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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 ||||||
가을엽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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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아름다운 건, 누군가를, 무엇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만큼 우리는 그 공간에 인생을, 희망을, 고독을, 쓸쓸함을 채우고 채워지면 비우는 연습도 한다. 가을이 온다는 것은 풍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누군가를 우리 곁에서 보내야 한다는 상실의 의미도 있다. 얼마 전 팔십 평생 시를 노래하며 꿈을 꾸던 노시인이 유명을 달리했다. 내가 거제도로 내려와서 한창 문학 활동을 하던 90년대 노시인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함께 시를 쓰고, 거제문인협회와 시 사랑회를 통해 문단활동을 했다. 어린이처럼 때 묻지 않은 詩心으로 열권이 넘는 시집을 발간해 젊은 우리들에게 끊임없는 경각심을 일깨웠고 항상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기도 했다. 젊은 패기 하나로 글을 쓰는 후배들을 위해 선생은 사랑과, 부드러움으로 문학 활동을 이끌었고, 기자 신분이었던 나와 8년간의 예총지부장 재임 시에는 업무적으로 많이 부딪쳐 선생을 힘들게 한 시간들이 고인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죄송함이 앞선다. 소슬한 가을바람에 한 장의 엽서처럼 홀연히 떠나버린 거제 문단의 큰 어른 원신상 시인. 그 자리가 왠지 모를 허전함으로 우리 곁을 맴돈다. 그리고 또 하나 가을이 오면 항상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청마 유치환. 올해 탄신 103주년이 되는 청마 유치환 시인은 1908년 음력 7월 14일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에서 태어났다. 태풍 같고, 봄바람 같고, 북풍의 눈발 휘날리는 광야에서는 한 그루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의연함으로 생명을 노래하던 시인의 시혼은 시인이 떠난 지 반세기가 되는 데도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는 23일 24일 양일간 청마가 태어난 둔덕골과 거제시 문화예술회관 오션베스트호텔 연회장에서 제4회 청마문학제가 열린다. 부산시인협회, 대구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 회원들이 참여하는 이번 문학제에는 ‘거제에서-연변’을 아우르는 청마의 시혼과 문학정신을 토론하고, 이야기하며, 특히 경주예총지부장인 서영수 시인의 경주고등학교 교장 재임시절과 경주에서의 문학 활동에 대한 뒷얘기와 서지월 시인의 ‘만주에서 쓴 청마시의 의미’란 주제로 특강도 들려줄 예정이다. 참가행사, 공연행사, 전시행사, 학술행사, 청마연구상 시상식 등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준비된 청마문학제에 거제시민의 발걸음이 바빠졌음 좋겠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벼가 무르익고 거봉 포도가 알알이 박힌 둔덕의 들판을 따라 청마묘소까지 아이들과 함께 가을을 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누군가 말했다. 사색은 마음을 살찌우는 독서라고...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에 한 장의 편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띄워 보내는 ‘청마 사랑의 편지쓰기’ 대회도 이 가을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작은 행복이다. 가고 오는 계절의 초입에서 문득 나에게 날아 온 가을엽서가 때론 부고일수도 있고, 청첩장일수도 있고, 개업초청장일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불통이 아닌, 소통의 시작, 이 각박한 세상에 그래도 온기로 받는 한 장의 엽서가 있으므로...(본명 이금숙/시인/동랑청마기념사업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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