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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백제 왕궁 위치로 '전주 중노송동 인봉리와 문화촌 일대'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된 가운데 7일 곽장근 군산대 교수가 전주영상진흥원에서 현장 설명회를 갖고 있다. 추성수기자chss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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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왕궁 위치로 '전주 중노송동 인봉리와 문화촌 일대'라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미궁 속'후백제 왕궁'찾기에 돌파구를 열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후백제 왕궁 위치를 놓고 기존에 몇가지 추정이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똑떨어진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새 주장에 대한 검증과 고증을 통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7일 현장 설명회를 통해 '인봉리 일대'가 후백제 왕궁 위치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로 왕궁을 두른 궁성 혹은 왕성으로 추정되는 성벽의 흔적을 들었다. 전주영상진흥원 동쪽에 궁성의 서쪽 성벽으로 추정되는 길이 50m 토축이 남아있다는 것. 이를 서벽으로 가정하고 궁성의 동벽(기린봉 정상부에서 북쪽의 서낭댕이까지)·북벽(우성해오름아파트에서 태고종 종무원까지)·남벽(아랫마당재~전주제일고~전주풍남초)을 설정했다. 평지인 서벽을 제외하고 나머지 성벽들은 기린봉 산자락을 활용했고, 주택단지 등으로 개발됐음에도 자연지형을 통해 성벽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인봉리와 문화촌 일대는 본래 인봉리 방죽이 있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방죽을 메워 인봉리 공설운동장으로 사용했으며, 1963년 덕진종합경기장이 건설된 후 현재의 모습으로 점차 바뀌었다. 곽 교수는 인봉리 방죽의 존재에 주목했다. 후백제 멸망 이후 그 재건과 견훤의 부활을 우려해 전주에 주둔했던 군대(안남도호부)가 방죽을 만들고 도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또 인봉리 일대에 왕궁이 있었다면 지형적 특성상 그 방향은 자연스럽게 서쪽을 향하도록 되어있어 견훤의 미륵신앙과도 연결지을 수 있다고 보았다. 금산사 미륵전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다.
인봉리 일대가 왕궁 위치로 할 때 도성은 종래 고토성(古土城)으로 알려진 산자락으로 불 수 있으며, 그 평면형태가 반월형으로 중심부에 왕궁터를 병풍처럼 휘감는다. 이와함께 도성을 보호하기 위한 외성도 있었을 것이며, 외성은 기린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승암산을 지나 이목대와 오목대, 북쪽으로 도당산과 매봉산을 거쳐 금암동까지 이어진 산자락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아중리 구간을 외성이라고 제보한 주민도 있었다는 게 곽 교수의 설명. 곽 교수는 또 문헌(〈완산지 향리기〉)상 전주천이 오목대 아래로 흘렀다는 내용도 후백제 도성과 관련이 깊다고 보았다. 후백제 도성을 복원했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평지구간인 서쪽 구간이며, 지형적인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전주천 물줄기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전주천이 서쪽을 보호해주는 해자와 함께 성벽의 역할도 담당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아 곽 교수의 '인봉리'설은 기존 '전주 동고산성설''전주 노송동설''전주 감영지설'등과 함께 또하나의 설로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인봉리설'은 8일 국립무형문화유산원에서 열리는 한국고대사학회 주관 '후백제 왕도 전주의 재조명'학술대회에서 새 쟁점이 될 전망이다.