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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에 가까운 블루...
... 가을이 깊어갑니다. 낙엽,단풍,운동회.. 이런게 아니더라도.. 코끝을 스
치는 바람내음이.. 서편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이.. 가을이란걸 말해주네요..
... 지난 밤.. 불타오르는 젊음을 잠재우고자 함께 밤을 새우던 친구 하나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앗.. 여기서 무슨 상상을? 우린 함께 채팅을 하고 있
었을 뿐이어요.. 그 친구는 군산에서.. 전 경산에서요.. 이상한 상상하지 말
기.. 훗..^^;) 깊어가는 가을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써봐라.. 그러면서요
... 깊어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이야기? 도대체 그 녀석이 바라는
게 어떤 것인지..( -_-; ) 모르겠지만요.. 역시나 가을엔 사랑이야기가 제격
이 아니겠습니까? 훗... 그런 뜻에서.. 가슴속 묻어둔 이야기 하나 꺼내볼까
합니다.. 가슴속에 묻어뒀다고.. 이게 픽션일까 논픽션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 계속 궁금해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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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전, 역시나 가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인 미숙이와
함께 생일 축하주를 한잔 마시고 알딸딸해서 집으로 오는 길이었죠.. 술을 잘
마시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서 한잔씩 하는 분위기가 좋아지더라
구요.. 괜히 술에 취한 척 고민도 이야기하고, 안하던 짓도 가끔 하구요..
(미국에선 여자끼리 술집에 가면 안된데요.. 여자들끼리 앉아있으면 창녀로 본다
나요? 국제화시대니깐두루.. 외국 나가시는 분들..다들 조심하세요.. ^^ ) 여
기서 안하던 짓이란게.. 어떤건지.. 아실래나.. -_-; 훗..
... 그날따라 336번 좌석버스는 무척이나 복잡했습니다. 자린고비 정신이 몸
에 밴 저는 평소에는 좌석버스를 잘 타지 않는데요.. (그랬던 이유가 있기도
했죠.. 몇년전 겨울 밤늦게 집에 오는데요.. 두터운 겨울옷으로도 이상하게
옆구리가 찝찝하더라구요.. 창밖을 바라보다 고개를 휙~~돌려 보니.. 옆에 앉
아있던 왠 이상하게 생긴 남자가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찌르고 있는게 아니겠
어요? 이상하죠? 흠.. 저도.. 그날 놀랐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옆구리를 찌
르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겠지만요.. 그 사실을 한참뒤에야 깨달은 절보고 아
마 그 남자도 놀랐을 꺼여요.. ^^;) 그날은 친구와 한잔 하느라고 중간에 갈아
타는 95번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찍오는 버스를 아무거나 집어탄거였죠.
... 서있는 사람도 많았구요. 전 그냥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섰었습니다. 손엔
포장된 선물이랑 미숙이가 사준 들국화인지 국화인지 이상한 포도주빛 꽃한다발
을 들고 있어서 붙잡기도 힘들었죠.. (전 평소에 꽃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는
편이거든요.. 오래가봐야 일주일.. 쓰레기 종량제에 어긋나는 점도 있고.. 시들
어 가는 모습도 보기 싫고.. 잠시 신경안쓰고 있으면 거미줄이나 치고.. 벌레
꼬이고.. 차라리 나무가 좋습니다.. 그런데, 미숙이는 외모와 달리 꽃선물을 무
지하게 좋아해요.. 10년친구인 저도 이젠 포기하고 기뻐하는 듯한 모습으로 꽃
을 받곤 하죠.. ^^;)무슨 드라마도 아닌데..차가 점점 적어지는 선선한 도로에
다다르자 폭주족같은 운전기사 아저씨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덜컹
거렸고, 전 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쓰러졌죠.. 쑥색 쉐타를 입고 있던 남자의
품에 안긴겁니다..(사실 미친척하고 그냥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정말 없었다고
한다면 전 거짓말장이겠죠.. ^^; 하지만 이성을 가진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으로
써.. 평소 남자보기를 돌같이 하자는 신조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일어나야만 했
습니다.. T.T ) 그 남자가 웃으면서 선물을 뺏더군요.. 전 정말 뺏기는 줄 알았
어요.. ^^;.. 몇잔 마신 알콜로.. 훗.. 하지만, 곧 제가 제대로 서있게 하기 위
해서였다는 논리적인 결론을 내리고 저도 웃으면서 건네주었죠.. 그렇게 잠시
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 향기가 좋은데요.. 무슨 꽃입니까? "
... 무슨 꽃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이게 국화인지.. 들국화인지.. 아님
제가 모르는 어떤 신개발 품종인지.. 그 남자는 한술 더 떠서 국화 향기를 맡
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음.. 이상했어요.. 어두컴컴한 차안에서,들고 있
는 꽃다발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는 남자를 내려다 보는 느낌이란.. 훗..
" 글쎄요.. 들국화인지.. "
... 결국은 들국화라고 결론을 내린 전 점점 취해오는 취기를 느끼며 말했죠.
웃으면서 향기를 맡던 남자는 들고 있던 워커맨을 다시 켜더군요.. 저 워커맨
안에서 돌아가는 테이프는 조지 윈스턴의 DECEMBER일까.. 아니면 엽청문의
<珍重經典13首>일까.. 그때 그 남자의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나더군요..
... 창쪽에 있던 남자를 내보내려고 일어서 통로로 나와 서 있던 남자가 저를
보며 이야기 하더군요..
" 어디까지 가십니까? "
순간, 전 저 남자가 왜 내가 가는 곳을 궁금해할까.. 마음이 있는 걸까..-_-;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만.. 그건 간만에 마신 술때문이었다고 굳이!! 말하고
싶네요.. 하지만, 역시나 공주병 바이러스에 면역성을 길러주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하던.. 몇몇 고마운 친구들과 가족들덕분에(^^;) 곧 이성을 찾은 전
왜 묻는지 알았던 거죠..
" 경산까지 갑니다. "
... 잠시 머뭇거리더니 저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더군요.. 그 손짓이 영
화에서 보던 기사의 모습을 닮았었다고 한다면.. 심한건가요?
사람들.. 계속 궁금해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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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좀 긴것 같아서 짤랐습니다. 제가 주로 들락거리는 곳은 시스템이
안좋은건지 글이 중간에 잘 짤리거든요.. 그거 참 보기도 않좋고.. 이야기도
이상하게 전해지고.. 그렇더라구요.. 중간에 짤려서 마지막 부분이 이어지면
약간의 칭찬이 적혀있던 부분이 꼭 삭제되고.. 그렇더라구요.. 훗..
...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서편하늘이 불타듯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캄캄합
니다. 방범등이라고 하나? 어두워지면 골목길에 켜지는 노란등을 위에서 내
려다 본적 있으세요? 무척 아름답습니다.. 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
라 그런지.. 그런 노란등이 켜진 거리를 내려다 보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고
해요.. 가끔은 경산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하죠.. 저기 저 파란
지붕아래선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날까.. 횡단보도앞에서 손을 잡고 있는 저 두
사람은 연인들일까.. 그런 생각요..
... 여하튼 잡담은 그만두고 이야기를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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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를 힐긋보며 전 창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아 그 남자가
들고 있던 선물도 뺏었죠. 창밖을 내려다 보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어진
걸 내다보며 무슨 변명을 해야 아버님이 수긍을 하실까.. 고민에 빠져 있었
습니다.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던건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이상이면 그럴듯한
이야기가 필요해지거든요. 그러다 눈을 들었습니다. 순간,눈이 마주쳤습니다.
... 자리에 푹 파묻혀 있던 저보다 약간 등을 펴고 있던 그 사람도 창밖을
보다, 창문에 비친 저와 눈이 마주친 거였죠. 생각을 들킨듯 놀란 저를 보며
그 사람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늦은 저녁, 약간 어두운 조명, 포근하게 어깨
를 감싸는 의자, 약간의 취기는 저를 용감하게 만들었습니다..
... 저도 그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죠.. 그당시 생각으로는 모나리자의 신
비스런 미소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나중에 이야
기로는 자기는 당황하면 웃는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여자 (저죠 물론~)
가 웃어서 더 당황했다는 이야기도.. -_-; 이 이야기는 좀 미루고.. 훗 ..
여하튼 그렇게 우린 처음 미소를 교환했습니다.
... 변명거리 궁리를 그만두고 창에 비친 모습으로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습
니다. 그는 제 무릅에 얹고 있던 꽃에 유난히 눈길을 많이 주더군요.. 제 무
릅에 얹고 있던... 제 무릅에 얹고 ... 제 무릅.. 헤헤.. 그만두죠..^^;
한손에 꽉 잡고 있던 작은 선물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 같고.. 그때부터 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일어났을 때 보니까 나보다 크던데.. 흠..
체격두 좋구.. 아까 웃을 때 입모양이 너무 좋더라.. 꽃향기를 맡는 것 같더
니.. 저녁때인데도 향수를 뿌린건가.. 시원한 향기.. 말을 걸면.. 나를 이상
하게 볼까? ㅤ차안에 사람도 별로 없는데 무안을 주지는 않겠지? 근데 뭐라고
말하지? 어디서 내리는지 물어볼까? 근데.. 그걸 왜 묻지? 혼자 이것 저것
궁리하고 있는데.. (여자도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거나 기회가 생기면 이런 고
민을 하곤 합니다.. 모르셨죠? 다들? 사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솔직하게..
-_-;) 궁리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내려버렸습니다.. ^^;
... 전 고민거리를 던거죠.. 근데 왜 기쁘지 않을까요.. 훗.. 약간의 허전한
마음을 추스리며 그가 내린 곳을 확인했습니다. 대구에서 경산으로 들어와서
금방있는 옥산동이더군요.. 제가 경산이라고 했을 때 주저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 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
모습을 아쉽게 바라봤습니다. 생일날 있었던 하나의 사건으로 그냥 잊혀져
버려도 좋을 만한 일이었죠.. 며칠 후 그와 다시 마주칠 때까진...
... 생일 선물로 무엇을 줄 건지 아버님을 며칠간 조른 끝에 전 중고 자전거
하나를 받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하나 있는 남동생이 자전거를
산 그 주에 잃어버리기 전, 하루동안 자전거를 타 본게 전부였던 저는 자전거
타는 거랑 수영은 한번 배우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우기면서 결국
하나 얻어낸거죠.. 며칠간 새벽마다 집 옆에 있는 경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연습을 했습니다. 물론, 새벽에 일어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지라..
잠깐씩 탄게 다지만요.. 여하튼 하나 생긴 이후로 자전거를 살 때 아버님께
공약한 것을 실천해야만 했습니다. 경산시내를 다닐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
닌다. 늦게 들어올 때면 자전거를 미리 경산 시장앞에 묶어놓고 그걸 타고 들
어온다. 그럼 택시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이건 우리 아버님 생각이시고..) 제
생각은 ---> 그럼 95번 버스에 목숨걸 필요가 없다.. 이거였죠.. 훗..
... 그와 두번째 만나던 날은 자전거 연습한지 4일 후였습니다. 이만하면 되
겠다는 생각끝에 자전거를 타고 옥산동 앞에 있는 도서 대여점으로 갔습니다.
제가 거래를 튼 3군데 도서대여점 중에 가장 잡지 책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갈
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된다는 이유로 거래실적이 저조했던 곳이죠.. 이제 자
전거가 있으니까 맘대로 갈 수 있다~~~!!! 는 생각은.. 역시나.. 꿈이었습니다
^^;... 혼자 자전거를 탈때는 약간 흔들흔들거려도 제법 앞으로 나갔는데요..
이건 경산에 자전거 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옆에서 커어다란 차가 휙휙~~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흔들흔들.. 무서워서 바이킹이니, 88열차니 하는
걸 한번도 타 본적이 없던 저로선.. 거의 사선을 넘나드는 기분이었습니다..
... 결국은 인도위로 올라갔습니다.. 사람이 적어서 것도 해볼만 하더군요..
바로 옆으로 차가 안다니니 살것 같았습니다. 앞만 바라보고 이를 악물고 페
달을 밟다가 서서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가로수에 단풍이
들까나.. 그러다가.. 그만.. 그만...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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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하고 부딪칠 때.. 전 영화에서처럼 slow motion으로 주위를 둘러봤습니
다. 약간 갸우뚱하더니 옆에 서있던 가로수가 서서히 쓰러지더군요.. 순간적
으로 어깨에 아픔이 있었고 곧 전 가로수가 쓰러진 게 아니고 제가 쓰러진 거
란걸 깨달았어요. 순간..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격언(?)과 갑자기 일어나면 더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가증스런 공주병 증
상이었죠..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는 어느 가을 오후.. 사람적은 대로변에 자
전거와 함께 옆으로 쓰러져 생각하고 있던 건 그런 생각들이었습니다.. ^^;
... 그러다가 깨달았죠.. 난 분명히 물건과 부딪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녀석 어디간거야.. 으... 고개를 약간 들고 둘러보니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
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이더군요.. 그 사람의 가방은 옆에 떨어져 책들이 흩어
진 모습이었고.. 바람에 흩날린 약간 긴 곱슬머리에, 크게 뜬 눈, 그리고, 그
리고,?한쪽귀에서 빠져 바람에 하늘거리는 이어폰... -_-;....
... 그렇습니다.. 바로.. 그였던거죠.. 전 인도위에서 자전거를 탄 제 죄는
생각지 못하고.. 벌컥 화를 냈습니다..
?" 뭐예욧.. 눈은 어디다 두고 다니시는 거예욧! "
제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듯 그가 주춤거리며 다가와 일으켜 주었습니다
. 정신없이 넘어진데다 자전거 무게에..네.. 그렇습니다.. 제 몸무게까지 합
쳐(^^;) 어깨가 상당히 아프더군요.. 후에 그가 자기는 부딪친 아픔보다 그대
로 옆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무슨 코메디 영화같아서 더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
더군요..^^;
...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괜찮다는 걸 알게 되자..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없이 웃기 시작했고.. 저도 상상력이 고갈된건 아닌지라.. 제모
습이 웃겼다는 생각은 들었었구요.. 아픈 어깨를 감싸고 저도 그냥 웃고 말았
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인도로 달린 제 죄도 있는걸요.. 전 그날 책도 빌리
지 못하고 그냥 그와 함께 커피 한 잔을 했습니다. 어깨가 아프다는 이야기에
커피 한잔을 함께 하면 자기가 태워다 주겠다고 하더군요.. 저로선 손해보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훗...
... 네.. 그게 4년 전의 일이군요.. 꼭 4년전.. 바로 오늘처럼 양떼구름이 하
늘을 수놓던 그런 가을이었습니다. 미팅을 제법 했었는데요.. 이쁘게 꽃단장
하고 신경써서 옷을 차려입고 만나는 그런 만남은 오래 가지 않더라구요..그
저 밥먹다가도 전화하면 입던 운동복차림으로 휭하니 자전거 타고가서 만나
고.. 가끔 그가 아버님 차를 허락받았다며 몰고 나오면 모처럼 치마 차려입고
옆자리에 앉아서 가까운 청도 운문사니, 은혜사를 지나다니곤 했죠..
... 네.. 그 해 겨울은 따뜻했습니다.. 훗.. 친구이상 연인이하..바로 우리사
이를 말한 거라고 하면..어떨까요? 여중,여고를 나와서 학과마저 40명중에 남
자 한명있는 과를 다니던 저로선 새로 생긴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신기했습니다
. 간혹 여자친구들간에 자존심이랄지.. 그런 것으로 이야기 못하는 문제도 함
께 할수 있었죠.. 모르겠어요.. 전 정말.. 친구와 연인사이에서 있고 싶었답니
다.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연인처럼.. 친밀하면서도 소유권을 주장하기엔 망설
여지는.. 그런.. 그런.. 사이..
... 눈이 많이 오던 그해 겨울.. 밤늦게까지 신간소설을 읽다가 새벽녁에 잠들
었던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그에게서 전화가 왔더군요..
" 으음.. 웬일이야? "
" 오늘.. 부산에 눈이 올꺼래.. 너 바다에 눈내리는거 보고 싶댔잖아.. 보고
싶지? 응? ... 근데.. 너.. 자는거야? "
" 으음.. 자긴.. 내가.. 이 늦은..(흘깃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이 늦은
시간까지.. 자겠냐.. 나 안자아... "
" 목소리가 영 아닌데? 나 기차표 끊으러 간다? 빨랑 나와. 경산역에서 만나
자.. 알았지? 응? 응? 너.. 이거 끊고 자면 나 화낸다? 빨리 나와? 끊는다.."
... 전화를 끊고 베개에 머리를 묻고 혼자 신경질을 내고 있었습니다. 안 나갈
수도 없고.. 으... 그런데 다시 벨이 울렸습니다.
" 네에.."
" 너.. 또 잤지? 응? "
" 아냐.. 우씨이.. 너 그거 확인할려구 전화한거야? 엉? "
" 확인은.. 아냐.. 너 자전거 타지 말고.. 택시타구 나와.. 95번 기다리다간
늦을지도 모르니까.. 알았지? 눈와서 미끄러우니까 그 잘난 실력에 자전거 타
고 나오지 말고.. 알았지? 응? 맛있는거 먹여줄께~~ "
" 훗.. 그래.. 알았어.. 근데 있잖어.."
" 응.. 뭐? "
" 나 택시비는 주나? 헤헤.."
... 겨우 일어나 세수하고 그가 선물한 가죽모자로 감지 않은 머리를 숨기고
택시를 탔습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늦어있더군요.. 차표를 사서 초조해할
그를 생각하며 운전기사 아저씨를 재촉해 역앞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역앞 네거리에서 밀리는 앞차를 보며 돈을 내고 뛰어 갔습니다. 왼쪽의 옥산동
쪽에 사고가 났는지 차들이 서있고 경상병원 응급차가 차선을 넘어 다가가고
있더군요.
... 나무랄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콧등을 찡그리며 꿀밤을 줄 그가 생각나 역
앞에서부터는 더 숨가쁜듯 헥헥거렸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들어가 주위를 둘
러봤습니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가 막 떠나더군요. 역내에 그가 없었습니다.
설마... 나를 버리고 떠난 건 아니겠지?...
... 그는.. 나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종일.. 경산역에서 기다렸습니다.. 처음
에는 약간 화도 났었는데..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그에게 삐삐를 치고..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멀어져가는 응급차 소리를 들었습니다..
... 그가 입고 있던, 내가 만들어준 골덴 잠바 주머니에서 기차표 2장이 나왔
더랍니다. 서투른 내 자전거 실력을 못믿어 택시를 타고 오라고 했던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다시 집으로 뛰어가다 택시보다 더 빠른 응급차를 타고 갔나봅니다.
집에는 그가 만들어둔 샌드위치 한봉지가 있었더랍니다..
... 그 후로.. 전.. 자전거를 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