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이의 방에는 어떤 그림이 있나요?

[피닉스2]

<자녀 방에 걸어주고 싶은 그림전>에는 아이의 두 눈에 담아주고픈 그림들이 가득하다. 엄마가 된 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아빠가 된 후 그림을 그리는 눈이 깊어진 이들이 그린 세상은 따사롭기만 하다.

어린 시절, 책장이 키보다 훌쩍 높아 맨 아래 칸에 꽂힌 책을 꺼내 가지고 놀곤 했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림 관련 전집이었는데 책을 블록 삼아 집을 지었고, 주르르 줄지어 놓고 도미노 게임도 했다. 무작위로 책을 펼쳐 나오는 사람의 수만큼 책장을 넘기며 누가 먼저 책장을 다 넘기나 오빠와 시합하면서, 이 페이지 저 페이지 넘기는 동안 웬만한 명화는 다 본 것 같다. 환한 오렌지빛 배경에 탐스러운 금발, 크게 웃지 않지만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의 ‘피아노 치는 소녀’를 보며 ‘아, 이 언니의 집은 참 따뜻하겠다, 동화책에서처럼 빵만 먹고 살겠지’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후에도 미술 교과서나 달력 등에서 비슷한 모습의 소녀를 발견할 때면 ‘이것도 르느와르 그림인가?’하며 한번 더 들여다보곤 했다. 미술학원에서는 말썽만 부렸지만 그림책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노는 동안 그림과 친해졌다. 커다란 스케치북과 색색깔의 물감도 좋지만 아이 방에 그림 한 장을 걸어주자. 명화 달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매일매일 들여다보는 그림이 아이에게는 예술의 길을 열어주는 통로가 된다.

자녀 방에 걸어주고 싶은 그림전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자연스러운 문화적 경험을 통해 정서를 함양하고 예술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마련된 전시. 자연과 사람을 주제로 따뜻하면서도 참신한 작품세계를 이끌어온 11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월 7일까지 대전 모리스 갤러리에서 열린다.

그림은 아이와 세상의 대화다

(왼쪽) 강상중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두 아이의 아빠로 서정적인 그림을 보여주고픈 마음에 ‘주술사’ ‘행복’ 두 작품을 출품했다.

“그림은 아이에게 꿈을 이야기해준다”
왜 아이 방에 그림을 걸어줘야 할까? 그림은 아이에게 항상 꿈을 이야기해준다.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에게 자기만의 색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
아빠가 된 후 좋은 그림의 기준이 바뀌었나? 사물이나 사람을 사진처럼 있는 그대로 그려낸 그림보다 작가의 주관에 따라 재구성되거나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담긴 작품이 좋아졌다. 이런 작품은 아이의 상상력을 무한히 키운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 방에 어떤 작품을 놓아두었나? 동물 그림이나 반추상적인 그림의 달력을 걸어주었다. 지점토로 만든 동물 마스코트 등 작은 조각품도 놓아두었는데,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만질 수 있고,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다.
아이의 첫 작품을 기억하는가? 아들이 다섯 살 때 그린 낙서화다. 순수한 시선으로 그린 낙서를 보며 그림이 꼭 철학적이거나 사념적이지 않아도 좋은 작품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에게 어떻게 미술교육을 했나? 무조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라고 했다. 아이가 그리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할 때는 야외로 데리고 나가 그림을 그리게 한 적도 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무조건 잘했다고 거짓말도 했다. 두 아들을 같은 방식으로 교육했는데 한 놈은 공대에서 비행기 만드는 것을 공부했고, 한 놈은 예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오른쪽) 박형진 중앙대학교 미대와 함부르크 국립조형미술대학에서 수학했다.
<어린이 민화체험> 등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그리는 데 관심이 높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준다”
아이 방에 작품을 걸어줄 때 유의할 점은? 아이가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끔 그림을 바꿔주는 일도 필요한데, 아이가 작품에 싫증 내거나 반대로 작품에 관심을 보일 때가 작품을 바꿔야 할 때다. 싫증 낸다면 새로운 그림을 찾아보고, 관심을 보인다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구해 보여주면 아이가 자연스럽게 작품들과 더 친해진다.
아이 방에 어떤 작품을 걸어놓았나? 현재 열한 살인 아들의 방에 판화로 제작된 마티스의 ‘달팽이’를 걸어놓았다. 종종 아이에게 언젠가 원작을 보러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꼭 같이 가자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훗날 원작을 보았을 때, 어렸을 적 자기 방에 걸려 있던 판화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겠지.
아이를 위한 작품을 그린 적이 있나? 1999년 아이가 태어난 걸 기념해 아이의 모습을 담은 ‘신생’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아이가 좀 큰 후 보여주고 네 아기 때 모습이라고 얘기했더니 신기해하면서 “내가 이렇게 작았어? 정말 귀엽네. 엄마 날 그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등 진심으로 좋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그림은 자기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친다.
방에 걸린 작품을 아이가 더 잘 느낄 수 있게 하려면? 그림을 보며 서로 느낌을 이야기하거나,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그림의 재료나 그리는 방법,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다. 생존 작가의 작품이라면 작가가 전시할 때 아이를 데리고 전시장을 찾는 일도 권하고 싶다.

안윤모 홍익대학교 미대와 뉴욕시립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의 정서가 보이는 소재를 활용해 서정적이면서도 유머와 해학이 있는 작품을 그려낸다.

“인쇄물이 아닌 원화를 걸어준다”
아이 방에 왜 그림을 걸어줘야 할까? 그림은 억지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접해야 하는 대상이다. 어려서부터 그림과 가까이 지낸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많이 보더라도 원화와 인쇄물을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원화의 감동을 가까이서 느껴볼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아이 방에 걸어주기 좋은 작품은? 편안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 좋다. 마음이 차분해지도록 강렬한 원색보다 편안한 색감의 그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소재의 그림을 선택한다. 작가 중에서는 보테로의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 남미 특유의 중간색을 주로 사용해 인체를 뚱뚱하게 표현한 작품이 많은데 보는 이에게 친근감과 편안함을 준다.
아이 방에 작품을 걸어둘 때 유의할 점은? 잘 보이는 장소에 작품을 놓아두는 것이 좋다. 책상 위나 침대 옆면 정도가 적당하다. 그림의 높이는 아이의 키에 따라 너무 높거나 낮지 않게, 눈높이에 맞게 걸어두는 게 좋다.
부모의 눈으로 봤을 때 아이에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하게 해주는 작품. 아이 스스로 그림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자신만의 느낌을 말하고 다르게 표현하게 만드는 작품이면 좋다.
그림 공부를 어떻게 시키는 것이 좋을까? 사물을 연상할 수 있도록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해주면 좋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사물이 있으면 그것과 유사하거나 상반된 것들은 어떠한 것인지, 그 소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등등 아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오순환 경성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뒤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엄마와 아이, 부부 등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루며, 서정적이면서도 편안한 그림으로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자연에 관심을 갖게 한다”
아이 방에 걸어주기 좋은 그림이란? 명화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원화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명화 달력을 걸어놓아보자. 나도 어릴 때 달력의 그림을 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어렸을 때 익숙해진 그림이 고흐나 세잔, 르느와르 등 대가들의 그림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아이를 위한 작품을 그린 적이 있나? 아내가 첫아이를 가져 만삭이었을 때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그린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림과 어찌나 닮았던지, 정말 놀랐다. 가족에게는 현실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힘, 바로 사랑이 존재하지 않나 생각한다.
아이가 그린 작품 중 기억나는 것이 있는가? 이제는 다 자란 아이가 초등학교 때 만든 종이판화 작품이 여전히 방에 걸려 있다. 토끼가 풀을 뜯고 있는 작품인데, 그 순수한 표현이 아직도 나를 감동시킨다.
아이에게 어떻게 미술 교육을 시켰나? 미술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하늘을 보며 ‘안녕’ 인사하고 산에도 ‘안녕’, 나무에도 ‘안녕’ 하며 형식적으로라도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