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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언제나 단독으로 정맥종주를 하기위해 집을 나서는 날이면 집사람이 짜증을 내거나 불필요한 걱정을 많이 한다. 이렇게 산을 탄 지가 제법 되었음에도 집사람의 근심은 잦아들 줄 모른다. 때로는 그게 싫어 역정을 내 보기도 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야밤에 편한 등로를 혼자 걷노라면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 상념의 정점에는 거의 대부분 혼자 잠을 못자는 집사람을 떠 올리게 된다. 신혼 초만 하더라도 남편의 역마살 때문에 가슴 졸이고 살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집사람이 나하고 취미가 같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여 인근의 산을 같이 가보기도 하지만 쉽게 동화되질 않았다. 가끔씩 정맥 마루금에서 대하게 되는 부부 정맥종주팀들(전수배․진희자부부, 비실이부부, 백곰부부, 조진대고문님 등)을 보게 되면 그 부러움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쩔 수 없이 집사람과 아이들의 걱정을 덜어 주는 길밖에는 없는 것 같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6월 5일 하루 휴가를 내어 3일동안(토요일은 일이 있어 안되고) 연속종주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차마 집사람에게 큰 근심덩어리를 안기고 연속 3일 산행을 하겠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6일 현충일 하루는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하고 6월 4일과 5일 이틀간의 산행을 위하여 집을 나서본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초당골-묵방산-성옥산-왕자산-고당산-추령-내장산(장군봉-연자봉-신선봉-까치봉)-백암산-대각산-밀재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60.3km, 알바 약 3km
- 산행일시 : 6/4(일) 09:50~ 6/5(월) 18:40(31시간 50분)
- 산행구간 : 초당골(6/4 09:50) - 모악지맥 분기점(10:10) - 묵방산(10:50) - 여우치(11:00) - 가는정이(11:24) - 성옥산(12:30, 점심식사 12:30~13:10) - 소리개재(13:27) - 왕자산(14:43) - 광산김씨묘(15:30) - 439봉(16:30) - 구절재(16:50~17:15) - 428봉(18:15) - 사적골재 연화정사(18:43~18:50) - 500봉(저녁식사 19:08~19:50) - 476봉(20:03) - 굴재(21:10) - 고당산(22:04~22:24) - 개운치(23:00) - 망대봉(23:40) - 두들재(6/5 00:04) - 여시목(00:55) - 복룡재(01:50) - 송곳바위(02:40~02:50) - 개운치(03:25) - 유군치(04:00) - 내장산 장군봉(04:36~04:57) - 바위위에서 취침(05:00~06:10) - 연자봉(06:42) - 신선봉(아침식사 07:02~07:30) - 까치봉(07:55) - 마루금 복귀(08:03) - 소등근재(08:35~08:45) - 마루금 복귀(09:13) - 소죽엄재(09:28) - 순창새재(09:50) - 상왕봉(10:50~11:10) - 도집봉(11:20) - 곡두재(12:28) - 감상굴재(13:20) - 신화회관 점심식사(13:20~13:55) - 대각산(14:28) - 도장봉(16:05) - 526봉(17:10) - 520봉(18:25) - 밀재(18:40)
- 소요경비 : 66,900원(서울-전주시외버스 9,000원, 점심식사 5,000원, 밀재-정읍택시비 : 26,000원, 저녁식사 8,000원, 정읍-서울고속버스 : 18,900원)
※ 전주-초당골, 강남고속터미널-집까지는 지인이 태워 줌
★ 산행기
06시 30분 전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09시 정각 전주에 도착하자 전주에 사는 친구가 운암삼거리 초당골까지 태워주겠다고 자신의 차를 가지고 왔다. 항상 미안하고 고맙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보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09시 50분, 운암삼거리 초당골에 도착하니 호반슈퍼 맞은 편 어부의 집 식당 좌측으로 표시기가 정맥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이틀간의 장거리 답사가 시작된다.
세끼의 밥과 충분한 미숫가루, 메실차 700cc, 물 3리터, 떡, 배즙 4봉지와 약간의 과일, 쵸코렛 한봉지와 영양갱 4개, 아이스커피 3봉지, 여벌옷, 랜턴 2개와 비상약품 등 필요한 물품만을 38리터의 배낭에 차곡차곡 채우니 11.4kg이 된다.
이 정도의 무게라면 장거리 산행에 대비한 배낭무게로서는 적당한 편이다. 도상거리로 밀재까지 60.3km를 진행해 보기로 계획하였지만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전치재까지 69.6km도 욕심을 내 본다.
이 길을 내가 처음 지나는 것인지 거미줄이 계속하여 여기저기 달라 붙는다. 10시 10분 능선 분기점에 이르자 정맥마루금과는 반대인 모악산 방향으로 모악지맥이라는 표시기가 붙어있었다. 이 지점이 섬진강과 동진강, 만경강을 가르는 수분점이기도 하다.
<묵방산 오르는 길>
된비알의 묵방산을 오르자 여기저기 나무가 쓰러져 그 진행을 방해한다. 전위봉에 이른 다음 왼쪽 능선길로 편안하게 이어져 잠시 달려보기도 하지만 이내 급한 경사가 기다린다.
묵방산은 마루금에 약간 벗어나 있었지만 갔다 오기로 한다. 10시 50분에 도착한 묵방산(墨防山, 400m)은 실망스럽게도 삼각점도 표지판도 없었다. 박정길이라는 분이 적어 붙인 코팅된 종이표지에 묵방산 정상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묵방산 정상>
묵방산을 내려서는 길은 산책로와 같이 유순하다. 불과 10분이 소요되지도 않아 여우치에 도착하였지만 대나무밭을 통과하여야 했고 흉물스러운 폐가 옆을 지나 계속하여 직진방향으로 마을 길을 따라가 본다. 오른쪽의 완만한 능선이 마루금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며 정지작업을 한 밭을 올라가자 표시기가 나타난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처음 만난다. 주변에 무슨 공사를 하는지 산 중에서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묵방산과 여우치 마을>
여우치를 넘어서서 293.4봉의 삼각점을 지나치자 11시 24분, 하운암산장과 옥정호산장이 보이고 74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가능정이에 도착한다. 옥정호가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동네였다. 옥정호산장으로 올라간 후 왼쪽으로 가다 오른쪽의 능선을 보니 표시기가 보인다.
12시 30분 성옥산에 이르러 점심식사할 장소를 찾는다. 행동은 민첩한 편이지만 식사는 대단히 더디게 하는 편이라 산에서의 식사시간도 대개 30분을 넘기고 만다. 40분간의 넉넉한 식사를 마치고 커피한잔을 곁들이자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기분이다.
성옥산을 지나면서 내리막길에는 몇 개의 묘소를 통과하게 되고 밭으로 내려서자 소리개재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내려서는 길이 분명하지 않지만 일단 포장도로로 진입한다. 언뜻 봐서는 진행방향을 좌측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지형이지만, 나침반으로 지도정치를 하자 직진의 밭으로 올라가야 했다.
밭길을 따라 올라가던 등로가 묘지가 있는 곳이 나타나며 소나무숲으로 진행하게 된다. 임도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넓은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 둔덕을 내려서니 삼거리를 대하게 된다.
표지기를 따라 간다고 하지만 밤에는 헛갈 리가 쉬운 지점이다. 마루금은 다른 지역과 달리 "ㄷ”자 모양으로 지나가야 했다. 고추밭길을 따라 왼쪽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보이는 방성골을 지나려고 하니 한낮에 하릴없이 하루를 소일하던 개한마리가 제 할 일을 찾았는지 끊임없이 짖어댄다.
<방성골>
우산대모양의 공기파이프를 오른쪽에 두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자 표시기가 숲속으로 안내한다.
14시 43분, 삼각점이 있는 왕자산(王子山, 444.4m)에 이르게 되고 가시와 잡목이 우거진 마루금을 지나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서자 예덕리 무래실골과 목욕리 내목을 연결하는 고개에 정자나무가 보인다.
북서향으로 향하던 마루금이 남서향으로 꺾이며 15시 30분, 광산김씨묘를 지나게 된다. 급경사의 410봉을 지나 좌측능선으로 진행하자 다시 나타나는 급경사의 봉우리가 나를 숨가쁘게 한다. 이 봉우리 정상에서 우측으로 꺾어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꺾어내리는 등로를 대하게 된다. 안부를 지나 420봉에 오른 후 임도와 밭을 통과하니 30번 국도가 지나는 구절재에 이르게 된다(16:40).
칠보면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길가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나를 보며 웃고 있다. 그늘진 곳을 찾아 행장을 내려 놓자 온갖 벌레가 여기저기서 뚝뚝 떨어진다. 벌레가 물린 팔과 배, 등에 파스를 바르고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먹는다.
<구절재>
17시 15분, 자리를 털고 428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물이 얼마남지는 않았다. 연화정사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급수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석탄사라도 올라가야 했다.
송전탑을 지나 18시 15분, 428봉에 도착한 다음 연화정사가 있음직한 곳을 확인하며 진행하기 시작한다. 지도상에는 428봉을 갓 지난 곳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어 마루금에 인접하여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내가 소지한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는 것과는 달랐다.
18시 43분, 사적골재에 내려서자 조그마한 암자인 연화정사가 보인다. 할머니가 암자에서 내려서는 모습을 보고 합장배례를 하며 물을 얻고 싶다고 하자 얼마든지 받아가시라 한다.
하이드로백 3리터와 빈물병 2개 1리터를 다 채우고 머리를 감은 후 가던 길을 가려하자 할머니가 이제 집에 들어갈 시간인데, 어딜 가냐고 한다.
<사적골재의 연화정사>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 조금 더 산을 타겠다고 하자 이제 그만 쉬라고 한다. 18시 50분, 고맙다고 인사하고 석탄사 올라가는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가다 표시기가 안내하는 가파른 숲길로 들어선다. 시주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많지는 않지만 절에 들르게 되면 항상 시주를 했건만 절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일까 그냥 나오고 말았다.
19시 08분, 잔디가 아름답게 다듬어진 무덤가에 앉아 저녁을 먹기로 했다. 김과 김치 그리고 오징어 젓갈로 찬은 소박하지만 나만을 위한 성찬을 커피한잔과 마지막 남은 토마토를 디저트로 마무리하며 야간산행을 준비한다.
19시 50분, 해드렌턴을 착용하고 손전등을 소지한 채 어두어지기 시작하는 숲길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한낮에 가끔씩 집요하게 달라붙던 날파리들이 잠적하니 훨씬 편안한 기분이다.
20시 03분, 476봉에 도착한 후 5분정도 진행하자 임도를 만난다. 완만하게 등로가 이어지고 서서히 오름길이 나타나다가 553봉에 이른다.
고당산이 달빛에 조망이 된다. 그나마 구름한 점없는 날씨 덕분에 주변의 산세를 조망할 수 있어 다행이다. 553봉에서 20여분 내려서자 밭을 통과하게 되고 왼쪽으로 오룡마을에는 불빛이 밝게 비추고 있다.
21시 10분 굴재에 도착하여 고당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벌목을 한 등로를 오르려고 하니 달빛이 좋아 혼자 기분에 취해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계속하여 완만하게 올라가지만 가끔씩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어주기도 하여 힘이 들지가 않다.
21시 30분경, 왼쪽 발앞 풀섶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랜턴을 가까이 비추자 놀랍게도 조그마한 고슴도치 한마리가 바짝 긴장하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일부러 눈에다 손전등을 비추며 스틱으로 툭툭 쳐보지만 꾸르꾸르하는 소리를 낼 뿐 도망가지를 않는다.
가끔씩 숲속에서 오소리나 너구리를 만나기도 하지만 고슴도치는 처음이다. 생각 같아서는 막내 아들놈 선물로 들고 오고 싶기도 하지만 가지고 온들 살릴 수도 없는데 그냥 보내줄 수밖에 없다. 얼마간 그렇게 장난을 치자 녀석이 긴장하는가 보다. 불빛을 거둬드리자 뒤뚱거리며 도망간다.
“미안하다. 꼬마친구야. 벌레 잡아먹으려고 밖에 나왔을텐데 혼자가는 숲길 심심해서 그랬다.”
오르막이 계속되자 땀이 흘러내린다. 22시 4분, 고당산(高堂山, 639.7m)에 도착하고 보니 표지판에 칠보산을 같이 명기한 것으로 봐서 두 이름으로 통용되는 것 같다. 고당산에서 산죽터널을 지나 조금 내려서자 헬기장에 이르게 된다. 배낭을 부려 바닥에 앉아 미숫가루물과 커피를 한잔 걸쳐본다.
22시 24분, 이제 개운치까지는 얼마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도 없다. 내장산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그 시간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여유로운 산행을 만끽해본다.
23시 정각에 개운치 마을에 도착한 후 시멘트 포장도로를 소리죽여 따라 가본다. 혹시 민가의 개들이 나의 출현을 알고 자지러지게 짖어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지 안사는지 모르겠지만 개는 없는 것 같다. 길가에 방범초소가 있어 안에 들어가 자고 싶기도 하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2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개운치에서 망대봉으로 향하는 들머리가 분명치 않다. 지나가는 차가 없을 때 들머리를 찾아야 하는데, 잘 찾아지질 않자 무턱대고 풀섶을 헤치며 올라가본다. 만약 야밤에 차량운전자가 시커먼 복장을 한 산객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소스라치게 놀랄게 뻔하기 때문에 나를 안보여주는게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풀섶에 맺힌 이슬이 등산화에 내려 앉으며 신발을 적실까봐 걱정이다. 등산화에 내려 앉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희미한 길을 따라 올라가자 이내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망대봉이 가까울 수록 윙윙거리는 중계소 통신탑의 소리가 마치 귀신의 곡소리마냥 신경쓰이게 한다.
12시 40분, 망대봉에 도착하였지만 철조망을 따라 우회하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철조망과 함께 가시덤불이 덮혀 있는 직벽의 바위를 오르내리는 일들이 야밤이라 더욱 신경 쓰이게 한다. 정신을 집중하여 이를 통과한 후 중계소 정문에 도착하니 시멘트도로가 나타난다.
지도를 확인하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북서향으로 가다 남서향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인 두들재에서 숲길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며 외로운 나그네의 적적함을 달래준다.
24시 정각, 시멘트 포장도로 옆에 있는 헬기장에 도착하자 날이 바뀐다. 00시 4분 두들재에 도착하여 표시기를 확인하고 숲길로 들어간다. 묘지가 있는 462봉과 506봉의 사면을 돌아 산죽지대를 뚫고 내려서니 여시목에 이른다(00:55).
마루금 왼쪽으로 철망이 쳐져 있고, 이 철망은 마루금과 같은 방향으로 따라가고 있다. 01시 50분, 철문이 있는 복룡재에 이르러 발로 툭 차자 철문이 열린다.
복룡재를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선 다음 우측으로 꺾어 철망에 몸이 닿지 않게 조심하며 내려선다. 자칫 뾰족하게 된 부위에 넘어지며 피부가 찢겨지기라도 한다면 파상풍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바위가 많은 내리막에는 계속하여 삼각점이 네 번씩이나 나타난다. 02시 15분에 이어 02시 40분에도 삼각점이 보였지만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02시 45분, 송곳바위 밑 널다란 바위위에 앉아 손전등은 가로등처럼 나무위에 걸치고 쵸코렛으로 요기를 하며 달빛에 비추는 내장산을 조망해본다.
산죽지대를 지나쳐 완만하게 추령에 이른 다음(03시 25분), 철조망을 넘어 내장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04시 정각 유군치에 이르자 매표소가 보였지만 그냥 놀리고 있는지 아직 입산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안은 텅비어 있었다.
04시 36분, 장군봉에 도착하니 희미하게나마 여명이 뻗치기 시작한다. 남아 있는 떡으로 요기를 하며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린다.
04시 57분, 연자봉을 향하여 천천히 진행하는데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잠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 이 시간에 숙면을 취할 수 있으면 잠을 자 두는 것이 앞으로의 여정에 도움이 된다. 널다란 바위를 골라 다리를 높게 하고 방석을 바닥에 깔고 잠을 청했다.
30분 정도는 숙면을 취한 것 같다. 이상하리만치 바위위에서는 숙면을 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바위의 기운때문인지 이외로 말끔하게 피로가 사라지기도 하였다.
조금 더 자려고 하였지만 계속하여 비몽사몽의 연속이다. 그러나 1시간 10분을 그렇게 보낸 후 일어서는데, 여전히 몽롱한 기분이 계속된다. 06시 10분, 연자봉을 향하는데 배도 고프고 가파른 등로를 오르는 게 힘이 부친다.
06시 42분, 철계단을 따라 연자봉에 오른 다음 가파르게 내려선 다음 신선봉을 쳐다보니 맥이 탁 풀린다. 허기가 져서 진행하기가 영 수월치 않다.
07시 2분 신선봉에 도착하여 마지막 남은 도시락을 꺼내 아침을 먹으려고 하는데, 배는 고프지만 목으로 넘어가질 않는다. 반쯤 먹다가 포기한다. 배즙으로 속을 달래보기도 하지만 계속하여 트림을 하게 된다.
신선봉이라고 하지만 신선이 아닌, 어디서 나타났는지 왕파리 수십마리가 떼로 달려들며 호젓하게 즐기려하는 식사마저 방해한다.
07시 30분, 까치봉으로 향했다. 까치봉은 정맥길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운무가 내려 앉은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까치봉까지 갔다 오기로 하였다(07시 55분). 그런데 까치봉 바로 못미쳐 마루금이 이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까치봉에서 왔다갔다하며 마루금을 찾았지만 이를 확인하지 못하여 할 수 없이 선답자(육덕님)의 산행기를 꺼내 보니 입암산성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갈림길에서 내려서야 했다(08:03).
<내장산 장군봉에서 본 연자봉과 신선봉>
잰 걸음에로 백암산을 향하지만 식수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약 1리터의 식수가 남아 있었지만 감상굴재의 신화회관까지 진행하기에는 버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5분 단위로 조금씩 마셔가며 최대한 식수를 절약하기로 하였다.
소등근재 900미터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대하고 오른쪽 마루금을 확인하지 못하고 계속 진행하자 계곡으로 떨어졌다(08:35). 계곡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길을 잘못 들었지만 오히려 다행이다. 물을 한모금 마셔보니 이외로 시원하다. 하이드로백에 물을 가득 채우고 작은 물병에도 채웠다.
<소등근재에 있는 추모비>
이 더운 날 물이 부족한 것보다는 남는 게 훨씬 낫기 때문에 충분히 채웠다. 이제는 쵸코렛과 영양갱을 얼마든지 먹을 수도 있고, 신선봉에서 먹다남은 밥도 먹을 수 있다.
계곡 위를 따라 바로 소죽엄재로 갈 수도 있지만 다시 되돌아가기로 하였다(08:45). 09시 13분 마루금이 있는 갈림길에 도착하여 09시 28분에 소죽엄재에 이르게 된다. 약 1시간을 허비하였지만 후회되는 것은 아니었다.
<소죽엄재로 내려서는 정맥마루금 갈림길 초입>
물을 구할 수 있었고, 대강의 지형도 계곡에 이르자 파악이 되었다. 불필요한 발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잃은 것만은 아님을 이 호남정맥을 종주하면서 다시 깨닫게 된다.
영산기맥 분기점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지만 선답자의 산행기에 나타난 분기점이라고 코팅된 종이를 누군가 훼손했는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저 갈림길에서 표시기가 붙어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소죽엄재에서 소등근재로 내려서는 길>
09시 50분 순창새재에 이르자 소등근재에서 가로 질러 올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계속하여 정맥길은 탐방길이 아니라는 표지판이 나타나지만, 누군가 표지판을 메직으로 정정하여 호남정맥길임을 표시하였다. 누구나 다 아는 호남정맥을 이곳 국립공원에서는 왜 인정을 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할 노릇이다.
높게 버티고 서있는 상왕봉을 오르고 있는데 어제와 오늘 산행하면서 처음으로 등산객을 대해게 된다. 홀로 정맥꾼이라고 하며 곡두재에서 추령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옥정호에서 출발하여 밀재까지 간다고 하니 다소 놀라는 것 같다.
10시 50분, 구급함이 있는 상왕봉(象王峰, 742.1m)에 이르러 여기저기를 조망해 본다. 그늘진 곳에 내려 앉아 먹다 남은 밥을 물에 말아 시원스럽게 먹어본다.
11시 10분, 상왕봉을 출발한 지 10분만에 도집봉을 오르니 아름다운 소나무가 반긴다. 바위지대를 따라 주변의 경치를 조망하며 내려서자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의 백학봉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직진의 마루금을 따라 구암사 방향으로 내려서자 표시기가 메달려 있다.
내려서는 암릉구간에서 바라보는 농촌 풍경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내가 가야할 마루금과 저 멀리 추월산도 조망이 된다.
가파른 암릉구간을 군데 군데 메어있는 밧줄에 의지하며 내려서서 왼쪽으로 그림같은 밤나무 농장이 나타난다. 오른쪽 인삼밭 직전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자 표시기가 나타나지만, 지도를 확인할 필요가 전혀 없었으며 오로지 표시기만 의지하여 마치 미로속을 헤매 듯 따라 내려오자 12시 28분, 곡두재에 이른다.
<사진 가운데 회색건물이 감상굴재의 신화회관>
묘지가 있고, 임도와 비슷한 길 그리고 야트막한 능선 등 비슷비슷한 풍광의 등로를 거치면서 시멘트 도로에 이르게 되지만 도로를 따라 지방도로로 나온 다음 우측으로 가게 되면 신화회관 방면으로 갈 수도 있다.
표시기가 있는 야산의 마루금을 따라가자 이내 논밭을 건너 강선마을에 이르게 되고 강선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13시 20분, 감상굴재인 49번 국도를 건너 신화회관의 문을 열자 아무도 없다.
큰 소리로 주인을 부르자 아주머니가 밭일을 하다 부리나케 달려 온다. 식사를 할 수 있느냐 묻자 흔쾌히 할 수 있다고 한다. 된장찌개는 안되지만 쉽게 할 수 있는 된장국과 밥두그릇을 주문하여 한공기 반을 비웠다. 된장국이 맛이 있어 한그릇을 더 주문한다. 오랜만에 맛있는 식사를 해 보는 것 같다(5,000원).
생각 같아서는 맥주도 한잔 하고 싶었지만 10km 정도의 여정이 더 남아 있어 참기로 했다. 무더위에 목 주위로는 빨갛게 땀띠가 내려 앉았고 얼굴은 더위를 먹었는지 화끈거린다. 이런 상황에 술을 먹을 경우에는 힘든 고행길이 될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물이 충분하지만 하이드로백에다 3리터를 꽉 채웠다.
13시 55분, 대각산 들머리는 신화회관 오른쪽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되었다. 밥을 먹고 가파른 능선을 급하게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천천히 이동한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머리위에는 수건을 덮어썼지만, 끊임없이 땀이 흘러내린다.
14시 28분, 삼각점이 있는 대각산(大角山, 528m)에 도착하게 된다. 대각산을 지나자 삼거리봉을 대하게 되고 왼쪽 등로를 따라 내려서자 칠립마을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가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논가운데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가 있는데, 이곳에서 뽕나무 밭을 지나게 되면 강두마을 고개에 이른다. 야산에는 춘란이 지천으로 자생하고 있다.
15시 53분, 임도를 따르다 대나무가 울창한 길을 벗어나면 큰 당산나무가 있는 분덕재에 이르게 된다. 16시 05분, 다시 도로를 따르다 대나무 밭 옆으로 오르니 동판의 원형삼각점이 있는 도장봉에 도착한다.
<대각산 넘어 자생하는 춘란>
<가야 할 마루금과 추월산>
마루금이 계속 반복하여 비슷비슷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문제될 것은 없었다. 언제나 고민이 되는 장소에는 거의 틀림없이 표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길을 놓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다.
은행나무가 조림되어 있는 곳을 지나니 금방동 마을이 지척에 있었다. 향목탕재에 이르자 다시 한번 아름드리 당산나무를 만나게 된다. 금방동 안부에서 출발한 지 10여분이 지나자 무덤가 소나무에 표시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마루금이 위쪽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님에도 눈에 잘 띄는 곳이라 선답자들이 그렇게 매달아 논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밀재에 내려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계속하여 오르내리막을 반복하다 17시 10분, 526봉이 도착한 후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산딸기를 따먹으며 내려서자 바로 앞에 커다랗게 520봉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제 이 봉우리만 내려서면 밀재에 이르게 된다.
18시 25분, 520봉에 도착한 후 잰걸음으로 내려서자 18시 40분 밀재에 도착하며 31시간 50분의 긴여정을 마감하게 된다.
<소나무에 표시기가 붙어 있어도 마루금은 오른쪽임>
<밀재, 대방리 방향으로 내려서면 보임>
이제는 어떻게 귀가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몇 번의 히치를 시도했지만 전부 그냥 지나친다. 밀재는 순창과 담양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고 인근에는 복흥면 대방리가 있어 마을까지 걸어 내려온 다음 개울가에 가서 빨가벗고 몸을 씻어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차량통행도 뜸한데다 아무래도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기는 용이하지 않을 것 같아 택시를 부르기로 하였지만 전화통화가 안된다. 몇 번 시도하다 담양으로 올라가는 택시를 불러 세우니 다행히 정읍까지 가겠다고 한다(26,000원). 20시 10분에 도착한 정읍공용터미널에는 이미 20시 서울행고속버스가 출발해 버린 상태여서 22시 차를 이용해야 했다(18,900원).
식당에 들러 갈비탕과 맥주를 주문하여 TV를 보며 시간을 때운다. 지인께 오늘 산행보고를 하자 강남고속터미널까지 오겠다고 한다. 고맙게도 새벽 1시경 도착하여 전화를 하니 이내 터미널까지 온 다음 나를 집앞까지 태워다 준다. 차비를 내겠다고 함에도 받지 않는다. 이틀을 연속하여 진행한 즐거운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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