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말이 주막에서 막걸리 마시고 개가 서당에서 풍월을 읊던 시절에 바닷가에서 고기잡는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이 어부는 어찌저찌하여 바다갈매기들과 친숙해지게 되었는데, 얼마나 친숙해졌는지 갈매기들이
그의 어깨에도 날아와 앉을 정도로 친숙하게 되었다.
어부는 이 사실을 허구헌날 아내에게 자랑하였다.
"아, 마누래 나가 허벌차게 잘 생겨놓다봉께 갈마구들이 내 어깨에 날아와 앉어가꼬
싸인해달라고 날리도 아니당께, 6,25때 난리는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갈마구들한테는 내 인기가 bts 지민이는 저리가라여"
허구헌날 서방이 구라를 친다고 생각한 아내는,
"아니 6,25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먼넘의 6,25때 난리?
서방 고거이 사실이면 말로만 허지 말고, 갈마구를 한마리만이라도 잡아와보더라고, 그래야 믿제"
"알었어 알었어 내일 잡어올거구먼, 그럼 낼 갈매기구이 해주는겨?(아재개그)"
그리하여 다음날 어부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갈매기를 잡아올 결심을 하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어부만 보면 배 근처로 날아오던 갈매기들이 저 멀리에서만 날아다닐뿐
한마리도 배 근처로 오질 않는 것이었다.
갈매기들은 자기네를 잡으려는 어부의 벼르는 마음인 기심을 읽고, 어부의 곁으로 오지 않은 것이었다.
이처럼 기심(機心기회기. 마음심)이란 벼르는 마음 즉, 기회를 엿보는 마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에게 해를 입히는 마음을 뜻하는데,
상대의 기심을 가장 잘 파악하는 동물은 새라고 한다.
그래서 새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심증이 가는 사람한테는 절대 근처로 가지 않고 극도로
경계를 한다고 한다.
반대로 기심을 가장 잘 파악하지 못하는 동물은 무얼까를 생각해봤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개'가 가장 상대방의
기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짐승들같으면 혹시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므로 사람을 경계하며 절대 곁으로 오지 않는 반면, 다 그런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개들이 사람이 오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별의심없이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며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의 이런 극단적인 사교성은 다른 동물들한테서는 결코 관찰하기 힘든 경우다.
그런데, 이 개가 사람곁으로 오는 것이 머리가 좋아서 그런것일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게 상당히 개를 오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데 의심도 않고 꼬리를 흔들며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이 과연 머리가 좋아서일까?
이성적으로 판단해 봤을때 잘못된 생각같다. 자신의 목숨이 어찌될지도 모르므로 경계하고
도망가는 것이 영리한 동물이 취해야할 행동이 아닌가 말이다.
실제적으로도 개는 유전자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바로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이라는 유전질환인데,
이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은 사실 처음엔 사람에게서 발견된 유전질환으로 윌리엄스보이렌이라는 사람이
발견했기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것이다.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에 걸린 사람의 특징은 너무 사교성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너무 사교성이 풍부해서 보통사람같으면 모르는 사람한테는 처음부터 친밀감을 가지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데,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처음 본 사람한테도 보자마자 과잉된 친밀감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윌리엄스보이렌 증후군이라는 유전자결함이 늑대에게서는 전혀 없었고, 개에게서만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토대로 늑대들과 어울려 살던 개가 인간의 가축이 된 사연은 아마 이러했을 것이라고 본다.
수만년전 어느시기에 어떤 늑대무리에 별난 늑대가 있었다.
이 늑대는 굉장히 덜떨어지고 모자랐다. 얼마나 모자랐던지, 아무리 서열이 높던지 낮던지, 암컷이던지 수컷이던지간에
가리지 않고 아무 늑대나 보면 실실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게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 해 동료들의 얼굴만 쳐다보며,
스스로 해야할 결정을 동료들에게 의지했다. 즉, 결정장애까지 심했다.
(실제로 늑대는 어떤 문제점이 발견되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개는 문제점이 발생했을때
주인의 눈부터 살핀다고 한다)
이러므로 동료들은 의존적이면서 아무나 보고 실실 쪼개는 어벙한 그를 따돌림하기 시작했다.
왕따를 견디지 못한 그는 이윽고 무리에서 쫓겨났다.
무리에서 쫓겨나 이곳저곳을 떠돌던 그는 어느날 인간인 사냥꾼들의 시선에 포착되고,
사냥꾼들은 그 늑대에게 창을 던졌다.
창은 빗나갔고, 그런데 사냥꾼들의 공격에 도망갈 줄 알았던 늑대가 자신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사냥꾼들은 이 모습에 왠지 동정심이 일었고, 죽이려는 생각보다는 보살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 채로 마을로 데려왔고, 집에서 기르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그 별난 덜 떨어진 늑대는 영악함보다 모자람으로 인해 인간의 가축이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든다.
이렇게 개는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에게조차도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는 동물이다.
실제로 자기를 보신탕으로 해먹을 주인에게도 끝가지 그 친밀감을 잃지 않는 동물이다.
사실 좋게 말해서 친밀감이지, 나쁘게 말하면 덜 떨어진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개는 자기를 해하려는 사람의 마음 즉, 기심을 가장 파악하지 못 하는 짐승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무딘마음과, 아무한테나 꼬리흔들고 달려드는 친밀감 높은 성정과, 자신을 해하려는 자를
경계하지 않는 덜떨어짐이 개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가장 친숙한 가축이 되어, 인간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며 세계의 폭넓은 영역에서 종이 번성하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영악하고 자립심 강한 늑대들이 멸종이 되네 마네 하는 상황인데도,
덜떨어져서 인간을 의존하게 된 개는 오히려 인간의 도움으로 전 지구적으로 번성을 누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인간도 그렇다.
똑똑하고 공부잘하는 사람이 돈 잘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것 같지만,
내 주위만 봐도 오히려 학교다닐때 공부도 못 하고 머리도 안 좋았을 법한 친구들이 사회적으로 더 성공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것은 어쩌면 똑똑한 친구들이 자기잘난 맛에 찌들어 주위도움없이
자기 혼자 모든걸 할 수 있다는 교만이 하늘을 찌르다 보니
그것이 사회생활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사귀는 것에 되려 장해가 되고
그것이 경제적인 성공에도 역시 장해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반면 학교다닐때 성격이 무뎌서 공부도 못하며 존재감 없이 지내던 친구들이 나중에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사회에서 성공 특히 경제적으로 성공하려면 인맥이 참 중요한데, 이런 무딘 친구들이 예민한
친구들보다 오히려 사람을 사귀는 재간은 훨씬 좋다보니 그것이 결국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나싶다.
그러니 자기가 둔감하다고 비관할 필요는 절대 없다.
세상은 참 공평한 것이다.
결점이 장점으로 돌아오고 장점이 곧 결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런 속담도 있었을 터.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다, 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