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기독교장로회 교단의 분열
장로교는 고려파가 분열한지 1년만에 또 분열의 진통을 겪게 되었다. 김재준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신학노선을 가진 사람들이 일제 하에서 탄생시킨 조선신학교는 1950년 한국신학(한신대)으로 인가를 받아 졸업생을 내었으며 한국 기독교장로회(기장)의 발상지가 되었다.
1947년 4월 대구 총회에 51명의 조선신학교 학생들이 김재준, 송창근 교수 등의 자유주의 신학사상들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신ㆍ구약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성서의 오류를 주장하고, 정통교리를 비난하며 세속화의 방향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총회는 보수 신학을 목적으로 1948년 서울 남산에서 장로회 신학교를 설립하여 같은 총회 아래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학교가 있어 양파 사이에 큰 갈등을 일으켰다.
1951년 5월 25일 제36회 총회에서 양 신학교의 총회 직영을 취소하고, 새로운 하나의 총회 직영 신학교를 개교하였고 조선신학교는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였다.
1952년 4월 29일에 열린 제37회 총회에서 김재준 교수를 제명 처분하고, 조선신학교 학생은 교역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5월에 경기노회가 열려 총회의 불법 결의를 부인한다는 성명을 냈으며, 같은 해 9월 대구에서 조신측을 지지하는 신도들이 호헌대회를 열었고, 1953년 제38회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 파면을 결의하였다. 이에 대해 조신측은 1953년 6월 10일 조선신학교에서 법통 38회 총회를 개최하고 1954년 6월 교단 명칭을 대한기독교장로회로 명명함으로써 교단이 완전히 분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