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이야기
‘츠르륵- 츠르륵---’
쇠붙이끼리 서로 닿는 소리만 울리면서 KTX는 무작정 앞만보고 달리기만한다.
빠르기는 하지만 뭔가 낭만이 없다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나는 소리없이 달리는 KTX 보다는 왠지 3-40여년전의 기차들이 더 정겹다.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굽이진 고갯길을 돌아갈 때 울리는 기적소리가 어쩌면
더 좋은지 모른다.
‘칙-칙-푸욱---푹-----칙칙푸--푹---푹----’
‘꽥--꽥--------------’
석탄을 연소시켜 달리노라면 제일 선두에 선 기관차의 대갈통은 언제든지 시커먼
돔모양의 머리통에 온통 시커먼 연기를 홀로이 뒤집어쓰고 그 육중한 바퀴들을
서서히 돌린다.
기적소리와 함께 칙칙푹푹 연기를 내뿜노라면 고요하던 역사가 울렁울렁거렸다.
궂은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평원을 뚫고 가는 완행 기차를 보면 어쩐지 가슴이
울렁거린다.
야간열차에 몸을 싫고 일정하게 울려나오는 ‘덜커덕 덜커덕’거리는 바퀴소리는
나의 청춘을 더욱 더 부른다.
나는 원래 원주에서 태어나 9살때까지 살다가 국민교 2학년말에 강림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다시 중학교는 원주에 와서 다녔다.
본가는 정바우에 계속 두고 나혼자 유학을 온 것이다.
원주에서 살때는 주로 지금의 원주역과 아주 가까운 학성동에서 살았다.
그래서 하루에도 열두번도 매일 기차를 보았다.
물론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그 기차를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으레껏 기차란 그런것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다닐 때 언젠가 기차길 바로 옆에 사는 외할머니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참으로 곱게 생긴 전형적인 조선의 여인이었다.
외삼촌이 외출하였다가 돌아오면 언제든지 따뜻한 밥을 주고파서
항상 아랫목에 밥 한그릇을 올려놓고 이불을 24시간 덮어놓곤 하였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11시쯤 자리에 누웠다.
자리에 눕자마자 왠 천지개벽하는 소리가 저멀리서 들려오더니 나의 머리통을
박살내려고 달려드는가 싶더니 저만치 사라져갔다.
천지가 조용한 한밤중 나는 그렇게도 기차소리가 요란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덜커덕 덜커덕대는 기차소리에 나는 밤새 뒤척였다.
그러나 옆에서 할머니의 새근새근 코고는 소리는 너무도 얄밉게 들려왔다.
국민학교에서 주로 불러댔던 노래가 불현듯 떠올랐다.
?기차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잔다?
? 칙폭칙칙폭폭 기차소리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잔다.?
뭐가 잘자긴 잘자. 어떤 인간이 그따위 노래를 만들었나.
평상시에도 늘상 이 노래에 의문을 품었다.
어찌 기차소리 요란한데 아기가 잘 잘수있느냔 말이다.?
어느덧 날이 밝아왔다.
“ 아이고 우리새끼---”
“-------”
“ 그래, 잠 좀 잤---나----”
“ 예--- 아 --예 별로 못잤어요---”
“ 그랬나, 몇밤만 더 자봐라.---- 그럼 잠 잘 온다. 되레 기차소리가 안나면
잠이 안온다이.”
그랬다.
그이후로 나는 가끔 할머니집에 놀러 가곤했는데 왠일인지 기차가 지나가지
않으면 오히려 잠이 안왔다. 밤새도록 기차가 덜커덕거려야만 잠이 잘 왔다.
차라리 나에게는 자장가가 돼주었다.
그러던중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돌아왔다.
난생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기회가 왔다.
매일 보고 매일 듣는 기차라 별 감흥이 없을것으로 생각되던 그런 기차를 말이다.
나에게는 한분의 고모가 계셨는데 그 고모는 단양에 살고 계셨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원주역으로 나갔다.
아버지 숙부 사촌형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플랫폼으로 나갔다.
낡은 역사를 뒤로하고 침목을 밟으며 출발지로 서서히 걸어나갔다.
저멀리 만종쪽에서 기적을 울리며 거대한 괴물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역내로
서서히 들어오고있었다. 이 열차는 3시간전쯤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이리라.---
드디어 난생 처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원주에서 태어나고 오래살면서도 처음으로 기차를 탄다는게 신기하기만 하였다.
아마도 최고로 느린 완행열차 비둘기호였던 것같다.
석탄을 때면서 달리는 증기기관차였으리라!!
어찌됐던 당시의 이 열차들은 매연을 엄청나게 내뿜으며 달렸다.
원주에서 단양 매포까지는 두시간여를 달리는 것같았다.
원주를 막 지나는가 싶더니 커다란 터널이 그만 우리를 삼켜버렸다.
불가사리가 자동차를 삼키듯이 말이다.
다른 터널은 순식간에 통과하더니만 이 터널을 들어온 기차는 암흑속으로
끝없이 기어들어갔다.
이제나 햇빛이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아무리 기다려도 나올줄을 몰랐다.
“ 아버이 왜이리 캄캄해요---”
“ 으--응---”
“ 아버지 왜 이리길어요---”
“ 으--음---, 허허허허허, 이굴은 똬리굴이야”
“ 네 똬리굴이요?”
“ 그래 똬리굴---”
“ 왜 있잖잔아. 엄마가 광주리 같은 것 머리에 얹을때 머리에 얹는 똬리말이야”
그랬다.
영어 소문자 e 자 모양의 굴이었다. 나사모양으로 한바퀴 돌아서 올라갔다.
중앙선 치악산 똬리굴은 원주에서 신림으로 가는 철길에 있다.
치악산의 경사가 심하여 산마루를 한 바퀴 빙글 감아서 올라가는 나사형 철길이었다. 터널에 진입할 때부터 터널 밖으로 나올 때까지 계속 왼쪽으로 돌다가 나온다.
터널을 빠져 나와 뒤쪽을 바라보니 저아래 쪽 낮은 지대에 우리가 들어간
터널입구가 보였다.
아마도 고도가 100미터는 차이가 나는 가 싶었다.
나는 이 신기한 굴을 빠져나오면서 대단히 흥분해 있었다.
내가 주로 타는 열차는 중앙선 열차였다. 그리고 주로 보고 자란 열차도
중앙선열차였다. 서울올라 갈때도 부산에 내려갈때도 주로 중앙선이었다.
역마살이 있어서 그런지 총각시절에는 꽤나 돌아다녔다. 열차나 버스를 타면서
내심으로는 오늘은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내옆자리에 앉게될까?
늘 그것이 화두였다.
공교롭게도 한번도 제대로 된 짝을 만나 본적이 없었다. 오가다가 만날 운명은
아니었던가 싶다.
그옛날 기차안의 풍경은 참으로 로맨틱하였다. 낯모르는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여서 운명의 공동체가 되어 함께 달린다. 열차가 역을 서서히 출발하여
역지기들이 빨간수기를 흔들며 기차를 배웅하면 기적소리가 소리높여 하늘을
찌르고, 희뿌연 시커먼 연기가 플랫폼을 검게 물들인다.
속력이 붙어 덜커덕거리면 홍익회 장사꾼들이 특유한 저음 바리톤으로
먹거리를 들고 호객하며 지나간다.
일반승객들은 잘 서지도 못하지만 그들은 짐을들고 카터를 끌며 잘도 다닌다.
열차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삶은 겨란이다.
그리고 맥주와 땅콩 오징어---
그리고 김밥---
혼자먹기가 뻘쯤하여 옆자리에 한 두개 건너면서 자연스럽게 말동무가 되었다.
풍수해에 올 농사는 망쳤다는 농부들의 얘기,
아들 면회간다는 어느 중년부부--
방학이라 나와같이 고모네집에 간다고 신나는 아이들--
그리고 빽빽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울상을 짖고잇는 새내기 갖난 애미--
통기타를 들고 해변으로 떠나는 젊은 집시들--
손을 꼭 잡고 사랑여행을 떠나는 연인들---
그야말로 완행열차는 임시로 만들어진 인간시장이었다.
그런 향수 담긴 열차에 대한 추억이 우리네 추억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KTX를 처음 타던날!
소리없이 미끄러져가는 KTX안에 앉자 있노라니 뭔가 어색하였다.
이런 것이 기차였던가?
시속 350킬로 미터로 빠르게는 달리지만 60년대의 정서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의자 등받이를 뒤로 쭉빼고 들어눕는 새마을 열차의 의자에 적응 된
나로서는 도무지 의자가 맘에 안들었다.
빨리간다는 미명하에 나는 차렷자세로 앉아가야 만 하였다.
롱다리다 보니 의자 앞 뒤 간격이 좁고 뒤로 제껴지는 경사가없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역방향 좌석을 만나는 날에는 골치가 찌근찌끈하였다.
빨리가기를 바라면서도 언제나 새마을열차 무궁화열차 비둘기가 그리웠다.
고등학생시절 처음으로 청량리역에 떨어졌던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수 가 없다.
아 이것이 서울이었던가!!!!!
황혼이 짖게 깔리고 가로등이 어둠을 밝힐 무렵 처음으로 부산역에 떨어졌을때의
그 기쁨은 이루다 말할수 가없다.
휴가를 받아 나홀로 무작정 호남선기차에 몸을 던져 배낭여행을 떠났을때의
그 자유와 고독은 지금도 잊을 수가없다.
야간열차에 몸을 싫고 대전역에 처음 떨어지던 날!
?잘있거라 나는간다 이별의 말도없이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영시오십분??
? 세상은 잠이들어 고요한 이밤나만이 소리치며 울줄이야.?
? 아-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
역구내에서 울려퍼지는 노래를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 서울에 다녀오면서 바깥에는 아름다운 농촌이 끝없이 펼처졌다.
차창가로는 푸른 산하와 누런 들판으로 가득찬 참으로 아름다운 조국이
지나가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하니 밤9시!
가을비가 소리없이 윈도우에 내려앉았다.
2006. 11. 19
강림장날에 기차이야기가 적합할까.
'강림에는 기차가 없잖아--.'
'그렇지---'
그러나 강림은 치악산의 배후에 탄생한 농촌이다.
치악산을 중심으로 이 일대의 허브가 바로 원주라는 도시다.
원주는 우리 강림의 관문이요 강림의 도시였다.
그래서 원주에 중심교통인 기차는 우리에게 배놓을 수 없는 문화였기에
이글을 쓰게됐고, 이 코너에 올리게 되었다.
첫댓글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 눈에 들어오네요 .저도 서울 갈때 가끔 KTX를 이용하지만 새마을호를 더좋아합니다.
처음에 대전역에 떨어 졌을때 얼마나 흥분하던지----, 궂은비 하염없이 내리고 그야말로 아무도 없는 밤깊은 타향에서 들어보는 대전발영시오십분------아---
선배님 덕분에 동심속을 깊이 빠져들엇습니다 ... 조용한날이면 강림에도 기차소리가 들리곤햇습니다 엄마께 무슨소리냐고 물어보면 신림근처에서 나는 기차소리라고 햇던것같습니다 ... 뿌 ~~~~ 앙 기적소리 아련히 떠오릅니다
정바우에서 듣지는 못했고 부곡대치에 가면 들리는 듯하더이다. 그런 소리를 들은 일이있었군요. 대단하네요. 네 들렸을것 같네요. 고요하면 치악산을뚫고 넘었왔을 것같네요. 우우우우-------이-----. ㅎㅎㅎㅎㅎㅎ
선배님 ! 비오는날 여행을 하셨나보군요 저는 어릴적 기차태워준다는 말에 혹 해서 부모형제와 떨어져 지금껏 부산을 떠나지 못하고있습니다 칙` ~칙 `~폭 ~`폭 ~~~기찻길옆 ~옥수수밭~~~~~~ㅇㅇㅇㅇㅇㅇㅇㅇㅇ아~졸려
설레는 가슴을 안고 중앙선하행열차에 몸을 던졌을때, 이미 그대는 사랑의 포로가 되었으리--. 기차여행이란 원래 사람을 체포해서 사랑의 수갑을 꽁꽁 채우는 마력을 지녔으니까.--------. 옆자리에 앉아 이리흔들 저리흔들하면 모든게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부산이 에덴동산이었구려.--------ㅎㅎㅎㅎㅎㅎ 오--이---
저두 우리 딸내미한테 KTX태워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부산에서 예전에 해안을 끼고 달리는 열차를 본적이있는데 아직도 그 기차가 있을려나 부산을 어디를 보여주고와야 기차여행 잘햇다고 할려나 걱정되네요
네. 정숙누이-- 동해남부선을 얘기하는 것같네요. 부전역이나 해운대역에서 출발하여 송정해수욕장, 일광해수욕장, 가수정훈희 카페가 있는 임랑해수욕장, 그리고 동해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간절곳을 지나 경주를 거쳐 갑니다. 지금 부산은 광안대교가 최고의 명물로 뜨고있고, 누리마루, 그리고 배를 타고 오륙도, 무료입장하는 태종대에서 관광기차를 타고 남쪽끝에서 맑은날 대마도를 보면 좋을듯 합니다. 혹 내려오면 연락주시요----. 자세히 안내해줄수도 가이드해줄수도 있겠지요. ㅎㅎㅎ
어릴적 기차여행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글 즐감했습니다. 연말이라 바뻐서 자주 못오네요.. 선배님 얼마 안남은 연말 마무리 잘하세요..
선배님글 너무 잘 쓰십니다. 책을 내셔야 겠어요. 저는 어릴적에 원주 똬리굴 견학 간적이 있었어요.그랬는데 제가 원주에 와서 기찻길 옆에 살게 될줄이야. 아파트를 살때 기찻길 옆이라는걸 생각도 않고 이사를 왔는데 정말 천둥소리 아파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군요.이제는 기차가 언제 지나가는지 소리가 무뎌져 잠도 잘자고 들리지도 않는답니다.살다보면 아기도 잘 잔다는 동요가 정말 맞아요. 이웃집 아기들이 다 잘자고 무럭무럭 잘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