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지 2626년. 그 분은 미혹과 무명의 바다에서 신음하던 수많은 중생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들어 보였다. 진흙탕 속에서 순결한 연꽃이 피어나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서 연꽃처럼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했던 것이다. 부처님이 입적하신지 2546년, 그 분은 사상은 이 땅을 밝히는 빛이 되고, 인류의 문명을 살지우는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본지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불교가 인류문명의 발전에 무엇을 기여했고, 어떻게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 모색해 봤다. (편집자)
인도 역사와 불교 - 박금표 박사 (숙명여대 강사·인도사 전공)
불교가 세계적 종교가 되어 우리를 깨침의 길로 인도하고 있지만, 현재 불교의 탄생지 인도에는 불교신자가 10억 인구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붓다시대에는 마가다왕국의 빔비사라왕과 코살라왕국의 파사익왕을 비롯해 많은 왕들이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재가 신도가 되거나 불교를 지지했다. 이렇게 종교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 차원에서 당시의 지배자들이 불교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역사의 장에서와는 달리 인도의 경우는 종교와 정치가 완전히 분리된 시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붓다시대 강대국으로 성장하던 나라에서 역시 왕권과 더불어 브라만 사제층의 세력도 확대되었던 만큼 이들 세력을 억제하고 왕의 절대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사상은 사제층의 세력억제를 위한 것이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성계급의 질서를 넘어서는 평등관이 내재되어 있어야하지 않았을까. 불교를 국가통치의 이념으로 삼게 된 것은 마우리아왕조가 인도를 통일하고 난 이후 아쇼카왕에 의해서이다. 아쇼카왕은 그의 비문을 통해 백성들에게 도덕적 가르침을 펴고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사법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백성들을 평등하게 대했다. 아쇼카왕은 백성에 대한 자비심과 평등심을 바탕으로 한 다르마 정책을 선포함으로써 일상생활에 극심한 차별상을 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군주상을 구축한 셈이다.
아쇼카왕 이후 마우리아왕조가 약화되고 인도는 혼란의 시대를 맞이했다. 서방 세력들이 인도에 들어오면서 동서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진 가운데 쿠샨왕조의 카니시카왕은 깊은 불심을 갖게 되었고, 불교사상의 체계적 정리와 불교경전편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다른 학문이나 사상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교가 발전함과 동시에 다른 학문연구도 활발했던 시대였던 것인데 이것 역시 불교의 평등사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굽타시대를 지나면서 힌두교가 우세를 차지하고 이후 인도에 이슬람세력이 들어와 종교적 갈등을 일으키는 가운데 여러 가지 복합적 요인으로 불교세력은 점차 사라져 갔다. 그러나 영국지배시대가 종식된 후 인도헌법을 기초했던 암베드카르에 의해 불교의 평등사상은 다시 한번 인도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당시 불가촉민에 대한 사회적 개혁과 의식 전환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암베드카르는 자신이 불가촉민 출신으로서 영국 지배시기 동안 서구에서 유학하여 최고의 법률가로 인정받았고 독립인도의 헌법 기초작업을 맡았다. 또한 법무장관을 역임하여 ‘근대의 마누’라 불리기도 했지만 암베드카르 역시 불가촉천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불가촉천민은 독립국가가 된 인도에서도 여전히 사회적 최하층에 고정되는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불가촉민의 사회적 차별철폐를 위한 개혁을 시도하면서 수 차례 간디와도 마찰을 빚었고, 간디 역시 불가촉민의 차별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만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개혁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힌두교 내부에서는 근본적으로 차별을 없애는 개혁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암베드카르는 불교로 개종하여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했다. 그의 개종은 개인의 종교 선택이라기보다는 힌두교의 계급 차별론을 떠나 불교의 평등론을 받아들이는 사회 개혁적 측면이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인도 역사상 불교가 미친 영향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그 중심점은 평등사상이라 할 것이다. 중도를 바탕으로 치우침 없는 마음으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불교가 인도에 남긴 큰 힘이 아닐까한다. 그런 불교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 ‘모든 종파의 본질을 증진시키는 것보다도 뛰어난 보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질을 증진시키는 방법은 다양하나, 그 근본은 부적당한 기회에 자신의 종파를 칭찬하고 다른 종파를 비난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며, 각각의 종파는 각각의 방법으로 존경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자신의 종파를 증진시키는 것이며 다른 종파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종파를 해치고 다른 종파에게도 해를 끼친다’(암벽비문12장 중에서)라는 아쇼카왕의 비문일 것이다.
현재 인도는 이슬람과 힌두의 대립 거기에 더하여 시크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파가 병존하는 종교적 상황과 상층 브라만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계급 갈등이 야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이런 인도 사회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타자(他者)의 인정과 존중이며, 불교의 중도사상을 바탕으로 한 연기(緣起)적 사고가 아닐까. 극단을 떠나 서로 중도를 견지하면서 계급적 차별과 종파적 차별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가 인도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약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불교적 평등사상과 중도관이 다시 한번 인도에 되살아나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동아시아와 불교 - 김상영 교수 (중앙승가대 불교학과·한국사 전공)
산업혁명 이후의 근현대 문명사에서 동양 문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현대문명이 가져온 각종 폐단을 언급하는 자리에서 동양문명은 항상 그 대안으로 언급되어오고 있으며, 실제로 그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래의 인류문명을 선도해나갈 수 있는 동양문명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보아야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 동양문명의 전개과정과 그 속에서 찾아지는 나름대로의 특성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불교가 중국 땅에 본격적으로 전래된 시기는 기원 후 1세기이며, 이후 불교는 동북아시아 문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불교는 오랫동안 이 지역 문명을 지배해왔던 유교와 는 판이한 인생관·자연관·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를 받아들인 중국인들은 한동안 적합한 용어를 만들어내기 어려울 정도로(격의불교시대) 당혹스러운 문명의 충돌기를 거쳐야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교는 중국의 오랜 문화전통과 융합할 수 있었으며, 한국과 일본 등의 동북아시아 지역 국가 모두가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로써 불교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동북아시아 문명은 오랫동안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명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불교 전래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동북아지역 문화의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이 가운데 두 가지 예만 들어보기로 하자. 먼저 한역(漢譯) 대장경의 결집과 이의 간행을 통한 변화상을 살펴보자. 잘 알고 있듯이 역경은 단순한 언어의 변환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화의 변화를 동반하는 일이었으며, 결국 불교 공인 이후 600여 년이 지난 현장 스님대에 이르러서야 완비된 한문 경전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자문화권은 언어 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사상 등의 문화 전 분야에 걸쳐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특히 한역경전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목활자·금속활자 등의 인쇄술을 발전시켜 나간 것은 세계 문명사에서도 크게 주목되는 업적이다.
다음 선(禪)의 발전을 통한 변화상을 살펴보자. 선, 좀 더 좁은 의미에서 선종은 보통 중국적인 불교로 표현된다. 선은 불교와 중국의 문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형태의 문화라는 사실 때문인데, 실제로 중세 이후 동북아지역의 문화에서 차지하는 선의 비중은 대단히 크다. 하지만 아쉽게도 근대 이후의 역사에서 이 지역의 선문화는 점점 그 정체성을 상실하여갔다. 오히려 현대문명의 폐단을 걱정하기 시작했던 서양인들에 의해 동양의 선이 다시 주목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미래문명의 대안으로 ‘선문명’을 제시하고 있는 상태이다.
선문명은 물질만능적인 현대인들의 사고와 그에 따른 비인간화, 자연환경의 파괴 현상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선을 통한 새로운 인류문명의 탄생을 기대해보아도 좋을 듯하다. 산업혁명 이후의 문명사에서 동양의 문명, 특히 불교문명은 후진 문명으로 전락한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근대의 중국 고승인 태허(太虛, 1889~1946)대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불교는 이미 오래 전에 원자와 상대성이론을 발견하였고, 심리학은 서구의 그것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그런데 불교도들은 그 발견으로 무엇을 하였느냐? 그것들로 인간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보다 자유롭고 풍요한 삶을 이루는데 기여한 바가 있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수도자적인 사색을 즐기면서 다만 지적인 요소의 일부로 남아 있었느냐?”. 다분히 자성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말을 통해 우리는 근현대 문명의 발전과 그에 끼친 불교의 역할을 진지하게 되새겨볼 필요를 느낀다. 특히 현대문명을 지배하고 있는 서구문명, 그리고 그들의 문명을 세계의 보편적 문명으로 확산시켜가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전개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동양문명을 대표하고 있는 동북아지역의 불교인들은 크게 각성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미래 인류의 문명은 더 이상 산업중심, 과학중심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수 세기동안 오로지 물질의 발전에만 경도되어 왔던 인류의 문명이 이제는 새로운 형태, 새로운 가치 추구의 방향에서 정립되어가기를 기대한 결과이다. 불교는 그 새로운 문명의 중심에 설만한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달성 여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불교인 전체의 몫이 될 것이다.
현대사회와 불교의 역할 - 김용정 교수 (동국대 명예교수 ·철학전공)
지난 20세기에 세계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학문중의 하나는 심층심리학 분야이다. 프로이드와 융을 중심으로 일어난 심층심리학은 인간의 잠재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쳐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심층심리학의 영향으로 새로 탄생한 것이 정신분석학과 정신의학이다. 프로이드의 심층심리학이 탄생하기까지는 쇼펜하워, 니체, 도이센 등 일찍이 인도철학과 불교에 눈을 떴던 선배 철학자들의 영향이 컸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를 연구함으로서 심층심리학을 더욱 확대 발전시킨 사람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C.G.융이었다. 융은 1930년 그의 동양학의 벗인 빌헬름의 추도 강연에서 당시의 유럽의 정신적 위기의 원인을 인간의 내면적 세계의 상실에 있다고 보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동양 사상의 내향성, 즉 내면적 정신세계의 신비적 체험을 깊이 통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융은 심리학과 종교라는 저술에서 근원적인 종교체험은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는 물론 이슬람교나 조로아스터교, 기타 인도 내지 중앙아시아에 있는 모든 종교에 있어서 가능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융은 특히 요가의 수행법에 주목하였다.
인간은 요가의 실천에 의하여 그의 마음속에 흩어져 있는 무질서한 번뇌가 통제되고, 그 배후에 있는 통일적인 집합적 무의식의 세계가 노정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서 그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의 십육관법(十六觀法)을 들었다. 융 이후 정신분석학의 거두인 에리히 프롬은 선(禪)의 세계적 석학 스즈키 다이쎄쯔에게 선불교를 사사받고 그와 함께 선의 선풍을 일으키게 되었다. 따라서 불교가 20세기에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선불교이다. 이것은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반동 내지 정신적 위기를 극복해보려는 정신문화운동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특히 선사상은 어떠한 종파도 어떠한 주의도 어떠한 패러다임도 초월한 절대적 자유의 사상이요 실천의 종교사상이었기 때문에 모든 세계인으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었다. 서양에서의 선의 확산은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인 존 네이스비트는 현대의 과학기술의 하이테크 시대에 인간성 회복운동으로서의 하이터치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 일례로써 초월적 명상, 요가, 선 등은 매우 하이터치한 것이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하이터치한 정신적 지혜가 없이는 인류는 구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 미래사회로 갈수록, 다시 말해서 다기능의 컴퓨터 기기들과 나노과학을 비롯한 첨단과학이 발전할수록 더욱 더 선불교적인 정신문화가 요구될 것이다.
지난 20세기에 불교의 연기사상과 동양사상은 서양의 전통적인 선형적, 인과적, 환원주의적 사유방법의 한계를 자각하여 유기적인 전체론적 사유방법을 도입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특히 20세기 초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의 발견으로 인식론상 홀리즘적 사유방법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된 것과도 연관된다. 그것은 주지하는바 현대 문명에 의한 자연환경의 파괴를 극복할 수 있는 생태윤리학적 사유방법의 기틀이 될 수 있고 따라서 불교의 홀리즘적 연기사상이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정신문화가 배제된 현대 과학문명이 계속 이대로 발전해 간다면 앞으로 지구세계가 당면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인간성의 몰락과 자연환경 파괴의 문제일 것이다. 암묵리에 주체적 인간은 망각한 채 과학기술 문명과 경제발전만이 인류가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자연환경을 살리고 도덕적 인간을 회복한다고 하는 것은 환상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통일적 인식체계인 불교의 중도사상에 입각하여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조화를 이룩하는 것만이 자연환경을 되살리고 참된 도덕적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루 속히 이분법적 사유방법의 한계를 자각하고 불교의 전체론적 중도사상만이 새로운 21세기를 열어갈 수 있다는 비젼을 강력하게 인류에게 계몽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문제는 현대인들이 주체로서의 존엄한 인격적 자아는 망각하고 대상화된 물건의 완성과 물건의 소유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시장 경제 원칙이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의한 소유에 기초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체적·인격적 인간이 존재하는 한에서 유효하다.
인간이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완성에 있다. 어떠한 고도의 과학기술도 어떠한 고가의 상품도 그것은 수단일 뿐 목적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불교가 강력하게 제시해야 할 비전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삶의 목적이 인간 완성에 있다는 점을 보다 설득력 있게 계몽하는 일이다. 이것은 결코 과학문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존 네이스비트의 말대로 하이테크와 하이터치의 조화를 이룰 수 있으려면 먼저 지혜 있는 주체적 인간이 있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기술의 응용범위가 증대되고 있고, 또한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정보기술의 구조와 다원화 된 현대사회에서 기존의 양자택일적인 이분법의 사고방법으로는 정당한 판단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복잡다의한 사회현상을 전체적으로 내다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혜안과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지각, 포괄하면서 홀리즘적 사고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 통일적 사유방법이 불교의 연기사상 내지 중도사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지구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분쟁과 충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이 사유방법의 전환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서구불교의 현황과 전망 - 미산 스님 (옥스퍼드대 박사·전 하버드대 연구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서양에 불교도가 있다는 것이 전혀 상상 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현재 서양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종교가 바로 불교이고, 서구의 낡은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업그레이드하도록 촉구하는 불교지성인들의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불교의 서구 전래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지만 기원전 2세기 경에는 확실히 서양인들이 불교와 접촉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밀린다 대왕과 나가세나 스님의 대담을 담은 밀린다팡하라고 하는 책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후 별다른 접촉이 없다가 13세기 비로소 기독교 선교사들이 쿠빌라이칸과 만나면서 본격적인 접촉이 이루어지고, 17세기에는 기독교선교사들이 중국불교도들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불교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부터다.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영광된 일은 불교를 만난 것”이라고 할 만큼 불교에 애정과 조예가 깊었던 쇼펜하우어를 비롯해 에머슨, 쏘로우 등이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막스 뮐러와 리즈데이비드 부부 등에 의해 불교경전이 번역되면서 서양의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1893년 시카고 세계종교의회가 개최되면서 불교가 정식으로 세계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20세기 접어들면서 유럽 최초의 사원이 러시아의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건립되고 스즈키 등에 의해 선불교를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불교활동이 활발하지 못했지만 20세기 중엽에 들어와서 불교는 전쟁으로 지쳐 있는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나아가 스나이더, 긴스버그 등 선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당대의 신지식인들은 20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대안사상으로서의 불교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렇게 초석을 마련한 불교는 1970~1980년대에 이르러 서양불교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 시기에는 서양사회에 커다란 문화적 영향을 미치면서 새롭게 많은 조직들이 생겨나 서양불교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1997년 조사된 한 저명한 학술지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스스로 불교도라고 밝힌 사람이 35만명이었으며,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를 택할 경우 불교를 선택하겠다고 밝힌 사람이 300만명에 이르렀다. 또 미국도 마찬가지로 현재 300~400만이 불교도라고 집계를 내고 있는데 콜럼비아대학교의 로버트 써어먼 교수는 최소 500만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국가에 불교인구가 꾸준히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왜 이토록 불교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제임스 콜맨 교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첫 번째는 정신개발과 수행에 대한 관심(50%), 두 번째는 개인의 고민해결(22%), 세 번째는 가족, 친구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이 불교를 믿기 때문(12%)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서양인들이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주된 원인은 자기수양, 정신수양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는 신 중심의 사회에서 수행을 통해 스스로 체득하고 깨닫는 불교의 매력이 무엇보다 크다. 여기에 물질문명에 대한 회의, 평화에 대한 갈망, 달라이라마와 틱냑한 스님과 같은 세계적인 불교지도자들의 영향 등을 비롯해 첨단과학의 이론이 불교의 사상과 맞아떨어지는 점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한편 이들 서구불자들의 생활수준을 볼 때 월수입 평균 3만불(약 4000만원) 이상이 70%, 9만불(약1억2000만원) 이상도 전체의 20%로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전체 51%로 지성인들이 크게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서양불교도들은 대개가 중상위층이며 엘리트층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불교의 인구분포가 우리나라나 아시아 불교국가 입장에서 보면 적은 수이지만 적은 불교도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앞으로 미래의 서양불교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성인들이 사회 문화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 뿐 아니라 수행쪽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불교가 세상의 변화에 맞는 창조적인 불교의 해석법과 수행법을 끊임없이 창출하지 않는 한 어쩌면 우리는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이해와 수행 방법을 역수입해야 할 지도 모른다. 현재 불교가 서구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사상적인 영향은 물론 평화운동 및 공동체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술과 문학, 심지어 디자인과 패션 등 곳곳에서도 불교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서구불교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엘리트 불교에서 대중불교로 그 저변이 확대될 때 진정 서구에서 불교의 꽃이 만발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의 가장 기본은 바로 현실적인 요구에서 나오고, 거기에서 한 차원 높아질 때 좀더 완전한 수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