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났는데도 춥다.영하4도로 내려가겠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정도로 춥지 않았다. 김반의 묘는 집가까이 있어 이른 아침에 길 나서는 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우리 어릴 때, 산능성이에 있는 묘지에서 놀았다.능성이를 타고 뛰어 내리다 묏등에서 멈추곤했다.아이들 소리 요란해서 묻힌자도 심심하진 않았을거다.아이들이 뛰고 뛰어서 묏등은 낮아지고 또 낮아졌다. 그 뫼의 후손이 고향을 떠난지 오래라 우리가 뫼옆에서 놀아도 나무라는 어른도 없었다.오죽하면 상석위에 앉아 마을 그림도 그렸을까.
죽은 후 묻힌 무덤가에 아이들이 와서 뛰놀면 그도 좋겠다.깨알같은 소리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도 희미해질 것 같다. 김반의 묘는 그 때 우리가 뛰놀던 묏등보다 더 놀기 좋게 다듬어져 있다. 우리는 문화재 보호의 역사적 사명을 뛰고 여기에 왔다고 아무리 자제하러 해 본들 본성 거스르기 만큼 힘든것은 없다.아이들이 뛰놀고 싶은건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파일집을 풀어 펼쳐, 타고 내렸다.
(우리의 막내 수연이가 이제 일학년이 되었다)
한 녀석이 두 녀석되고 중학생 빼곤 다 합세했다.어진 광산 김씨 분들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보시하는 구나. 양의 기운이 성한 아이들이 음의 기운 강한 묘역에서 논다는 게 조화다.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고... 금기많은 사회,구성원들이 행복한것 못봤다.조화롭게 살기만 지향하면서 하든지 말든지 니 알아서 해..이런 세상이 좋지 아니한가.
옛말에 왕비나온 집안보다 대제학 나온 집안이 좋고, 대제학 나온 집안보다 문묘배향자를 낳은 집안이 더 낫다고 했다. 광산김씨는 왕비 한 명(숙종의 정비 인경왕후),대제학 일곱,문묘배향 2명,불천지위 열세 분,종묘배향 세 분이시다. 참 잘난 집안이다.
김반이 병자호란때 강화에서 순절한 부인과 셋째 익겸의 시신을 이장하면서 전민동에 자리 잡았다.예전 정민역이 있던 자리 그 일대를 사패지로 하사받아 광산김씨 묘역으로 삼았다.
("저 알이 뭐예요?" "모르겠는데." "오정 선생님은 알거예요." "그렇지.그게 바로 명품과 안명품의 차이여.오정선생님과 나는 한끝차이밖에 안 난단다.") (이제 해 떠 오른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면서 궂은일 도맡아 해주신 인호아버님과 오늘 드디어 차에서 내려 우리와 함께 합류한 정인이 아버님)
(새벽에 일어나 음식 장만해 주신 어머님들 참으로 용하십니다.애들 챙겨 데려오기도 힘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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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깊은산골 오미자밭 원문보기 글쓴이: 강물
첫댓글 애쓰셨네요^^그돌은 차일석아닌가요^^
마자요.그런것 같아요.선생님은 명품입니다.
청소년 문화원정대는 어떻게 참가할수 있나요?
전화를 주시면 들어갈 수 있는 팀을 알아보겠습니다.010-287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