의 성격으로부터 윤대녕 소설의 한 특징을 꺼낼 수 있다.
이 소설은 주제적으로 본다면 ‘타인을 사랑하기’일 것이다. 남창우와 은빈이 이혼한 것은 철하의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 철하라는 존재를 의식하는 남창우의 마음 때문이었다. 남창우는 있는 그대로의 은빈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남창우가 나르시시스트였기 때문이었다. 나르시시스트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수동적이다. 설혹 관계를 맺는다 해도 자기 연민으로 인해 적극적인 사랑이나 원만한 애정관계가 불가능하다. 『달의 지평선』에서 남창우는 인연을 맺는 모든 여자에게 수동적이다. 설혹 여자를 유혹하고 싶다 하더라도 여자가 먼저 몸짓이나 신호를 보내게 만든다. 나수연은 이 년째 엽서를 보내다가 그를 찾아오고, 김혜정은 혼수 상태의 남창우와 일방적으로 성행위를 시도한다. 이명숙에게 다가감도 그녀가 늘 앉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그녀가 먼저 술을 보내게 하여 가능해진다. 이렇게 주인공을 나르시시스트적인 성격으로 설정한 것은 윤대녕이라는 작가의 민감한 감수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감수성으로 인해 소설의 주인공은 상처에 약하며, 그 상처를 두려워해서 자신을 더욱 유폐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 나르시시즘은 완전한 것이 아니어서 외부에 대한 사랑에의 갈망은 내면에서 오히려 증폭된다. 타인에게 가고 싶지만 자신 있게 가지 못하는 이 딜레마가 바로 남창우의 본질적인 문제이며, 윤대녕의 소설이 타인을 마음대로 사랑하기 힘든 이유이다. 용기 있게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윤대녕은 천사와 악녀를, 그리고 철하와 송해란과 강익수와 김혜정을 등장시켜, 어렵게 어렵게 은빈에게 다가간다.
은빈에게 이른 남창우여, 부디 그 사랑에서 안온(安穩)하기를!
(문학동네 1999.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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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형께/윤대녕 소설가(가슴에 묻어둔 이야기)
우리가 만난 지 그새 이 년이 지났군요.제 첫 창작집 「은어낚시통신」이 나온 직후였으니까요.캄캄한 밤 예비군 훈련장에서 우리는 만났습니다.하필이면 예비군복을 입고 만날 게 뭐였습니까? 하지만 뭐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아무튼 우리는 그후 참으로 자주 만나 문학에 관한 숱한 담론들을 나눴지요.그때마다 당신은 제 작품에 대해 너무 조심스런 말만 했지요.그럴 필요가 없었는데요.아시다시피 저는 제가 쓴 작품에 대해 늘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려고 합니다.어떤 의미에선 앞으로 작품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져 있잖냐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만났을 때 당신은 처음으로 제가 쓴 소설에 대해 정식으로(?) 꼬집어주었습니다.이를테면 시원론,운명론 쪽으로 너무 기울고 있지 않냐는 얘기였지요.그러다 보면 현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되레 어정쩡한 현실타협의 분위기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냐는 지적이었지요.생각해오던 바이긴 하지만 당신한테 직접 그 말을 들으니 대뜸 느껴져오는 바가 있더군요.역시 자아와 현실,운명과 역사에 대한 적절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저는 곧 새로운 단·중편 소설에 들어갈 계획입니다.너무 많이 쓰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오래 전부터 미뤄온 얘기라 지금 쓰지 않으면 또 영영 쓰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우리는 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고 청춘시절을 보낸 사람들입니다.한데 근래 와서 저는 저를 포함한 이들 삼십대 중반의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들을 많이 훔쳐보았습니다.묘하게 맥이 빠져 있는 우중충한 분위기 말이지요.따지고 보면 우리 삼십대처럼 시대와 현실에 민감했던 세대도 없었는데 말입니다.물론 제가 삼십대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우리 청춘이 시작되고 끝난 기점이 80년대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 아닙니까.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후일담 소설을 쓰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우리 앞에는 바로 이천년대라는 인류사의 거대 시점이 기다리고 있고 그때 우리는 바야흐로 사회의 중심 세대인 사십대가 됩니다.그렇기 때문에 한편 구십년대라는 것이 제게는 늘 화두였던 것입니다.저는 이제 팔구십년대를 아우르고 이십일세기적 전망을 탐지할 수 있는 작품들을 쓰고 싶습니다.그러기 위해서라도 저는 곧 사십대가 될 우리 세대의 정체성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왠지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어떻게든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지요.아무튼 저는 저 위악스럽던 시절의 얘기를 더 늦기 전에 써볼 참입니다.아직도 우리를 주눅들게 하는 그때 그 시절에 대해서 말입니다.개인사적으로 따져봐도 청춘시절을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장년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죽 지켜봐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국민일보 1996.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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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씨 '왜?'란 질문 다시 해보시지요>
윤대녕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여기에 90년대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적 자아의 공적 승화라는 강박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80년대가 가장 절정의 단계에 올라 있을 때조차도 나는 문득문득 그 모든 것들로부터 몸을 돌려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충동은 아니었다. 지금 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 삶과 역사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을까 하는 초월충동, 다른 말로 하면 시적 충동이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윤대녕이 80년대에는 은폐되고 억압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시적 충동을 소설을 통해 표현해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라는 물음을 괄호 속에 넣은 채 자기 삶으로부터의 낭만적 일탈을 시도하다가 다시 일상 속으로 추락해 돌아오는 그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운명 속에는 더 이상 80년대식의 언어로 삶을 해명할 수 없게 된, 그러나 새로운 언어는 아직 갖지 못한 90년대적 인간들의 비극적 딜레마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윤대녕이 즐겨 기대 온 <무진기행> 풍의 서사구조, 즉 고독과 소외와 낭만적 일탈충동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여행과 그 여행지에서의 낯선 여자와의 우연한 만남과 그를 통한 영혼의 극적이고 비일상적인 고양, 그리고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이제는 아주 낯익어진 서사구조도 어언 10년을 묵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매너리즘이 되어간다. 최근 발표된 그의 중편 <흑백텔레비전 꺼짐>(<문학동네> 2000년 봄호)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혼자 사는 한 남자가 여행 중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하지만 그 여자는 결혼식 날 홀연히 사라지고 대신 그 여자의 이복언니가 그 미스터리의 열쇠를 쥐고 그에게 접근해 세상으로부터 사라져버린 자신의 이복동생 대신 이 남자와 맺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는, 한 남자와 이복자매와의 성적 결합이라는 소재의 선정성 외엔 아무 것도 전해주는 바가 없다. 작가는 여기에 부패한 한국현대사의 이면을 끌어다 붙여 이 선정물을 잘못된 역사로부터 희생된 존재들의 이야기쯤으로 위장하고자 했지만 그 의도와 실제는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다. 여행과 만남과 복귀라는 윤대녕 득의의 서사구조는 처음엔 잃어버린 시원의, 접할 수 없는 영원의 탐색을 위한 하나의 미학적 필연으로 선택된 것이었지만 그 주제의식에 더 이상 진전이 없게 된 지금은 그저 껍질뿐인 통속적 장치로만 남게 되었다. 그것이 매너리즘이다.
그가 일찍이 괄호쳐 두었던 `왜?'라는 물음에 성실한 대답을 추구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 시대의 적대성의 본질에 육박해 들어가지 않는 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선정적 소재와 그것을 곱게 포장할 허망한 미문뿐일 것이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90년대 문학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요즘 남자다운 남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을 남자들끼리 모이면 주고받곤 한다. 남성성이 상실돼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거세의 불길한 징후이기도 할 터인데 그 문화사적 증거 중의 하나는 요즘 매스컴에 거론되고 있는 연하남 연상녀 커플의 등장이다. 전부 다라고 하면 아니 될 테고 이는 한편 모권에 안주하려는 남자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요즘처럼 남성의 힘이 무력해진 시대는 일찍이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느 시대든 ‘먹여살리기’의 기능이 약화되면 주권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모름지기 권위라는 것은 근력을 통한 생산성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요즘 시대에 주권이야 어느 쪽에 있든 그저 조화롭기만 하면 되겠지만 세상은 여전히 근력을 필요로 한다. 근력에 의해 세상의 아름다움은 비로소 완성된다.
그는 사진 예술가이다. 동시에 부모와 아내와 자식 둘을 먹여살리는 가장이기도 하다. 오래된 뿔테 안경 속에서 그의 눈은 늘 순수에 목말라 번들거리고 있다. 왜소하고 마른 몸매에 늘 소박한 점퍼 차림이지만 말과 행동이 지극히 간결하고 그런 만큼 때로 섬뜩한 깊이가 느껴진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몇 해 전 그는 사직서를 쓰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잠시 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곧 세차장에 취직해 몇 년간 남의 차를 닦으며 살았다. 물론 틈나는 대로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작업을 하러 다녔다.
작년에 그는 세차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재산을 모아놓고 사진만 찍겠다는 각오였다. 그러다 올 가을에 부도를 맞아 그동안 모아두었던 거의 전재산을 잃게 되었다. 그 즈음 가끔 그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 며칠 만에 툭툭 털고 일어났다.
얼마 전 그는 가까운 사람들을 집에 불러 음식과 술을 대접하면서 곧 콩나물 공장에 취직할 거라는 말을 했다. 그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은 콩 지게를 지는 일이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자랑처럼 드러내며 그 특유의 순수한 웃음을 웃어보이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얼굴이 조금 무서워보였다. 그가 품고 있는 마음의 강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래서 그는 아름다워 보였다. 그가 찍는 사진의 깊이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엊그제 그가 김장김치를 몇 포기 가져다 주었다. 그날 그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내가 김치가 맛있다고 했는데 취중에도 그 말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김치통을 열어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김치를 포장하고 묶은 끈 때문이었다. 누구의 솜씨인지 못쓰게 된 고무장갑을 가위로 세로로 잘라 고무줄 대용으로 쓴 것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이 지난한 삶이 그토록 긍휼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아프게 깨닫고 있었다.
(경향신문 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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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사슴벌레 여자' 윤대녕
2001/05/23 09:46 매경News
초여름의 오후 햇볕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약속장소에 먼저 와 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인 듯 그는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떼지 않고 밖에서 기자를 기다리고 있다. 중키에 마른 체형, 음영이 짙은 얼굴을 가진 그는 캐주얼한 옷차림에 배낭을 맨 차림이다. 어디든 당장이라도 훌쩍 떠날 것 같은 태세다. 마른 얼굴 탓일까? 예민해 보이면서 다소 쓸쓸해 보이는 인상이라고 말을 건네자 자신을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받는다.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해 몸에 밴 탓이라고 했다. 때론 '내가 사람을 싫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스스로 품을 때도 있단다. 실제로 그는 출판사에도, 문단에도 얼굴을 거의 내밀지 않는 작가다. 직선적이고 담백한 그의 성향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특히 최근 출간한 다섯 번째 장편소설 '사슴벌레 여자'를 보면 작가가 전작에서 능숙하게 다뤄왔던 '간결하고도 시적인 문장'이 한층 더 강화됐음을 알 수 있다. 덧붙이자면 오래 전부터 검증된 그의 몽환적이며 시적인 문체에 탄탄한 구성력까지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전에 썼던 작품들에 비해 의도적으로 정서적 농담들이 많이 배제된 문체로 썼어요. 미니멀리즘 계열에 매료돼 군더더기 없는 쿨(Cool)한 문학을 하고 싶었거든요. 쉽게 이야기하면 정서적 낭비가 없어진 셈인데, 결과적으로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슴벌레 여자'는 디지털 시대에서 점차 왜소화되고 소외되는 인간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기계화된 세상에서의 현대인의 정체성을 묻고 있다.
주인공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깨어난다. 왜 그 곳에, 얼마나 쓰러져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신용카드나 신분증 등 모든 소지품도 사라졌다. ' 나'는 해리성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어 시청역, 세종로, 안국동 등을 배회하고, 우연히 '노란장미'(서하숙)라는 아이디를 쓰는 키가 작은 라면요리사를 만난다. '나'는 그녀로부터 '달걀도둑'이란 이름을 얻게 되고 둘은 동거에 들어 간다. 그리고 그녀의 제안으로 유령회사를 통해 이명구란 사람의 기억을 이식 받는다. 하지만 기억 이식 후 그는 감정의 불안을 느끼고 기억의 원 주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원주인의 연인이 자살하는 현장에 있게 된다. 윤대녕 씨는 이 작품에서 인간을 사이보그에 비유했다. 인간의 감수성도, 기계의 냉정함도 갖지 못한 어정쩡함. 그것이 '한갓 낡은 실처럼 쉽게 끊어져 버리는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고독한 '사이보그'들의 운명인 것이다.
"어느날 광화문 사거리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한결같이 휴대폰을 손에 들고 다니더군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디지털 문화, 나아가 디지털 권력에 지배당하고 있구나' 하고요. 사람들이 너무 기계적으로 느껴졌어요. 관념을 지우고 보면 마치 명령 부호나 바코드 기호에 의해 영향받고 살아가는 사이보그처럼 보여요."
그는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은 실질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기 보다는 인터넷, TV 등에 의지하는 경향이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 결혼도 하고, 불륜도 하고, 자살도 하는 세상. 어려운 인간관계를 맺기 보다는 편리한 그리고 거부하지 않는 기계 속에 숨어버리는 요즘 젊은이들. 그들은 화면을 켜고 인터넷에 들어가는 순간 정체성이 사라지고 익명이 된다.
윤씨는 "현대 사회의 많은 부분이 정보 기호나 디지털 수치로 변하면서, 인간이 그 안에서 심각한 가속도로 비인간화되어 간다."고 우려한다. 소설 속에서 기억의 원주인이 살해하고 싶었던 여인 차수정이 주인공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OFF 스위치'를 눌러 달라고 요구한 것처럼, 디지털시대에서 어느 순간 코드를 빼면 우리를 이루고 있는 모든 정보나 기억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문학평론가 백지연씨는 첨단문명을 사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극대화된 상상적 어법으로 그린 이 소설을 두고 "존재의 순간성에 심리적 체험의 영원성을 부여하면서 현대인의 노스탤지어의 욕망을 하염없이 자극" 한다고 말했다.
윤씨의 이번 소설은 변신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투영됐다는 점에서도 각별하다. 이미지보다는 스토리, 서정적인 자연에 대한 묘사 대신 스피드한 플롯으로써 소설이 갖는 '이야기'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덕수궁 오르세 미술전, 지난 3월의 폭설 등 이야기 시점이 아주 근자의 것들이라 생동감이 넘치고 뜨끈뜨끈하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2년이 걸렸어요. 세기가 달라지면서, 연대가 달라지면서 작가로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농담으로 안받아들여지는 정보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의성을 맞춰 쓰기 위해 4 번이나 고쳐 썼지요. 오르세 미술전, 불과 3개월 전의 폭설 이야기가 가미된 것은 그런 수정 과정을 통한 거예요."
<>여행은 조강지처, 술은 애첩<>
윤씨는 여행을 많이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올해 '사슴벌레 여자'에 앞서 등단 10여 년만에 처음으로 낸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도 여행산문이다. 여행길의 작가가 '당신'에게 띄운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작가는 편지의 한 대목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의 이름은 운명적으로 모두 여행인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작가의 여정은 고창 선운사와 양양 낙산사, 제주도 등 국내는 물론이고 발리와 베니스, 아오모리, 난쩌우 등 외국의 지명들이 두루 포함된다. 산문집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윤씨와 친숙한 곳임이 틀림없다. 윤씨 자신 도 어느 한 곳에 머무는 것을 못견뎌할 정도로 국내는 물론 해외 각지를 틈만 나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가계에 '역마살'이 있다고 표현한다. "아버님도 항상 떠돌아 다니는 직업을 가지셨고, 큰아버지도 집을 한번 나가서 결혼한 후 1년 만에 돌아오셨어요. 중학생일 때 저 역시 역마살이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모범생이었는데도 어딘가를 돌아다니다가 학교를 안갔어요. 군대 제대 후인 86년 무렵에도 1년간 사찰에 들어가 있었어요 . 공주 백련사에 거처로 삼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돌아다녔어요. 그 해에 전국의 절을 거의 다 다녔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자다가도 집사람을 흔들어 깨울 때가 적지 않아요. 답답하다고, 그러니 어디 좀 가자고 하지요. 유럽에도 자주 갔어요." 일부러 작품 소재를 찾거나 집필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님에도, 여행은 종종 그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여행길에 구상이 떠오르는 일이 적지 않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잠시 머물러 쓰고, 다 쓰고 나면 또다시 떠나곤 한다. 여행길에 항상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엔 문화컬럼니스트 김훈씨와 함께 설악산에 다녀왔다. 대포리에서 회를 안주삼아 술잔을 나누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꼽아 달라는 요청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글 쓰는 일 그리고 여행"이라고 답할 정도로 그는 여행을 사랑한다.
설악산에 동행한 김훈씨와 윤대녕씨, 그리고 여기에 시인 원재훈씨와 오디오 기기 전문가이자 사진작가인 윤광준씨가 가세해 얼마 전 일산의 한 지하 전셋집에 '공동창작실'을 만들었다 하여 눈길을 모았다. 하지만 모 일간지를 통해 이 사실이 보도된 후 공동창작실은 해체되고 말았다. 은밀하게 유지되던 장소가 공개되고,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쏠리면서 뿔뿔이 흩어진 것. 그 역시 그날 이후 작업실을 거의 가지 않았고, 여름 장마철을 전후해 작업실을 옮길 계획이다.
여행과 함께 그에게 작품의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또 하나의 벗이 있다면 그건 술이다. 그렇다고 폭주가는 아니다. 소주나 양주는 잘 못마시고, 맥주를 즐긴다. 저녁 8시, 9시에 시작하면 보통 새벽까지 이어진다. 여럿이 마시는 것보다는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훨씬 더 많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술을 마시면 아침에 너무 피곤하단다. 그는 혼자 있는 게 아주 익숙한 사람인 듯 했다. 그에 따르면 술은 긴장을 이완시켜 주는 동시에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술을 마시다가 작품에 대한 구상이 떠오르는 일도 흔하다. 특히 전날 폭음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깨어날 때 무수한 생각이 쏟아진다고 한다. "알콜에 의해 몸이 한번 죽는 거라고 생각해요. 폭음한 다음날 아침엔 마치 안경을 바꾸어 착용한 것처럼 의식이 다른 걸 느껴요. 그 순간마다 뭔가가 떠오르지요. 저의 많은 단편들이 그렇게 해서 쓰여졌어요. 단편 이란 게 원래 직감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거든요."
<>내성적인 성격, 문학에 대한 심취로 돌파구 찾아<>
어린 시절 그는 부모와 떨어져 9살 때까지 충남 예산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는 틈틈이 그를 불러들여 한글과 한자, 그림, 심지어 약간의 술까지 가르치셨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말수가 적은 분이어서 조용한 집안 분위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배경때문인지 성인이 된 지금도 그는 말수가 많은 사람 옆에 있으면 견디기가 힘들다고 한다. 부모의 품에서 성장하지 않은 탓인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삶이 고단하다'고 느꼈다. 문학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의 이런 성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성적인 성격이 책에 대한 심취로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중학생 시절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등 탐정소설에 매료됐으며, 동시에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문학텍스트를 섭렵했다. 그런 어느날 그는 조회시간에 자신을 호명하는 소리를 들었다. 충청남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학생으로 선발돼 수상한 것이다. 많은 책을 읽다 보니 쓰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첫 소설을 중3때 썼다. 유치환 선생의 시 '깃발'을 이미테이션해 쓴, 원고지 50매 분량의 소설이었다.
고교시절엔 각 학교의 문학지망생들이 모여 '동맥(겨울보리)'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당연히 그도 그 일원이었다. 문학으로 수상한 것도 여러 차례다.
대학(단국대학교)도 4년간 문예장학생으로 다녀, 학비 한푼 안들었다. 아버지는 문학가가 배고픈 직업이라고 극구 반대했지만 그의 재능과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상과대학을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시험을 포기했고, 재수시절 6개월간도 여행을 다니는데 소요했다.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고, '은어낚시통신' '달의 지평선' 등의 소설집을 내며 현대인들의 고독한 삶을 추억과 환상을 통해 신화처럼 아득하고 그윽한 시원의 세계로 끌어올린 작가란 평을 들어왔다.
윤씨에게 글쓰기는 '삶에 주어진 시간을 견디기 위한 방편'이다. 뒤집으면 그가 체질적으로 인생을 즐겁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염세적인 것이다. 그는 "글쓰는 동안, 무엇인가 쓰는 일에 집중해 있는 동안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쓰는 작업이 인생의 불안과 고통을 밀어낸다고 생각한다.
<>왕성한 창작열, 내년에도 한두 편의 장편 계획<>
최근 불거졌던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논쟁에 대한 의견을 구하자 그는 현대사회에서 대중소설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피력했다. "대중소설이 영화나 인터넷에 빼앗긴 독자를 문학쪽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환기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그게 본격문학 작가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니에요. 대중문학을 가리켜 이것이 문학이다라고 들이댈 때 독자들은 본격문학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독자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은 좋지만 정작 순수문학을 밀어내는 부분이 있어요."
그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차이점을 치약이나 담배와 비유해 설명했다. 대중문학은 담배처럼 피우고 마는 것, 혹은 치약처럼 다 쓰면 버리는 것과 같이, 읽는 만큼 사라지는 단순한 소비재라는 것이다. 너무나 읽기 쉽게 보편적인 멜로감정을 건드리면서 카타르시스를 줄지는 몰라도, 인생 또는 존재에 관한 질문은 던져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반면 본격문학은 이 같은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에 독자들이 어렵게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민하지 않고, 정서적인 충동을 느끼지 않으면 결코 깊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격문학의 역할이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지난해 지방지 6개 신문에 한 편을 동시에 연재했고, 그 와중에 중앙일보 인터넷에 연재한 산문집이 올해 나왔다. 또 문학과 사회라는 잡지에 장편 '미란'을 5회에 걸쳐 쓰기로 했는데, 이미 4회까지 마감한 상태다. 매회 원고지 1,200매씩을 써댄 '미란'은 올 가을호에 5회를 실은 후 책으로 엮어 나올 것이다. 내년에도 한 편 내지 두 편의 장편소설을 쓸 계획이다. 그만큼 주체할 수 없는 창작열에 들떠 있다.
써질 땐 오직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그 는 요즘 아침마다 이런 말을 읊조린다고 한다. "오직 써야 한다. 소설이 내게로 막 오고 있다. 써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