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유은실 / 창비
발제 : 전영신
2006년 6월 14일
책의 각 장이 ‘삐삐 롱스타킹’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산적의 딸, 로냐’ ‘미오 나의 미오’ ‘사자왕 형제의 모험’ 등의 주옥같은 린드그렌의 작품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특징에 각 장마다 책과 연계되어 짜여진 에피소드들로 마치 잘된 독서 감상문 같기도 한 것이 명작의 감동으로 재미와 깊이가 독특하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들은 빨리 읽고 싶어지게 한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아십니까? 하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말괄량이 삐삐는 아시죠? 하면 다들 빙긋 웃을 것이다.
삐삐는 70년대 꼬마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었다. 한손으로 번쩍 말을 들어올리는 천하장사, 금화가 잔뜩 든 가방을 갖고 있는 백만장자, 온 동네 아이들의 대장노릇 하는 씩씩한 개구쟁이, 입담꾼, 능청꾼, 재치와 배짱으로 총무장한 자유로운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다.
그런 삐삐를 태어나게 한 할머니 작가 린드그렌, 그의 이름이 제목으로 쓰여졌다.
엄마가 부른 ‘말괄량이 삐삐’ 노래 때문에 린드그렌선생님을 알게 되면서 하나하나 찾아 읽는 동화를 통해서 비읍이가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남편을 여의고 치과조무사로 외동딸을 키우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비읍이 엄마와 비읍이의 소소한 일상의 갈등이 낯설지가 않다. 아이가 ‘말대꾸’를 하거나 ‘늦장’을 부리거나 ‘무언가 사고싶은’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러나’로 시작해 ‘하면 안돼!!’라는 큰소리로 끝냈다. 책에 나오는 ‘그러게언니’처럼 한번 꺽여주고 수긍해주는 과정없이 몰아붙이기만 하는 엄마였던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한편으로는 책속에 빠지는 비읍이를 가진 비읍이 엄마가 부럽다. 책을 사다줘도 잘 보지 않고 친구와 놀고 축구하는 것이 더 좋다고 아들은 또 뛰어나간다.
아빠도 형제도 없는 외로움을 린드그렌의 책에서 위로받는 비읍이에게
왜 네 일기속에는 책말고 가족, 친구등 현실얘기가 없냐?
책, 그것도 오로지 린드그렌의 책 얘기만 있다고 나무라는 선생님의 몰이해한 모습은
한가지에 쏙 빠져든 아이를 참아주지 못하는 어른들의 성급한 기우를 볼 수 있다. 아이가 충분히 느끼고 누리고 스스로 만족해서 나올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 그것은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글을 쓰고 있는데 아들이 보더니 ‘그래 맞어’ 한다) 한때 아들이 일기며 모든 것을 만화로 그리고 쓰는 것을 기다리며 참아주지 못하고 많이도 다투고 야단을 쳤던 기억이 난다고 옆에서 투덜거린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수많은 구슬이 깨어지고 진짜백이 구슬 한개가 남는 과정이라는 ‘그러게언니’의 말처럼 비읍이는 린드그렌의 구슬을 깨버리고 편지상자를 봉해 벽장 깊숙이 넣어버린다. 아이의 성숙이 상상세계가 결국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현실에 안착하는 것이라면 아쉬움이 남는다. 비읍이의 상상세계가 상자속에 갇히지 말았으면 한다.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쳐갈 수 있는 아이로 희망의 불씨가 폴폴 피어나게 어른인 우리들이 불씨를 지펴주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비밀일기장을 대안으로 제시 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에 대해
첫댓글 아직도 깨지지않는 구슬을 가지고 있는 저는 "어른"이라는 껍질을 벗어버리고 마냥 "아이"로 있고 싶네요. 그래서 키도 이케 덜자랐나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