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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6.4(토)>
6월 4일 새벽에 설악산으로 “봉은사” 신도들과 같이 출발한다는 “김석용”부부의 계속되는 同行 권유에도, 휴무 토요일이 아닌 관계로 포기를 하고 사무실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는데, 일행들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10:00경에 전화를 했더니 강원도 홍천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김석용 부부 이외에는 한번 도 얼굴을 본 사람은 없지만 그쪽의 즐거운 분위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13:00에 퇴근길에 생각하니, 지금 집으로 가서 우리 부부가 출발을 하면 백담사 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전화해서 마노라의 의견을 물으니 찬성 이란다.
山行에 필요한 물건들이야 배낭에 항상 들어 있으니, 별도로 챙길 것은 없었고 목적지인 “용대리”에 도착하는 시간이 제일 걱정이 되었다.
앞서간 김석용 부부의 말을 빌리면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순환버스를 타고 백담사에 도착해서, 대청봉 밑의 봉정암까지 5시간정도 소요된다는 얘기를 듣고, 저녁에 도착해서 야간 산행을 하면 밤중에 일행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을 하면서 종암동에서 내부 순환도로를 진입 하는 순간 계획 되로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오후 이면서 현충일까지 연휴가 되어서 도로는 온통 주차장 이었다.
이왕 출발한 것 마음 편히 먹기로 작심을 했지만 자꾸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아무리 계산해도 저녁시간에 용대리에 도착해서 식사를 마친후 김석용 일행이 있는 봉정암까지 야간 산행을 하려는 데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일행을 꼭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행이라 길을 아는 일행이 있으면 산행이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었다.
내부 순환도로를 통과해서 양평을 거처 홍천을 지나는 길이 거의 모두가 정체 내지는 지체되는 고통의 연속 이었다.
이제는 야간 산행은 고사하고 용대리에 도착하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18:00경에 홍천 못 미쳐서 김석용에게 전화를 했더니 “봉정암”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마쳤는데 등산객들이 너무 많아서 처마 밑에 앉을 곳도 없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가고 있는 중 이라니까 반가워하면서도,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이다.
자신들이 걸어온 여정을 생각하면, 내일 아침에 자신들은 봉정암에서 2시간정도 오르면 대청봉에 오를 수 있는데, 그 이후 하산 하는 길이 또 6-7시간 정도는 소요되기 때문에 우리부부는 아무리 계산을 해도 대청봉 까지 왕복은 못할것 같은 우려 때문 이었다.
나도 그 계산을 하고는 도중에 내려올 생각도 하면서 계속 지체와 정체를 반복하며 가고 있는데, 20:00경이 되니까 시장하기도 하고 피곤함이 밀려왔다.
길가의 옥수수를 몇 개 사서 허기를 달래고, 백담사로 들어가는 용대리 주차장에 도착 하니, 21:00경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야간에 출입을 통제할 뿐 아니라 인근의 민박집이 모두 만원 이었다. 우리 부부는 체념을 하고 저녁 식사후 차안에서 1박을 하고 내일 새벽에 일행들을 따라 잡기로 했다.
말이 차안에서의 1박이지 상당한 고통을 생각하면서 식당을 찾으니 그 시간에는 식당마저도 문을 닫는 시간이어서, 겨우 한 집을 정하고 들어가려는데 입구에 민박집이 하나 보이길래 빈방이 있는지를 모른척 하고 물어 봤더니, 우리 행색이 딱해 보였는지, 그 집에는 빈방이 없고 다른 곳에 한번 알아보겠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도로인근이 아닌 마을 안쪽에 조그마한 방이 하나 있다는 안내를 해줬다.
집주인이 차를 몰고 우리를 인솔하러 온다는 얘기를 듣고, 그동안에 야간 산행이나 대청봉까지의 일정을 물으니 야간산행은 위험하고 대청봉까지 당일 왕복은 무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봉정암까지 가서 그곳에서 1박을 하고 내려오는 모양이다. 그러면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잘못된 산행을 계획한 것이다. 아뭏튼 그 민박집 주인의 소개로 차안에서 1박을 할 각오로 있는 사람에게는 호텔을 잡은것 같은 안도감이 생겼다. 인솔하러온 주인을 따라가서 방에다가 우선 짐을 내린 후 다시 식당으로 오니 22:00가 넘어가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내일의 산행을 생각해서 삼겹살과 공기밥을 시켰더니, 늦은 시간인데 정성을 다하는 탓인지 음식 나오는 속도가 무지하게 느려서 피곤함과 내일 산행에 대한 조바심이 더했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오는 길에 지친 마노라는 졸리는지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온 음식을 모두 먹고, 졸려서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하는 마노라에게도 반강제로 음식을 먹게 했다.
산행을 위해서 저녁식사는 든든히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한뒤 아침식사는 가볍게 해야 하는데 리듬이 좀 엉킨것 같았다.
늦은 저녁을 먹고서 내일 산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해서 민박집에 도착하니 23:00가 넘었다. 다행히 따뜻한 온돌방은 피곤한 몸을 풀기에 제격 이었다. 여름이 한창이지만 설악산의 밤은 따뜻함이 좋았다.
그 집 마당에는 내일 아침에 산을 오르기 위한 많은 등산객들의 차량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어서 다소 위안이 되었다.
<6.5(일)>
이튿날 03:30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준비를 해서 용대리 주차장으로 나와 차를 주차시키니 04:00가 되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한두 사람만이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순환버스 타는 곳 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길에 슈퍼에서 라면을 먹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여서, 우리도 그 집으로 들어가 라면을 시켜 먹으면서 몇 사람의 얘기를 들어 보니 백담사로 가는 첫 번째 버스가 06:30분에 있단다. 그러면 백담사에 07:00경에 도착해서 매우 빠른 걸음으로 7-8시간을 걸어야 대청봉에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내려오는 시간 까지 계산하면 당일 21:00경에 이곳에 도착 가능한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힘이 들어서 이튿날 오대산을 들러 오려는 계획은 당연히 취소해야 하고 또 우리가 계산한대로 산행이 이루어질지도 의문이었다. 이 생각을 하면서 라면을 먹으니 국물 맛도 없어서, 설악산 안내 지도를 하나 사서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05:00가 되어서 백담사로 가는 순환버스 매표소에 도착하니 그때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사서 대기 하고 있기도 하고 그냥 걸어서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백담사 까지는 약 7km,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걷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에 기온도 적당하고, 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공기가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말로만 듣던 백담사계곡의 비경을 보면서 앞서가던 행인들은 무조건 추월 하면서 강행군을 했더니, 백담사 입구에 06:00가 되기 전에 도착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걸었다는 것을 알았다.
깨끗한 공기와 김석용 일행을 따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상승작용을 한것 같다.
백담사 경내는 내려오는 길에 시간이 나면 둘러보기로 하고 앞마당만을 지나쳐서 등산 안내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청봉 까지는 10.4km, 소요예상시간은 7-8시간정도. 주변을 빠른 눈길로 관망하며 숲속길을 마노라와 같이 걷는 길이 상쾌했다. 약간은 쌀쌀한 기온이었지만 빠른 걸음으로 몸의 온도가 오르는 것과 상쇠되는 상쾌함 때문에 우리 부부가 걷는 속도는 스스로 생각해도 경쾌하고 빨랐다. 또한 햇살이 없는 상태에서의 걸음이라 평상시 산행보다 더욱 가벼웠다.
우리가 오르는 첫 사람이고 간혹 새벽에 봉정암이나 오세암등에서 1박을 하고 내려오는 사람들과 간간히 마주칠 뿐이었다. 수학여행을 왔을 때는 이곳과 정 반대 방향인 설악동 쪽이어서 지금가고 있는 길은 부부가 모두 초행길 이었지만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있고 경사가 완만해서, 평상시 북한산의 구파발(의상봉)에서 우이동 계곡까지 6-7시간의 산행을 하던 우리 부부에게는 힘든 길은 아니었다. 다만 어제 봉정암에 도착한 김석용일행을 따라 잡았으면 하는 조바심 때문에 부부가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다. 07:00경에 김석용에게 전화를 시도 했더니 아침 식사후 대청봉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단다.
우리가 백담사를 지나서 1시간정도 걸어가고 있다니까 자신들 일행이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서로가 기대를 하고 계속해서 우리는 걸어가고 있었다. 07:00가 지나니까 내려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내려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오르는 길의 우리 부부는 임의대로 속력을 내지 못하니 더욱 조바심이 났다.
그러다가도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면 피로가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더 가니 영시암이라는 암자가 보였다. 지금까지 내려온 많은 사람들이 어제밤 이곳에서, 대청봉에서 내려오다가 숙박을 한 곳이란다. 새로 佛事를 일으키고 있어서 어수선한 분위기 였지만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드리는 佛心깊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와중에 대웅전 앞에는 아직도 바닥에서 수 잠을 자고 있는 등산객들도 보였다. 우리 부부도 한시름 돌리고 약수를 한모금씩 마시고 다시 잰 걸음으로 걸어가니 수렴동 대피소가 나왔다. 수렴동 대피소 역시 어제밤에 숙박을한 등산객들이 아침식사를 하느라 매우 분주한 분위기 였다.
그러한 곳에서 같이 지체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봉정암을 향해서 계속해서 걸었다. 구담계곡의 절경들이 힘든 우리를 그나마 위로해 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이 길 부터는 영시암과 수렴동 계곡에서 숙박을 한 사람들이 대청봉을 향해서 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봉정암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뒤섞여서 속도을 낼 수가 없었다. 이제는 힘든것 보다 더 어려운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봉정암이 아직도 멀었는데 김석용 으로부터 “대청봉에 도착 했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부럽고 조바심은 났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행동식을 먹기위해 계곡의 맑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니 금방 발이 아플정도로 차가웠다. 조여맨 등산화와 강행군 탓에 열기로 뜨거웠던 두 발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렸다.
휴식후 우리도 이제는 제법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과의 흐름에 속도를 맏길 수 밖에 없었다. 휴대전화의 전파가 잘 연결되지 않는탓에 김석용일행과 통화가 여의치 않았는데 봉정암이 800m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통화가 되어서 큰소리로 서로의 위치를 주고받았다. 일행들은 이미 대청봉에서 충분한 휴식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라서 목소리도 가벼운것 같았다. 통화중에 내가 봉정암에 거의다 왔다는 소리를 하자 길가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던 부부 인듯한 사람들이 듣고서는, 앞으로 두 시간은 더 소요될 것이라며 우리 부부를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마노라 께서 자존심이 상했다. 하기야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얘기를 하기 마련이니까 그들은 두 시간이 소요 되어도 우리는 나름의 계획된 산행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들과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듣는 상대방은 무지하게 기분 나쁜법. 그렇다고 우리가 30분후에 봉정암에 도착 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없지만, 괜한 사람들이 초행길 힘든 사람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 필요는 더더욱 없는것 아닌가?
봉정암에 오르기 직전의 급경사를 오르고 있는데 위에서 김석용 일행이 내려오다 우리부부와 마주쳤다.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반가움에 큰소리로 서로를 부르고 그곳에서 잠시 물을 마시며 얘기꽃을 피웠다. 김석용의 말을 빌리면 이제 봉정암은 거의 다왔으니 온 김에 대청봉까지 다녀오란다. 원래가 낙천적인 친구라, 우리부부의 산행실력(?)을 한껏 치켜세우며 봉정암에서 두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단다. 그러나 주변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나가던 일행들이 염려스러운 듯이 “힘드실 겁니다” 하는 소리로 봐서 만만치만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하기야 봉정암에서 대청봉까지 오르는 시간을 두 시간으로 알고 있는대 왕복으로 두시간이라고 큰소리를 쳤으니 그점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뭏튼 봉정암에서 김석용이 가져온 시원한 물을 한모금 마시고 다시 봉정암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건대 그 구간이 가장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좁아서 힘든 코스 였던것 같다. 마노라도 햇빛 까지 내리쬐는 급경사를 오르며 힘들어 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가? 걷는 일에는 일가견을 가지고 있고, 이번일은 모르는 길을 무턱데고 도전을 했으니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들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봉정암의 처마가 보이기 시작하자 힘이더 나는것 같았다. 봉정암 입구에는 아직도 어제 밤의 노숙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라면 박스가 처마밑에 깔려있고 우리가 도착한 그 시간에도 배낭을 베고 절 마당에서 자고 있는 등산객을 볼 수 있었다.
김석용이 알려준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향해 오르니 어찌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지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 진신 사리탑앞에는 저마다의 정성을 드리는 참배객들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경건한 곳에서는 우리도 같이 경건해지게 마련이다. 부처님께 각자의 정성을 드리고 봉정암 경내를 지나 대청봉으로 향한 시간이 11:00경 앞으로 두시간을 더 올라야 한다니 걸음이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6시간을 강행군을 했었는데, 봉정암에서 부터 오르는 길은 기온상승과 함께 우리 부부의 길을 더욱 느리게 했다. 더구나 그곳에서 부터는 길이 좁아서 앞에 느린 사람이 하나 있으면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오르는것 보다 내려가서 백담사에서 용대리 주차장까지 가는 순환버스를 타지 못하면, 아침에 멋모르고 걸어왔던 7km의 백담계곡길을 걸어가야 할 생각을 하니 조바심이 더욱 컸다.
등산이란 이렇게 쫓겨 다니듯 해서는 의미가 없는 것인데 무모한 도전을 하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소청산장과 중청에 이르러 대청봉을 바라보는 위치까지 오니 그제서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무래도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힘이 덜 들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청봉을 바라보며 마노라는 앞서서가고 있는데 왼쪽 허벅지 안쪽이 뻐근하게 조여오기 시작했다. 근육 경련이 일어나며 약간의 통증이 수반되어 등산화 끈을 풀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내려가던 아주머니 한분이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보더니 에어스프레이를 빌려 주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걷다가 근육에 에어스프레이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사양을 했더니, 아주머니 말이 내려갈 일을 생각해서 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란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에어파스를 경련이 일어나는 곳에 스프레이 하고나니 기분이 그래서인지 한결 부드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등산화 끈을 고쳐 메고 있는데 앞서가던 마노라가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고 무슨일이냐고 물어 왔다. 가까이 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마노라의 상태를 물으니 그런 데로 견딜만 하단다.
드디어 대청봉 산장에 다다랐는데 TV를 통해서 보던 모습그대로 였다. 그러나 설악산의 최고봉치고는 다소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는 길이나 내려다보이는 모습들이 모두가 급경사로 굉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것과 비교가 되어서일 것이다. 대청산장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기념촬영을 하느라 분주했다. 산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곧 헬기가 도착할 예정이니 헬기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비켜달라는 안내 방송이 거듭 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다쳐서 헬기 지원을 요청한 모양이다. 우리 부부는 북한산에서 가끔 헬기가 낮게 날면서 일으키는 먼지바람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그 지역을 통과해서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까지의 길은 순조로우면서도 그늘이 없어서 매우 힘든 길이 었다. 대청봉이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발디딜틈이 없었다.
대청봉 정상은 호박돌 모양의 특이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돌무더기와 같아서, 제주도의 용두암주변을 연상케 했다. 다른 사람들 사진촬영 하는 동안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정상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니 나무 그늘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고 온통 햇빛에 노출된 뜨거운 공간들뿐이었다. 우리가 오르던 길 반대편에서는 오색이나 한계령에서 넘어오는 등산객들이 힘들게 정상으로 오르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길목을 피해서 대청봉이라는 표식을 등지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앉으려는데 헬기 소리가 들리며 산장쪽의 헬기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헬기가 환자를 이송하는 광경과 멀리 보이는 울산바위 그리고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어제밤에 용대리 슈퍼에서 구입한 햇반과 포장김치로 식사를 하는데, 땡볓에 앉아서 먹는 점심이었지만 먹을만했다. 특히 햇반은 별도의 조리없이 먹어서 조금은 성긴듯한 느낌이었으나 그 부족함을 포장된 포기김치가 충분히 보완해 주었다. 점심식사와 후식을 마치고 나니 12:40분이 되었다. 새벽 3:30분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자그마치 9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움직였으니 내가 생각해도 마노라가 존경스러웠다. 지금부터 하산해서 백담사까지 6시간이 소요되면 오후 7시가 될 것이고 그러면 백담사에서 용대리 주차장까지 가는 순환버스를 탈수가 없으니 그곳에서부터 7km를 다시 걸어야 되니 김석용 일행을 만나기는 어려울것 같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중청산장에 내려와서 신발끈을 고쳐메고 쓰레기 집하장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한후 걷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힘은 덜 들지만 무릎에 오는 충격을 잘 흡수해야하기 때문에 속도는 조금 빨라야 한다. 즉 뒤뚱거리며 쿵, 쿵 걸으면 충격이 크기 때문에 경쾌하게 달리듯이 살짝 살짝 뛰어주는 것이 좋은데 그게 잘 되지를 않았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중청산장에 다다라서 냉장된 음료를 하나씩 마시고 돌아 나오는 데, 진열된 에어파스가 보여서 혹시나 하고 하나구입해서 배낭에 넣었다. 오를 때와 같이 근육경련이 일어나면 응급처치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매주 북한산을 오르지만 북한산은 비상시에 언제든지 내려올 수 있는 길도 알고 있고, 그 소요시간이 1시간이내이기 때문에 상비약은 준비를 하고 다니지 않았는데 큰 산에 오게 되면 이러한 준비도 필요할 것 같았다. 한참을 더 내려오다가 봉정암 못 미쳐서 예방차원에서 무릎에 부부가 에어파스를 듬뿍 바르고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봉정암에서 물을 다시 가득 채우고 본격적인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오를 때는 힘도 들고 바쁜 마음에 잘 몰랐었는데 내려가는 길에 보니 봉정암을 향해 오르는 등산객들 중에 가끔씩 “미역”을 배낭에 메달고 그 힘든길을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봉정암은 신도들이 정성을 드리러올 때 미역이나 공양미등을 가지고와서 정성을 드린단다. 즉 자신들이나 다른 참배객 또는 등산객들에게 무료급식을 위해서는 산꼭대기에서 필요없는 돈 보다 직접 먹을 수 있는 쌀이나 미역등을 많이 가져가는 모양 이었다. 다음에 오를 때는 나도 뭔가를 가져가는 정성을 드려야 겠다.
아침에 오를 때는 전체적인 기온이 낮았지만 오후 1시가 넘으니 햇빛이 뜨거웠다. 그러나 오르는 길에 땀을 흘리고 나서인지 몸은 상당히 가벼웠다. 좁은 길이었지만 추월과 추월을 거듭해서 우리가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1.5배정도는 빠르게 내려 온것 같았다. 등산로 안내도에 10.4km를 오르는데 6-7시간정도를 예상해 놓은 것은 좁은 길에서 지체되는 시간까지를 고려(?)한 것일까? 어쨌든 우리 부부는 그 시간을 상당히 많이 단축했다.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17:30분 경 이었으니 내려오는 데는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도 내려오는 길에는 오를 때 보다 계곡에 흐르는 물에 발도 한 두번 더 담그어 보고 기념사진 촬영도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새벽에 오르는 길이 호젓하고 한가로운 것에 비해 내려오는 길은 몸도 지치고 순환버스를 타야 한다는 조바심에 길 자체로만 보일뿐이었다.
구담폭포부근을 지나는데 앞서가는 부부의 행동을 보니 여자 쪽에 문제가 생긴것 같았다. 철제계단 난간을 힘들게 잡고 한발 한발 내려가고 남편은 뒤에서 천천히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그 부부도 갑작스런 산행으로 인해 무릎이나 다리에 무리가 온것 같았다. 지나치며 왜 그러냐고 확인을 해 보니 예상했던 대로 무릎에 이상이 있단다. 내가 배낭을 내려놓으며 조금전에 구입한 에어 스프레이를 주면서 양쪽무릎에 충분히 분사를 하라고 했더니 고마워하며 정말 충분히 분사를 했다. 에어파스는 일시적인 진통효과도 있기 때문에 장거리 산행에는 하나쯤 준비를 하면 좋을듯 싶다.
오른 길을 다시 내려오는 것이 힘든 이유는 신비로움이 없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승용차가 없었다면, 대청봉에서 신흥사 방면으로 하산 길을 잡고 비선대등 수학여행때 들렀던 권금성도 보면서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시간도 절약되고 더 좋았을 텐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은 아침에 올라오면서 중간에 김석용 일행을 만나면 내가 가지고 있던 승용차 키를 김석용에게 주고 우리는 대청봉에서 설악동 방향으로 내려가고 김석용부부는 내 승용차로 미시령을 넘어 설악동에서 만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쪽 일행과의 일정을 알 수 없어서 중간에 만나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오후 5:30분경에 백담사가 보이는 곳 까지 다다르니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졌다. 김석용 일행에게 전화를 했더니 용대리 주차장 입구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있단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순환버스를 타고 가서 그들 일행과 만나, 가능 하다면 그들 일행은 미리 보내고 김석용부부와 같이 남애항에서 1박을 한 후 내일 오대산으로 가벼운 몸풀이 산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순환버스가 출발하는 곳으로 다가가는데, 좌측 개울 건너편의 백담사경내에까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세상에!!!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걸어온 이유가 18:00이전에 버스를 타야겠다는 일념으로 강행에 강행을 거듭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이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가 도대체 몇 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당시의 절망감 이란 지금도 정말 생각하기 싫다.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버스승차장 까지 가서 보니, 이제 막 승차하는 사람들은 거의 2시간 가까이 기다린 사람들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이상을 기다려야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의 절망이 이렇게 큰데 우리 마노라의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내려오면서도 오히려 나를 제촉하며 순환버스를 타야한는 기대를 하며 내려온 사람인데.......
순환버스는 백담사에서 용대리 주차장까지 7km를 왕복하는데 차량은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워낙 많고, 험한 길이라 입석 없이 승객을 모두 좌석에 앉혀서 운행하다 보니 버스 1대에 30명 정도가 고작이니, 그 전날 봉정암에 노숙을 한 사람들의 숫자를 어림해보면 짐작이 갔다. - 아침에 봉정암에서 머물었던 사람들에게 주먹밥을 나누어 주는데 2,500명분을 준비 했다가 일찌감치 동이 나고 김석용의 말을 빌리면 추가로 1,000명분을 더해도 부족 했단다.(?)
봉정암이란 곳이 그리 넓은 곳이 아닌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것 같았다. 지금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렇다면 그 사람들과 우리같이 그에 해당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가 버스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니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하산 길은 모두가 지쳐서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대부분 이었다.
버스를 2시간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지금까지 괞찮던 발바닥이 따끔거리고 에어파스를 뿌렸던 왼쪽 허벅지도 괜히 뻐근해졌다. 김석용 일행에게 여기 사정을 설명하고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계획된 일정대로 움직이라는 전화를 한 후,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며 우리부부가 내린 결론은 다시 걷자는 것이었다.
아침에 1시간 만에 주파를 했으니 아무리 피곤해도 버스 기다리는 시간 안에는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마노라의 제안에 기다리자고 할 수도 없고 다시 걸어갈 생각을 하니 온몸에 기운이 빠졌지만, 머릿속에서 생각만하고 있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서 주차장 과 조금 떨어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용무를 본 후 신발끈을 다시 고쳐 매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방금 나온 부부와 일행이 자신들이 타고온 승용차문을 열고 짐을 정리 하고 있었다.
일반차량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기 때문에 국립공원 관계자나 사찰의 업무용 차인 것 같았다. 마노라가 아직 나오지 않아서 신발끈을 고쳐맨 내가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짐정리를 하고 있는 남자와 조금 떨어져서 짐 정리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내려가는 차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와서 혹시 짐칸에라도 좋으니 2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이 없냐고 다시 물었다. 그 아주머니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짐을 정리하던 남편에게 나의 얘기를 전달했던 모양이다. 그 남편이 나를 돌아보며, “타소!” 했다. 나는 그들의 일행이 몇 명인지도 모르고 물어본 상황이라 주변을 살피면서 일행이 몇이나 되냐고 물었더니 일행은 3명인데 짐이 좀 많지만, 차가 6인승 찦차 이니 가능할 것이란다. 우리 부부가 타면 5명이 되니 계산상으로는 1자리가 남게 된다.
그때의 그 기분이란 정말 뛸 듯이 기쁘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조금전까지 뜨끔거리며 아프던 몸은 아무렇지도 않고 마노라가 나오면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면 마노라 또한 얼마나 기뻐할까? 를 생각하니 남편으로서 무지하게 장한 일을 한듯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지금쯤 세수를 하면서 내려가는 7km길과 오늘저녁의 일정을 생각하며 무지하게 힘든 마음일텐데 얼마나 좋아 할까? 그러고 있는데 마노라가 배낭끈을 조여매고 나오면서 나를 보고 출발 하자는 눈짓을 하기에 나는 웃으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 을하고 다가 오길래 사정 설명을 했더니 그 이쁜 얼굴이 더욱 이쁘게 환히 웃으면서 좋아하는 모습이란, 정말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착각에서 우쭐해 졌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얘기를 나누어 보니 경북 안동에서 봉정암의 스님께 심부름차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아침 5시에 백담사에 도착해서 차를 세워놓고 봉정암까지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우리가 5시에 용대리에서 출발해서 대청봉을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니까 놀라는 빛이 역력 했다. 자신들은 승용차로 백담사까지 와서 5시경에 출발해서 봉정암까지 왕복을 했는데 우리는 5시에 용대리서부터 걸어서 대청봉까지 왕복을 했으니 우리는 몰랐지만 그 코스를 아는 그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내려오는 길에 할머니 한분을 더 태워서 용대리 주차장까지 와서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들의 안전 운행을 빌었다.
그때가 오후 6시 경이었으니까 경북 안동까지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생각했다. 차에서 내린 우리 부부는 그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봉정암에서 마노라가 부처님께 정성을 드린 덕분으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석용에게 도착했다는 전화를 했더니 반갑게 나와서 맞으며 빨리 오게된 것을 놀라워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불심깊은 그 친구도 대뜸 부처님의 은덕이란다. 김석용 일행이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그 일행들과 수인사를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어색한 면도 있었지만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온 공통점이 있었기에 잠시 동안의 수인사 였지만 반가웠다. 커피를 한잔 마시며 이후의 시간에 대해 물어 봤더니 김석용부부는 우리와 같이 행동을 하고 싶어 했으나 그 일행을 리드하고 있는 사람이 김석용인지라 어쩔 수 없이 해어지기로 했다. 그들도 아직 도착하지 못한 일행이 있어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새벽에 차를 세워둔 곳으로 향해서 차에다 짐을 실었다.
주차장을 빠져 나오면서 주차비를 계산하는데 어제밤 부터 계산해서 이틀치 8,000원을 주고는 조금 지나오는데 마노라가 우리가 민박집에서 오늘새벽에 나와서 04:00경에 세웠는데 왜 이틀치를 줬냐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오늘새벽부터 날이 밝은 지금까지가 이틀로 생각 되어서 자진해서 이틀치를 계산한 것이다. 왠종일 힘을 쏟아서 순간적인 공황상태에서 주차비를 잘못 계산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온 길이 이미 외가평 삼거리 가까운 곳이라 되돌리라는 마노라의 말을 달래며 그대로 미시령을 향해 길을 재촉 했다. 오는 동안 그 주차비 4,000원이 무척이나 아까웠다. 금액의 크기가 문제이기 보다도 침착하지 못한 나의 행동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마노라가 얘기할 때 마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주차비 4,000원을 되돌려 받으려 가지 않은 이유중에 하나는 혹시나 가는 길에 교통체증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될까 하는 조바심에서 차를 돌리지 않은 것도 큰 이유였다. 다행히 미시령을 넘어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남애항 까지의 길은 한가로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쾌적한 코스였다. 몸의 불순물이 모두 땀으로 배출되고난 후에 멋진 미시령 드라이브코스를 달리는 기분은 상쾌함 그 자체였다. 미시령을 넘어오면서 오른쪽 멀리서 그 위용을 자랑하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오늘 정오에는 우리가 대청봉에서 저 울산 바위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며 점심 식사를 했다는 생각을 하니, 부부가 서로를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내일 현충일 오후에 서울에 도착을 하면 되기 때문에 남애항에서 1박을 하기로 계획을 한 것이다. 남애항으로 출발 하면서 그곳의 어민 후계자가 운영하는 횟집 전화번호를 몰라서 강원도 114안내로 남애항의 어민 후계자 배기주씨의 전화번호를 부탁했더니 바로 알 수 있었다. 배기주라는 이름은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 이어서 연결이 가능했다.
식사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냥 가면 되겠지만 1박을 위해서는 민박할 수 있는 곳을 사전에 예약하고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그 집이 민박을 알선해 주는 전문집은 아니지만 자기집의 손님들이 가끔 부탁을 하니까 주변의 민박집 현황을 확보하고 있다가 나처럼 전화를 하는 사람에게는 연결을 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친절하게도 횟집 인근의 모텔을 하나 예약해 주었다. 내가 이 남애항의 횟집을 알게된 것은 5-6년전에 여름휴가를 강원도 쪽으로 계획하고 있을 때 시간이 되면 꼭 들려 보라는 선배의 권유를 받고 그해 여름 강릉을지나 속초로 가는 길목의 남애 항에 들러서 가족들이 식사를 했는데 당시에도 보기 드물게 해산물을 자신이 직접 배로 수확을 해서 판매하는 어민후계자로 지정된 집답게 싱싱하고 푸짐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 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오대산을 가기전에 그 싱싱함을 느끼고 쏘주도 한잔할겸 해서 남애를 들리기로 한 것이다. 횟집주인이 예약해준 모텔에 짐을 풀고 횟집에 도착하니 예전의 집 모습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개별 횟집들로 항구 주변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입구들이 모두가 하나의 커다란 건물로 개보수 되어서 전면을 봐서는 큰 대형건물에 입구만을 구분한 것 같이 변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그래도 예전의 그 모습이 주방 쪽으로 난 화장실입구 등은 기억이 났다. 주인도 당시보다는 조금 나이가 들어보였지만 검게 그을린 얼굴은 건강하게 보였다. 그 사람이야 나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나는 그때의 명함을 지금도 사무실 명함꽂이에 보관하고 있어서 가끔 다른 명함을 찾다가 우연히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얼굴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낯선 얼굴은 아니였다.
마노라도 지난해에 서울의 테니스 동호인중에 이곳이 고향인 사람이 있어서 단체로 들린 기억이 있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낯설지 않은 것이 좋았다. 음식이란 맛도 맛이지만 마음이 편해야 그 즐거움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횟감을 시키기도 전에 주인이 와서 두 사람이 먹기에 적당한 메뉴을 권유하고 이내 부인과 딸인듯 한 학생 그리고 종원원이 전식을 내어오고 잇달아 회가 나와서 하루 종일 걸은 몸의 휴식을 위해 맛좋고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후 횟집 뒤편으로 얕은 방파재를 따라 걸으면서 밤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김석용일행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니 아직도 홍천을 도착하지 못하고 무지하게 밀린다는 소식을 들을수 있었다. 우리는 내일의 일정을 소화해야 되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여행을 가서 야영을 하는 것이 운치도 있고 나름대로의 즐거움은 있지만, 초라해도 민박이나 여관을 택하는 이유는, 도시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진 우리들의 생활패턴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서 해변에서 해장국을 먹은 후 오대산의 월정사를 중심으로 등산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제일중요한 생수를 냉장고에 넣어서 얼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잠을 청하는데 우리가 묵고 있는 층은 3층인데 공교롭게도 2층이 노래방인 모양이다. 하루 종일 햇빛에 노출된 피부의 열기와 식사와 함께 쏘주 한잔을 했더니 에어콘을 가동시켜도 잠이 잘 들 수가 없는데, 밑에서는 새벽녘까지 쿵쾅거리는 음악소리와 악을 쓰는 듯한 노래 소리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들도 지쳤는지 어느 순간에 조용해 졌다 싶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6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6월6일(월)>
계획보다 1시간가량 늦은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의 여름 아침은 새벽 4시쯤이면 모두가 움직이는 시간대인데 조금은 후회스러우면서도 탁트인 바다를 보면서 짐을 꾸렸다. 그런데 6시에 시작하는 TV뉴스에서 고속도로사정을 보도 하는데 어제저녁의 서울로 가는 정체가 오늘 새벽에 풀렸다는 소식이 전해 오고, 오늘도 많은 차량들이 서울로 향할 것이라는 보도를 보고 있자니 어제 미리 올라간 김석용 일행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올라 올때 정체되던 상황을 생각하니 짐을 싸기도 전에 걱정이 되어서 마노라에게 오대산행은 다음에 별도의 계획을 세워서 다시 찾아오고 오늘은 아침 식사후에 바로 서울로 향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에, 마노라도 걷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차안에서 몇시간씩 갇혀 있는 것은 싫어하므로 좋을 대로 하잔다. 좋을대로 하잘 때 빨리 결정을 해야지 이것저것 생각하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두말 않고, 갈려면 바닷가의 해장국보다 고속도로휴게소의 황태 해장국을 먹기로 하고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서울을 향해 출발 했다.
내가 가끔 마노라에게 핀잔을 듣는것 중에 하나가 집안의 무슨일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크게 시작을 해서 끝 마무리는 항상 마노라 자신이 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 이다.
예를들어 올 봄에 蘭을 여러盆 손을 보면서 지금까지 물주는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사실은 알고 보면 내가 하지 않아서 라기 보다, 나름대로 적당히 스트레스를 주면서 난의 물을 줘야 꽃을 잘 볼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을 마노라는 정기적으로 일정한양의 물을 줘야 된다기에 마노라가 하는데로 뒀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물을 주면 주변이 어수선해 지고 마노라가 그 지저분한 곳의 물청소를 해야되니 아예 난에 물주는 것은 자신이 맡아서 한다기에 그냥 둔것일뿐 내가 하기 싫어서 임은 아니다.
이번의 설악산, 오대산 등산계획도 결국에는 계획대로 하지 못했으니 또 마노라의 핀잔이 돌아오게 생겼다.
예전에는 영동고속도로를 진입하기 위해 강릉방면으로 해변을 따라 한참을 가야 했는데 남애항에서 해변도로 이외에 바로 고속도로로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도로가 개통 되어 있어서 쉽게 고속도로로 접근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진입후 첫 번째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제일먼저 나온 휴게소에서 황태 해장국을 시켜 야외에서 아침식사를 하니 그 맛과 멋 또한 그럴듯했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다시 운행 하니 차량은 제법 많아도 지체나 정체는 다행이 없었다. 우리가 워낙 일찍 출발을 해서 동서울 톨게이트에 도착하니 10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서울시내로 접어들면서 집에 도착하면 잠시 쉬었다가 몸이라도 풀겸 집 뒤의 북한산이라도 오후에 오르기로 하고 집에 도착하니 11:30분이 되었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김석용에게 전화를 하니 오늘새벽에 도착했단다. 오늘 우리 부부가 오대산 일정을 포기하고 일찍 오게 된것도 김석용 일행과 같이 교통체증 이라는 돌발변수를 피하기 위함 이었으니 포기된 일정이 아쉽기는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
집에 돌아와서 간단히 짐을 챙기고 한숨 돌리기 위해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는데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이들도 우리가 너무 곤하게 자고 있으니까 그냥 둔 모양이다.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려니 다리가 당기고 온몸이 무거워서 어제의 무리한 등산의 결과를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등산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김석용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내서 걸은 것과 순환버스를 타기 위해서 기를 쓰고 강행군을 했더니 평상시 5-6시간의 산행과는 강도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났던 모양이다.
6월 7일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밤 보다는 몸이 많이 가벼워 졌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우리부부는 한참을 마주 보며 웃었다. 마치 무엇에 홀렸다가 제정신을 차린것 같은 기분이어서, 어떻게 그렇게 무모한 산행을 감행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가 신기 했다. 통상적인 산행의 시간상으로는 가능하지 못할 것 같은 일을 달성 하고 나서 보니 성취감보다도 허탈하기도 하고 무모한 자신들이 그리 자랑스럽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름대로 그렇게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다.
첫째는 김석용일행이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과 조바심 때문에 무모하게 초행길을 도전할 수 있었고,
둘째는 매주 5-6시간의 산행을 할 때도 보통 사람들 보다는 부부가 시간단축 경쟁이라도 하듯이 걸어서 오래 걷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셋째는 나보다 마노라가 나를 격려하며 산행에 적극참여해준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상시 북한산 산행을 할 때도 내가 피곤하다 싶으면 걸음을 재촉하며 지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노라 이기에 그렇게 강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무식하면 용감해 진다는 얘기가 우리 부부를 두고 한 말과 꼭 같은 생각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무지막지한 우리부부의 용기를 생각하며 웃을 수밖에 없다.
다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색이나 한계령에 내려서 대청봉을 지나 신흥사 방면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좀더 여유 있게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왕복했던 코스도 오세암과 영시암 그리고 봉정암등에서 1박을 하는 계획도 한번쯤 다시 세워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리산 등산을 마친후에 말이다.
건강한 마노라를 낳아주신 장인 장모님 감사합니다.
건강한 마노라를 인솔할 수 있는 건강한 다리를 주신 어머님 아버님 감사합니다.
우리코스(17.4km, 왕복)
승용차 주차장-용대리 매표소 - 백담계곡-백담사 경내버스 승차장-백담사-영시암-수렴동대피소-구담계곡-봉정암-소청봉 -중청봉 -대청봉
(용감한(?) 부부 입니다. ㅋㅋㅋ)
※ 그후 우리 부부는, 설악동에서 - 대청봉 - 오색약수터 코스로 설악산을 보았고, 그 다음엔 오색 약수 터 - 대청봉 - 설악동 코스를 다녀 왔습니다. 2009년에는 공룡능선을 준비 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다음해로 연기해 뒀습니다.(설악산은 매년 가도 새롭 습니다. 그리고 여름 설악은 가을 못지 않게 멋진 모습입니다)
내년에 같이 가실분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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