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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경포천시민회 원문보기 글쓴이: 유래영
백두산과 천지를 본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일시 : 6 월 15일 ~ 20 일 , 5 박 6 일
출발지 : 인천 연안부두 에서 배 에서 2 박, 호텔에서 3 박
여행지 : 인천 - 단둥 - 통화 - 길림 - 백두산 - 집안 - 단둥 - 인천
참가인원 : 동기생, 가족 3 5 명 / 동기생친인척 1 8 명 / 대전 일반 / 총 123 명
여행경비는 기본경비 399,000원 팁, 비자, 할증료 포함하여 519,000 원이
들었으며 선실내부는 보따리상은 100 여명이 한방을 쓰고 우리는 6 인실
침대방을 사용했고, 배승선인원은 550명이며, 동방명주 페리호는
한, 중합작회자이며 인천연안부두에서 일주일에 3번운항한다
- 인천과 국 단둥을 표기한 항로지도 이며 단둥에서 백두산 까지는 버스로 6 시감정도 걸린다
이번 탐방의 하일라이트는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천지를 보는것이다
백두산을 올라가는 코스는 4 가지길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북한을 통하여 올라가는길은
동파 와 남파 길이 있으며, 중국을 통해서 가는길은 북파와 서파가 있는데 연변비행장을 통하여 올라가서
장백폭포를 볼수있는 북파가 있으며 , 5 년전에 단동에 배로 입항하여 올라가는 서파길이 새로 개설
되였다고 하는데 우리가 오른길은 서파길로 올랐다, 북파로 가는분들이 아직 까지는 더 많은대
앞으로는 뱃길로 서파길이 가는분들이 많을걸로 예상하고있다
- 서파에서 북파로 통하는 트래킹 코스는 통상 8 ~ 10 시간정도 걸린다고 한다
- 다음 백두산등반때는 중국길인 서파, 북파길보다는 북하늘 통한 동파, 남파길로 올라가길 기원합니다
"파" 란 "제방, 둑" 이라는 뜻으로 천지를 막고 있는 능선 (언덕) 을 말하며,
서파라 함은 천지를 둘려싸고 있는 서쪽 백두산 능선을 말한다, 우리는 이번에 벼르고 별러서 올랐는데
전날 오후에 비가 와서 다음날 백두산을 못오를 염려로 일정을 변경하려 하였으나 가이드가 사정상 안된다고한다
- 가이드는 후에 백두산 올라가는날에 백두산주변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고민이 많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씨라 안심하고 점심식사후에 등반을 시작했는데
날씨도 쾌청하고 너무 더워서 땀을 흘렸는데 올라갈때 조금 흐릿하더니 바로 안개가 끼더니 불과 3 분사이에
백두산 천지가 가려져 있어서 아무것도 볼수없었다,,,,, 우리가 천지를 보는시간 약 15 분 정도는
천지를 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잠시후 안개가 몰아치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칼바람이 몰아처서
급히 오리털 파카에 소주를 들이켰지만 너무도 추워서 하산 할수뿐이 없었다 ,,,,
우리 충구회님들이 백두산 천지를 본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였다
중국정부에서 백두산관광은 날씨관계로 5 월 하순부터 9 월초 까지만 입산이 가능하다고한다,,,
백두산 천지 주변은 1년에 50~60일만 천지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하며 오신분중에 60대 후반 어느분은
3 번째 만에 천지를 보았다고 하면서 매우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마냥 뿌뜻한 마음을 가졌다
백두산 정상에는 비 한방울 안 왔으나 하산하여 보니 주차장 주변에는 비 가 많이 와서 모든것이 흠뻑 젖어
있었으며 정상에도 불과 15 분 정도만 우리에게 천지를 보여주고는 바로 갈바람과 안개로 순식간에
천지의 모습을 없애 버렸는데 우리들은 비 한방울 맞지 않고 안개 없이 천지를 보았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 아마도 충구인들은 평소에 福 짓는 일을 많이 하신모양이다 ~~~
중국의 일반적인 촌평
흔히 중국은 100번 가봐도 모른다고 하는데 내가 불과 5번을 가보고 (북경, 구체구, 황산, 장가계, 백두산)
평한다는것은 웃기는일이지만 내가 중국을 여행하면서 이런 저런점을 느꼈던 점을 서술해 보겠다
1) 자동차의 크락션을 자주 눌누고 소리도 아주커서 많이 놀랜다 (전형적인 후진국 문화)
2) 운전자나 보행자가 중앙선침범과 신호등을 무시하고 다니는데도 이상하게도 교통사고가 거의 없다
3) 모택동의 문화혁명때 13억명의 인구문제로 전국의 묘지를 전부 없애서 묘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4) 현재 인구는 13 억 5천이라고 하나 아들선호사상으로 호적에 못오른자가 1억5천만명된다고한다 (한가족당1명)
5) 산업화 영향으로 농촌인구의 감소로 정부는 농사를 지으면 농민에게 무조건 보조금을 주어서 노는땅이 없다
6) 중국은 56개 민족인데 한족이 90%이고 나머지는 소수민족이고 소수민족을 위해 세금,등 많은특혜를 준다
7) 내가 보기에 올림픽을 치룬후에 사회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웃는것, 웃통벗는것, 음식, 친절, 기타)
8) 과거 중국음식은 독특항향 때문에 거의 못먹었으나 지금은 관광객음식에는 독특한향이 많이 사라져 먹을만하다
9) 한족은 붉은색을, 만주족은 청색을 좋아하는등 민족간에 특성이 많고 갈등이 많다고 한다
10) 중국은 워낙 넓어서 표준시차를 2 시간을 두어야하나 공산국가로 전국을 단일시차 개념 이라고 한다
11) 집모양은 한족은 일자형인데 조선족은 처마등이 곡선이래서 멀리서 보아도 금방차이가 난다
12) 중국언어는 북경어가 표준어이나 광동어, 조선어 등 사투리, 각민족어로 골치가 아프다고한다
13) 중국은 어딜가나 놀음인 마작을 즐기는데 돈은 언제모으는지 궁금하기만하다
14) 결혼시에는 부 를 과시하려고 짝수로 밴츠등 유명자동차를 임대하여 도시를 배회하여 과시 한다
15) 중국은 50살이 넘으면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영양때문에 평균수명이 매우 낮다고 한다
16) 중국은 모든것에 가짜가 워낙 많아서 서로가 믿지를 못한다고 한다 (계란 도 가짜고, 짝퉁이 많다고한다)
17) 고속도로, 국도에 휴게소가 거의 없고 있어도 겨우 물, 과자만 있고, 화장실시설도 수준미달 이다
18) 한족은 여자는 놀고 남자가 육아, 세탁, 밥, 등을 전부하고 여자가 남자 싸다구를 때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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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외에도 많지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평하는 웃기는 야그는 그만 끝 ---
- 그러나 부정적인면보다는 세계 초일류 강국으로 불과 10 여년안에 미국을 제친다고한다
이번 여행에 아쉬운점이 있다면
1, 버스타는 시간이 너무 길었는데 짧으면 2 시간, 긴것은 6 시간까지 걸린것으로 너무 지루했다
2, 6 시간 버스를 타는데도 휴게소가 없어서 노상방뇨 하거나 주유소에서 해결한것이 아쉬웠다
3, 버스가 최신형이라고 하는데도 스프링장치 결함인지 뒤좌석은 많이 피곤했다
4, 음식점과 동산호텔에 보완할점이 있었다 (이문제는 중국국내문제로 우리가 간섭할사항이 아니다)
5, 여행갈데는 그나라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가여 하나 안하고간것을 반성한다
- 여행은 공부한것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그런점에서 소흘했다
그러나 집 떠나면 고생이고 타국을 관광하려면 그정도의 불편함은 감수 해야되고
최종 목적지인 백두산과 천지를 보았으므로 내가 물어본 모든분들이 전부 아주 만족한다고
대답하여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리고 이기회에 참여해주신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리고 불편했더라도 웃으며 수고했다고 대답해주신 모든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백 두 산 지 도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 이라고 한다
이번에 순수 동기생과 가족이 3 5 명이고, 친인척을 포함하면 54 명, 대전에 유 갑부 사장에게 신청한분을
모두 포함하면 123 명이 백두산탐방을 하였으며, 버스 4 대로 분승하여 이동하였다
아래 사진은 순수 동기생과 가족만이 백두산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우리가 올가서본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다
밑에는 활엽수가 무성하고 올라올수록 침엽수 원시림이 만연했고 , 2,000 미터를 넘어서는 꽃 뿐이 없었고
그위에는 식물들도 전혀 살수가 없었으며 특히 정상주변은 6 월 중순 인데도 빙벽과 얼음, 눈 으로 뒤덮여 있었다
- 백두산은 사계절이 공존하는 유일한곳이며 유네스코에 등록되여있는 천연보고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된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샌달을 신고 가볍게 올랐는데 정상날씨는 변화무쌍 하였다
역시 산에 오를때는 겸손한마음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이런사진이 인터넷에 오를줄은 ,,,, ㅋㅋㅋ 하여튼 조심, 조심 입니다요,,,,
- 정상에서 5 분만 더 체류했다면 바로 동상에 걸릴만큼 혹독한 날씨였다
백두산 하산시에 있는 금강 대협곡이다, 한국에도 이런데가 있나하고 감탄을 하였으며, 내가본 협곡중에서 최고로 아름답고 인상적이였다 / 모두들 감탄하였다 - 깊이가 수백m 이상이고 기암괴석과 원시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워서 환상적이였다
우측다리는 압록강 단교로 6,25 전쟁시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다리이며
좌측 철교는 새로 건설된 신의주 _ 단동을 연결하는 철교로 김정일이가 중국방문시 통과하는 다리고
중국과 북한과의 교역량의 90 % 이상을 압록강 철교를 이용하여 수출,입 교역을 하고있다고 한다
중국에 있는 고구려 19대왕인 광개토 대왕비가 있는곳인데 유리문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하며 1 KM 떨어져 있는 광개토왕릉은 3 번 도굴을 당해서 시신을 놓는 " 판 " 만 있는데 초라하기 그지없고 왕릉 이라기 보기에는 너무도 초라하였고 쓰레기와 잡초로 뒤덮여 있어서 분노를 금할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광개토대왕을 " 왕 중에 왕 " 으로 높이 생각하여 " 호태대왕 " 이라고 하며 비 도 일제시대에 일본군 호리 중위가 발견했다고 하며,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반출하려고 했지만 당시 집안현 (한국으로는 군 에 해당) 현장이 강력히 반대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지금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중요 관광지중에 하나 라고 한다
광개토대왕릉비:장수왕 3년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능과 함께 국내성 동쪽 언덕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세운 사면비석이다. 비석은 이수가 없이 대석과 비신으로 이루어졌으며 대석은 길이 3.35m. 너비 2.75m이고 비신은 너비 1.35m. 높이 6.39m에 이르는 동양최대의 비석이다. 비신의 4면에는 44행 1,775자의 문자를 10에서 15cm 정도의 크기로 음각하였는데, 글씨의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하여 모눈종이처럼 칸을 나누어 놓았다. 이 비석은 조형적 아름다움은 없으나 고구려사 및 동아시아교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비석이다. 그리고 광개토왕비는 고구려의 멸망과 만주의 상실로 잊혀져 있다가 조선 세종조에 편찬된 용비어천가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 조선초에 알려지게 된다. 그 후 비석은 1880년경 청나라 농부에 의해서 재발견되어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다. 자연풍화에 의한 마모와 1882년 경 만주를 정탐여행중이던 일본군 중위 사까와 카게노부에 의한 악의적인 비문의 변조. 무분별한 탁본. 보호관리의 잘못으로 훼손이 많이 되어 과학적인 보호대책이 시급하다. 능비의 발견으로 한.중.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나, 고구려사나 동아시의 교섭사 연구보다는 일본측이 식민사관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비문을 조작. 오독하여 "일본이 369년 가야를 정복하고 200여년 동안 지배하였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함으로 그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주로 이루어 졌다.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의 내용은 대체로 3단으로 나뉩니다. 1단에는 고구려의 건국 신화 및 고구려 왕실의 세계(世系)가 기록되어 있다. 2단에는 광개토왕의 정복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3단에는 왕릉을 지키는 묘지기의 차출 방법과 내역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비 (펌)
광개토 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의 묘소이며 우리가 알고있는 장군총의 모습이다 ( "총" 이라는 말은 무덤을 뜻한다)
오회분 4-5호묘는 사신총과 함께 7세기 고분임.
묘실 전경 (무덤의 구조와 벽화의 배치상태 등 모습)
# 우리가 어릴때배웠던 교과서에 나오는 고구려벽화를 보아서 감개무량했다
천장 밭침돌 벽화에 등장하는 농사의 신 (소머리에 벼이삭을 들고 질주)
천장과 계단식 천장받침돌 벽화 (북현무,남주작,좌청룡,우백호)
중국은들은 언제 어디서나 " 마 작 " 을 즐기고 있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배, 시장, 놀이터, 상점, 등 어디에서나 볼수있는데 관광지를 돌아다닐때마다 볼수있다
중국인들이 놀음을 좋아하는것을보니 가정불화와 가난은 멀어질것이다,,,,
백두산여행시에 송아지고기를 필히 먹으라고하여 일행이 적어서 35 명이 소를 잡을수없어서 대신 소고기를
먹기로 하였는데 그들은 생고기 라고 하지만 양념한 고기고 맛도 별로였다, 그러나 야외 가든파티로 동기생간에
이과두주술 로 친목을 도모하고, 과거 군시절을 회고 하면서 먹은 소고기 회식은 최고 하일라이트중에 하나였다,,,
- 김재기님 에게 다정스럽게 어께동무한 여성은 처음보는데 누구여 ㅎㅎㅋㅋ
중국 단동에 있는 북한식당에 호기심으로 가보았는데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손님대접도
받지 못했다, 음식맛은 우리들 입맛에 거의 맞아서 맛있게 먹었는데 손님 서비스등 문제점이 많았다
식사중에 북한처녀 3 명이 약 10 여분동안 반갑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노래를 하였다
이번여행에서 왕 회장님으로 존경받는 이세종님이 버스 투어시 동기생과 가족들에게
" 사랑의 행복 선포식 " 을 하라고 하면서 가족과 아이들에게 더 잘 ~ 해주라고 명 강의를 하였으며
북한식당에서 王 회장님은 동기생 전원에게 중식을 제공하고 식대 일체를 지불하였다
또한 " 여보 사랑해 " 사랑합니다 ", 좋은말만 하고 싫은소리를 하지 말자
라는 말만 하여 삶에 시너지효과 를 높여서 샐활의 질 을 개선하자 라고 강조하였는데
백번 맞는말이고 이 운동이 널리 퍼져나가는 행복바이러스가 전파되길 기원한다~~
- 돈 을 떠나서 동기생을 위하여 좋은자리를 만들어 주신 이세종 회장님에게 다시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압록강에서 바라본 북한의 풍경이다, 중국산은 나무가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 북한은 산 중턱 까지
개간하여 밭으로 쓰고 있어서 여름철 홍수시에는 안봐도 뻔하게 홍수에 시달릴것 같아서
모두가 마음이 아팠다, 같은민족인데도 정치 문제로 어찌 이럴수 있단 말인가 ???
호장산성과 붙어있는 " 일 보 과 " 기념비다, 뒤에있는 약 5 m 하천만 건너면 북한 이다
이번 여행중에 소득중에 하나가 북한과 가장 가까운거리까지 가보았다는것이다,,,,
중국인들은 상술이 뛰어나서 그런지 일ㄴ곳도 돈을 받고 입장을 시키는 사람들이니 많이 조심해야겠다,,,
- 북한땅을 불과 10 m 앞에서 보는것이 처음인데 이또한 이번여행에 하일라이트중에 하나였다
충구 산악회 (회장 이대연, 총무 김재룡) 에서 충구인단합을 위하여 연안부두에서 회를떠서
아이스박스에 소주와 함게 준비한 (20 만원) 싱싱한회 로 동방명주 크루즈 선상에서
시원한 바다바람을 맡으면서 이대연 회장이 건배선창을 하고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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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우리가 승선한배에 침실인데 6 인실 침대방이며 화장실, 샤워실이 있어서 그런대로
쾌적했다, 돌아오는날 침대앞에서 동기생과 같이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누는장면 입니다
70 / 80 년대 추억의 히트곡
01.나는 못난이 - 딕 훼밀리 / 02.꾸꾸루 사랑 - 세부엉
03.그대여 - 이정희 / 04.밤에 떠난 여인 - 하남석
05.사모하는 마음 - 서유석 / 06.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박건
07.나는 너를 - 장현 / 08.한잔의 추억 - 이장희
09.등불 - 영사운드 / 10.별이 빛나는 밤에 - 윤항기
11.짝사랑 - 바블껌 / 12.그건너 - 이장희
13.미인 - 신중현 / 14.아침이 올 때 - 양병집
15.편지 - 어니언스 16.미련 - 장현
17.제비 - 조영남 / 18.모닥불 - 박인희
19.달무리 - 영사운드/ 20.석별 - 홍민
21.거짓말이야 - 김추자 / 22.이사가던 날 - 산이슬
23.장미빛 스카프 - 윤항기 / 24.기다리게 해놓고 - 방주연
25.새색시 시집가네 - 이연실 / 26.안녕하세요 - 장미화
27.사랑의 진실 - 임창재 / 28.님이 오는 소리 - 이필원
29.험한세상 다리되어 - 영사운드 / 30.나는 어떡하라구 - 윤항기
31.내곁에 있어주 - 방주연 / 32.슬픈 노래는 싫어요 - 유승엽
33.수선화 - 홍민/ 34.이거야 정말 - 윤복희
35.눈이 큰 아이 - 버들피리 / 36.섬소년 - 이정선
37.찬비 - 윤정하하 / 38.세노야 - 양희은
39.영상 - 김재성,안혜경 / 40.눈으로 - 권태수
41.목로주점 - 이연실 / 42.산사람 - 이정선
43.한사람 - 양희은 / 44.두개의 작은 별 - 윤형주
45.노래하는 곳에 - 윤항기 / 46.그쟈 - 최백호
47.조개껍질 묶어 - 윤형주 / 48.내게도 사랑이 - 함중아
49.구름 들꽃 돌 연인 - 이정선/ 50.나는 행복한 사람 - 이문세
51.내이름은 구름이여 - 조용필 / 52.비와 찻잔 사이 - 배따라기
53.나의 사랑 그대곁으로 - 남궁옥분/ 54.그댈 잊었나 - 임지훈
55.독백 - 김창완 / 56.유리벽 - 신형원
57.장미 - 하야로비 / 58.사랑하면 모든것이 - 이광조
59.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 박영민/ 60.기도 - 홍삼트리오
61.인생은 미완성 - 이진관 / 62.불씨 - 신형원
63.재회 - 남궁옥분 / 64.옛시인의 노래 - 한경애
65.그날 - 김연아 / 66.회상 - 산울림
67.하얀목련 - 양희은/ 68.갈수없는 나라 - 이광조
69.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면서 - 해오라기 / 70.백지로 보낸 편지 - 김태정
71.진눈개비 - 조동진 / 72.비둘기에게 - 시인과 촌장
73.참새와 허수아비 - 조정희 / 74.잃어버린 우산 - 우순실
75.여인 - 소리새 / 76.소녀 - 전영록
77.그대 떠난 이밤에 - 옥슨80 / 78.기도하는 마음 - 김태정
79.내가 말했잖아 - 로커스트 / 80.겨울아이 - 버들피리
81.연인들의 이야기 - 임수정 / 82.사랑의 노래 - 오준영
83.물레 - 유한그루 / 84.우연히 - 이정선
85.도요새의 비밀 - 정광태 / 86.어느새 - 장필순
87.건널수 없는 강 - 한영애 / 88.길위의 연인들 - 노미애
89.그대 그리고 나 - 소리새 / 90.이별이란 없는거야 - 최성원
91.미련 - 전영록 / 92.사랑 그리고 이별 - 신계행
93.기차와 소나무 - 이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