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IMF의 한파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평상시 관심을 가져 주던 손길들이 아침 햇살에 이슬이 사라지듯 어느새 사라진 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 그러나 그 손길은 점점 멀 어지고 알아 듣기 힘든 소리로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비록 몸은 불량품이지만 내 자신의 건강보다 나라 와 민족을 위해, 내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들은 세상의 누구 보다도 귀한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찾아 가야 하는 기회를 줄일 수가 없음은 그들의 해맑음이 날마다 눈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매월 셋째 주중에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찾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3년째 접어들었다. 그사이 많은 지체들이 나가고 들어 온 것 같다. 그 중에는 불치병으로 하늘나라에 먼저 간 친구들도 있고, 친척을 따라 시골로 내려간 친구들도 있으며, 더 좋은 시설 로 옮겨간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항상 해맑은 얼굴은 그대로 변 함이 없다. 노래 부르길 좋아하고, 악기라도 가져와서 연주해 주 거나 같이 찬양을 할 때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변하 는 게 그들이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누구의 손길을 통하여 방문할 물품을 후 원할 것인가... 현재의 재정으로는 매월 제작하여 발송해 주는 나 눔지의 인쇄비와, 발송비 충당하기도 힘이 드는 상황인데 방문 일정을 정해 놓고 기도로 시작한다. 자오 나눔을 사랑하는 사람 들, 아니 소외된 이웃과 장애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직은 많 았다. 사랑의 집에서 필요한 물품을 알아서 오프라인 회원에게 먼저 알린 다음, 확보되지 않은 물품은 온라인에 띄운다. 자오 나 눔의 1번 게시판에 봉사 일정과 필요한 물품 등이 올라오자 수줍 게 물어 오는 님들이 있다. 말없이 행함을 실천하는 초록 낭자, 개구쟁이 친구, 멀리 있지만 가깝게 지내는 지인, 얼굴도 모르는 님들... 희대 성은 명성 교회 집사님께 부탁하여 하기스 한 박스 를 구해 놓으셨단다. 뇌성마비 지체들이라 혼자서 용변 처리를 못한다. 그래서 기저귀를 채우고 그것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 고 있다.
떡, 과일, 들기름, 다시다, 과자, 하기스, 컵 받침대, 김 등과 사 랑을 싣고 우리 일행은 출발한다. 준열이를 유치원에 하루 쉬라 고 연락했다. 어릴 때부터 장애인들의 삶의 현장에 데리고 다니 는 이유를 아직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깊은 뜻을 알고 앞으로 의 삶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데리고 다닌다. 예배를 드 리기 위해 부목사님을 모시고 가기로 했다. 양미순 집사와 정종 숙 집사가 동행하기로 한다. 멀리 청주에서 영현님이 올라오고 계시단다. 일산에서는 선숙님이 딸 나현이와 오고 있는 중이란다. 이동 중에 연락할 수 있는 핸드폰이 있음에 영현님은 무사히 나 눔 사무실로 도착했다. 반가운 만남이다. 소록도에서 만나고 난 후 두 달 가까이 지났다.
차에 기름을 넣고 오니 짐을 싣는다. 짐을 싣다가 들기름 한 병이 땅에 떨어져 깨져 버린다. 아고 아까워라... 거기다 머리 감 으면 고소한 냄새가 날거라며 머리 감기를 종용하는 어느 님.. 모 래를 끼얹어 삽으로 흔적을 없앤다. 모두 차에 타고 보니 8명이 다. 이번엔 참가하는 인원이 작다. 희대 님이 직접 오시기로 했 고, 온다던 허군과 백양은 함흥차사다. 이들도 언젠간 기쁨으로 동참할 날이 있을 것이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웅장한 은행나무는 500년의 수령을 뽐내며 우리를 반긴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멀쩡한 날씨였던 어제 낼 비오겠다고 했더니 날 이 상한 놈으로 보시던 분은 신기해 할 것이다. 불량품인 몸에서 일 기 예보를 정확히 맞출 수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실 내로 들어서니 반기는 눈빛이 그대로 레슬링을 하게 만든다. 말 은 못해도 눈으로 대화를 한다. 피부 접촉으로 정을 나눈다. 맨 먼저 하는 말이 "오늘도 라면 먹었다~"고 자랑하는 친구들.... 그 래 IMF가 너희들을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게 만들고 있구나....
간단한 찬양으로 예배 준비를 하고 기도와 설교를 마친 후 축 도로 예배를 마친다. 그사이 다른 회원들은 푸짐한 상을 차리고 있다. 친구들의 눈에 빛이 난다. 찬양하기 좋아하는 은주는 내 곁 에 와서 찬양을 하자고 졸라댄다. 그래 찬양하자...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안에서..."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어느새 친구들은 하나가 되어 있다. 조치원에서 봉사를 왔다는 자매들이 거꾸로 은혜를 받은 것 같다.
식사 기도와 함께 기쁜 탄성 속에 잔치가 벌어 졌다.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으라고 말을 하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날 찾는 전화가 왔단다. 희대 형님이다. 하기스를 싣고 오셨다며 사 람을 보내 달란다. 나집사님과 영현님을 나가 보라고 한다. 아직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커다란 박스 한 개를 들고 온다. 희대 형은 물건만 전해 주고 그냥 가셨단다. 이윽고 전화가 온다. 비도 오고 다른 분이 전해 달라고 한 물건이기에 전해만 주고 간다 고.... 서운함이 앞선다. 불편한 몸이라 그냥 가셨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다.
모두가 감사의 조건이다. 봉사하러 온 일행들과 커피 한잔을 나눈다.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다. 이곳 저곳에서 아름다운 레슬링이 벌어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일어 서야만 한다. 또 다른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기도로 우린 사랑의 집을 나서고 있다. 밖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 고 있다. 개구쟁이 준열이는 비 맞는 게 좋은가 보다. 허긴 이런 날 비를 맞아 보는 것도 축복이려니 생각해 본다. 나무 아래서 차가 올 동안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데 사랑의 집 친구 한 명이 뛰어 온다. 손에는 우산을 3개 들고... 그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우리에게 건내 준다. 모두들 가슴으로 전해 오는 그들의 뜨거운 사랑을 만나는 순간이다. 이렇게 오늘 나눔은 사랑의 프로포즈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으로 이번 나눔에 참여해 주신 많은 님들께 감사를 드린 다. 자오 나눔(GO SG867)에서 나누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