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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의 첫소절을 장식한추암 일출봉
바야흐로 바캉스 시즌이다 1년간 뼈 빠지게 일해 얻은 귀한시간 이지만 올해는 왠지 흥이 나질 않는데
워낙 경기가 바닥을 치는게 외환위기 IMF 때보다도 안좋다는 보도를 보고있자니 한숨부터 나온다고 하니
더 안타까운 소식은 기름값 폭등에 세워놓은 계획이 없어도 일단 차를 끌고 나서면 가슴한구석이 뻥하니
뚫리는 기분이 들곤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리터당 2000원을 넘긴 주유소 가격표를 보고 있노라면
훤했던 가슴도 어느새 갑갑해지는것은 무엇때문일까 그래도 떠나야한다 길지도 않은 이달콤한 시간
을 어영부영 보낼수는 없지 않은가 떠나자니 부담이고 방콕을 하자니 답답하고 이 딜레마를 돌파해 보려고 머리를 싸매서 찾아낸곳으로 출발.......
추암해수욕장
동해시와 삼척시 경계해안을 중심으로 하여 동해안의 삼해금강이라 불리우는 곳으로 97년 한국관광공사의 겨울철 가볼만한곳 10선에 선정되기도한 자연경관이 수려한곳으로 미묘한 해안절벽과 함께 그리움이 배인 촛대바위 그리고 크고작은 바위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동해의 거세고 맑은 물이 바위를 때리는 여운과 잘게부서진 백사장이 아름다운 추암해수욕장은 동해고속도로를 벗어나 7번국도를 따라 삼척을 향하다보면 효가사거리를 만나는데 직진하여 4.8km를 더달리면 주유소가 있고 대형 안내광고탑을 좌회전하여 들어서면
추암이 나선다
해금강 해수욕장이라 불리는 추암 가족피서지로 적합한 해금강 해수욕장에는 볼거리만큼이나 넉넉한 오징어 멍게 소라 해삼 광어등 해산물이 풍부한 장점이 있고 뛰어난 경승지로 해금강이라 불려왔으며 조선 세조때 한명회가 강원도 제찰사로 있으면서 그경승에 취한나머지 능파대라 부르기도 했었던 추암은 발길 닿은것이 몇년전만해도 불가능했던 일이라 그런지 곱고 한적한 해수욕장이며 해금암의 자연절경 그리움에 배인 한가롱운 어촌마을 풍경이 장관으로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 삼척심씨 시조인 심동로 沈東老가 관직에서 물러나 건립한 해암장 海岩亭이 있는곳이다
나도 영화속의 주인공이 되고싶었던곳 겨울연가의 준상과 유진이 멋지게 걸었던 바다고 유진을떠나보내며 눈물을 쏟아 냈던 바다에서 감독이 되어 보기도하고 주인공이되어 온갖폼을잡고 해수욕장 왼편의 오솔길을 거닐다보니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풍경이 끝내주고 조금높은곳이르니 촛대 바위가 펼쳐지고 큼직한 파도가 몰아쳐도 바위는 꿈쩍하지 않는데 이렇게 무지막지한 힘이 오묘한 촛대바위를 만들어 냈는지 모르며 애국가의 첫소절을 장식한 촛대바위가 바다를 압도한다
남한산성의 정동방
추암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의 정동방에 위치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청나라에 좇겨 인조가 몽전하고 항전햇던 곳이 아닌가 비록 왕은 산전도의 치욕을 보였지만 남한산성 동쪽 끝자락에는 이롷게 우뚝선 바위가 굳은 절개를 지키고 있고 왕은 항복햇어도 우리 국토는 한치의 양보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며 전망대에 올라서니 추암의 바다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시콜콜한 사연이 담긴 낙서가 하얀벽을 장식했는데 이렇게 글로 남겨야만 사랑이 확인되는걸까?
촛대바위
능파대 앞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 높이는 5~6m쯤 되는데 바위가 원래 두개였는데 그중 하나가 숙종 7년(1681년) 5월11일 강원도에 지진이 났을때 중간부분이 10척 가랼 부러져 나갔다고하며 파손된 바위는 그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애국가 첫소절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는 촛대바위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아있어 주위 기암 괴석과 함께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특히 해돋이가 장관을 이루는 해안선경이다
촛대바위에서 해암정 쪽으로 내려가면 기암괴석이 길게 이어지는데 하얀포말이 바위를 덮치고 있어 설원을 배경삼아 바위가 솟아오른것 같고 자연이 만들어낸 그림이며 수천년 풍파를 이겨낸 산고의 현장으로 동산을 내려오면 바다를 병풍삼아 안고있는 해암정이 나를 반기고 말이 정자이지 사대부집 가옥과 다를바었고 뒤창을 활짝 젖히니 간첩을 막는 철조망이 길게 드리워져 문에 거슬렸지만 그너머 늠름한 괴석과 포말들이 시대의 아픔을 상쇄하고 남는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은 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심을 돋구었고 그걸말해주듯 해암정 안쪽 벽마다 이곳을 다녀갔던 문인들의 글귀가 가득하고 우암 송시열이 함흥으로 귀양살이하러 갓다가 이곳 경치에 반해 남긴 글귀도 있고 동해의 오징어가 가느다란줄에 매달려 해풍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나는 지금 떠나가네 지금부터 자네가 추암을 지키게나"
해암정海岩亭
능파대 서족에 있는정자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63호로 고려 공민왕 때 삼척심씨의 시조인 심동로沈東老가
명도산에와 살면서 지은 정자로 삼척심씨종중에서 관리하고 있고 지금의 해암정 海岩亭은 본래건물이 소실된후 조선 중종 25년(1530년)에 어촌漁村심언광이 중건하여 정조 18년(1794년) 다시 중수한것이며 건물은 낮은 1단의 석축 기단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형식이며 4면모두가 기둥만 있고
벽면은 없다 지붕보다 조금높은 바위산에 있어 운치를 더해주며 이곳에서 보는 일출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며 현종때 송시열이 덕원으로 유배가는도중 이곳에 들러 초합운심경전사 草合雲深逕轉斜 풀ㅇ은 구름과 어우르고 좁은 길은 비스듬히 돌아든다 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북평 오일장
강원도에서 가장 크다는 북평오일장 인근 장터와는 달리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영동최대의 오일장 가격흥정과 난전에 널려있는 상품을 감상하고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쇼핑하는 재미 등 갖가지 진풍경을 연출하고
북평동일대 4000 여평의 규모로 매월 3일.8일. 13일.18일.23일.28일 5일간격으로 운영중이며 북평시장은 정조 20년(1796년)에 시직하여 한달에 6번 열렸으며 대략 2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물물교환 방식의
정기시장이 열린것은 그이전으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월동(지금의 나안동) 다리일대에 있었는데 물길이 변천됨에 따라 전천 箭川의 남쪽언덕에 이설하였으며 그후 1910년 10월8일 대홍수로 장터가 없어져 이에따라 북평1리 남쪽마을 (구장터)로 장이 옮겨져 인구가 늘어났으며 1932년부터 교통이 편리한 북평과 구미사이의 도로변인 지금의 장터로 옮겨졌다
국도 7호선 38호선 42호선과 철도 항만 등 교통여건이 좋아 사라져가고 있는 인근지역 5일장에 반하여 북평장은 날로 그규모가 커지고 있고 짙은 향토 색을 물씬 풍기며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서민들의 삶의 체취를 흠뻑 느낄수 있는 전국규모의 민속장이며 북평장은 이곳 방언으로 뒷드르.뒷드루.뒷드리.뒷뚜르 장이라고 부리었는데 이지역 한자어인 묵평 北平의 고유어인 뒷들이라는 표현으로 지역발음의 토착적인 명칭으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강아지를 가지고온 아줌마.굼벵이를 파는 아저씨.뽕짝 테이프를 팔면서 연신 몸을 흔드는 청년.쭈그리고 앉아 메밀묵을 먹는 할머니 진한 막걸리에 취해 휘청거리는 할아버지의 시뻘건 얼굴에서도 끈끈한
삶이 묻어 있다
할머니의 좌판에는 산에서 캐온 각종 나물들이 있는데 팔리든 안팔리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는 사람을 만나 수다떠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북평장터에서 만난 민초들의 얼굴들은 이렇게 푸근하다 북평장터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그역사와 명성에 걸맞게 오늘날까지 강원도 최대의 장터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인근 강릉.산척.정선뿐아니라 충북제천 경북내륙 에서도 장을 보러 이곳을 찾는다 북평에 이렇게 큰 장터가 서는 이유는 이곳이 영동지방 교통의 중심지이기때문이며 7번국도가 남북으로 이어지고 38번국도가 태백에서 연결되며 정선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고개를 넘으면 바로 북평에 닿을수 있기때문이다
장터에는 수산물시장 어물전.농산물시장 미전 채소전.의류시장 강포전.잡화시장 잡화전.한약시장.농기구시장 등으로 구문되어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 조그만 마을에 전국의 장돌뱅이들과 동해시민 인근도시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장이서는 날이면 차가 다닐수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며 그 인파에 섞여 좌판에 널려있는 물건을 구경하고 어깨를 부딪히며 시장을 활보하는 재미가 쏠쏠하며 가격흥정이 끝나 서로 껄껄 거리며 주고받는 미소는 삶의 바퀴가 굴러가는 원동력이라 할수있다
바닷가에 자리잡고있는 북평장의 가장 큰 볼거리는 어물전이며 인근 묵호나 삼척 등지에서 잡은 수산물을 이곳으로 직송해 오기때문에 싱싱한 해산물을 만날수있고 대구.명태.민어.가오리.문어 등이 좌판에 누어 그 싱싱함을 뽐내고 있고 아주머니는 오징어와 가자미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횟감을 만들어 즉석에서 맛보게하고 근처에 있는 건어물전을 둘러보는것도 색다른 맛이며 주인이 맛보기로 건네는 오징어포와 북어포를 낼름 받아 먹는것은 장터에서만 맛볼수있는 추억거리다
북평장터에서 가장인기있는 먹거리인 메밀묵밥을 먹기위해천막안으로 드러서니 시원스런 육수에 탐스런 메밀이 대접에 가득 담겨져있고 거기에 양념장을 넣어 먹는다 시원스런 열무가 반찬으로 나와 뒷맛이 깔끔한데
원래 다섯분의 할머니가 메밀묵밥을 팔았는데 예식장에 가다가 교통사고가나 할머니 네분이 그자리에서 돌아가셨다고 하며 유일하게 남은 할머니가 혼자서 메밀을 말고 싶었겠는가? 장터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을 다 하늘로 보냈으니 시장에 나올 자신이 없었던 것인데 할머니 묵밥 맛좀 보여주세요 동해사람들의 서운함은 이루말할수 없었으며 보다못한 며느리들이 할머니에게 맛을 전수받아 팔을 걷고 시장통에 나와 묵밥을 팔고 있다
동해사람들도 그걸 참고마워하고 있고 하마터면 200년 전통의 메밀묵밥의 맛이 사라질뻔 했으니 말이다
강원도의 담백하고 은은한맛은 북평의 메밀묵밥이 보여주고 있으며 사라질것 같으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은 생명력이 메밀에 배어 있기때문이고 대형 할인마트와 상설시장의 무자비한 공세에 북평장터는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우리가 찾지 않으면 장터는 영영 기억속으로 사라질수밖에 없는 우리의 유산이며 장터에서 보았던 소중한 얼굴들은 칠판에 갈겨쓴 분필 글씨일수도 있고 바람불고 시간이 지나면 지워질수밖에 없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이기때문이며 그 소중한 글씨가 흩날리게 되면 우리의 정신도 함께 사라질것이다
무릉계곡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현존하는 선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태고의 신비와 전설속에 무릉계곡은 이곳을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관광명소로 일명 무릉도원이라고도 불리우는 이곳은 고려시대 동안거사 이승휴가 천은사의 전신인 용안당에 머물며 제왕운기
를 저술 하였고 조선 선조때에 삼척부사로 재직하고 있던 김효원이 제명하였다고 하며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도달한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무릉계는 수많은 관광객을 도취시키며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깊은 명승지로 1977년 국민 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고 조선전기 4대 명필가의 한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석각과 삼척부사나 토포사들의 이름이 각각 10명 이상 새겨져 있다
무릉대반석(무릉반석)
옛 풍월객들이 수도 없이 이곳을 찾았으며 이름을 전추에 남기려는 선비들은 반석에 이름을 새겼고 옥호거사가 쓴 초서 12자는 명작으로 남아 있으며 1958년 세워진 금란정에는 계원들의 시구 현판이 걸려있고 북쪽 삼화사의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곳이다
무릉중대계곡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에둔 제2의 금강산 이라 불리는 무릉계곡은 용추폭포의 맑은물과 병풍같은 기암괴석이 한데 어우러져 눈내린 비경을 더 한층 연출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두타산성
두타산성은 삼국시대 진흥왕(550년)에 지어졌고 방어와 통치의 거점으로 잡았으며 식량의 저장고 역할도 하였으며 두타산 중허리는 파사왕(102년)에 쌓았다는 석성이 유적으로 남아 있고 이석성의 길이는 8,725척 높이5척 이라하며 문간치는 조선 태종갑오(1414) 삼척부사 김맹손이 쌓았다고하며 길이는 8,725척 뫂이는 6척 이라 한다
금란정
한말까지 유림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유학 강론에 전념하였으나 한일합병을 당하여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를 결의 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들에 의해 제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뒤 1945년 해방을 맞아 금란계원과 그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 하고 1949년 봄에 건립하였고 1956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인전하였다
호암소
무릉계곡 관리사무소에서 아래쪽으로 205m쯤 아래계곡에 있는소沼 소양옆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데 옛날 호랑이가 건너뛰다가 빠져 죽은 沼라는 데에서 유래하며 호암소는 김효원 金孝元이 임경대 臨鏡臺로 개명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도술에 능한 고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호랑이가 해치려하여 고승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소를 훌쩍 건너뛰었는데 호랑이가 뒤따라 건너뛰다 고승의 발길에 채여 소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며 이 글씨는 삼척부사로 왔던 미수 허목 許穆의 글씨라고 전하는데 호암은 김효원의 두타산일기에도 기록되어 있고 또한 3~4m위에 중대동문 中臺洞門 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오혁 吳奕의 글씨라는 설이 있다
동해팔경
제1경 능파대 촛대바위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유명한 이곳은 주변의 각종 기암괴석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는 촛대바위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으며 특히 아침 해돋이가 장관을 이루는 해상선경이며
조선시대 강원도 제찰사로 있던 한명회가 이곳의 자연절경에 감탄하여 능파대(미인의 걸음걸이)라 부르기도 했던곳으로 주변에는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에 집현전 제학이었던 심동로가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양성을 위해 건립한 지방문화재 해암정이 위치하고 있다
제2경 용추폭포
낙수가 바위를 기묘하게 깍아놓은 폭포로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을 지니고 있으며 상탕.중탕은 옹기항아리 같은 형태를 하탕은 진옥색의 큰 용소를 이루고 있고 높이가 100자도 곧게 내려쏟는 폭포의 옆에 서면 현기증이 날 정도이며 금강산 구룡폭포에 비견되고 있고 어느 묵객이 새겨놓은 별유천지 別有天地라는 대형석각이 이곳의 자연경관을 대변해주고 있으며 부사 유한준이 용추 龍湫라 이름짓고 글을 썼다 한다
제3경 무릉반석
무릉계곡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이반석은 석장암동 石場岩洞이라고 하며 1,500 여평이나
되는 하나의 흰돌로 펼쳐져 있는곳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며 주변의 기암괴석과 함께 자연절경이
장관을 이루고 암석에 수놓여진 갖가지 기념각자의 석각이 이채롭기도 하며 1571년 4대명필이요 사선의 일인자인 봉래 양사언이 반석상에 새긴 무릉선원 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 頭陀洞天이란 12자와 하행방서로 옥호거사서 신미중춘 玉壺居士書 辛未仲春이란 초대형 석각이 있어 옛 선인들의 풍류를 엿볼수 있다
제4경 망상명사십리
얕은 수심.청정해수.넓은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등 동해안 제 1의 망상해수욕장은 매년 600~700만명의 피서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현재 바이킹 회전 목마 등 10 여종의 놀이시설리 설치되어 운영중이며 최신식 시설의 1등급 관광호텔 망상오토핑리조트 등 숙박 및 각종 편의시설의 확충으로 사계절 관광지로 변모해가고 있고 4km의 넓은 백사장과 푸른바다위를 수없이 갈매기떼가 넘나들고 있으며 옛날에는 해당화가 유명하였다고 하고 인근에는 6.25당시 북한군과의 교전상황과 우리군의 업적을 기린 옥계지구 해군 전적비가 자리하고 있다
제5경 천곡천연동굴
1991년 6월24일 처음발견된 천곡천연동굴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시내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 10m
연장 1.4km규모의 천연 석회석 동굴로서 생성시기는 약4~5억년 전으로 추정되며동굴내에서는 국내에서도
으뜸인 천정용식구 석순과 석주 등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고 아직까지 2차 생성물이 서식하고 있는 환상적인 지하궁전의 세계를 방불케하며이 동굴은 학술적 가치는 물론 관광개발 가치면에서도 주목받고 있으며 총연장 1.4km 중 700m만 단계적으로 개발하여 개방하고 잇으며 나머지 700m는 보존지구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제6경 만경대
척주8경의 하나인 이 정자는 광해군 5년 1613년 에 김훈이 첨정 僉正벼슬에서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서쪽으로는 동해시의 영적모산인 두타산 동쪽으로는 동해항 정자 아래로는 동해시의 젖줄인 전천이 구비쳐 흘러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면서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며 현종 원년1660년에 삼척부사 허미수가 경관이 수려하여 만경이라 불렀고 그후에 만경대로 바뀌었고 판서 이남식의 해상명구 현판이 있고 정면에는 향토명필 옥람 한일동의 만경대 액판이 있다
제7경 호해정.할미바위
정면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 지붕양식의 건축물로 1945년 주국의 광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헌 최덕규 등 40명의 주춘계원이 창건한 호해정에는 명필 김정희 홍낙섭의 현액이 있고 앞으로는 전천강이 갯목과 함께 운치를 이루고 있으며 뒤로는 동해바다와 맞닿은 해안을 따라 기암괴석이 펼쳐져 있고 또한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해안절벽 위에는 직경 2.5m의 흔들바위가 올라 앉아 율동을 하고 있는데 이 바위를 할미바위라 하며 심술궂은 마귀할미가 바닷속으로 굴러 떨어뜨린 바위를 마을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다시 올려 놓았더니 용왕님이 벼락을 내려 마귀할미를 벌하였다 하여 할미바위라 이름지어졌다
제8경 초록봉
백두대간의 연봉 청오간의 한봉우리로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등산로이자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많은 이들이 즐겨찾는곳으로 그 옛날 하느님이 혼탁한 세상에 장수를 보내어 세상을 바로 잡게 하였다 하고 임무를 완수한 장수가 하늘로 승천하기위하여 힘껏 발디딤을 하였는데 그때 남겨진 장수의 발자국이 아직도 2개의 바위에 남아 있다는 전설이 있고 오늘날에도 소원을 빌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찾고 있다
묵호항
1941년 개항한 묵호항은 동해항이 개항되기 까지만해도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었으나 현재는 동해안의 어업
기지로 변모해가고 있으며 묵호항 울릉도 간 정기 여객선 및 독도 유람선이 취항하고 있으며 묵호.어달회타운은 어촌 풍경이 한눈에 느껴지는곳으로 도시풍의 카페와 어우러진 해안을 따라 2km가량 횟집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갓잡아 올린 싱싱한 활어를 즉석에서 맛볼수있는 즐거움이 잇으며 연간 하역능력은 6백만톤으로서 6개의 부두가 있으며 1만톤급 2척 . 6천톤급 1척 .5천톤급 1 척 등 동시에 11척이 접안할수 있고 부두길이는 2,016m에 달하며 급유시설은 2개소 7,500 d/m 급수시설 2개소 700d/m 을 갖추고 있으며 취급 화물은 수산물 무연탄 시멘트 유류 여객선 잡화 등 동해항에 비하여 매우 다양하다
묵호등대
동해시 묵호동 산중턱에 위치(해발고도 67m)하고 있으며 시원한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을 자랑하는 묵호등대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묵호항 새벽 풍경
묵호항에서는 갓 잡아올린 싱싱한 활어를 즉석에서 맛볼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묵호.어달회 타운
묵호 어달회 타운은 어촌 풍경이 한눈에 느껴지는 곳으로 도시풍의 카페와 어우러진 해안을 따라 2km가량
횟집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묵호항과 대진항을 연결하는 해안의 횟집 명소거리는 2006년 2월 강원도로부터 아름다운 간판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관광명소 거리로 거듭나고 있는곳이다
망상해수욕장
동해안의 해수욕장 가운데 가장 넓고 쾌적한 환경을 갖춘 곳이 바로 망상해수욕장이며 환경부에서 인정한 수질이 깨끗한 해수욕장답게 차고 맑은물이 특징이고 드넓은 백사장 뒤편으로 송림이 빽빽하고 주차장 야영장
숙박시설 음식점 등 각종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잇으며 해수욕장 남단으로 하천이 흘러 담수욕도 즐길수있고 낚시터로도 꽤 유명해 매년 전국낚시대회가 열리기도 하며 묵호항과 인접해 싱싱항회를 저렴하게 맛볼수 있다는것도 장점이며 무엇보다도 망만적인 캠핑카 체험이 가능한곳이라는게 매력이며 피서객들이 인파에 치일걸 알면서도 망상해수욕장으로 모여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