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장이모 감독, 유덕화 장쯔이 금성무 - 사랑을 이야기하는 무협 서사시
당분간 이보다 화려한 무협영화는 없을 듯 하다. 전작인 무협물 <영웅>으로 중화권 최고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운 장이모는 무협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쾌감과 스펙터클의 끝이 어디까지인가를 그의 신작 <연인 House of Flying Daggers>에서 실험한 듯하다. 장이모가 <영웅>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한 색감의 극대화는 <연인>에선 눈이 시릴 정도로 시적으로 변모했고, 전작과 달리 독특하게 결합된 새로운 음향과 음악의 시도는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충분히 신선하고 흥미롭다. ‘무협 멜로’라는 조금은 낯선 장르 안에서 영화는 정부의 관리인 레오(유덕화)와 진, 비밀 반란조직의 요원이자 맹인 무희인 메이의 슬픈 삼각 관계를 담아냈다.
영화의 배경은 서기 859년 당왕조의 쇠퇴기. 무능한 왕조와 부패한 대신들로 나라 전체는 갈수록 불안에 휩싸이고, 반란군들로 들끓는다. 반란 조직의 하나인 ‘비도문(House of Flying Daggers)’은 민중에게 관에 저항할 것을 호소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집단. 관의 힘을 약하게 하는 이 집단은 그야말로 지방 관리들에게는 골칫거리 같은 존재다. 지방 관아의 관리인 레오와 진은 열흘 안에 이 조직의 새로운 우두머리를 잡아오라는 명을 받는다. 명을 받아 계획을 짜던 중 두 사람은 기생집의 맹인 무희 메이가 조직과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한다. 알고 보니 메이가 죽은 비도문 전 두목의 딸이었던 것. 레오는 메이를 데려다 심문을 하지만 입을 열지 않자 다른 수를 꾸민다. 그는 진으로 하여금 풍이라는 이름의 자객으로 위장해 감옥에 갇힌 메이를 구해주고 그녀의 신임을 얻어내 비도문의 은신처로 떠나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정을 시작한 이 두 사람이 3일간의 짧은 시간 동안에 사랑에 빠지게된다는 것이다. 두 연인의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비극적 사랑의 시각적 총체는 오는 9월, 추석 연휴에 확인해 볼 수 있다. 칸에서 첫 번째 언론 프리미어에 참석한 후, 지난 18일 칸 해변가에 위치한 마르티네즈 호텔에서 장이모 감독을 비롯한 유덕화 장쯔이 금성무를 홍콩, 대만,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기자들과 함께 만났다.
INTERVIEW 1
장이모 감독 - "<연인>은 사랑에 관한 영화"
특유의 점잖고 온화한 표정으로 등장한 장이모 감독은 요즘 한국 영화의 훌륭한 퀄리티에 놀라곤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최근 젊은 중국 감독들에게 잘 만들어진 영화의 샘플로 한국 영화들을 많이 보여준다고 했다.
<연인>은 한때 <영웅 2>로 불리기도 했었다. <연인>은 <영웅>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인가?
두 영화가 비슷한 점은 딱 한 가지다. 둘 다 무협 영화라는 점.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사실에 있어서는 전부 다 다른 영화다. <영웅>이 동양 무술의 머리에 관한 이야기라면, <연인>은 가슴, 즉 사랑에 대한 영화다.
<영웅>이 여러 가지 색깔을 순차적으로 보여줬다면, <연인>에서는 녹색을 부각시킨 듯하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당나라 때의 벽화나 미술 작품 등을 보면 녹색 계열의 색이 많이 쓰였다. 이 색은 단순한 녹색이 아니라 녹색과 파란색과 진흙 색 등이 섞인 아주 묘한 이미지의 색이었다. 당 왕조를 떠올리게 하는 색이다. 내가 이 영화 속에서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묘사한 것이 있다면, 바로 색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복식을 연구하던 중 한국 영화인 <취화선> <황산벌>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보다가 여기에 나오는 복식들이 당 왕조 때의 의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과 한국의 교류로 인해서 생긴 서로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영화들에 비해 <연인>에는 CG가 정말 많이 쓰인 것 같다. CG가 다소 과잉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특수 효과가 얼마나 쓰였는지 양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 꼭 필요했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썼다. 영화 속에서 날아다니는 검과 화살 같은 것들을 표현할 때 많이 쓴 것은 사실이다. 무술 감독에게 무술에 관련한 모든 것을 일임한 것처럼 특수 효과도 슈퍼바이저에게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에, 그 관련 분야에 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INTERVIEW 2
레오 역, 유덕화 - "좋은 시나리오가 최우선이다"
질문에 대답할 때에는 항상 질문하는 기자의 눈을 응시하며 대답을 건네는 유덕화는 그야말로 스타의 노련함이 어떤 것인지를 인터뷰 내내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진지하면서도 동시에 유쾌했다.
최근의 인터뷰에서 여느 중화권 배우들과 달리 할리우드 진출을 원치 않는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성룡이나 주윤발 이연걸을 보면, 모두들 다 똑같은 액션 영화만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것이 그들이 경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도 매번 똑같은 영화를 찍는 것을 보는 게 아쉬웠을 뿐이다. 중화권의 배우들이 획일적으로 액션 영화에만 나오는 것이 불만이다. 그러나 정말 좋은 시나리오 있다면 찍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본래 영화 속 비도문 여두목 역에 감독이 매염방을 캐스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유명을 달리하자 그 역에 출연할 수 없었다고 하던데.
우리는 모두 다른 배우가 그 역에 출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더블 캐스팅을 해서 매염방이 나오는 부분의 장면을 대신하게 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여두목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여두목은 큰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만 등장한다.) 아무도 그녀를 대신할 순 없다.
<무간도>에서 연기한 진영인에 이어 <연인>에서도 이중 스파이 레오 역을 맡았다. 이중적인 아이덴터티를 지닌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힘들지 않은가?
우연히 그런 역을 연달아 맡게 된 것뿐이다. 좋은 대본과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때문에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다.
침체된 홍콩 영화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좋은 내용의 시나리오가 자꾸 개발되어야 한다. 그 영화의 타깃이 홍콩 사람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 전체를 겨냥하는 영화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INTERVIEW 3
메이 역, 장쯔이 -가장 복잡하고 힘든 역할
미모의 맹인 무희이자 무사인 메이 역을 맡은 장쯔이는 시종일관 조잘거리는 새처럼 자신이 얼마나 이 영화 속 캐릭터 메이로 분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공을 들였는지를 설파했다.
극중 당신이 연기한 메이의 캐릭터는 꽤 복잡한 사람처럼 보인다. 맡은 캐릭터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제까지 맡은 역할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힘든 역할이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 속의 메이 역은 춤추는 무희이기도 하지만 무사이기도 하고, 비밀 조직의 비밀 요원이면서 장님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캐릭터를 다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고 도전이 많이 되는 작품이었다. 또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척 속여 가면서 나중에는 또 다른 사람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심리 묘사도 요구하는 캐릭터였다.
11살부터 무용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도입부에 등장하는 고난도의 춤은 특별한 연습을 요했을 것 같은데.
11살 때부터 북경에서 무용을 전공을 한 것은 맞지만, 영화 속 고난도의 춤 신 때문에 북경 최고의 댄서에게 촬영 2달 전부터 따로 사사를 받으며 매일같이 춤 연습을 했다. 감독이 요구하는 육체적인 선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걸 뛰어 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장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 내기 위해 시각장애인 여인과 2달 정도 동거 생활을 하기도 했다.
칸국제영화제는 몇 번째 방문인가? 올해는 유난히 칸에 아시아 영화들이 경쟁작으로 진출을 많이 했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느낌은 어떠한가? 경쟁작에 출품된 2편의 한국 영화는 봤는가?
이번이 3번째 방문이다. 올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가 대거 출품되어 정말 기분이 좋다. 아시아인으로서 무척 자랑스럽다. 아쉽게도 아직 경쟁부문에 진출한 한국 영화들은 챙겨보지 못했는데, 칸을 떠나기 전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온 영화들을 꼭 보고 싶다.
INTERVIEW 4
진 역, 금성무 - 언어보다 문화를 아는 것이 먼저
금성무의 얼굴을 스크린에서 확인해 보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놀랍게도 그는 예전의 한국 팬들을 잊지 않았는지 인터뷰 직전 한국 기자들에게 “오빠” “사랑해요”와 같은 간단한 한국말을 건네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일본과 홍콩을 오가며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 연예계에서 일본어로 연기를 하는 것과 중국어권에서 중국어로 연기를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두 나라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적인 차이보다는 문화적인 차이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내가 한국말을 일주일간 배워서 연기를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 두 나라의 문화적 습성이나 표현의 차이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그 어느 나라에서도 일하기가 힘들 것이다.
한동안 일본 드라마 쪽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스크린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은 참 오랜만인데, 특별히 <연인>을 출연작으로 고른 이유는 뭔가.
이 영화의 간단한 시나리오만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건 순전히 장이모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 배우인 유덕화 장쯔이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는가.
두 배우와 함께 작업하게 되어서 영광이었다. 그런데 실은 초반에 걱정이 많았다.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던져지게 되는 게 불편하고 힘들어서 말이다. 그러나 촬영 기간이 긴 바람에 그 두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나중에는 다들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된 시대에 태어났다면, 관군과 반군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당연히 국가 관리 쪽을 택했을 거다. 국가 관리 쪽이 반군보다 의상이 훨씬 더 멋지니까.(웃음)
출처 : 무비위크 김수연 기자 200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