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에 평택에 사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다.
"정숙아, 나야. 너 월요일날 시간 있니?"
"7일날? 어. 왜?"
"으응, 그 날이 내 생일이야. 시간 있으면 우리 집에 와서 밥 같이 먹자구."
"알았어."
전화를 끊고 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철도청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10월 7일 낮 1시 15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기차표를 한 장 예매했다.
오늘 12시 55분, 서울역에 가서 예매해 둔 기차표를 찾았다. 요즘은 철도청에서 '바로티켓 발권기'라는 기계를 역에다 설치해 놓았다. 인터넷이나 전화로 표를 예매한 사람만 그 기계에서 신용카드로 표를 찾을 수 있다. 거기서 표를 찾으면 기차삯의 8%를 깎아 주기도 하고 줄을 안 서도 되니 빨리 표를 찾을 수도 있다. 나도 그 기계로 가서 표를 찾았다.
평택행 기차를 타려고 줄을 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곁에 스윽 다가선다. 깜짝 놀라서 몸을 돌려 보니, 양복을 입은 키가 자그마한 50대 아저씨가 바짝 다가와 나한테만 들리게 속삭였다.
"아가씨, 내 말 좀 믿어 줘. 나도 집에 아가씨만한 딸이 있는데, 내가 부산에서 출장 왔다가 돈이 다 떨어져서 그래. 돈 좀 있으면 빌려 줘."
'참나, 또 걸렸네.'
역이나 터미널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와 이런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늘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는 더듬대지도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한결같이 돈을 갚을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저는 신용카드 써서 현금 없어요."
'아저씨는 그 흔한 신용카드도 한 장 없어요? 기차표는 신용카드로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설마 출장까지 오신 분이 신용카드도 없다고 하면 누가 그걸 믿겠어요?' 하고 쏘아붙일 수도 있었지만, 상대하기 싫어 그만두었다. 아저씨도 더 뭐라 하지 않고 금방 사라졌다.
기차를 타고 보니 내 옆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호호백발에 돋보기를 쓰셨는데 일흔 살은 넘어 보였다. 차림새로 보아 시골 할머니가 아니라 도시 할머니 같고, 몸놀림도 쇠약한 분 같지 않고 정정해 보였다. 나에게 웃으며 말을 건네셨다.
"어디까지 가요?"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에 교양 있는 말투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을 많이 걸어 본 듯했다.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이번에는 여호와의 증인? 아이고, 오늘 왜 이렇게 귀찮은 일이 자꾸 생기냐? 한번 말 들어 주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1시간 동안 여호와의 증인이 되라고 강요할 텐데……. 이럴 때는 처음부터 아예 말 걸 틈을 안 주는 게 상책이다.'
할머니 얼굴을 안 보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평택이요."
"아, 그래요? 나도 평택까지 가는데."
아무 대꾸도 안 하니 할머니가 다시 물었다.
"평택에는 무슨 일로 가요? 거기 살아요?
할머니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짐작은 더 굳어졌다. 예전에 서울역에서 어떤 할머니가 나한테 다가와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어디 가느냐, 뭐 하는 사람이냐 묻다가 나중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라며 조그만 책자를 쥐어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답하기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요. 언니네 가요."
할머니도 내 마음을 아셨는지 조금 무안해하며
"아아, 그래요……. 아가씨 인상이 참 좋네요……."
하시더니 더 말을 안 붙이셨다. 나는 할머니의 그 말이 '아가씨 인상이 참 어수룩해 보이네요'로 들렸다. 에라, 자는 척해 버리자 하고 눈을 감았다. 조금 있다 슬쩍 할머니 쪽을 보니 할머니가 손가방에서 신문을 꺼내신다.
'음, 역시. 이번에는 그 쪽에서 내는 신문을 읽어 보라고 할 모양이네.'
그런데 내 예상을 깨고 할머니가 펼친 신문은 조선일보였다.
'엉?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할머니는 신문을 보기 좋게 잘 접으시더니 기사를 읽어 나가셨다. 나도 곁눈으로 기사를 읽었다. 신문 활자가 깨알같은데 할머니는 찬찬히 이 기사에서 저 기사로 눈길을 옮기셨다. 신문 보시는 품이 하루이틀 보신 게 아닌 듯하다. 내가 할머니를 잘못 본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이 돌아가니 할머니께 이만저만 죄송한 게 아니다. 할머니께 내 무례했던 언행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용기를 내어 할머니께 여쭈었다.
"저 할머니, 혹시 종교가 있으세요?"
"네? 아, 나는 천주교예요."
'아이쿠 맙소사.'
"아유,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오해를 했어요. 저는 할머니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가 하고 일부러 쌀쌀맞게 그랬는데 ……. 너무 죄송해요."
"아니에요 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 사람들 서울역에 많아요. 앉아 있으면 다가와서 말 걸고 그러지. 아줌마들이."
할머니는 변함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그 때부터 할머니와 평택역에 닿을 때까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갔다.
할머니는 연세가 일흔아홉 살이라고 하셨다. 딸만 넷인데 모두 시집을 갔고, 큰딸네는 얼마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다. 원래 서울에 사셨는데 몇 년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머니 혼자 평택으로 이사 와 조그만 주공아파트에서 살고 계신다고. 딸들이 생활비를 넉넉하게 보내 줘서 지내는 데 불편은 없고, 한 달에 두세 번 서울로 볼일을 보러 나오시는데 그 볼일이라는 게 장보는 것과 약 사는 일이라 한다. 장을 볼 때는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에 가시고, 약을 살 때는 종로5가에 가신다고 한다.
"할머니, 기차 타고 왔다 갔다 하시는 게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아니, 괜찮아요. 집에서 역이 별로 안 멀어요. 그런데 요새는 한두 시간 전에 기차표를 끊으러 나가면 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요. 표가 벌써 다 팔렸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에도 6시에 평택역에 갔어. 서울 가는 기차 10시 30분 거 한 장하고, 서울에서 평택 오는 기차표 2시 15분 거 한 장을 샀는데, 갈 때는 택시 타고 가고, 집에 올 때는 천천히 걸어왔어요. 그런데 장보는 게 금방 끝나서 1시에 서울역에 와 가지고 표를 바꿀 수 있나 알아보니까 1시 15분 표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표를 바꿔서 이 기차를 탄 거지."
말씀을 들으니 수원역에서 몇 달 전에 내가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한 분이 역무원에게 하소연을 하셨다.
"아니, 나는 한 시간 전부터 와서 표를 달라고 했는데, 나한테는 표가 다 팔렸다고 하면서 왜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한테는 표를 주는 거야? 이런 법이 어딨어!"
"아유, 영감님. 예매를 하셔야죠. 요새는 예매 안 하시면 표 없어요."
역무원은 답답하다고 딱하다는 투로 말했지만, 할아버지도 그런 법이 어딨냐며 답답해하셨다. 그 장면을 보는 나도 기가 막혔다. 노인들에게 기차를 타려면, 3만 원을 내고 철도회원에 가입해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매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너무 치나친 요구 아닌가. 우리 어머니도 가끔 기차를 타시는데, 기차표는 늘 우리 형제들이 끊어 드린다.
내 옆에 앉으신 할머니는 신문을 읽으실 만큼 배운 분이고, 기차도 자주 이용하시지만 요즘 같은 기차표 끊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계셨다. 할머니가 급한 마음에 쌀쌀한 새벽녘에 택시를 타고 가서 기차표를 끊으시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철도청에서는 역까지 표를 끊으러 나오시는 노인들을 위해 기차마다 열 자리 정도쯤 남겨 두면 안 될까? 기차 출발하기 10분 전까지 안 팔리고 남는 자리가 있으면,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팔아도 될 텐데. 요즘 혼자 사는 노인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가 그 정도 배려는 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글쓰기연구회 회보) 2002년 11월호에서
(*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글을 쓴 신정숙 씨는 우리 일기방 식굽니다. 누군지 알아맞춰 보세요∼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