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도배 전문회원 적곡 마로입니다.
무휼에 관한 글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번 글도 자칫하면 돌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감수하고 쓰는 글입니다.
왜냐하면『바람의 나라』팬이신 분들 중에서도『신조협려』의 주인공들 중 각기 한 사람 씩 취하여 자신의 닉을 삼으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금 용의 작품에 대해 어느 분은 이런 평가마저 내리고 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금 용의 작품을 읽어 보았다면 무협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고, 한번이라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 할 가치가 없다고도 생각된다."(작성자 : 무돌 2004/06/25)
여하튼 그의 작품이 이미 해외 여러 대학에서 중국문학교재로 채택되어 읽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이는데 문제는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편견이랄까… 그러한 부분들을 판별하면서 읽지 않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그의 영웅전 3부작 즉『사조영웅전』,『신조협려』,『의천도룡기』에서 항상 결론은 "짱꼴라는 위대하다(또는 위대했다.)"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를 망각하는 한국 독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지요.
뭐 대 한족주의야 그가 중국인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요.
문제는 그 목적을 위해 역사와 문학(심지어는 물리학까지)에 달통했다는(적어도 그의 실력은 인정해줄만 합니다) '신필'이라는 양반이 역사도 서슴치 않고 왜곡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지요.
1. 야율 진, 야율 제라는 인물은 중국 역사책 어디에도 없다.
야율 진(耶律晉)이라는 인물은『신조협려』제2권에서 나오며 설정상으로는 몽골제국 제2대 황제인 태종 오고타이의 재상인 야율초재(耶律楚材 ; 1190~1244)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야율 진이라는 인물은 중국 역사서에는 없습니다.
뭐 소설의 목적을 위해서야 가공의 인물이 등장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고려원 판본『신조협려』(제목은『영웅문』제2부 영웅의 별) 제2권 130쪽을 전후해서 보시면 야율 초재의 장남으로 설정된 야율 진이라는 젊은 관원이 나오지요.
이것 만이라면 그래도 또 괜찮지만 문제는 주인공인 양 과가 아직 완벽한 형태의 무공을 쌓은 것이 아님에도 농락당하다시피 야율 진이 졌다는데 있습니다.
물론 재상의 아들이라고 꼭 무공이 강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전체적 연출로는 그다지 필요한 부분이 아님에도 굳이 이 부분을 넣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또 다른 의문은 야율 진의 동생으로 나오는 또 다른 가공 인물인, 야율 초재의 둘째 아들로 설정된 야율 제(耶律齊)인데 이 사람의 경우도 양 과의 계책에 의해 이미 (야율 제 자신이) 한 번 이긴 바 있는 완안 평이라는 소녀에게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스토리 상 본편의 흐름 자체와 크게 연관이 없을 이러한 야그들을 굳이 '창작'하여 집어 넣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한 야율 초재 자녀들의 이름이 하필 외글자이며 또한 고대 중국 국명들이 동원되는 것도 무엇인가 수상합니다.
큰 아들은 진(晉: 산서성) 둘째 아들은 제(齊: 산동성), 셋째인 딸(딸로만 치면 장녀입니다만) 이름은 연(燕: 하북성)이라는 점은 어떤 혐의를 짚어내는 데 모자람이 없겠지요.(물론 춘추-전국시대의 국가들을 모두 중화인들(당시 서주 왕조의 혈통을 받았다고 여기는)이 세운 국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시 금 용 작가가 집필할 시에는 중국인들이 이들 나라들을 모두 한족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아직 이 부분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기원까지 거론해야 할 정도로 머리가 복잡하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실제로 야율 초재의 장남 이름은 야율 현(耶律鉉) 차남은 야율 주(耶律鑄)라는 이름입니다.
거란족으로서는 특이하게 한족 식으로 외글자를 이름으로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중국 국명을 이름으로 삼는 식은 결코 아니지요.
2. 야율 초재는 겁장이가 아니었다.
본서 136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야율 초재는 자신이 황후(태종 오고타이의 제6황후인 투르게네)의 미움을 받고 있어서 전가족의 생명이 풍전등화에 이르자 위급함을 느끼고 곧 황후에게 '하남 지방이 평안치 못하여 대신을 파견하여 선무해야한다'고 상주하면서 자신이 칙명을 받들어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일국의 재상 치고는 다소 겁장이 같은 인상을 주는 글입니다.
그런데 실제의 야율 초재는 어땠을까요?
『신원사(新元史)』라는 역사책에 보면 태종 오고타이의 제6황후이자 섭정인 투르게네가 야율 초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후계 군주는 누구를 세워야 하겠소?'
당시 태종 오고타이의 사망 후 섭정이 되었던 투르게네는 자기 친아들인 구유크를 후보로 밀고 있었으므로 야율 초재에게 압박성 질문을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야율 초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외신(外臣)이 감히 언급할 일이 아니옵니다.'
당당히 명분을 세우면서도 완곡하게 구유크 지원을 거절하는 답변입니다.
또『원사(元史)』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又有旨:'凡奧都剌合蠻所建白,令史不為書者,斷其手.'
"우유지:'범오도랄합만소건백,령사부위서자,단기수.'
"또 (투르게네의) 교지(명령서)가 있었다. '모두 압둘 라프만(한자표기: 오도 랄합만)이 건의한 바를 령사(문서 담당관)가 글로 쓰지 않으면, 그 손을 자르리라.'
이것은 명백하게 야율 초재를 노리고 한 말입니다.
태종 오고타이 황제 시기 동안 나라의 모든 문서를 다루다시피 한 사람이 야율 초재니까요.
그때 야율 초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楚材曰:'國之典故,先帝悉委老臣,令史何與焉.事若合理,自當奉行,如不可行,死且不避,況截手乎!' "
초재왈:'국지전고,선제실위로신,령사하여언.사약합리,자당봉행,여불가행,사차불피,황절수호!' "
(야율) 초재가 말하였다 : ' 나라의 전고는 선제가 모두 늙은 신하(야율 초재)에게 맡겨주셨으니 영사가 어찌 (저와) 함께 하겠습니까. 일이 만약 이치에 합당하면 당연히 받들어 행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죽음 또한 피하지 않을 것이니 하물며 손이겠습니까!' "
『元史』卷一百四十六「列傳第三十三/耶律楚材」, p. 3464.
『원사』권 일백 사십 륙「렬전 제 삼십 삼/야률 초재」, p. 3464.
이것만 보아도 야율 초재의 사람됨이 대략 짐작되지 않으십니까?
그럼에도 금 용은 한족(漢族)이 아니라는 이유로 야율 초재를 평가절하 하는 성향을 나타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적자면 한이 없지만 이 정도만 해도 '신필'이라는 금 용의 역사관이 어떤 것인지를 충분히 살필 수 있습니다.
한데 드라마 해신을 보면 이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경우를 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제나라' 문제나 '토번 태수' 문제는 이미 많이 이야기했으니 접어두더라도 해신과『신조협려』의 공통점은 '중화주의'에 상당히 매몰되어 각본이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게시판에서 이런 저런 항의 및 반론이 빗발치고 작가 자신도 국적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자 제나라 전쟁의 종결을 빌미로 '끼워넣다시피' 중화주의적 서술을 희석하려 애썼지만 일단 무령군 소장이 되기까지 장보고가 활동했던 자취를 살펴보면 중화주의를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렵지요.
이런 문제가『태왕사신기』라고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가령 한족[漢族]의 나라인 동진[東晉]은 수준 높은 문화국으로 그리고 태왕의 제일 적국인 후연[後燕]은 문화도 무엇도 없는 열등국으로 그릴 가능성이 없다 할 수 있겠습니까?
스토리로 보아 백제와의 이야기가 주가 될 터이니 그럴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견도 있겠습니다만 그럴 경우에도 어떤 형태로든 동진 도자기의 우수성 운운 하는 이야기부터 나오지 않을런지 마음에 걸립니다.
회원 적곡 마로가 썼습니다.
첫댓글 적곡 마로님의 말씀은 언제나 한마디 한마디가 맞는 이야기들 뿐이신 것 같아요. 우리 나라 역사를 괸장히 생각하시는 분 같아요. 저도 사실 신조협려를 아무 생각 없이 읽었지만 그렇게 많은 오류가 있었는지는 몰랐거든요. 다시 한번 읽어보면 적곡 마로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읽어야 겠네요. 언제나 행복하세요.
정성껏 읽어주시고 답변까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